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자영업자 26화 (26/119)

S급 자영업자

26화

* * *

“처, 처음 뵙겠습니다!”

갑작스러운 길마의 호출에 신입 길드원 송화연은 문이 열리자마자 90도로 인사했다.

일명 연또(연우진이 또 또라이짓했다의 준말)라 불리우는 길마에 대한 소문은 화려했고, 그로 인해 부길마가 소화제를 항시 구비해 놓는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연우진의 얼굴은 흉흉한 소문과 달리 그렇게 험상궂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부드러운 인상에 가까운 데다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빼어났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송화연…….”

매끄럽게 이어지던 자기소개가 멈춘 것은 케이블로 묶인 두 손목을 마주한 뒤였다.

송화연은 떨리는 눈으로 남성용 코트를 덮은 채 소파에 잠들어 있는 여자와 길마의 손목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내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이해했습니다!”

잘못 이해한 게 분명했지만, 연우진은 그 오해를 풀어 줄 정도로 배려 있지 않았다.

집 안으로 들어온 송화연은 곧바로 여자의 상태부터 살폈다. 그러다 능력 사용 도중 느껴진 낯익은 파장에 고개를 들었다.

“아, 이분 가이드-.”

입을 뗀 순간, 목이 서늘해졌다. 날카로운 칼날이 바로 앞에 들이밀어진 듯한 감각이었다.

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과 살기. 자고로 에스퍼의 육감은 무시하는 게 아니다. 송화연은 손으로 지퍼를 잠그듯 입가를 왼쪽으로 그었다.

“저 잠갔습니다, 마스터.”

“이해가 빨라서 좋네, 신입.”

김유정이 깬 것은 맡은 일을 끝낸 송화연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김유정은 깨어나자마자 연우진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익숙하게 열을 재고, 상처를 살핀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가이딩에 연우진은 처음으로 저 손에 닿았을 때를 떠올렸다.

‘원래 접촉 파장을 그 정도까지 낮출 수 있던가?’

누구보다 가이딩에 민감할 에스퍼, 그것도 S급이 가이드임을 확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각성자 연구원들이 감탄하다 못해 경악할 일이었겠지만, 불행히도 이를 발견한 건 세상 발전에 관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연우진이었다.

그는 그런 일보단 어떻게 하면 그녀의 호감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유는 모르나, 자신은 제 가이드로부터 미움받고 있는 것 같다.

짐작 가는 경우는 많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타인에게 미움받는 일이 한둘이 아니라 탈이었다.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하다못해 정체를 밝히기 전에 호감이라도 사고 싶은데, 살면서 누군가에게 호감을 사려고 해 본 적이 없어서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가 고민하고 있을 무렵, 김유정이 잠기운을 떨치지 못한 얼굴로 그에게 옷은 왜 안 갈아입었냐고 물었다.

그에 연우진은 제 두 손을 내보였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손을 쓸 수가 없어서요.”

물론 풀지 못한 게 아닌 일부러 풀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 사람은 지금 이곳에 없었다.

‘아 혹시 이런 쪽이 취향인가?’

연우진은 참고할 생각으로 물었다.

“혹시 이런 게 취향이에요?”

“미친…….”

그리고 욕설이 돌아왔다.

* * *

김유정이 곧바로 표정을 굳히고는 곧장 그의 손목에 묶인 케이블을 풀어 주었다.

허전해진 손목을 괜히 털어 보던 연우진의 눈에 물기가 남아 있는 코트가 들어왔다.

안일했다. 그와 함께 있었다는 것은 김유정 또한 비를 맞았다는 것일 텐데.

연우진은 김유정이 정신없는 틈을 타 욕실로 유도했다.

같은 각성자라고 해도 가이드는 에스퍼와 다르다. 각성과 동시에 신체 능력이 향상되는 에스퍼와 달리, 가이드는 각성해도 민간인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가이드는 설탕 조각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대해야 함. 그러지 않으면 부서질 수도 있으니까.」

문득 머릿속을 스친 것은 권시현이 했던 말이었다.

권시현은 전담 가이드를 둔 에스퍼였고, 자신의 가이드와 사이가 매우 좋았다.

키가 2m에 다다르는 건장한 성인 남성을 설탕 과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마 권시현밖에 없으리라.

그에 비하면 한 뼘도 안 되는 것 같은 체격의 김유정이 연우진은 몹시 걱정스러웠다.

‘일단 검사는 받았지만, 바이러스가 잠복기일 수도 있고. 아니, 그 전에 일반 검사로 알아낼 수 없는 다른 문제가 있으면…….’

폭주 상태의 에스퍼를 가이딩 할 경우, 가이드는 적잖은 영향을 받는다. 그릇을 복구시키려는 힘과 파괴하려는 힘이 맞부딪히기 때문이다.

정말 괜찮냐는 반복되는 물음에 김유정은 어색하게 손을 들어 제 뺨을 긁적였다.

살짝 드러난 팔목이 가늘어 보였다. 연우진은 조용히 입술을 짓씹었다.

에스퍼에 비해 가이드는 약하다. 그 당연한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불안했다.

무리한 가이딩으로 인해 몸에 무리가 간 게 아닐까? 신입 힐러는 괜찮다고 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따뜻할 때 드세요.”

그러한 고민 끝에 나온 게 건강식이었다.

“우웁!”

그러나 수저를 든 지 3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싱크대로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에 연우진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좋은 거 다 때려 넣으면 맛있어지는 거 아닌가?’

그가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애초에 그는 식사를 며칠 걸러도 문제가 없을뿐더러, 먹는 행위 자체를 즐기지 않아서 약을 찾을 때가 더 잦았기 때문이다.

“……못 먹겠으면 이리 줘요. 버릴게요.”

“아니, 멀쩡……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는 건데 음식을 왜 버려요? 혹시 사탕이나 초콜릿 있으면 그거나 주세요.”

찌푸려진 얼굴로 수저를 부지런히 입으로 나른다.

싫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듯한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 맛은 최악인 듯한데, 씹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맛없으면 그만 먹어도 된다는 그의 말에 만드느라 고생하지 않았냐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 * *

운 좋게 맞물린 상황들 덕분이었을까.

연우진은 잠시나마 김유정을 잡아 두는 것에 성공했다.

“저는 스물셋인데…… 누나라고 불러도 돼요?”

“상관은 없는데…… 굳이요?”

“그쪽이 더 친해 보이잖아요.”

카페를 드나들면서 그녀의 이름에 대해서는 진작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이름을 묻고, 누나라고 불러도 되냐고 따로 허락도 구했다.

호칭에 대단한 의미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벽을 허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끝에 카페에서 김유정과 친하게 대화를 나누던 남자 직원이 떠올랐을 뿐.

그렇게 그녀와 함께하기 시작한 생활은 즐거웠다.

여태껏 느껴 보지 못한 안정감.

그간 가이딩에 집착하는 에스퍼들을 이해하지도, 이해할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문득 머릿속을 스친 것은 오래된 외침이었다.

「그 애는 내게 있어 신이나 다름없어. 그 애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뿐더러, 만약 그 애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라도 이 일을 그만둘 거야.」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눈은 다정보단 맹목에 가까웠다. 그는 집착이 번들거리는 눈을 하곤 더없이 환희 어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래되어 검게 바랜 기억을 머리 한구석으로 밀어내며 연우진은 시선을 돌렸다.

무심결에 움직임을 쫓는 맹수처럼 물을 마시기 위해 나온 김유정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의 시선을 눈치챈 김유정이 손을 내밀었다.

“……?”

“가이딩 필요한 거 아니에요? 잡아도 괜찮아요.”

김유정은 특이했다.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굴다가도 때때로 이상하리만큼 허술했다.

누구나 당황스러워할 만한 부분에서 누구보다 태연하기도 하고 위기의식도 뭔가 남달랐다.

“몸은 어때요? 머리 아픈 건 좀 나아졌어요?”

타인의 고통에 주저 없이 손을 내미는 그녀의 다정함이 좋았다.

걱정을 담고 조곤조곤 이어지는 목소리도, 단것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띄게 밝아지는 얼굴도.

“높은 등급 위주로 찾아보세요. 연우 씨와 맞는 가이드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김유정은 다정한 동시에 냉정했다.

그녀의 걱정은 어디까지나 손이 닿는 위치에 있기에 주어지는 가벼운 연민에 가까웠다. 지금처럼 볼 일이 없다면 바로 끊어질 것에 불과한.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안온함은 사람을 안일하게 만들었다.

이 순간이 계속 이어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미루던 그에게 있어 그날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바로 친구의 연락을 받고 나갔던 김유정이 처음으로 문자를 보낸 날이었다.

그녀가 처음 한 연락에 들뜨는 것도 잠시, 문자 메시지의 내용은 그의 기분을 바닥으로 처박기 충분했다.

[김유정입니다. □□마트. 에스퍼로 추정되는 강도가 들이닥쳐서 신고 부탁해요.]

그 순간,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곧바로 길드에 연락하여 투시 능력자를 불러내서 현장을 뒤엎었다. 길드원의 능력으로 김유정의 안위는 이미 확인한 뒤였지만 좀처럼 안심되지 않았다.

제 눈으로 직접 얼굴을 확인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고 판단한 연우진은 서둘러 다리를 움직였다.

김유정은 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인질로 잡혀 있던 사람이라기엔 담담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창 통화에 열중이던 그녀와 곧 눈이 마주쳤다.

“세상에, 안 추워요? 옷차림이 왜 그래요.”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서둘러 통화를 끊고 다가오는 모습에 속이 울렁거렸다.

연우진은 잘게 떨리는 손을 뻗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깨끗하던 뺨에 상처가 나 있었다.

“……다쳤어요?”

“그렇긴 한데 크게 다친 게 아니라 괜찮아요. 아, 경찰 불러 준 거죠? 갑자기 그런 문자 받아서 당황했을 텐데 고마워요. 설마 문자 받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죠?”

“안 그래도 볼일이 있어서 그 근처에 있었어요.”

연우진은 정신없는 와중에 들은 정보를 떠올렸다.

부상자 28명, 중상자 1명, 경상자 다수.

그 소동을 일으킨 강도들의 동기는 단순했다.

마트에서 근무하는 자신을 차 버린 전 연인에 대한 복수, 그에는 반쯤 재미로 혹은 돈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게이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이유는 이리도 단순했으니까.

그는 오래전에 인간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고, 일이 터질 때마다 민간인이 다쳤다고 화낼 만한 인격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현장에 있던 강도단들을 떠올리며 연우진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삭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