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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16화 (16/119)

S급 자영업자

16화

* * *

휴대폰이 망가진 건 제 탓이니 새로 살 때까지 임시로 쓰라며 주연우에게 휴대폰을 받았다.

그날 곧장 한세영 집으로 가서 다시 번호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쉴 팔자가 아닌가 보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오후까지 죽은 듯이 자고 있어야 했는데, 주연우 지인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아침 일찍 기상에, 오후에는 한세영한테 불려 나오기까지 했다.

그렇게 사람을 불러내서 한 말이.

“우리 사귀기로 했어.”

였다.

수줍게 뺨을 긁적이는 양현우와 환하게 웃는 한세영.

룸 미러에 반사된 두 사람을 보며 나는 미간 사이를 매만졌다. 내가 의도치 않게 <나 홀X 집에>를 찍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도 무언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 그래. 그렇구나.”

“뭐야…… 반응이 그게 다야?”

“……축하한다?”

반응이 재미없다며 한세영이 툴툴거렸다. 알아 달라는 듯 대놓고 투덜거리기에 추가로 박수도 쳐 주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사귀자고 말만 안 했지, 이미 사귀는 분위기 아니었나?

“사귀게 된 기념으로 오늘은 우리가 쏠게. 뭐 먹고 싶어? 비싼 거 시켜도 돼!”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는데 왜 내가 식사를 대접받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사 준다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해 보겠다며 대답을 미루자, 한세영은 곧바로 양현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세영이 양식이랑 한식 중에서 뭐가 좋겠냐며 재잘거렸고, 양현우는 운전하면서도 그녀의 말에 하나하나 정성껏 답해 주었다.

“세영아.”

“응? 아, 맞다. 너 양식은 질렸다고 잘 안 먹었지. 그냥 호텔 뷔페로 갈까? 다양하게 먹을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은데.”

“나 각성자에 관해서 좀 알려 줘. 가능한 가이딩 관련해서.”

“당장 예약 가능한 호텔이…… 어? 뭐라고?”

한세영이 기겁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것은 양현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놀란 표정을 지은 양현우가 고개를 틀어 내 쪽을 바라보았다.

“유정 씨,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

“유정 씨가 자진해서 각성자에 관해 말을 꺼내는 일은 좀처럼 없잖아요.”

“네가 각성자에 관해서 물어보다니 보통 일이 아니잖아. 말해 봐, 응? 무슨 일이야? 아니면 드디어 각성자 등록하기로 한 거야?”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질문에 손뼉을 쳐 시선을 모았다.

“우선 현우 씨, 앞 제대로 봐요. 우리의 목적지가 황천은 아니잖아요.”

“아, 네!”

“그리고 한세영, 각성자 등록할 생각 없으니까 기대하지 마.”

“어? 그럼 왜?”

그 질문에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내가 가이드니까 기본적인 건 알아야겠다 싶어서. 그런 의미에서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어, 어! 내가 아는 거라면 뭐든 대답해 줄게!”

“나 평상시에 생활할 때 가이딩을 최소까지 낮추고 생활하잖아. 그런데 만약에 에스퍼한테 닿았을 때? 접촉한 것만으로 갑자기 가이딩이 증가할 수도 있어?”

가이드는 가이딩을 아예 지울 수 없다. 가이드가 능력을 연마하여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은 가이딩의 방식이나 양을 조절하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나처럼 에스퍼가 알아차릴 수 없게끔 낮추는 것은 자신이 알기로 사례가 없다고 양현우가 말했었다.

그러나 그때.

처음 주연우의 이마에 손을 얹었을 때, 나는 가이딩 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당연했다. 그때는 주연우가 에스퍼인 것조차 몰랐을 때니까.

평소처럼 가이딩을 한계까지 낮춘 상태에서 그의 이마에 손을 댔다.

그런데 갑자기 가이딩 수치가 증가하더니 양현우에게 가이딩을 했을 때처럼 몸 안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조금 다르긴 했다.

양현우에게서는 이런 게 가이딩이구나 인지만 할 수 있을 정도로의 아주 미미한 감각만이 느껴진 반면.

주연우에게 손을 댔을 때는 전시에 활약했을 당시처럼 강렬한 감각이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현실 도피를 했을까.

양현우보단 아멜리아 때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순간 가이딩이 아니라 치료 능력이 돌아온 건가 했다.

실제로 그런 느낌이 든 뒤로 주연우가 치료라도 받은 것처럼 멀쩡해지기도 했고.

“그러니까…… 네가 가이딩 수치를 높이지 않았는데도 많은 양의 가이딩이 빠져나갈 수 있냐는 말이지?”

“응.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그럴 수 있어?”

능력을 쓰려면 닿아야 한다는 점에서 아멜리아의 치료 능력과 가이딩은 비슷했다.

그러나 접촉이라는 조건만 주어지면 상시 발동하는 가이딩과 달리, 치료 능력은 내가 능력을 쓰지 않는 이상 접촉만으로는 소용없었다.

막힘 없이 유유자적 흐르는 강과 댐이 있는 강의 차이였다.

내 물음에 한세영은 눈을 크게 뜨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양현우가 놀라서 물었다.

“유정 씨, 혹시 어디에서 들은 거예요? 그거 역가이딩이에요.”

“역가이딩이라면…….”

“예전에 매칭률이 낮으면 역가이딩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한 적 있었죠? 가이딩이 부족해서 상태가 안 좋은 경우에도 종종 역가이딩 현상이 일어나요. 에스퍼가 일부러 가이딩을 거부할 때도 그렇고요. 전자와 달리, 후자는 질이 나쁜 경우죠.”

한세영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넌 몰라도 돼. 역가이딩 진짜 아프거든. 에스퍼들이 폭주 상태일 때 엄청 아프다고 할 때 솔직히 공감 안 됐는데 역가이딩 겪고 공감했지.”

“어…….”

“에스퍼인 현우 씨 앞에서 이런 말 하면 좀 그렇긴 한데, 가이드들도 폭주 직전의 에스퍼는 웬만해선 안 받아. 역가이딩 일으킬 확률도 높고, 폭주에 휘말리면 죽을 테니까.”

“음…….”

나는 조용히 눈을 굴렸다.

아프다고? 그럼 나는? 나 하나도 안 아팠는데? 그냥 뭐 빠져나가는 느낌만 들었는데?

“……역가이딩 일어나면 다 아프대? 멀쩡한 가이드는 없고?”

“당연하지! 내가 알기로 가이드라면 다 아파!”

그럼 나는 가이드가 아닌 건가.

“시간 차 같은 거 있는 건 아니지? 당시엔 멀쩡했다가 시간이 지나고 문제가 생긴다던가.”

“유정아. 무슨 배구 시간차 공격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잖아.”

한세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가늘어진 눈으로 쳐다보는 게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나는 급히 말을 돌렸다.

“근데 너는 역가이딩 언제 겪었어? 하급 가이드인데 너무 무리시키는 거 아니야?”

“하급이라 애초에 가진 힘의 양이 적어서 그런 것도 있어. 학교도 아니고 직장에서 능력 부족하다고 상황 봐주는 거 아니잖아. 최근 길드 쪽으로 가이드들이 몰리다 보니 인력 부족이기도 하고.”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하여 차가 주차장에 멈춰 섰다.

한세영이 말하는 동안 어색하게 웃고만 있던 양현우가 입을 뗐다.

“으음…… 사실 세영 씨가 유정 씨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저와 처음 만났을 때도 역가이딩 현상이 일어났어요.”

“……네?”

“잠깐, 현우 씨!”

“제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았었거든요. 그땐 가이드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했고, 역가이딩이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운지 몰랐었어요. 듣다 보니 다시 미안해지네요.”

“제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 누구도 아닌 현우 씨니까!”

“세영 씨…….”

양현우가 절절한 눈을 하고 한세영을 바라보았다. 그건 한세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 나 화장실 때문에 먼저 올라가 있을게.”

그 사이에서 배려심 넘치는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뒤,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주연우부터 찾았다.

사실 찾을 것도 없긴 했다. 내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마중 나왔기 때문이다.

귀가한 주인을 맞이하는 대형견처럼 졸졸 따라와 밥은 먹었냐고 묻는 주연우에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왔어요. 연우 씨는요?”

“저도 먹었어요.”

그렇다기엔 식탁에 아직 따뜻해 보이는 음식이 놓여 있었다. 내가 그쪽에 눈길을 주자 주연우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사실은 속이 안 좋아서 나중에 먹으려고요.”

“아, 혹시 많이 안 좋아요?”

“그렇진 않아요. 왜요?”

“연우 씨만 괜찮다면 조금 도움받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이변이 생겼다면 그 이변의 당사자에게 알아보면 된다. 주연우에게는 이미 가이드인 것을 들켜 버린 터라 막 나가는 감도 없잖아 있었다.

“정확히는 실험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신가요?”

아, 표현이 좀 그런가?

내뱉고 아차 싶은 마음에 급히 설명을 덧붙이려는데, 그보다 먼저 대답이 돌아왔다.

“네, 괜찮아요.”

순진한 아이처럼 두 눈을 깜박이며 나를 올곧이 응시해 오는 시선에 반사적으로 입이 열렸다.

“……제가 뭘 할 줄 알고 그렇게 묻지도 않고 바로 대답하시는 거예요?”

“뭘 해도 괜찮아요.”

“아니, 연우 씨…….”

이 착한 사람을 어쩐담.

나는 한숨을 한 번 내리쉬고는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

이상한 건 아니고 가이딩에 관해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 잠시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이다.

가이드에 관해 흔히 알려진 정보들과 비교해 봤을 때 내가 이례적인 것도 있지만, 주연우에게서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핸드크림 PPL을 했을 때.

떠올려 보면 그때 작은 접촉이 있었고, 그 이후로 주연우가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소문도 그때부터 시작되었고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때 나는 가이딩을 최소로 낮춘 상태였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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