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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22화 (22/119)

S급 자영업자

22화

“현우 씨한테?”

“그런데 현우 씨가…….”

한세영이 울먹이며 말했다. 요약하자면 새로운 신입 가이드가 왔는데, 양현우가 친절하게 대해 줬고 그 친절에 가이드가 양현우에게 반한 것 같아 고민이라는 소리였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러잖아. 현우 씨는 그런 쪽으로 관심 있는 게 아닐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양현우는 성정 자체가 유하고 친절했다. 그런 다정함을 한세영은 사랑했지만, 때때로 불안해하곤 했다.

모두에게 다정하다는 것은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것과도 같았으니.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그 사람도 가이드니까.”

한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초조하게 술잔을 매만졌다.

나는 미묘한 시선으로 한세영을 쳐다보았다.

한세영은 에스퍼가 본능적으로 가이드에게 호의를 갖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마음이 떠나는 것 역시.

피곤한 일이었다. 나는 나중에 연애하게 되면 비각성자랑 해야지.

“매칭률이 높다고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야. 그리고 너도 알잖아. 매칭률은 상대방이 가이드에게 호감을 느낄수록 더 높아지기도 한다는 것을. 최근에 검사해 봤을 때 더 올라갔다며. 뭘 그렇게 불안해해.”

“그래도…….”

양현우와 한세영은 매칭률이 평균 이상이었으나, 높은 편은 아니었다.

평균보다 조금 더 높은 정도였는데, 한세영은 때때로 그것에 불안해하곤 했다.

“애초에 가이딩으로 인해 무조건 좋아하는 게 되는 거라면 현우 씨가 네가 아니라 나를 좋아했겠지.”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거야?”

“우울한 친구한테 현실적인 위로를 건네는 중이야.”

한세영의 뾰족한 시선에 가볍게 어깨를 두드렸다.

사실 커플 싸움에 끼어 봤자 좋을 건 없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거라면 몰라도 이건 당사자가 아닌 이상 끼어들 수 없는 문제였고, 그렇다고 한세영을 두둔하여 양현우를 질책하면-.

“현우 씨가 나빴네. 아무리 그래도 연인이 있는데 적당히 대응했어야지.”

“아니야. 사실 현우 씨는 나쁜 거 하나 없어. 내가 괜히 예민하게 구는 거지. 직장에서 공과 사도 구분 못 하고…….”

이런 식의 또 다른 두둔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세영을 다독이는 동안 테이블 위의 술병은 4병을 넘어섰다. 저거 전부 한세영 혼자 마신 거다.

“설령! 그 가이드가 현우 씨를 좋아한다고 해도 난 현우 씨 양보 못 해! 응? 내 인생에 그렇게 착하고 좋은 사람 또 언제 만나게써어! 안 그래?!”

이쯤 되니 술고래도 취했다.

숟가락이 판사 봉이라도 된 것처럼 쥐고 탁자를 두드리는 모습에 나는 해탈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차라리 취할까. 그럼 좀 편해질 것 같은데.

하지만 취한 한세영을 집에 데려다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신머리를 꽉 붙들어 매던 와중이었다.

한세영이 말했다.

“봐 봐, 유정이 너두 알아야 해. 현우 씨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냐면…… 내가 너 이상해져서 고민하니까 현우 씨가 괜찮다고 막 다독여 주고 일부러 시간 내서 틈틈이 연락해 주고 그랬단 말이야.”

“……내가 이상해져서?”

“응…… 너 최근 1년 동안 이상했잖아. 막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성격도 변하고, 가족한테 연락도 잘 안 하고! 이 김에 말하는데 너희 어머니가 너 얼마나 걱정하는 줄 알아? 네가 고등학교 때 일 이후로 종종 기억에 혼란을 겪곤 했다면서…….”

이번에는 술잔으로 악기라도 만들 생각인지 한세영이 양을 다르게 담은 술잔들을 앞에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턱을 괸 채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물었다.

“그래서, 내가 변해서 싫어?”

조금 목이 탔다. 한세영이 늘어놓은 술잔을 하나씩 들이켜고 있으니 머지않아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그건 아닌데. 근데 너 지킬 박사 같아.”

“뭐?”

“아니지. 하이드인가……. 어쨌든 집에 연락 좀 자주 해. 처음에는 유유자적하게 본가에서 살 거라며 친구고 뭐고 다 두고 시골로 내려가 버리더니 갑자기 돌아와선 왜 집에 연락을 안 해?! 응? 개판인 우리 집과 다르게 부모님부터 남동생까지 다 화목한 집이면서어…….”

한세영은 취한 김에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할 생각인 것 같았다. 말이 길어질수록 내 술잔도 채워지고 비워지길 반복했다.

우리가 술집을 나온 것은 오후 7시가 다 되어서였다.

어쩌다 보니 나도 평소보다 많이 마셔 버리고 말았다.

아멜리아 때는 아무리 마셔도 취해 본 적이 없었고, 김유정으로 돌아온 뒤에는 혹시라도 취해서 할 말 못 할 말 못 가리고 말해 버릴까 봐 계속 자중했었는데.

‘몰랐는데, 나 주량이 센가 보네.’

혀가 꼬인 한세영과 달리 말도 또박또박했고, 걷는 것도 문제없었다.

한세영을 대충 들쳐 메고 나오니 양현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나는 곧장 그에게 술집 주소를 알려 주었다.

“유정 씨!”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에서 내린 양현우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제 연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세영 씨가 취하다니…… 대체 얼마나 마신 거예요?”

허공에 떠도는 알코올 냄새를 손으로 휙휙 저으며 내가 대답했다.

“몰라요. 7병 넘기고부터 안 세서.”

“7병이요?!”

기겁하는 양현우의 품에 한세영을 안겨 주었다. 퍼뜩 고개를 든 양현우가 물었다.

“유정 씨는 괜찮으세요?”

“네. 전 안 취해서요.”

양현우는 나도 취한 건 아닌지 염려하는 듯 보였지만, 극구 멀쩡하다 말하니 먼저 가 보겠다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을 보내고 나도 곧바로 택시를 불렀다. 주소를 부르고 뒷좌석에 앉아 있는데, 돌연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누나, 어디예요? 시간이 늦은 것 같아서요.]

누나? 유하가 벌써 이렇게 컸던가.

“택시 안인데.”

[……지금 오는 중이에요? 주소는 알아요?]

“김소희 집으로 택배를 몇 번 시켰는데 모를…….”

말하다가 이상함을 느끼고 입을 닫았다.

잠시 머릿속을 정리해 봤다.

생각해 보니 내가 머물렀던 집의 주인인 김소희는 비행기 타고 떠난 지 꽤 됐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전화 건 사람은 8살 남짓의 어린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집의 주인이…….

귀에서 휴대폰을 떼고 화면을 확인했다. 발신자 명에 주연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

뭐야. 나 지금 어디 가.

귓가에 휴대폰을 댄 채 택시 기사님께 주소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하니 스피커 너머에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주연우가 불러 준 주소로 정정하고, 며칠 사이에 눈에 익은 오피스텔에 도착하니 그가 마중 나와 있었다.

“누나, 괜찮아요?”

“네, 제 친구가 많이 취했고 저는 멀쩡해요.”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속이 좀 안 좋긴 했지만, 여전히 걷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부러 앞서서 걸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목이 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물부터 들이켜니, 그런 나를 주연우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위험한 거라도 쥐여 준 듯한 태도에 나는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평범한 유리잔이다.

“무슨 일 있었어요?”

주연우의 물음에 나는 가만히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했다. 밥 얻어먹을 겸 위로해 주러 갔다가 훈계만 잔뜩 듣고 왔지.

“연우 씨는 가족이랑 친해요?”

내 물음에 주연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보다 사고가 짧아진 느낌이었다. 나는 그가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잊은 채 곧장 다음 질문을 던졌다.

“만약 가족들이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떨 것 같아요?”

머릿속이 깨끗했다. 너무 깨끗해서 문제였다. 평소라면 담아 놓았을 말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흐릿했다. 중요한 건 그는 나나 한세영이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었고, 담아 놓았던 말을 늘어놓기에는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고해 성사 하듯 두서없이 말을 시작했다.

“저는 가족이랑 사이가 나쁜 건 아닌데…… 좀 어색하거든요.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자식이 바뀐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부모가 진짜 자식을 한눈에 알아보리라는 생각은 이상에 불과하다. 애초에 성격 좀 바뀌었다고 바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비정상적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아는데도 조금, 서운하더라고요.”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것저것 따지기에는 바뀐 상황이나 세계에 적응하는데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오랜만에 보는 가족의 안온한 품에 잠겨, 어린 남동생에게 좋은 누나가 되고자 최선을 다했다.

이곳에는 피비린내나 썩은 살덩어리의 내음도, 전날까지만 해도 함께 웃던 사람이 죽어 버리지도 않는다.

반드시 누군가를 살려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점점 사라지는 현실감에, 돌아갈 곳이 없다는 공허함에 떨지 않아도 된다.

아멜리아로 사는 동안 나는 늘 세상에서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보통 빙의한 주인공은 원래 몸 주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신경도 쓰지 않기 마련이다. 어렴풋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온전한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은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그건 이곳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사랑하는 딸이 사실은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괴리감이 들어서. 그래서 도망 왔어요.”

안온한 품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괴리감으로 인해 무너졌다. 엄마의 눈에 비친 김유정이 내가 아닌 아멜리아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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