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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20화 (20/119)

S급 자영업자

20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저 사람 핫팩 쓰는 법 모르는 거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럼 저는 친구 집 좀 들렀다 갈게요.”

“아, 누나. 어쩌다 보니 조금 전에 전화하는 거 들었는데, 혹시 집에 언제 들어오실 거예요?”

“친구 상태만 보고 금방 들어갈 것 같아요.”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한세영을 떠올리자 자연스레 미간이 좁혀졌다.

난데없이 내가 마트를 점령한 강도에게 위협받고 있다는 소식에 열이 더 오르진 않았을까 걱정이다.

“연우 씨도 마저 잘 끝내시길 바랄게요.”

“네?”

“볼일 보러 나오셨다면서요.”

“아…… 네.”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주연우의 눈꼬리가 곱게 휘었다.

“있었네요. 볼일.”

그의 시선이 내 얼굴을 향했다.

* * *

다행히도 한세영의 상태는 전보다 나아졌다.

내 걱정을 많이 했는지 내가 오자마자 헐레벌떡 뛰어오긴 했지만, 막상 재 보니 열도 내려갔고, 호흡도 아까보다 편해져 있었다.

한세영은 뭐든 한번 심하게 앓는 대신 빨리 낫는 타입이었다.

“해열 패치는 새 걸로 갈아 주고 갈게.”

“콜록, 그보다 너 상처! 상처 치료해야지! 미안해. 내가 괜히 젤리 먹고 싶다고 해서…….”

“네가 강도들 초대한 것도 아니고 괜찮아. 자, 젤리 먹고 빨리 낫기나 해.”

“고마워. 어? 그런데 봉투가 열려 있네?”

“……도망치다 좀 쏟았어.”

“진짜? 나 때문에 그 난리 통에도…….”

한세영이 감동이라며 코를 훌쩍거렸다.

“자, 핫팩도 줄 테니까 나중에 써. 저녁에 현우 씨 온다던데 죽 사 오라고 미리 문자 보내 둘게. 야채죽이면 되지?”

“응. 근데 벌써 가게? 우리 집에 구급상자 있으니까 상처 치료하고 가. 너 혼자서는 치료 잘 안 하잖아.”

“됐어. 집 가서 하면 돼.”

“아직 난방도 잘 안 될 거 아니야. 핫팩 나 주고 가도 돼?”

“그게 무슨-.”

난방이 안 된다는 말에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다 뒤늦게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한세영은 내가 아직 정리가 덜 된 가게에서 숙박을 해결하고 있는 줄 알고 있을 터였다.

“……괜찮아. 아직 준비가 덜 된 것뿐이지 난방은 잘 되거든.”

“그래? 다행이다.”

안심한 듯 웃는 얼굴에 조금 양심이 찔리긴 했지만,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오피스텔로 돌아오니, 오후 4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병가도 받았겠다, 다음날은 휴일이겠다.

늘어지게 잠이나 자자며 당장 방으로 돌아가 취침할 생각으로 호기롭게 문을 여니, 현관에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

“앗…….”

갈색 단발머리의 여자였다.

주연우 또래로 보이는 여자의 모습에 신속히 백 스텝을 밟으며 문을 닫으려고 하니, 여자가 허둥지둥 달려와 문 사이에 발을 끼워 넣었다.

“안 돼요!!”

“네? 일단 발부터 빼세요.”

“싫어요! 지금 오해하신 거죠?! 그런 거죠?! 그러면 저만 나중에 길, 아니, 주연우 씨한테 혼나요! 저랑 주연우 씨 아무 사이 아니고! 단순히 의뢰인! 누가 다쳤다기에 치료하러 온 것뿐이라고요!!”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여자의 모습에 당황도 잠시, 그녀가 저번에 내 다리를 치료해 준 힐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힐러세요?”

“네! 도망 안 가실 거죠?!”

“제가 왜 도망가요. 그냥 좀 치정극인가 싶어 빠져 주려고 했던 거지.”

오히려 힐러라는 것을 알게 되니 없던 관심이 생기려는 판이다. 이곳에서 힐러를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렇게 현관에서 시간을 끌고 있으니 다른 두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한 명은 이 집 주인인 주연우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저번에 본 하도경이었다.

“뭐야, 두 사람. 안 들어오고 거기서 뭐 해요?”

“아, 지금 들어가려고요.”

대충 인사를 건네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여자가 발걸음을 재촉하더니 대뜸 거실 소파에 나를 앉혔다.

“치료할게요. 뺨이죠?”

“네? 네, 그렇긴 한데. 겨우 이걸로요?”

“네, 그러려고 온 거니까요.”

“네? 설마, 주연우 씨가 불렀어요?”

“저는 직업 정신이 뚜렷한 에스퍼라! 다친 사람을 보면 그냥 둘 수가 없어요!”

바짝 군기 잡힌 군인처럼 답하는 여자의 모습에 하도경이 탄식하듯 이마를 짚었다. 제 이름이 나오자 주연우가 말했다.

“네, 제가 도와 달라고 했어요. 다친 곳이 얼굴이면 카페에서 응대할 때 불편하시지 않을까 해서요.”

“존, 헙.”

“아,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힐러 분도 일부러 도와주러 오셔서 감사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힐러가 급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힐러는 갑자기 딸꾹질이 나와서 그렇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얕게 베인 것이 전부였기에 상처 치료는 금방 끝났다.

아멜리아의 능력과 달리 이쪽 치료 능력은 접촉이 없어도 쓸 수 있는지 힐러는 내 뺨에 손을 가까이 가져다 대기만 했다.

손에서 따뜻한 기운과 미미한 빛이 나오기에 신기해서 빤히 쳐다보았다.

치료가 끝나자마자 안절부절못하는 힐러의 모습에 하도경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친한 친구로 보이는 주연우와 대화할 때만 빼면 욕도 잘 쓰지 않았고, 대화도 잘 이끌어 나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서로 아는 사이인 듯한 세 사람과 달리, 내가 껴 있어서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오늘 있었던 일이 되었다. 힐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의외였죠. 그…… 연우진 님이 강도 사건에 다 참여를 하시고.”

“아, 맞아요. 평소에는 그런 사건 해결 안 하잖아요. 솔직히 강도 사건보다 갑자기 천장이 사라져서 더 놀랐어요.”

맞장구를 치고 있으니 하도경이 씩 웃으며 물었다.

“혹시 연우진한테 관심 있어요? 평소에 그런 사건 안 건드린다는 걸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아서요.”

“그야 유명하잖아요.”

“유명해도 다른 에스퍼들은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에스퍼에 관심 없으시죠?”

“그렇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내가 각성자이다 보니 각성자라는 것 자체에 흥미는 있지만, 어떤 각성자가 유명하고 어떤 사람인지는 따로 찾아보지 않는다.

드물게 이름을 알고 있는 각성자들은 대부분 한세영에게 들은 것으로, 센터와 문제가 있는 각성자들이 대다수였다.

단, 연우진만은 예외였다. 그 자식은 굳이 한세영에게 듣지 않아도 내가 겪은 것이 있으니.

그러나 굳이 그걸 드러낼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침착히 대답했다.

“연우진은 워낙, 특출나게 유명하잖아요.”

“아, 그렇긴 하죠.”

“그리고 결과만 따지자면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저는 마트의 존속에 대해서도 조금 걱정이 되네요. 강도들도 마트 안을 모조리 때려 부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큰 외벽이 날아갔으니까요. 이건 빌런이 원인으로 일어난 사건이니까 아마 나라에서 배상하게 되겠죠. 그런데 솔직히 나라든 뭐든 배상금 더블로 얹혀서 줘야 하지 않나요. 정신적 피해는 어떡하라고? 아니, 근데 그 개자식은 능력도 많다면서 왜 또 부순 거야, X발.”

침착은 개뿔 그라데이션 분노를 해 버렸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연우진은 내게 있어 발작 버튼이나 다름없었다. 진심으로 마트가 걱정되어서 한 말이라기보단 과거 내가 겪었던 일이 오버랩되어서 그랬다.

“……딸꾹.”

힐러가 또다시 딸꾹질했고, 하도경이 놀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칭찬이라면 몰라도 욕은 남의 앞에서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심지어 이들은 에스퍼.

같은 에스퍼 내에서 연우진 팬이 많다고 들었고, 생각해 보면 조금 전에 힐러가 연우진 ‘님’이라고 했으니 그녀 또한 그의 팬일지도 모른다.

아차 싶어 사과부터 하려는 순간, 주연우가 말했다.

“그러네요. 정신적 피해도 고려해 주지 않다니 정말 배려가 없어요.”

“그렇죠?”

내 의견에 동의를 해 주니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대답하고 말았다.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원래 사람은 누군가를 함께 칭찬하는 것보단 함께 욕할 때 더 친해지는 법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 배상금은 당연히 더블로 주겠죠.”

“그럴까요?”

“네, 아무래도 이번 일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아…… 그렇지. 갑자기 욕해서 미안해요. 다들 놀라신 것 같아서.”

“아뇨, 누나 말대로 개자식인 것 같은데요.”

“연우 씨…….”

“무엇보다도 누나가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모습이 마치 천사 같았다.

‘내가 무안할까 봐 맞장구쳐 주는 거구나.’

나는 감동 어린 눈으로 주연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우리를 하도경과 힐러가 넋이라도 잃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 * *

두 사람이 떠난 것은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였다.

저녁까지 먹고 갈 줄 알고 자리를 비켜 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하도경이 볼일이 생각났다고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도경이 떠날 채비를 하자, 힐러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짐을 챙기던 그녀가 나를 보더니 아차 싶은 얼굴로 자기소개를 했다.

“아, 맞다. 제 이름은 송화연이예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그러고는 갑자기 찾아와서 실례했다며 내게 양주 한 병을 안겨 주었다.

“제가 아끼는 건데, 단 거 좋아하신다면 입에 맞으실 거예요.”

힐러, 송화연이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재잘거렸다.

라벨이 붙여진 단단하고 묵직한 유리병에는 섬세하게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술을 실수로라도 떨어뜨릴까 두 손으로 든 채 나는 송화연을 마주했다.

‘……왜 이걸 집주인이 아닌 투숙객에게?’

의문도 잠시,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전 김유정이라고 해요.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그리고 두 번씩이나 치료해 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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