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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13화 (13/119)

S급 자영업자

13화

영화는 전반적으로 흥미로웠다.

주인공 에반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의 절반에 화상 자국을 지니고 태어난다.

남들과 다른 외양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에반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경멸, 멸시, 학대 등을 당하며 힘든 인생을 산다.

그리고 어느 날, 진창을 구르던 그의 삶에 전환점이 주어진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날, 2층에서 그의 형제가 에반을 난간에서 밀었고, 추락한 에반은 그대로 머리가 박살 난다.

그러나 에반은 죽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뜬 그가 마주한 것은 추락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죽음으로 인해 또 다른 방식의 삶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에반은 매번 다양한 방식으로 살해당했고, 그때마다 하루 전날로 돌아왔다.

그쯤 되자 그는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되는 삶에 어느새 지루함을 느끼게 된 에반은, 자신이 죽었던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시작한다.

그날도 평소와 같았다. 여느 때와 같이 살인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에반은 실수로 떨어뜨린 거울 뒤쪽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자신은 이런 걸 쓴 기억이 없건만, 그의 필체로 쓰인 쪽지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계속해.’

‘멈춰.’

‘죽여.’

‘죽이지 마.’

‘죽어.’

반대되는 단어의 나열이었다.

쪽지를 발견한 에반은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방 안을 뒤지던 그는 이윽고 자신이 서 있던 침대 밑에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에반을 발견하자마자 손에 쥔 단도로 그의 목을 그어 버린다.

“와악!!”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침대 밑에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튀어나왔다는 게 소름 끼쳤다.

뭐니 해도 공포는 현실에 일어날 법한 일일수록 더 두려운 법이었다.

내 비명을 들은 주연우가 나를 달랬다.

“누나, 걱정 마요. 현실에선 좀처럼 일어날 리 없는 영화적 허용이에요. 목뼈가 있어서 저런 단검으로는 저렇게 한 번에 못 자르거든요.”

“……?”

“도끼나 대검으로 잘라도 위에서 잘라야 할 판에 저런 각도에, 아래에서 습격했는데 저렇게 깔끔하게 못 잘라요. 근육까지 잘리고 뼈에서 막혀서 두세 번은 더 그어야 하고요.”

난생처음 들어 보는 방식의 위로였다.

참신한 위로에 당황도 잠시,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진짜 단검으로는 한 번에 못 잘라요?”

헤르만 제국에서는 검기 사용자의 경우 저런 작은 칼로도 뼈를 자르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을 가진 에스퍼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저 주인공은 비각성자라는 설정이잖아요?”

“아.”

맞다. 여기에는 각성자들이 있었지.

빙의도, 세계 변동도 없었던 고등학교 때만 해도 판타지나 SF 영화를 볼 때 이런 연출들을 그냥 별생각 없이 감상했는데.

이제는 이 모든 게 현실에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 기분이 이상해졌다.

영화는 점점 후반부를 향해 달려갔다.

침대 아래 남자는 그 전에 죽은 에반 자신이었다. 이를 알게 된 것은 남자의 목에 저번 죽음의 사인인 밧줄 자국이 있어서였다.

죽었던 수많은 에반. 이지조차 완벽하게 가지지 못한 반 시체의 그들은 끊임없이 다시 삶을 반복하는 자신을 죽였다.

마치 죽이고, 죽여. 언젠가 하나가 되려는 것처럼…….

누군가를 살해하는 것에 대한 쾌락. 그리고 자신 또한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그 사이에서 에반은 끝내 미쳐 버린다.

달빛만이 비추는 어두운 밤. 에반은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하며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누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났다.

“……여기에서 끝난다고?”

그렇게 고통받고도 복수도 완벽히 끝마치지 못한 채 도리어 응징당한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찝찝해졌다.

못마땅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는데 주연우가 옆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보석처럼 예쁜 광택을 내는 초콜릿이었다.

“여기요.”

“어? 아, 감사합니다.”

오도독 아몬드가 씹혔다.

겉에는 슈가 파우더와 쌉쌀한 다크 초콜릿이 겉을 한 겹 감싸고, 그 안에는 헤이즐넛 초콜릿과 아몬드가 들어 있었는데 무척 맛있었다.

혹시 기분 안 좋아 보여서 준 건가? 예기치 못한 배려에 조용히 입만 우물거렸다.

단순히 은인이라는 이유로 퉁치기엔 뭐하다. 은혜 갚기 조항에 집 빌려주는 건 있어도 맛있는 초콜릿 주기는 없었잖아.

나는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그, 혹시 지금 필요하세요……?”

“초콜릿 더 드릴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런 적이 없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껏 가이딩의 대상은 한 명뿐이었고, 양현우의 경우 ‘시간 나시면 실험 좀 도와주시죠.’ 하면 끝이었으니까.

“가이딩 말이에요. 필요하시다면 해 드릴 수 있는데요.”

“…….”

“아니, 그, 필요 없으시면 말고요.”

민망함에 내민 손을 물리려는 참이었다. 그가 덥석 내 손을 붙잡았다.

“손…… 잡아도 되는 거예요?”

빠른 몸놀림에 내가 감탄과 황당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무렵, 내 손을 자신의 손으로 옭아맨 그가 나를 마주 보았다.

불은 영화 관람을 위해 최소한만 켜 둔 상태였다. 어둠에 녹아든 그의 눈동자가 짙게 가라앉았다.

생각보다 가까워진 거리에 내가 몸을 뒤로 빼자, 그가 그만큼 다가왔다.

그러면 내가 또 몸을 뒤로 빼고, 다가오고, 그것을 여러 차례 반복하고 소파 손잡이까지 올라가 더 갈 데가 없어지게 되자 나는 그의 두 손을 꽉 붙들어 맸다.

“멈춰요. 옳지. 자, 이제 우리 후진합시다…….”

“네.”

주연우가 얌전히 몸을 뒤로 뺐다.

‘……순간 놀랐네.’

그대로 거리를 유지한 채 두 손을 맞잡았다. 마치 부모가 아이의 두 손을 잡아 혼내는 것 같은 포즈여서 상당히 뻘쭘했다.

어색함을 줄일 겸 먼저 입을 뗐다.

“아, 맞다. 바로 이거부터 물어봤어야 했는데. 하도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었네요.”

“뭔데요?”

“혹시 지금 사귀시는 분 있으신가요?”

“……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제가 일단 이성이잖아요. 아무리 은혜 갚기라고 해도 사귀는 상대가 있으시다면 집에 머무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저번에 사귀셨던 분과는 끝나신 건가요?”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여 묻자 주연우가 고개를 기울였다.

“……? 사귄 적 없어요.”

“아, 네. 그러니까 지금 사귀는 사람은 없으시다는 말씀이시죠?”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는데 저번에 사귀셨던 분 같은 거, 저 없는데요.”

“네. 그러니까 지금 없는 거 확실하죠? 그럼 됐어요.”

“저 정말 안 사귀었어요.”

“알았어요.”

“정말인데…….”

왜인지 안절부절못하는 주연우에 나는 다 이해한다며 손등을 토닥여 주었다.

사귀는 사람이 있었으면 뭐 어떤가. 사귀는 동안 바람피우지만 않았으면 되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포함해 다들 왜 무조건 그가 바람둥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는 카페에서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았고 매번 다른 사람과 만났다.

누군가와 사귀는 동안 다른 사람을 만난 것만 아니면, 헤어지고 다른 누군가와 만나는 건 자유이지 않은가.

맞잡은 손을 통해 가이딩을 천천히 불어넣었다.

그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따뜻한 햇볕 아래 누운 고양이처럼 노곤해졌다.

‘이 사람도 안타깝네.’

에스퍼 등급도 낮은데, 매칭률까지 낮다니…….

혹시 매칭률 운명론자는 아니겠지? 매칭률이든 뭐든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본인보다 등급 높은 가이드를 고용하지.

한세영 말로는 가이드가 더 높다는 가정하에 두 각성자 사이 등급 차이가 크면 매칭률이 높지 않아도 어느 정도 가이딩이 가능하다고 했다.

마음 편해지고자 하는 마음 반, 안쓰러운 마음 반으로 머무는 동안이라도 가이딩을 돕자고 생각한 순간, 잡은 손이 움찔 떨렸다.

꾸벅, 꾸벅.

졸린 듯 주연우의 고개가 작게 흔들렸다.

‘이만하면 충분한가?’

슬슬 잘 시간도 되었다 싶어 조심스레 손을 뺐다.

내가 손을 빼자마자 감겼던 주연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

주연우가 멍하니 빈 자신의 손과 멀어진 내 손을 번갈아 쳐다봤다.

마치 내가 몹쓸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끔 하는 얼굴에 나는 정중히 시계를 가리켰다.

“이제 주무셔야죠. 벌써 새벽 1시에요.”

“아…….”

아쉬운 듯 작게 탄성을 흘린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쾅, 쾅.

이른 아침. 내 잠을 깨운 것은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이 아닌 소음이었다.

또 옆집 대학생이 자기 집으로 착각하고 문을 두드리는 건가?

그놈은 무슨 허구한 날 술을 처마시고 남의 집 문을 두드리네. 그러니까 학점이 개판이 나지.

“으…… 개 같은 놈. 내장을 털어 버릴라, 그만 두드려…….”

하필 쉬는 날에 저 난리다. 저러다 말겠지 하고 베개로 두 귀를 막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돌연 소리가 멎었다.

삐빅.

잠금이 해제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번뜩, 반사적으로 눈이 뜨였다. 잠이 깨며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김소희의 자취방이 아닌 주연우의 집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문이, 열렸어?”

이불에서 빠져나온 나는 어제 머리맡에 세워 놓았던 철제 스탠드를 한 손에 쥐고 잠가 둔 문고리를 돌렸다.

혹시 몰라서 호신용으로 둔 건데 이렇게 빨리 쓸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집주인이 저 난리를 피울 리는 없으니, 당연히 주연우는 아니겠고.

애초에 키까지 있으면서 저런 식으로 험악하게 문을 두드린 경위를 모르겠다.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며 거실로 향했다. 거실 식탁 앞에 보라색 머리의 누군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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