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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18화 (18/119)

S급 자영업자

18화

* * *

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나는 재수가 없다. 단언컨대 전생에 나라 한두 개쯤은 가뿐히 팔아먹었을 거다.

계산대 아래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은 채로 생각했다. 쳐들어올 거면 내가 계산하기 전에 오던가. 하필 와도 내가 계산한 뒤에 올 게 뭐란 말인가.

총기를 잃은 내 눈이 강도 중 한 명의 발밑에 깔려 처참하게 뭉개진 빵을 향했다. 오늘 점심으로 먹으려고 구매한 초코 빵이었다.

불과 30분 전. 그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환자가 빈속이면 좋지 않으니 한세영에게 젤리를 먹인 뒤, 나는 간단하게 빵으로 요기하고 일하러 갈 예정이었다.

내 예정은 완벽했다.

하지만 내가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기까지 대략 3분. 그 짧은 시간에 저 강도 셋이 쳐들어와 버렸다.

“당장 이 가방에 가진 돈 다 담아!!”

왜 마트에서 저 난리를 피우는 걸까.

일단 인파에 휩쓸려 어찌어찌 몸부터 숨기고 봤는데, 한숨 돌리고 보니 내가 계산한 물건들은 도망치는 동안 이리저리 바닥에 흩어진 상태였다.

그나마 남은 것은 한세영에게 줄 젤리뿐이었다. 덧붙이자면 이대로 가다가는 아르바이트도 지각할 판이다.

휴대폰으로 경찰서에 연락을 취해 봤지만, 전파가 통하지 않았다.

‘문자라면 언젠가는 보내지겠지…….’

급한 대로 문자부터 작성했다.

원래라면 센터 근무 중으로 가장 신고가 빠를 한세영은 지금 아파서 제정신이 아닐 테니 패스.

양현우와 주연우는 그래도 에스퍼이니 상황 파악이 빠르겠지 하는 생각에 두 사람에게 각각 알렸다.

애초에 내 인간관계는 협소해서 그 외에 따로 문자 보낼 사람도 없었다.

대충 장소는 어디고 무슨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니 경찰이나 센터에 연락해 달라고 보냈는데 제대로 전송될지는 불투명했다.

쾅, 와장창!

섣불리 움직일 생각을 못 하도록 겁주려는 듯 에스퍼 강도들이 능력을 썼다.

조작이라도 한 듯 출구 셔터는 이미 내려가 있었다.

누가 조금이라도 그쪽으로 다가갈라치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공격하는 걸 보니, 문 쪽에 따로 감시할 수단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난동으로 인해 매대에서 분리된 쇠막대가 이쪽으로 굴러 왔다. 나는 발로 슬쩍 그것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혹시 약한 에스퍼들인가?’

최근 더한 일을 겪어서 그런가.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는 꼴을 보니 머리가 좋아 보이지도 않고. 위협음이 커서 그렇지, 개개인의 능력 자체는 강하지 않은 것 같고.

물론 각성자인 이상 일반인보다야 강하겠지만, 하급 에스퍼의 경우 신체 능력에 있어 일반인과 별 차이 없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에스퍼도 사람이다.

맞으면 아프고, 어디 잘못 맞으면 죽는 건 누구나 똑같다.

저번에 실험해 본 바, 하급 에스퍼인 주연우도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올린 내 공격을 맞고도 무사했으니, 저들도 죽지는 않을 거다.

들고 있던 젤리 통을 바닥에 버려 두고 쇠막대를 손에 쥐었을 때였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흐어엉, 엄마아……!”

“꼬마야. 당장 시끄러운 입, 안 다물면 아저씨한테 맞는다?”

강도 중 한 명이 7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를 잡아다 들어 올렸다.

부모로 보이는 여자가 아이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 댔고, 인질로 쓰려는 듯 아이의 머리를 향해 총구가 겨누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총은 투박한 게 모델 건 같았다. 애초에 진짜였다면 처음 협박할 때 공포탄을 쐈겠지.

단기간에 공포를 심어 주기엔 그게 제일 빠르니까.

그러나 섣불리 확신할 순 없는 데다 인질이 잡힌 이상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어서 기회만 엿보고 있는데 근처에 있던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너, 설마 덤빌 생각이냐? 에스퍼한테?”

“……?”

누구신데 초면에 반말이시지.

화려한 붉은 머리를 가진 짙은 인상의 남자였다. 눈썹과 귀에는 피어싱이 달려 있었다.

큰 키와 단단한 골격에서 나온 자신감인지 뭔지는 몰라도 이 난리 통에도 남자는 호기심 넘치는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무릎에 팔까지 걸친 폼을 보니 어째 인질보단 싸움 구경 나온 깡패 같다.

“쟤들 최하급이고, 가진 총도 비비탄이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일반인이 덤비는 건 좀 아닐 텐데?”

오, 에스퍼 등급 최하급에, 총까지 장난감 맞단다.

“누구세요.”

“나? 에스퍼인데.”

“그럼 인질 좀 도와주세요.”

붉은 머리의 남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안타깝게도 저쪽에 바로 사용하는 건 무리라. 자칫하면 인질이 훅 가는 능력이거든.”

음, 쓸모없군. 혹시 이 사람도 약한 거 아냐?

“아, 씹…… 능력이 대규모 살상용이라서 그렇거든? 기름 때문에 사용 불가라고.”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남자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짜증스러움이 역력한 기색에 나는 움직이기 쉽게 자세를 바꾸며 물었다.

“아까 말한 건 확실해요? 저거 가짜 총이라는 거.”

“내가 고작 그걸 모를까 봐? 나 잘나가는 현역이야. 확실해.”

“그럼 됐어요. 나 말고도 확신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니까.”

솔직히 처음만 해도 나설 생각은 없었다.

아멜리아라면 몰라도 김유정은 별 공격 능력 없는 민간인에 불과할뿐더러, 애초에 아멜리아 때도 싸울 일은 많지 않았으니.

귀한 힐러가 전투에 동원될 일이 어디 많겠는가.

그런데 아이까지 인질로 잡혔고, 저 정신 나간 놈들은 인질들을 차례차례 공격할 예정인 것 같다.

이미 울며 아이의 이름을 외치던 여자는 다른 강도2에게 맞아 쓰러진 상태였고, 용기 있는 시민 한 명이 휴대폰을 들고 있는 강도3을 습격하다가 기절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습격에 놀란 강도3이 휴대폰을 떨어뜨렸는데, 강도2는 휴대폰이 중요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조심하라며 강도3에게 버럭 소리쳤다.

‘……강도3이 전파 관련 능력인가?’

연락이 안 되었던 것과 마트 감시 카메라로 출구 쪽을 감시했다고 하면 대충 맞아떨어졌다.

강도2의 능력 조절이 미숙한 건지 윽박지름과 동시에 매대 위 물건들이 흔들리는 바람에 근처에 있던 몇몇이 추가로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밖에서 경찰차 소리까지 들려오니 강도 놈들이 눈에 띄게 초조해하며 주위 물건을 이리저리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일단 신고는 된 것 같으니 다행이긴 한데 과연 경찰들이 올 때까지 무사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거리도 가깝고. 들키는 건 시간문제인데 어떻게든 처맞을 운명이라면 강도들이 방심한 사이 뭐라도 해 보는 게 낫지 않나.

콰광.

또다시 공기 중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매대가 부서지고 근처에 있던 시민 중 하나가 깔렸다.

“에스퍼라고 했죠? 혹시 공격계?”

“그런데?”

“그럼 인질 말고 저 좀 도와주세요. 기름 매대에서 어느 정도 떨어뜨려 놓으면 되는 거죠?”

“……뭐?”

“나중에 약소한 보상이라도 할 테니 시선 좀 끌어 주세요. 가능하다면 저쪽 강도3으로. 다치게 하면 더 좋고.”

일단 공격계 에스퍼라니까 없는 것보단 낫겠지. 내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직접적인 공격은 강도1과 강도2만 조심하면 될 거다.

때마침 아이를 인질로 잡고 있던 강도1이 몸을 반대로 틀었다.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매대를 쓰러뜨린 강도2는 마트 직원을 협박하고 있었고, 강도3은 휴대폰과 돈을 담고 있는 학생을 감시하고 있었다.

나는 강도1이 등 돌린 틈을 타 발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가 뒤돌아볼 새도 없이 들고 있던 쇠막대로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빡!

비틀거린 강도1이 주저앉고, 벗어난 아이가 바닥을 굴렀다. 혹시 몰라서 강도1을 한 대 더 내려치자 뒤에서 험한 욕설을 담은 음성이 들려왔다.

“이 미친년은 또 뭐야?!!”

소리치며 곧바로 매대에서 떨어져 내 쪽으로 달려오던 강도2와 강도3의 옷이 불타기 시작했다.

분노에 찼던 외침은 곧 고통으로 인한 비명으로 바뀌었고, 내 시선은 자연스레 붉은 머리의 남자를 향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자는 놀란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여자! 저 여자 에스퍼야!!”

그런데 시민 중에 동료가 있었던 모양이다.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는 강도2와 강도3에게 다가가던 강도4가 곧바로 뒤돌아 내게 공격을 했다.

분명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돌덩이였는데, 그게 순식간에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공격 전에 소리를 질러 줘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실명할 뻔했다.

억울하네.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 에스퍼인데. 되지도 않게 에스퍼 누명을 뒤집어썼다.

뺨이 화끈거리는 통증에 미간을 콱 구기고 있을 무렵, 저편에서 붉은 머리의 남자가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콰광!!

“……어?”

쩌적.

마치 거대한 괴물이 입을 벌리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움직임을 멈췄다.

아픔에 뺨을 감싸던 나도, 혼란에 빠져 있던 인질들도, 다시 돌덩이를 집어 들던 강도4도, 불에 타오르는 옷을 모조리 벗어 던지던 강도들도, 그 주범인 붉은 머리의 남자도.

하나같이 소리가 들려오는 천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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