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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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를 그만두었으나 나는 조금도 쉬지 못했다. 카페가 완공되면서 개업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어졌기 때문이다.
“어렵다…….”
소파에 앉아 주변을 돌아보니 얼추 정리된 카페 안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우드 톤의 가구로 통일된 가게 내부는 따뜻하고 안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피아노곡이 흘러나왔고, 하늘거리는 쉬폰 커튼 너머로 투과된 햇살이 카페 내부를 여린 색감으로 덧입혔다.
흰색 페인트로 깔끔하게 마감된 벽에는 한세영이 선물한 아기자기한 소품이 놓인 선반이, 계산대 옆 진열장 안에는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디저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따사롭기 그지없는 풍경 속에서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맨 채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았다.
주먹밥 가게를 운영했을 때는 프랜차이즈 창업이어서 지금보다 신경 써야 할 게 적었다.
그러나 개인 창업은 달랐다. 영업 방식부터 시작해서 광고까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SNS…….”
텅 빈 가게를 보며 깨달았다. 가게를 운영하는 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케팅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진작 좀 하라고 했잖아.”
곧바로 날 선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녀는 김유정의 또 다른 고등학교 친구, 성지현이었다.
게이트 관련해 연구하는 대학원생으로, 항상 바쁜 탓에 연락이 드물었는데 그래도 몇 없는 친구가 개업했다고 하니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었다.
빨리 휴대폰이나 내놓으라며 성지현이 나를 채근했다. 결국 휴대폰을 넘기니 그녀의 매끈하던 미간이 구겨졌다.
“뭐야, 돈 없다면서 휴대폰 바꿨네? 바꾼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어?”
“어쩌다 보니 망가져서 바꿨어.”
“너 다른 기능 안 보고 무조건 튼튼한 거로 샀잖아. 그게 망가질 정도면 어디서 폭격이라도 맞았나.”
“…….”
그 비슷한 일이라면 겪었지.
찔리는 것이 있었기에 조용히 눈을 굴렸다.
정작 당사자는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지 시큰둥한 얼굴로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사실 성지현과 친하게 지낸 지는 아직 얼마 안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 어느 정도 이곳 생활에 적응하고 나자 한세영이 그녀의 소식을 알리며 한번 만나 보라고 권유한 것이 첫 계기였다.
아멜리아와는 성향 차이 때문인지 성인이 되고 난 이후 교류가 없었다기에, 친한 사이는 아닌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다.
그런데 막상 만나 보니 생각보다 성격이 잘 맞아서 좋은 관계를 이어 오고 있었다.
“미친……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깔린 앱 하나 없어? 한세영, 걔는 무슨 애 보듯 네 일에 일일이 간섭하면서 이런 건 하나도 안 알려 줬어?”
한참 내 휴대폰을 살피던 성지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무슨 소리야 앱 있잖아. 너튜브랑 게이트 경보, 은행 어플 잘만 깔려 있는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중 두 개는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거잖아. 이것들마저도 없으면 넌 진짜 현대인 아닌 거고.”
나는 조금 억울해졌다.
휴대폰이라는 현대 문명의 이기 없이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기간만 무려 7년이다.
게다가 차원 이동 전에는 거의 공부만 하고 살았는데, 대뜸 어플이니 뭐니 적응할 수 있을 리가.
……아니, 사실 변명이긴 하다.
1년간 다양한 일을 해 오면서 주변 지인들이 뭔 어플을 깔아라, SNS 계정 만들어 두면 편하다, 다양하게 조언해 줄 때마다 영혼 없는 대답만 하고 흘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게 바로 세대 차이라는 걸까.’
흐린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으니 이것저것 화면을 두드리던 성지현이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일단 카페 홍보에 가장 대중적인 SNS로 깔았어. 사진 찍어서 올리는 건 할 수 있지? 다른 활동은 기대도 안 할 테니 메뉴 사진이나 꼬박꼬박 찍어서 올려. 영업 시간도 등록해 놓고.”
“고마워. 내가 돈이 없어서 달리 줄 만한 건 없고…… 커피라도 더 마실래? 케이크도 있다.”
어차피 손님도 없고 해서 이대로 시식이라도 봐 달라며 이것저것 꺼내 왔다. 하나씩 맛보던 성지현이 파란색의 열매가 올라간 파이를 포크로 꾹 찔렀다.
“……어? 뭐야 이건? 하늘색 뭔가가 덩어리져 있는데.”
“아 그거? 쿠아 열매. 파이로 만들면 맛있어. 잼으로 만들어서 먹어도 괜찮고.”
물방울처럼 생긴 외양으로 인해 물을 뜻하는 ‘아쿠아’에서 이름을 따온 열매였다.
피부 미용에도 좋고 체지방 감량에도 좋은 이 열매는 헤르만 제국에선 간단한 하급 포션을 제작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숲에 살았던 나의 전 동료 비비안은 나무 열매를 이용한 여러 디저트들을 만들 줄 알았는데, 그때 틈틈이 배워 둔 레시피를 카페 창업하면서 선보이게 된 것이다.
맛있으니 한번 먹어 보라는 권유에도 성지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파이 위에 올라간 열매를 찔러 보기만 했다.
“아아…… 남쪽 구역 던전 발발로 식용 허가 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그거구나.”
“응? 허가 난 지 얼마 안 됐어?”
원래의 세계도 현대 판타지로 바뀌면서 여러모로 달라진 게 많았다.
이 세계에 게이트가 나타나며 주변 지대에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몇몇 구역이 사라지거나 생기는 둥 땅의 형태가 크게 바뀌었다.
또한 게이트의 힘으로 인해 기후가 바뀌어 새로운 광물이나 열매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메뉴 개발 도중 이곳에서 쿠아 열매를 발견했을 때는 원래 이 세계에도 있었나 보다 하고 그냥 반갑기만 했었는데.
성지현 말을 들어 보니 이곳에서 쿠아 열매가 발견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 건강에 좋다고 처음 공표되었을 때 난리 났다가 맛이 너무 없어서 이젠 먹는 사람만 먹는 열매잖아. 나도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어쩐지 단가가 심히 싸더라. 저거 잘 정제하면 포션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데 그건 아직 연구되지 않았나 보네.
쿠아 열매는 그냥 먹으면 오물을 씹는 것보다 못한 맛이었지만, 급속 냉동한 뒤 세피아 잎을 넣고 바로 끓이면 색이 짙은 하늘색으로 변하며 열매가 달아졌다.
냉동 후 끓이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열매의 색이 바뀌지 않아 정제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끓이면 효과도 배로 좋아졌다.
그래서 카페 시그니처 메뉴로 삼았다. 피부나 다이어트에 관심 가진 사람은 많고, 입도 즐거운데 건강에도 좋다면 싫어할 사람은 없으니.
마침 비비안에게 쿠아 열매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도 몇 개 배워 알고 있는 참이기도 했고.
쿠아 열매는 갈아서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도 맛있고, 잘게 갈아서 잼이나 소스처럼 만들어도 어울렸지만, 내가 먹었을 때 가장 맛있었던 조합은 설탕에 절여서 파이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비비안 특제 수제 커스타드 크림과 합하면 더욱더 맛있어졌다.
“안 먹어? 독 같은 거 안 넣었어.”
“……이거 인터넷에서 보니까 막 그 토사물 맛나고 그런다는데 이렇게 디저트로 만들어서 팔아도 괜찮아? 그, 다른 과일 많잖아.”
“너 요즘 잦은 밤샘과 야식으로 피부에 뭐 나고 살도 쪘다며? 쿠아 열매는 피부에 좋고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조절해 줘서 다이어트 효과도 있고, 무엇보다 해독 효과가 훌륭한 식품이야.”
“……야, 너 무슨 건강식품 판매원 같다. 소질 있어. 나중에 영업원 해도 되겠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하지만 너무 두드려 부서뜨릴 것처럼 하염없이 파이를 찌르던 성지현이 드디어 파이를 갈랐다.
바삭바삭하게 구워진 생지 사이로 설탕으로 절인 쿠아 열매 조각과 부드러운 커스타드 크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가 그것을 한 술 떠 제 입에 가져갔다.
“맛있…… 잖아?”
성지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쪽을 쳐다봤다.
“이거 진짜 쿠아 열매 맞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원래 이렇게 맛있나? 맛없다는 얘긴 본인 먹을 것 없으니 다른 사람은 손도 대지 말라고 낸 헛소문인가?”
“아니, 헛소문 아닐걸. 쿠아 열매는 어떻게 요리하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거든.”
“와…… 빈말 아니고 너 진짜 대박 나겠다. 그 맛없다는 걸 이렇게 만드네.”
성지현의 반응을 보니 이곳 사람들 입에도 맞을 것 같다. 조금 전보다 빨라진 포크질을 가만히 응시하다 다시 휴대폰을 매만졌다.
“나 SNS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이거 사진만 올리면 되는 거야?”
“다른 사람이 올린 게시물 참고해 봐. 쿠아 열매 태그 달면 사람들 많이 볼 것 같은데. 소문만 무성하지 먹는 사람 거의 없고 하물며 디저트로 나온 건 나도 처음 봤으니까.”
“태그?”
“검색할 때 찾기 쉽게 하는 특정 키워드 같은 거.”
“어떻게 다는데?”
“거기 특수 문자 달고 치면 돼. 일단 클릭이라도 해야 사람들이 보니까 제목에 적당히 어그로 좀 끌고.”
“……어그로를 끌라고?”
“어. 인기 많은 제목 참고해서, 아…… 잠만, 전화. 아, 네 교수님~ 자료요? 저번에 말씀해 주신 자료라면 정리해서 보내 드렸…… 아, 실수로 지우셨구나~.”
나긋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와 달리 얼굴은 금방이라도 살인을 저지를 듯했다. 입 모양으로 소리 없이 쌍욕을 중얼거린 성지현이 자리를 떴다.
홀로 남은 나는 키패드를 두드렸다.
토독. 토독, 톡.
다행히도 저번 날이 좋을 때 한세영이 찍어 줬던 음식 사진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눈에 괜찮아 보이는 사진들로 골라 첨부한 다음 제목 입력 칸으로 커서를 옮겼다.
카페 홍보에 다짜고짜 어그로를 끌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는데 막상 해 보니 의외로 할 만했다.
나 은근 소질 있는 걸지도.
혼자 해냈다는 뿌듯함에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등록 버튼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딸각.
[※안 보면 후회※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쿠아 열매<<의 비밀…… 진실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걸 파는 가게]
참고 출처는 너튜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