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8화
“X 같은 인생!”
사방에서 튀어 오르는 콘크리트를 피해 뜀박질하고, 한껏 손을 뻗어 고개를 비스듬히 숙인 그의 어깨를 잡아챘다.
곧바로 그의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가이딩을 방출했다.
손바닥에 있는 대로 가이딩을 쏟아부었다. 지금껏 해 본 것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의 가이딩을 쏟아부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했다.
평상시에 가이딩 하는 방법을 제대로 익혀 놓을걸.
가이딩이라고 해 봐야 지금껏 양현우한테밖에 안 해 봤고, 양현우는 언제나 가이딩이 충분한 상태에 속했다.
그마저도 몇 개월 전에 해 본 게 끝이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마른 호수에 물을 채워 넣어야 하는데 작은 커피 잔으로 들이붓고 있는 기분이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감싼 뺨이 시리다. 땅이 무너지는 듯한 파괴 음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고, 칼날 같은 바람은 매섭게 피부를 스쳤다.
까드득.
어둠 속에서 흉포한 괴물이 바로 뒤까지 엄습한 것처럼 오싹했다.
죽는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죽는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친 것은 점막 가이딩이었다.
가이딩은 접촉 면적이 넓을수록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게 보통이지만, 점막 가이딩은 한꺼번에 많은 힘을 쏟아 내거나 힘의 효율을 높이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얼핏 들었던 것 같다.
기억조차 뚜렷하지 않은 불분명한 정보였지만, 지금 난 뭐라도 시도해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봐요, 주연우 씨.”
나는 뺨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하게 들어 올린 뒤, 입 안에서 짓이기듯 속삭였다.
“입 벌려요.”
그의 말랑한 입술이 내 차가운 엄지손가락 아래 눌렸다. 아랫입술을 꾹 눌러 강제로 입을 열게끔 한 뒤, 비스듬하게 고개를 꺾어 입술을 맞물렸다.
어설프게 혀를 섞으며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건 인명 구조 활동이다. 인공호흡이다…….’
비록 인공호흡에는 혀를 넣지 않는다지만 사람을 살린다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을까?
의미 없는 정신 승리를 하며 흘낏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빠르게 영역을 넓혀 나가던 붉은빛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폭풍 한가운데 놓인 것처럼 거세게 몰아치던 바람도 잦아들었다.
확실히 점막 가이딩이 일반적인 접촉보다 효율이 뛰어나긴 한지 가이딩을 쏟아붓는 게 전보다 수월했다.
허공에 떠올랐던 물체들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에 한결 안도하며 접촉 가이딩으로 바꾸려는 때였다.
눈이 마주쳤다.
흐릿하던 눈동자에 흉흉한 금빛 이채가 돌았다. 놀라 눈을 크게 뜬 순간 커다란 손이 내 뺨을 감싸 왔다.
가만히 멈춰 있던 혀가 치열을 훑고 지나갔다. 부드럽게 입천장을 훑고 혀뿌리까지 삼킬 듯 깊게 맞춰 오는 입에 등허리가 오싹했다.
“자, 잠.”
“조금만 더요. 응? 조금만…….”
나를 달래듯 뒤통수를 감싼 손이 머리카락 사이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쾌락도 잠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여행자처럼 숨 쉴 틈도 없이 갈급한 입맞춤에 숨이 막혀 왔다.
질식사! 이대로 가다간 질식사!
조금 전과는 다른 이유로 죽음의 위기를 직감한 나는 더듬더듬 겉옷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곧바로 손에 잡히는 딱딱한 무언가로 남자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퍽!!
목숨이 달렸을 때 사람은 자신도 몰랐던 괴력을 발휘하는 법.
“하아…… 하아…….”
때마침 내 손에 잡힌 것은 휴대폰이었다.
우주 항공 소재 뭐시기로 만들어 튼튼하다는 말에 솔깃해 사서는 망치가 없던 날 급하게 대용품 삼아 못에 내리쳐도 멀쩡했던 내 휴대폰.
그 휴대폰에 균열이 생겼다.
“……아, 휴대폰 상태가 안 좋았나 보네.”
그 순간 휴대폰 모서리에서 붉은 무언가가 묻어 나온 게 보였다.
투드득, 진득한 붉은색이 모서리를 타고 한 방울, 두 방울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내가 사람을 해쳤다…….’
나는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진 남자와 무너지고 갈라져 처참한 거리를 번갈아 응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약속이라도 한 듯 쏟아지기 시작한 거센 비에 나는 망연자실하게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 * *
쏴아-.
건물 안에서도 들릴 만큼 빗소리가 컸다.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 거리에 세워 놓은 철제 입간판이 쓰러질 정도였다.
밤부터 시작해서 새벽 내내 비가 온다고 했으니, 사람들이 그걸로 착각하고 모를 만도 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허억, 헉. 나 죽네.”
짊어지고 있던 사람을 침대 위로 던져 놓고는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정도로 젖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그래…… 어쩔 수 없었던 거야. 비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밤에 그러고 있으면 감기 걸릴 테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나는 주연우 집에 와 있었다.
제정신을 못 차리는 그를 중간마다 깨워 집 위치를 물어보는 수고까지 들인 결과였다.
요즘 고급 오피스텔은 지문으로 열리더라.
지금으로부터 대략 30분 전.
나는 겨울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지진이라도 난 듯 콘크리트가 깎여 개판인 길거리.
바닥에는 나로 인해 상해를 입은 시신…… 아니, 사람 하나.
휴대폰은 고장 났고, 센터에 연락해야 할지, 경찰에 연락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둘 다 꺼려졌다.
며칠 내내 일만 한 몸은 고단했다. 추운 날씨에 비까지 와서 얼어 죽을 것 같은데, 사건 조사로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있는 힘껏 후려친 남자의 생존 상태가 걱정된다는 점도 컸다.
아멜리아일 때는 혼란스러운 시대기도 했고, 뒤처리해 줄 사람도 있어서 아무 문제 없었지만 지금 내겐 뒷배도, 보석금도 없었다.
일반인보다 에스퍼가 튼튼하다고 얼핏 듣긴 했는데 에스퍼라고 해도 하급에, 폭주까지 한 상황이니.
딱 봐도 상태가 나빠 보이는 사람을 쳤으니 큰일 났구나 싶었고. 솔직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빗물에 쓸려 나가는 핏물을 보며 초점이 나간 눈으로 생각했다.
내가 구하고 해친 사람을 비 오는 길바닥에 버리고 갈 수는 없고, 예약해 둔 모텔에 데려가는 것도 좀 그렇고.
그 결과가 이거였다.
나는 주연우의 집 방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생각하자. 일단 살리고 보지 뭐. 실수로 때려 버리긴 했어도 결과적으로 죽지는 않았고, 내가 사람을 구한 건 맞잖아?”
피로한 뇌는 복잡한 생각을 포기했다.
그때, 침대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 위에 엎어진 주연우의 얼굴이 붉었다.
이마에 손을 갖다 대 보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갑던 몸이 뜨거웠다.
나는 서둘러 그의 젖은 코트를 벗겨 냈다. 코트 덕분인지 안쪽은 거의 젖지 않았다.
비교적 멀쩡한 상의는 내버려 두고, 목도리만 풀어서 세탁실에 던져 놓았다. 그리고 구급상자를 찾아 온 방을 뒤졌다.
겨우 붉은색 십자가가 그려진 상자를 찾아 연 순간, 나는 내가 잘못 찾았나 싶었다.
다양한 주삿바늘에 온갖 종류의 진통제, 시험관에 든 정체 모를 약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약쟁이인가. 그러고 보니 비비안도 한때 약쟁이였는데…… 지금은 끊었으려나.
과거의 동료를 추억하는 것도 잠시,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건드린 티가 나지 않게 서둘러 정리하고는 다시 해열제를 찾아 헤맸다.
“주연우 씨, 약 먹을 수 있겠어요?”
반쯤 몸을 일으킨 채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해열제를 먹이고는 다시 눕혔다.
비몽사몽 한 상태라 그런지 주연우는 내가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따랐다.
물수건으로 쓸 만한 천도 두 개 찾아내서 하나는 젖은 머리와 식은땀을 닦아 주고, 다른 하나는 차가운 물에 적셔서 이마에 얹었다.
가슴을 졸였던 머리 쪽 상처는 일단 눈으로 보기엔 피부가 얕게 찢어진 게 전부였다.
폰 케이스에 긁힌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혹 하나 안 나지? 에스퍼는 두개골도 단단한가.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고, 혹시 몰라서 이마와 머릿결을 만져 주며 가이딩까지 추가로 했다.
한차례 일이 끝나고 나니 잊고 있던 경각심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이밀었다.
“……내가 일어나기 전에 깨면 어떡하지?”
하급이라도 에스퍼인데 그냥 내버려 두기엔 좀 그렇지 않나. 아무래도 최소한의 보안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는 튼튼한 줄로 오랜만에 포로를 사로잡을 때의 경력을 살려 그의 손목을 묶기 시작했다.
그게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건 단단히 결박을 끝마친 뒤였다.
“어, 음.”
이게…… 아닌가?
달뜬 숨, 열로 인해 촉촉해진 피부와 달아오른 눈가.
알 수 없는 배덕감에 꼴깍 침을 삼키는 것도 잠시, 노곤함에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몸을 겨우 일으켰다.
‘내일 알바 가야 해서 감기 걸리면 안 되는데…….’
나는 축축한 겉옷을 벗어 던지고 입을 만한 옷을 찾기 위해 그의 옷방을 뒤졌다.
체격 차이가 컸기에 상의라면 어떻게든 가능해도 하의는 무리였는데, 다행히도 아무 맨투맨이나 골라 입으니 대충 원피스 같았다.
뚝, 뚝.
깔끔한 옷방에 흙 섞인 빗물이 떨궈졌다. 산책 다녀온 강아지가 발 안 닦고 온 집안을 휩쓸기라도 한 것처럼 방 곳곳에 웅덩이가 졌다.
이거 안 치워도 되나, 남의 옷 함부로 꺼내 입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피곤함으로 인해 불쑥 화가 치밀어올랐다.
“이 고생을 했는데 설마 옷 하나 안 빌려주겠어? 해 봤자 얼마나 한다고.”
이불 대용으로 따뜻해 보이는 코트도 하나 꺼내서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 놓인 소파는 여럿이 누워도 될 만큼 넓고 푹신했다.
보일러를 켜지 않으면 얼어 죽을 것 같던 친구의 자취방과 다르게 훈기가 감돌기도 했다.
처음으로 가이딩을 많이 쏟아부은 탓인지 진작에 지친 몸은 눈을 감자마자 잠이 몰려왔다.
꺼내 온 코트를 목 바로 아래까지 끌어당겼다.
아무 생각 없이 골라 온 코트가 천만 원은 거뜬히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오후가 다 되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