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14화
내 인기척을 느낀 듯 남자가 고개를 틀었다.
“야 이 미친 개또라이야! 아무리 너 꼴리는 대로 살아도 그렇지 저번 건 진짜 중요한 모임-.”
집주인과 아는 사이라고 판단을 내린 나는 무기 삼아 들고나온 스탠드를 잽싸게 등 뒤로 숨겼다.
“아,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소리치던 남자가 흠칫 눈살을 찌푸렸다.
귀에 주렁주렁 매달린 액세서리에, 턱 아래부터 빗장뼈까지 새겨진 문신.
요란한 차림새의 남자는 조심스레 방 안을 훑어보더니 ‘……잘못 찾아온 건 아닌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곧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얼굴로 번쩍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미친! 그럼 신입을 갑자기 데려갔던 이유가?!”
“네?”
“허어…… 와, 씨. 내가 살다 살다 별걸 다 보네. 그놈 집에 여자가 있는 걸 다 보고.”
남자가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내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는 깊은 생각에 빠진 듯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
뻘쭘해진 나는 들고 있던 스탠드를 바닥에 내려놓고 주변을 살폈다.
이 난리에 아직 일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 테고, 아무래도 주연우는 지금 집에 없는 모양이다.
갈 곳 잃은 시선이 남자의 손에 든 케이크 상자로 향했다. 저번에 주연우가 사 온 것과 같은 메모리아의 케이크였다.
‘저거 맛있었지…….’
생각하니까 또 먹고 싶네.
기분 좋은 상념을 깬 것은 타인의 목소리였다. 어색하게 제 머리를 긁적인 남자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기요. 혹시 여기 집주인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요?”
“아, 연우 씨요? 죄송하지만 저도 방금 일어나서 잘 모르겠어요.”
“……네……? 연우?”
쿵!
남자가 걷다 말고 돌연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발을 디디고 선 바닥이 울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나는 식겁하여 그를 일으키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곧바로 다른 손에 의해 가로막혔다.
손의 주인은 다름 아닌 주연우였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불쾌하다는 듯 주연우의 미간이 설핏 찌푸려졌다.
그의 유순한 태도만 보아 왔기에 낯선 모습에 놀람도 잠시, 그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맞다. 연우 씨! 지금 당장 구급차 불러요. 저 사람 하필 넘어져도 머리부터 넘어져서 뇌진탕 왔을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아니, 연우 씨는 괜찮을지 몰라도 저 사람은 안 괜찮다니까요?”
나라도 구급차를 불러야겠다 싶어도 내겐 휴대폰이 없었다. 얼마 전 주연우의 머리를 가격하며 운명한 휴대폰을 떠올리며 나는 탄식했다.
요즘 왜 이렇게 주변 사람 뚝배기가 깨지는 걸까.
“이 정신 나간 연또놈이…….”
낮게 욕을 지껄인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무거운 돌덩이라도 짊어진 듯 비틀거리며 일어난 남자가 주연우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연우는 시큰둥한 눈으로 남자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에 울컥한 듯 남자가 입술을 뗐다.
“전화는 또 왜 안 받-.”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주연우가 남자의 귓가에 뭐라 속삭였다. 곧이어 실소를 터뜨린 남자가 시선을 내 쪽으로 옮겼다.
머무는 시간은 짧았다. 남자의 시선은 주연우에게로 돌아갔고, 그는 상당히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입을 꾹 닫았다.
한차례 분위기가 진정되자 나는 남자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주연우의 친구, 정확히는 친구 비슷한 거라고 설명했다.
“하도경입니다. 방금은 실례가 많았습니다.”
남자의 말투는 조금 전과 달리 정중했다.
“네, 저는 김유정이에요. 그보다 머리 괜찮으세요? 소리가 장난 아니던데 병원에 가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뇨. 에스퍼라 이 정도는 괜찮아요.”
“아, 그렇구나. 에스퍼셨구나…….”
예기치 못한 에밍아웃에 절로 말끝이 흐려졌다.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주연우를 바라보았다. 부디 그가 당사자의 의견이 들어가지 않은 가밍아웃을 하지 않길 바란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 주었는지 주연우는 나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하도경이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아, 케이크 좀 사 왔는데 드시겠어요? 이거 유명하다는 곳에서 사 온 거니까 맛은 괜찮을 거예요.”
“헉, 이거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뭘요. 보니까 제가 아침부터 깨운 것 같은데. 전 진짜 얘 집에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거든요. 그런데…… 김유정 씨는 어쩌다 이런 곳에……?”
흘낏 주연우를 한 번 쳐다본 하도경이 물었다.
꾸며 냈다 싶을 정도로 심각한 그의 표정에 나는 예의상의 웃음소리를 내며 케이크 상자를 열었다.
에클레어 위에 얹어진 초콜릿이 반짝반짝하다. 새콤달콤한 라즈베리 퓨레가 뿌려진 판나코타와 가지각색의 과일들이 조화롭게 올라간 타르트도 보였다.
저절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누나, 잠시만요.”
주연우가 내 손에 들려 있던 케이크 상자를 가져갔다. 그와 동시에 하도경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이 풍부한 사람이네.
평온하던 내 얼굴에 금이 간 것은 주연우의 손 위로 옮겨졌던 케이크 상자가 처참하게 구겨지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였다.
“케이크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케이크가 휴지 조각으로 변해 버렸다.
단순히 케이크가 뭉개졌다는 말이 아니다. 아마도 주연우의 능력인 듯, 케이크 상자째로 거대한 무언가에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부피가 줄어들었다.
“아니, 갑자기 멀쩡한 케이크는 왜 없애요?”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충격받은 내 시선에 주연우는 단호히 답했다.
“독 들었으면 어떡해요.”
“……?”
“저 새끼가 독 넣어서 누나 해치려고 한 거면 위험하잖아요.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먹는 거 아니에요.”
“……예?”
하도 어이가 없으니 말문부터 막혔다. 내가 입만 뻐끔거리고 있으니,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본 하도경이 허, 작게 실소를 내뱉었다.
“하여튼 저 또라이 새끼…….”
이번만큼은 나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 * *
“꺼져.”
편하게 대화하라며 여자가 자리를 뜨자마자 손바닥을 뒤집듯 말투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태도에 하도경은 기가 찼다.
애초에 저놈이 제때 연락을 받기만 했어도 이렇게 찾아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연우진은 말도 없이 제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싫어했으니까.
그나마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자신이었기에 이 정도까지 허락된 것이기도 했다.
‘……어쩐지 최근 기분이 좋아 보이더니 이유가 이거였다고?’
미간 사이를 좁히며 하도경은 최근 일어났던 사건들을 떠올렸다.
저번부터 큰 게이트가 연이어 터지며, 능력 소모를 많이 했다.
메시아의 길마 연우진은 매칭률 극악에 S급 에스퍼라는 최악의 조합이었다.
유난히 상태가 안 좋아 보였던 날, 하도경은 이러다 저 자식 뒤지고 자신이 길마 되겠다 싶어 가이딩제 말고 매칭이나 계속해 보자며 설득했다.
그러나 연우진은 그의 말을 가차 없이 무시했다.
그간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기에, 하도경은 더 말했다간 이쪽이 피를 보리라 판단을 내리고 내일을 기약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드물게도 연우진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연우진은 여보세요, 라는 상투적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말했다.
「당분간 내가 먼저 연락하기 전까지 연락하지 마.」
뚝.
일방적으로 할 말만 내뱉고 끊어진 전화에 하도경은 위가 쓰려 왔지만 그러려니 했다.
길마 성격이 개차반인 게 하루 이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 연우진이 길드에 찾아왔다.
희귀한 길마의 방문에 길드원들이 기웃거렸다. 길마라고는 하나, 길드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은 놈이었다.
그래도 게이트 클리어나 업적을 높이는 데는 저놈을 따라갈 놈이 없으니 다들 묵인했다.
그러다 예의 사건이 일어났다. 인간을 인간 취급하지 않기로 유명한 메시아 길마께서 무려 친절을 베푼 것이다.
복도에서 부딪혔는데도 조용히 넘어가는 것은 물론, 마침 들고 있던 물건을 옮겨 주기까지 했다.
기이하기 짝이 없는 길마의 태도에 배려를 당한 길드원은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도와주세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하고 도망쳤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하도경은 처음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드디어 연우진이 미쳤나 싶었다.
그는 초창기 때부터 일해 온 길드원을 불러다 물었다.
“연우진이 미쳤나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오늘 소문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제가 생각하기에도 마스터께서 360도 도신 것 같습니다.“
“……? 360도 돌면 그대로 아닌가?”
“네, 그렇죠.”
원래부터 미친놈이라는 소리군.
하도경은 수긍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건 오늘뿐만이 아니었다.
한동안 연락하지 말라더니 당장 힐러를 집으로 보내라고 하질 않나, 유명한 가게에서 디저트 좀 사 오라고 하질 않나.
평소의 기행으로 넘겨서 그렇지 따지고 들면 하나같이 이상한 주문이었다.
힐러야 그렇다 쳐도, 케이크는 또 뭔가. 단것도 안 먹는 놈이 케이크를 뭐에다 쓰려고?
익숙한 미친 짓거리의 전조 증상인가 싶어서 연우진의 집에 다녀온 신입 힐러에게 물어봐도 신입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말하면 저 죽어요.’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 대답에 하도경은 신입을 더 추궁하지 않았다. 오래 지켜본 바 연우진은 정말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기에.
결국, 하도경은 직접 나서기로 하고 연우진의 집에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