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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5화 (5/119)

S급 자영업자

5화

불안해진 나는 웃음기 없이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헛소리를 시작했다. 지금 필요한 건 뻔뻔함이다.

“혹시…… 아, 네. 그렇군요. 이해했어요. 제가 쓴 핸드크림이 궁금하셨던 거군요! R사의 포근포근 빵 향인데 굉장히 포근하고 좋죠?”

“…….”

“제가 빵을 좋아해서요. 관심 있으시다면 몰디브영에서 한번 시향해 보세요. 빵 향, 케이크 향, 초콜릿 향, 쿠키 향 종류도 다양하고 무려 이번 달 할인이 60%! 놋대 카드로 결제하면 10%! 더 할인되니 멋진 소비 생활을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R사 명예 홍보 대사의 마음으로 열변을 토하며 어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라는 내 강렬한 눈빛에 남자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와 주변을 살피니 아니나 다를까 주변 몇몇 이들의 시선이 남자 쪽을 향해 있었다. 그중에는 방금 내가 말한 핸드크림 명을 적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면 알바생이 손님에게 수작 부리니 뭐니 하는 소문은 안 나겠지……!’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대처에 나는 조용히 식은땀을 훔쳤다.

* * *

완벽한 대처는 개뿔.

“언니, 그분한테 뭐 했어요? 저도 좀 알려 주세요.”

“야, 누나 귀찮게 하지 말고 일이나 해.”

“오빠는 궁금하지도 않아? 요즘 여자도 안 데려오고 언니한테만 묘하게 친절하잖아. 틀림없이 관심이라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여자 알바생이 재차 물었다.

굳이 뭘 했다고 꼽자면 실수로 손잡은 게 전부다. 하지만 그건 이유가 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과 손 좀 잡았다고 반드시 호감으로 이어지는 거면 이 세상은 진작에 사랑과 평화로 넘쳐났을 테니까.

분명한 건 그날 이후로 남자는 다른 여자와 동행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고작해야 일주일에 한 번 들를까 말까 한다는 방문 횟수도 늘었다. 그리고 언제나 간결하게 계산만 하던 사람이 직원에게 말을 붙여 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문제는 직원이 나일 때만 말을 건다는 거다.

그걸 처음으로 눈치챈 사람은 함께 일하는 여자 알바생이었다.

「그분 있잖아요. 언니가 있을 때만 말 거는 거 알아요?」

「뭐? 설마.」

「아뇨, 맞는 것 같아요. 저번에 언니한테 메뉴 추천해 달라고 했었잖아요. 저 반년 일하면서 그분이 주문 말고 다른 말 하는 거 처음 들었어요. 매번 아아메만 시키던 사람이…… 역시 언니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닐까요?」

「고작 그걸로 관심 있는 것 같다고?」

「제 촉이 그래요. 저 촉 되게 좋거든요.」

「착각이겠지. 그런 사람이 나한테 왜?」

장난기 어린 미소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한눈에 봐도 예쁜 아멜리아라면 몰라도, 매서운 눈매에 건조한 표정을 한 김유정은 학창 시절에도 노려보는 거냐고 불려 나간 적은 있어도 고백으로 불려 나간 적은 없었다.

물론 사람을 볼 때 외모가 전부는 아니라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나눈 대화라고는 기껏해야 저번 화장품 PPL이 전부인데 그걸로 인품을 판단할 수 있을 리도 없고, 그렇다면 남는 건 외모뿐이지 않나.

어찌 되었든 저번의 민망한 실수와 겹쳐, 동료에게 그런 말까지 듣고 나니 아무리 나라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무의식중에 그에 관한 이야기를 귀에 담았고, 시선을 주었다.

그러는 사이 알게 된 건 그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익숙한 부류의 것이라는 거였다.

“몇 번째 하는 말이지만 특별히 뭘 하지도 않았고, 저 사람이 보이는 관심도 네가 생각하는 쪽은 아닐 거야.”

“제가 생각하는 거요?”

“연애.”

“에이~ 어떻게 확신해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야야, 정수진, 주문 들어왔다. 남의 일에 관심 끄고 일해.”

그로부터 느껴지는 시선은 이성으로서의 호감보단 오히려 미미한 경계와 호기심을 더 닮아 있었다.

처음 전쟁터에 합류했을 때 질리도록 받았던 시선이었으니까 모를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런 시선으로 쳐다보는 걸까.

아니, 애초에 이렇게 난리를 피울 일인가? 카페 한가운데에서 키스 신이 펼쳐진 것도 아니고 고작 시선 좀 주고 말 좀 거는 건데?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남자의 얼굴 한 번 보면 납득이 갔다.

숨만 쉬어도 난리가 날 사람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으니 이 꼴이 나지.

솔직히 나야 아멜리아나, 황태자 레이몬드, 마탑주 유력 후보 키센 같은 사람들의 외모에 내성이 있어서 비교적 나은 편인 거다.

바빴던 점심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었다. 점심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흐리게 바뀌어 스산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날씨는 별로였지만, 나는 최근 들어 최고라고 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벌써 일주일째 남자가 카페에 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꾸준히 연애설을 밀고 있는 여자 알바생을 제외하고 점차 다른 이들의 입에서 남자와 관련된 말이 들어가고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오후에 접어들며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금 남아 있는 손님이라곤 창가 자리에서 이어폰을 끼고 타자기를 두드리는 손님 한 명이 전부였다.

“쿠폰 정리도 해야겠네. 오늘 뒷정리 당번 나니까 내가 할게.”

“그러면 저야 고맙죠. 아, 오늘 비 온다고 하던데 우산 가져오셨어요?”

“응.”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랍에서 쿠폰을 꺼내 들었다.

이 카페는 아직 종이 쿠폰을 썼다. 음료를 시킬 때마다 도장을 찍어 주고 다 모으면 음료 하나가 무료인 방식이었는데, 분실을 우려해서 쿠폰에 이름을 적어 놓고 가면 카페에서 보관해 주곤 했다.

“어? 그러고 보니 그 손님은 쿠폰 안 만들었나 보네?”

“그 손님이요?”

“그 있잖아. 수진이가 매번 잘생겼다고 하는 손님. 지금 생각해 보니까 계산할 때 쿠폰에 도장을 찍은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자주 오지 않으면 몰라도 자주 오는 카페면 보통 쿠폰을 만들기 마련이다. 의아해서 묻자 남자 알바생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손님이요? 전에 만들 거냐고 물어봤는데 필요 없다고 하던데요?”

“그래? 그 정도로 자주 오면 무료 음료가 꽤 될 텐데.”

“돈이 많나 보죠. 뭐 이런 구역에서 사는 것 자체가…… 아, 저 잠깐 전화 좀.”

“천천히 받고 와. 어차피 손님도 없는데 뭘.”

급한 전화인지 남자 알바생이 서둘러 뛰어갔다.

직원실 문이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밖이 금세 회색빛으로 물들며 흐려졌다.

딸랑-.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 사이로 빗소리가 커졌다가 빠르게 잦아들었다. 정리하던 쿠폰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자, 한동안 보지 못했던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우산꽂이에 우산을 놓는 동안 나는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오랜만에 봐도 잘난 얼굴이 조명 탓인지 창백하게만 보였다.

저벅, 저벅.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눈을 깜박였다.

이상하다. 무언가 이상한 것 같은데 정확히 무엇이 이상한지 모르겠다.

‘……비현실적인 얼굴 탓인가?’

묘한 이질감에 눈살을 찌푸리던 내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아.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분명 밖에는 비가 세차게 쏟아지건만, 남자의 발자국에는 물기가 없었다.

건조한 머리카락과 코트. 우산꽂이에 꽂힌 우산 아래 역시 물이 고이지 않은 채였다. 달랑 하나 놓인 우산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내가 너무 과하게 생각한 거겠지…….’

주차장을 통해서 왔을 수도 있다. 듣기로는 비싼 차 몰고 다니는 것 같고.

애써 생각을 지워 내고 있으니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가까이서 보니 안색이 더 창백해 보인다. 조명 탓이 아니라 진짜 몸이 안 좋은 듯 파리하게 질린 낯에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어서 오세요. 편하게 원하시는 자리에 앉으시면 되고, 주문은 벨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아, 그냥 여기에서 주문할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곧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는 아아메란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건네받은 카드를 긁는 대신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저…… 안색이 안 좋아 보이셔서 그런데 따뜻한 거 드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오늘 비도 오고 추우실 것 같아서요.”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아. 괜히 오지랖 부렸다.’

이어 찾아온 정적에 말을 주워 담을 방법은 없을까 고민할 무렵, 남자가 물었다.

“따뜻한 음료면 어떤 거요?”

“……네?”

“따뜻한 음료가 좋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추천해 주세요.”

“그, 저는 자몽 허니 블랙 티요. 아니면 유자차?”

아무래도 비타민C가 함유된 음료가 좋지 않을까 싶어 추천하니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아하시나 보네요.”

“네?”

“자몽이요. 저번에도 그거 추천하셨잖아요.”

“아아…….”

내가 그랬던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럼 그것으로 달라며 주문하곤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를 감싸는 모습이 누가 봐도 아픈 사람으로 보였다.

만든 음료를 자리까지 가져다준 뒤에 곧바로 텔레비전을 켰다. 뭐라도 좋으니 이 불편한 고요함이 사라졌으면 했다.

첫날만 해도 카페에 웬 텔레비전이 있나 했는데 이런 때를 대비해서 마련해 둔 게 분명하다.

아무 채널이나 틀어 놓은 채 다시 쿠폰 정리에 몰두하는데, 돌연 남자의 음성이 가까이서 들렸다.

“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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