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27화
사용할 생각이 없는 핫팩을 무의식중에 만지작거리다 혹시 망가질까 싶어 주머니에 넣은 순간이었다.
김유정이 그를 향해 가볍게 말을 덧붙였다.
“연우 씨도 마저 잘 끝내시길 바랄게요.”
“네?”
“볼일 보러 나오셨다면서요.”
“아…… 네.”
맞아, 그런 핑계를 댔었지.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으로 차분히 죄목을 가늠해 보던 그의 시선이 붉은 선이 그어진 그녀의 뺨을 향했다.
“있었네요. 볼일.”
아무래도 얼굴 가죽 정도는 벗겨도 될 것 같았다.
* * *
“악…… 아아…….”
비명이 되지 못한 숨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경찰에게 붙잡혔다며 서로를 향해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시시덕거리며 웃던 강도들의 입꼬리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뚝, 뚝. 분리된 얇은 조각들이 붉은 웅덩이 위로 떠올랐다 이내 가라앉았다. 찬 공기에 섞인 비릿한 쇳내가 역했다.
이번엔 또 어떤 식으로 덮어야 하나 고민하던 하도경은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고개를 틀었다.
“와…… 거하게 하셨네. 도경 형, 바로 시작하면 될까요?”
“어어, 미안하다. 저 새끼가 식사하고 온 사람 배려를 안 해.”
“마스터가 배려라는 걸 하면 오히려 공포죠.”
한가로이 육포를 질겅거리며 들어온 남자는 방 안 상태를 확인하고는 입맛이 떨어졌다며 육포 조각을 도로 뱉었다.
남자의 이름은 김재영. 강도들을 멀쩡하게 돌려보내기 위해 데려온 길드 초창기 멤버였다.
“아, 이런 거 하나하나 다 재생하려면 힘들단 말이에요. 능력 쓰고 나면 배도 고픈데, 제 하루 식비가 얼마 드는지 아세요? 가이딩비는 또 얼마나 들게요?”
“추가 수당 2배.”
“받고 회식 한우.”
“……그래 마음대로 시켜라.”
“제가 형 사랑한다고 말했던가요?”
김재영의 얼굴은 조금 전과 달리 열의에 차 있었다.
‘그래, 이상한 사상에 물드는 것보단 자본주의가 낫지…….’
저놈도 어렸을 때 교육을 잘 시켰어야 하는 건데 하는 후회가 드는 것도 잠시, 다시 생각해 보니 어릴 때부터 저랬던 것 같아 하도경은 고개를 내저었다.
“집으로 갈 거야. 저번에 왔던 신입 불러.”
철퍽, 끈적하게 달라붙는 피 웅덩이를 짓밟으며 걸어오는 이의 모습은 풍경과 맞지 않게 평온했다.
‘경상을 포함하여 부상자 여럿.’
중상자가 한 명 있긴 하나 사망자는 없으니 그들은 살인자가 아니다. 전과가 있긴 해도 S급 각성자가 간섭하기엔 자질구레한 것들뿐이고.
‘그런데 왜 굳이 귀찮게 간섭한 거지.’
……사실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인질 리스트에서 연우진 동거인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는 되지 않았다.
직접 확인해 본 바 그녀는 가이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 놈이 사람에게 연애 감정을 품었다는 말인가? 어떤 경위로?
상상해 보려 했지만, 연우진을 연애라는 주제와 엮자니 뇌가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날 늦은 오후.
“그러네요. 정신적 피해도 고려해 주지 않다니 정말 배려가 없어요.”
“그렇죠?”
하도경은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운 길마가 스스로를 욕하는 광경을 신입과 함께 목격하게 된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 배상금은 당연히 더블로 주겠죠.”
“그럴까요?”
“네, 아무래도 이번 일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아…… 그렇지. 갑자기 욕해서 미안해요. 다들 놀라신 것 같아서.”
“아뇨, 누나 말대로 개자식인 것 같은데요.”
“연우 씨…….”
개자식이 스스로 개자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몹시 이례적인 광경을 보고 하도경은 끝내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날 결국 연우진은 마트 배상금으로 자그마치 원 금액의 열 배를 사비로 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마트 사장님은 그 돈으로 제2의 삶을 찾아 떠났다고 한다.
* * *
“전 김유정이라고 해요.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그리고 두 번씩이나 치료해 주셔서 고마워요.”
송화연을 대하는 김유정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보기 드문 미소였으나, 그것을 지켜보는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원래 잘 웃지도 않으면서.’
두 사람이 떠난 뒤, 연우진은 김유정을 붙잡고 송화연 같은 얼굴이 취향이냐고 물었다.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초조함이 앞섰다.
“송화연 씨는 이미 전담 가이드가 있어요.”
무심코 내뱉은 말에 돌아온 대답은 그저 사실을 말하듯 담담했다.
“아, 그런 의도로 본 건 아니고…… 그냥, 화연 씨 미인이잖아요. 예쁜 사람을 보면 자연히 시선이 가는 법이니까요.”
안도감과 동시에 싹튼 것은 작은 불안감이었다. 그것을 눈치라도 챈 듯 며칠 사이 익숙해진 손이 불쑥 내밀어졌다.
“연우 씨.”
그는 홀린 사람처럼 저보다 훨씬 작은 손 위로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김유정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표정이 안 좋아 보이기에 가이딩이 필요한가 해서요.”
“아…….”
“아니었어요?”
“필요해요.”
그래, 필요하다.
계속해서 시달려 온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기적이었고, 지금까지의 생각과 가치관을 모두 저버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손을 맞잡은 채로 가벼운 대화가 오갔다. 손에 머문 온기와 가이딩에 자신도 모르게 늘어진 그가 나른하게 제 무릎에 뺨을 기댔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선 그를 일깨운 것은 덤덤하게 그어진 선이었다.
“그런데 저는 그 친구와 달리 정식 가이드가 될 의향이 없거든요. 그도 그럴 게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연우진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이 가이드라는 사실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가이드가 될 생각이 없다는 것 또한.
짧은 침묵 끝에 그는 답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니까요.”
김유정은 연우진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연우진은 김유정이란 가이드가 필요했다.
그런 간단한 이야기였다.
* * *
다음 날, 나갔다가 저녁쯤 되어서 들어온 김유정은 술에 취해 있었다.
얼굴은 붉은 기 하나 없이 말끔했고 말도 또박또박 잘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복도에서 세 번 이상 넘어질 뻔했기에 연우진은 그녀가 취했다고 단정 지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의 물음에 김유정이 느리게 눈을 끔뻑였다. 잠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김유정이 입을 열었다.
“연우 씨는 가족이랑 친해요? 만약 가족들이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떨 것 같아요?”
연이은 질문 끝에 나온 것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는 가족이랑 사이가 나쁜 건 아닌데…… 좀 어색하거든요.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자식이 바뀐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아는데도 조금, 서운하더라고요.”
두서없이 이어진 음성은 가라앉아 있었다.
“엄마가 사랑하는 딸이 사실은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괴리감이 들어서. 그래서 도망 왔어요.”
이야기의 주체는 가족과.
“아니, 그래도 나 걔 미워하진 않거든요. 비슷한 처지에 열심히 산 애를 뭘…… 걔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뻔히 아는데.”
가족은 아닌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인 듯했다.
연우진은 아무렇게나 이어지는 대화를 경청하며 턱을 괴고 김유정을 바라보았다.
취해서 그런지 김유정의 표정은 평소보다 다양했다. 무표정하던 얼굴이 토라진 어린애처럼 뚱하게 변하더니 곧 엄마가 보고 싶다며 중얼거렸다.
“그럼 만나면 되지 않아요?”
“그게 힘들어서요. 이대로 평생 안 만날 수는 없으니까 한세영 말대로 연락도 해야 하는데…… 역시 좀 더 있다가.”
“평생 안 만나면 안 되는 거예요?”
“그건 싫어요. 그쪽도 부모님이랑 평생 안 만나는 건 어려울 것 아니에요.”
“저는 상관없을 것 같은데.”
“네?”
“얼굴 안 본 지 오래돼서요. 연락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덤덤하게 내뱉은 말에 곧장 질문이 돌아왔다.
“가족 싫어해요?”
“그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일방적으로 버려지고, 버린 사이라서요.”
하루가 다르게 늘어 가는 게이트와 치열해져 가는 권력 싸움.
보다 더 강한 군사력을 원했던 정부에게 있어 높은 등급의 각성자는 금광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그의 양육권을 넘길 것을 권했고, 아이의 힘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부모는 망설임 없이 그를 정부에 넘겼다.
그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막 각성한 에스퍼의 능력에 휘말려 가족 혹은 지인이 다치거나 죽는 일은 심심찮게 볼 수 있었으니.
그러나 김유정에게는 달랐던 모양이다. 온기를 품은 손이 그의 뺨을 감싸 왔다.
“……그러면 외롭지 않아요?”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라서 그런 걸까? 이상했다.
“나처럼 가족이 아니라도 좋아요. 곁에 있어 줄 사람을 찾아요.”
한 번도 외롭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건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외로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라도 곁에 있어 주면 괜찮더라고요. 만약 걱정해 주고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생기면 잘 대해 줘요. 허무하게 놓치지 않도록. 혼자 외로워하지 말고요.”
뺨에 머물렀던 온기가 옮겨져 머리 위로 부드럽게 문질러졌다.
아이를 달래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은 김유정이 작게 속삭였다.
“지금까지 혼자 잘 버텼어요.”
연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목 부근을 매만졌다.
손톱을 세워 긁어 내고 싶을 정도로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따뜻하다고 생각했던 온기가 뜨겁게 달아올라 숨통을 꽉 조였다.
“……잘 대해 주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요?”
가이드라서? 매칭률 때문에?
아무래도 좋다. 갖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놓치지 않을 수 있어요?”
자신을 위해 내밀어 주는 손의 온기가 걷잡을 수 없이 탐이 났다.
제게서 떨어진 손을 바라보며, 연우진은 끝내 입매를 굳혔다.
* * *
죽을 것을 알면서도 바다에 몸을 던지는 이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설령 제가 경멸하던 결말을 맞이할지라도 그녀를 원했다.
다음 날, 연우진은 이른 아침부터 길드에 방문했고,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김유정이 이미 퇴근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실 불이 꺼져 있었다.
설령 먼저 잠들었다고 해도 집에 들어오면 항상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가장 조도가 낮은 전등을 켜고 들어가곤 했는데 말이다.
“……누나?”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인기척은 들려오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 새에 익숙해지기라도 한 것인지 사람 온기라고는 없는 거실이 낯설었다.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니. 조금 늦는 거겠지.’
불안감을 누르며 그는 전화를 걸어 보았다. 김유정에게 줬던 휴대폰 기기의 번호였다.
그러나 전화벨 소리는 인기척 하나 나지 않는 집안에서 들려왔다.
탁자 위, 고요한 어둠 속에서 휴대폰 화면만이 번쩍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