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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17화 (17/119)

S급 자영업자

17화

겉으로 보이는 그의 상태 역시 멀쩡했으니 폭주 같은 예민한 상태도 아니었을 터.

그런데 어떻게 그보다 높은 등급인 양현우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눈치채고 내가 가이드라는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혹시 공격계라서? 양현우는 보조계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기는 하다.

“지금 어때요? 가이딩이 느껴져요?”

나는 선 채로 주연우를 소파에 앉히고 손을 맞잡았다. 평소와 같이 출력을 최소로 낮춘 뒤 물어보니 주연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거의 안 느껴져요. 그런데 조금…… 이상한 느낌은 들어요.”

“어떤 느낌이요?”

“평소 가이딩이 깊은 물속에 머리끝까지 잠겨 있는 거라면, 이건 발목까지만 오는 느낌이요. 그래도…… 좋아요.”

“……네?”

물속에 잠겨 있으면 숨 막히지 않나. 어떻게 좋을 수가 있지? 가이딩을 받아 본 적도, 앞으로 받을 일도 없어서 모르겠다.

내가 의도했던 대로 느낌이 거의 없긴 한데 이질적인 느낌이라 눈치챘던 건가?

그러면 왜 양현우는 눈치 못 챘던 건데? 매칭률의 차이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의문에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창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손가락 사이로 무언가가 파고들었다.

컵을 쥐듯 가볍게 잡았던 손이 어느새 깍지 끼워진 상태로 단단히 얽혀 들었다.

내가 그것을 물끄러미 응시하자, 눈치를 보듯 주연우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실험하려면 이쪽이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해서요.”

맞잡은 손에 미약하게 힘이 실렸다.

접촉 면적이 넓어질수록 가이딩의 효율이 높아진다는 건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니 전보다 손가락이 깊게 파고들었다.

그러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이쯤이면 된 것 같아 잡지 않은 손으로 그의 손등을 가볍게 치며 놓아줄 것을 요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이 떨어졌다. 오래 잡고 있어서 그런가, 한순간에 손이 비니 어쩐지 조금 휑했다.

“어땠어요?”

“아까랑 크게 다르진 않았어요.”

“혹시 가이딩 채워졌어요?”

“아뇨, 그냥-.”

주연우가 대답을 망설였다.

그가 대답을 미루는 동안 나는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가이딩 수치를 한계까지 낮추면 아무것도 못 느끼는 양현우와 달리 주연우는 이변을 눈치챘다.

‘……왜일까?’

공격계와 보조계라 그에 뭔가 차이라도 있는 건가?

그러나 그것으로 가이딩이 충전되거나 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냥, 기분만 좋아요.”

“그 기분 좋다는 게 어떤 식인지 자세히 물어봐도 될까요?”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 있잖아요. 에스퍼는 자신과 맞는 가이드에게 기본적으로 호감을 품게 된다고. 좀 더 너그러워지고 싶다거나, 나도 모르게 마음을 놓게 된다거나.”

그렇게 답한 주연우가 눈가를 사르르 휘었다. 그가 내게 들릴 듯 말 듯 조용히 속삭였다.

“정말 그런 것 같네요.”

* * *

“……무섭네. 순간 그쪽 흐름인가 착각할 뻔했어.”

역시 각성자 간의 관계는 저주나 다름없다.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비닐을 뜯었다.

그의 말대로 에스퍼가 자신과 맞는 가이드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호감은 매칭률과도 비례해서 나와 매칭률이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연우가 내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무리 은혜 갚기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챙겨 줄 리는 없으니까. 그래서 은연중에 안심한 것도 있고.

“콜록, 뭐가?”

“에스퍼가 자신과 맞는 가이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거 좀 그렇다고.”

찰싹, 해열 패치를 한세영 이마에 갖다 붙였다.

지금 나는 한세영 집에 병문안 와 있었다.

정확히는 다짜고짜 연락해서 아파서 죽겠다며 살려 달라는 목소리에 기겁해서 달려가니 한세영이 마스크를 쓴 채로 현관에 쓰러져 있었다.

병명은 감기로, 심지어 며칠 전에 병원에서 약까지 받아 왔는데 몸 안 챙기고 일하다가 악화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 상태를 나나 양현우에게 감쪽같이 숨기고 어제 함께 뷔페를 다녀왔으니.

남자친구는 어디 두고 내게 연락했냐고 물었더니 양현우는 일하고 있어서 안 된단다.

나는 오후 알바이니 괜찮을 것 같았다는 말에 쟤는 뭔데 내 일정을 다 꿰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게, 콜록. 왜.”

“잘 생각해 봐.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거잖아. 사랑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을 테고.”

“착각?”

아픈 와중에 한세영이 짜게 식은 표정을 지었다.

“사랑이, 별거야? 호감을 느끼는데 무슨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데. 얼굴만 잘나도,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 줘도 생길 수 있는 게, 콜록. 호감, 아니야?”

“듣고 보니 그렇긴 한데…….”

“가만 보면, 넌 사랑에 이상적인 기준이 있는 것 같더라.”

그런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이어지는 말에 서둘러 고개를 내저었다.

“콜록. 너, 함시혁이랑 사귈 때도 계속 곁에 있어 주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했었잖아. 외로워서 그런 것뿐이라고. 내가 걔는, 걔만큼은 안 바뀔 거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응, 아니. 그쪽이라면 이제 전혀 환상 같은 거 없어. 죽었어. 이제 나는 임종 전이 아닌 이상 사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주의야.”

“거, 짓말.”

“믿어 주라, 제발.”

다른 건 몰라도 그 오해만큼은 받고 싶지 않았기에 제법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잠깐 말 좀 길게 했다고 한세영이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침했다.

급한 대로 약부터 먹이고 나니 한세영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죽이라도 끓이려고 팔을 걷어붙이자 한세영이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유정아아…… 나 젤리가, 먹고 싶어.”

“젤리는 뭔 젤리야. 죽 만들어 줄 테니까 밥 먹어.”

“한 번만…… 사다 주면, 안 돼? 입맛이 없어서.”

“없어도 먹어. 감기 걸렸을 때는 무조건 잘 먹어야 해.”

“하지만, 어제도 먹은 거 다 토했단 말이야.”

젤리라. 목도 안 좋은 것 같은데 차가운 거 먹어도 괜찮나? 따뜻한 생강차나 감귤 차 같은 게 좀 더 나을 것 같은데.

하긴 뭐든 먹는 게 안 먹는 것보단 나을 터다.

“젤리이아…….”

한세영이 마지막 잎새를 앞에 둔 환자처럼 아련히 젤리를 속삭였다.

‘……젤리로 저 입을 틀어막자.’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 * *

A급 에스퍼 서윤호. 그는 최근 들어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기분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연우진이 그 원인이었다.

줄곧 노리고 있던 게이트는 증오스러운 연우진의 길드 메시아가 먼저 클리어를 해 버린 데다, 그다음으로 노리고 있던 불법 약물 거래 건은 난데없이 나타난 연우진이 또 가로챘기 때문이다.

상위 게이트와 던전만 주구장창 클리어하던 놈이 고작 싸구려 모텔에서 일어난 불법 약물 거래 건에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다고 대뜸 나타나서 자신의 앞길을 막아선단 말인가?

심지어 사상자가 이미 한 명 나왔다는 소리에 연우진은 고작 그걸 못 막았냐는 듯 한심하다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기까지 했다.

“X새끼……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그는 제 붉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인상을 썼다.

개인적인 사감을 제외하더라도 그 자식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보다 어린 주제에 반말을 쓰는 것도, 제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 손에 넣은 주제에 만족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 것도.

아주 능력 잘 타고난 게 벼슬이지.

쾅!

“당장 이 가방에 가진 돈 다 담아!!”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마주한 강도단 역시 마음에 안 들기에는 매한가지였다.

검은 복면을 뒤집어쓴 강도 셋이 들고 있는 총으로 마트 안의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죄 모조품이었다.

“어이, 거기 학생! 네가 담아.”

“허튼짓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

꼴에 에스퍼라고 능력으로 사람들을 협박하는데, 하는 행동은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강도질할 거면 은행에나 처갈 것이지 왜 마트에 와서 안 그래도 더럽던 기분을 더 밑바닥으로 끌어 내리는 건지.

하필 서 있는 곳도 기름 매대 근처고.

‘공격계 둘. 휴대폰 전파가 통하지 않는 것을 보면 보조계 하나인가?’

한 시민이 소리를 지르며 강도 중 한 명에게 덤볐지만, 곧바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명치를 맞고 쓰러졌다.

그것을 본 일반 시민들은 겁에 질렸는지 곧 시키는 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당 떨어져서 초콜릿 하나 사러 왔다가 이게 무슨 봉변인지.

서윤호는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던 초콜릿을 뜯어 입에 넣었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결제하는 건 무리이니 계산은 미뤄 두기로 했다.

그렇게 초콜릿을 반쯤 먹고 난 서윤호는 쭈그려 앉았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이제 당도 채웠겠다 얼른 강도들을 처리하고 집에 가서 쉴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겁에 질린 사람들 사이에서 다소 분노에 찬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X발, 저 새끼들도 장 보러 왔나…….”

그와 가까운 곳 계산대 아래에서 여자 한 명이 쭈그려 앉은 채로 젤리 하나를 까먹고 있었다.

지금 까는 게 처음이 아닌 듯, 그녀의 발밑에는 빈 젤리 통이 몇 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강도들이 날뛰고 있는 상황에서 계산대에 몸을 숨긴 채 젤리나 먹고 있는 이를 보며 서윤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본인 역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초콜릿이나 까먹고 있었다는 것은 까맣게 잊은 눈치였다.

여자의 품에는 젤리 말고도 기다란 쇠막대 같은 게 들려 있었는데, 조금 전에 강도들이 무너뜨린 매대에서 가져온 듯했다.

그걸 꼭 껴안은 채로 여자가 계산대 밖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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