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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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인기를 끈 게시물에 기쁨도 잠시, 한세영과 성지혜는 이상한 댓글이 달릴 수도 있으니 일단 댓글 창을 닫고, 언제 다시 가게를 열 것인지 고지하는 글을 올리라고 했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조언대로 내일 몇 시에 가게를 연다고 글을 올렸다.
그리고 다음 날, 가게를 열자마자 손님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SNS에서 보고 왔는데 정말 쿠아 열매로 만든 거예요?”
“파이 아직 남아 있어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리뷰에서 잼 쿠키도 봤는데 그건 따로 판매하는 건가요?”
댓글 창을 닫은 탓에 댓글은 보지 못했어도 하트가 빠르게 불어나기에 내일 바쁘겠구나 하고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네, 잠시만요! 파이는 지금 더 굽고 있어요. 잼 쿠키는 이벤트로 드리고 있는데 오늘은 다 떨어져서요. 아, 주문하신 커피요? 곧 나가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혼자서 커피 내리고, 오븐 확인하고, 디저트 데코에 포장까지.
그 와중에 설거지는 설거지대로 쌓여 갔고, 드디어 곰돌이 만드는 법을 마스터했는데 정작 라떼 아트 할 시간도 없었다.
“앗-.”
픽업대에 주문받은 커피를 올려놓다 실수로 컵 받침대를 떨어뜨렸다. 허둥지둥 바깥으로 나가는데 누군가가 컵 받침대를 주워 들었다.
“여기요.”
컵 받침대를 주운 사람은 일자 앞머리에 긴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은 여자애였다.
키도 작고, 눈도 강아지처럼 까맣고 동글동글한 게 무척이나 앳된 얼굴이었다.
언뜻 봤을 때는 중학생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근처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주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러니까…… 주문, 주문하시겠어요?”
순간 말에 당황이 묻어 나왔다.
왜냐하면 교복이 올라가며 드러난 그녀의 손목에 센터 문양이 새겨진 얇은 금속 팔찌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C급 이상의 에스퍼들을 위해 센터에서 배급된다는 제어 팔찌였다.
‘이 애 에스퍼구나.’
고등학생 에스퍼는 처음 봐서 신기한 한편, 이런 말을 할 만큼 에스퍼를 본 적도 없지 않나 싶어 바로 시선을 내렸다.
1년 하고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에스퍼 만날 일이 뭐 얼마나 있었겠는가.
“아뇨, 바빠 보이시는데 하시던 일 마저 하시고 주문받아 주셔도 돼요.”
뉴스나 주변에서 주워들은 에스퍼들은 하나같이 인성이 엄청나던데 사실 아니었던 걸까.
양현우, 주연우, 그리고 오늘 본 이름 모를 학생까지.
내가 만난 에스퍼들은 하나같이 천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정한 성품의 사람들뿐이었다.
‘착한 학생이야…….’
아직 세상은 살 만한 것 같다. 나는 나중에 또 오면 잼 쿠키라도 하나 더 챙겨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저 픽업대 위로 커피를 올려놓는데 여자애가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빈말이었나? 역시 주문부터 먼저 받아야 하나?
뭔가 싶어 어색하게 웃어 보이니, 여자애가 느릿하게 입술을 떼었다.
“저 혹시-.”
그 순간, 픽업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학생 무리가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예나야- 잠깐 이리 와 봐! 아직 주문 안 했지?? 우리 주문 다른 거 시키려고!”
눈앞의 학생과 정확히 같은 교복이었다.
“뭐?”
그에 응답하듯 살짝 인상을 찌푸린 여학생이 무리 쪽으로 돌아갔다.
* * *
폭풍 같았던 하루를 무사히 마친 그날 밤, 나는 close 팻말을 걸며 중얼거렸다.
“……이대로는 망하겠는데.”
오늘 같은 성황이 계속해서 유지될 거라곤 생각 안 한다.
지금이야 손님이 많이 몰리지만 이건 반짝 지나가는 유명세에 불과하다. 이후 대처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앞으로가 결정될 거다.
너무 바쁜 나머지 응대를 비롯해 서비스의 질이 저하됐다.
큰 실수가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거지 오늘 실수도 여러 번 했고, 평소 카페를 찾아 주셨던 단골손님들은 꽉 채워진 자리만 들여다보고 나갔다.
음료나 디저트의 품질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지만 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역시 알바를 써야겠네.’
가게도 크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몰라서 알바생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안 되겠다.
오늘처럼 손님이 많지는 않더라도 한동안은 시선을 끌 것 같고, 쿠아 열매를 쓴 디저트 반응이 예상보다 너무 좋았다.
“그런데…… 알바생을 어떻게 구하지.”
또 게시물을 올려야 하나. SNS를 붙잡고 뭘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왔다.
한참 끙끙 골머리를 싸매던 나는 이 고민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이런다고 당장 뾰족한 수가 생각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근래 들어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낸 터라 정신이 고단했다.
그렇기에 그저 침대 위로 이불을 펴며 시답잖은 바람을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그냥 갑자기 어디에서 괜찮은 알바생 하나 떨어져 줬으면 좋겠네.’ 하고.
당시 나는 몰랐다.
정말 그 시답잖은 바람대로 예기치 못한 곳에서 알바생을 얻게 될 줄은.
* * *
카페 ‘meli’의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매주 월화는 휴무일이며, 일요일은 오후 2시까지만 운영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임시로 급하게 정해진 것이며, 게이트의 발생이나 기타 재해 등 천재지변에 의해 변동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오후 1시, 즉 가게 문 닫기 1시간 전.
나는 모처럼의 평화로움을 즐기며 휴대폰 화면에 띄워 놓은 인기 프로그램 복면왕을 보고 있었다.
유명인이 가면을 쓴 채 노래를 부르다 나중에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 재미있어서 요즘 챙겨 보고 있었다.
참고로 지금 가면을 벗은 사람은 어디 유명 길드 소속이라는 C급 각성자였다.
광고도 몇 개 맡았고 방송 일도 하고 있다는데 각성자나 연예인이나 둘 다 관심 없는 내겐 낯설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뭐, 애초에 관객 반응 보는 재미로 보는 거니까.’
정체도 밝혀졌겠다, 나는 그만 화면을 끄고 현실적인 고민에 나섰다.
휴일이라고 해도 마냥 쉴 수만은 없다. 알바생 모집할 방법도 찾아봐야 하고, 메뉴도 보완해야 하고…….
딸랑-.
한창 고민하던 와중 가게 문이 열렸다.
검은 마스크에 모자. 며칠간 안 보이던 바로 그 손님이었다. 처음엔 그저 수상하기만 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좀 봤다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그가 멈칫하더니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주문은 자주 드시는 초코라테 샷 추가에 휘핑 많이. 쿠아 파이로 괜찮으신가요?”
인상적인 외양의 손님이 매번 같은 것을 주문하면 외울 생각이 없어도 외워진다.
1시간 뒤면 휴일이라는 기쁨과 그를 향한 반가움에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묻자, 살짝 어깨를 떤 그가 나를 쳐다봤다.
‘너무 나갔나?’
저쪽은 나를 친근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 혼자 내적 친밀감을 쌓았나 보다. 매서운 눈빛에 빠르게 반성하며 살며시 미니 메뉴판을 내밀었다.
“아- 혹시 취향이 바뀌셨나요? 천천히 보셔도 돼요.”
“……똑같은 거긴 한데.”
“네, 그러면 초코라테랑 파이면 될까요?”
포스기를 두드리다 왜 그가 반가웠는지 이유가 떠올라 번뜩 고개를 들었다.
맞다. 그러고 보니 반가운 이유는 단순히 오랜만에 보는 단골손님이라는 이유 말고 하나 더 있었다.
“아, 그렇지. 말하는 걸 깜빡할 뻔했네요. 감사합니다.”
“……?”
“그렇게 대단한 분인 줄은 몰랐는데, 정말 놀랐어요.”
“……대단한 분?”
“네. 손님께는 감사할 게 한둘이 아니네요. 저번 SNS 보고 바로 인사 드리고 싶었는데 근래 카페에 오시지 않으셔서…….”
“뭐?”
왜 반말이시지. 평소에도 말을 뚝뚝 끊어서 하긴 했어도 이렇게 대놓고 말을 놓는 건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다.
나는 말을 하다 말고 눈을 들어 그의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뻗어 근처에 놓여 있던 유리병을 잡았다.
뭔진 몰라도 눈이 보통 살벌한 것이 아닌 게 자칫하면 큰일 나겠다 싶었다.
“어떻게? 어떻게 알았는데.”
……뭘 알았냐는 걸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그의 물음이 SNS를 쓴 게 자신인 줄 어떻게 알았냐는 것에 대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한세영이 그 계정에는 계정주에 대한 정보를 추측할 법한 사진이나 글이 없다고 했었지.
카페를 홍보해 준 예의 유명 디저트 SNS 계정의 주인이 그라는 것을 알게 된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올라온 사진 중 오픈 이벤트로 줬던 잼 쿠키가 있었고, 쿠키 포장지엔 커다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여기서 짚고 나갈 게 있다면 나는 평소 쿠키를 포장하는데 리본 장식을 쓰지 않는다.
평소 내가 쿠키를 포장할 때 쓰는 것은 웃고 있는 별 모양 스티커이며, 리본을 달았던 것은 딱 한 번, 갖고 있던 스티커가 떨어졌을 때뿐이었다.
선물 포장용 커다란 리본. 지금 눈앞의 남자에게 줬을 때였다.
‘갑자기 아는 척해서 놀랐나?’
뒤늦게 상황을 이해하고는 머쓱한 얼굴로 설명하려 하는데 나보다 상대방의 행동이 더 빨랐다.
커다란 손이 쓰고 있던 모자와 마스크를 거칠게 잡아챘다. 모자를 쓰고 있던 터라 좀 눌리긴 했지만 구불거리는 붉은색의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짙은 녹안.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눈썹 피어싱. 지금껏 모자와 마스크에 가려져 있던 짙고도 화려한 생김새가 내 눈에 뚜렷이 담겼다.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낮은 음성이 물었다.
“말해. 나인 거 언제부터 알았어.”
“…….”
“안 들리냐?”
위협하던 강도들, 그의 머리카락처럼 붉고 뜨겁게 타오르던 화염.
연달아 떠오르는 장면들에 나는 멍하니 손가락을 들어 눈앞의 남자를 가리켰다.
“그쪽이 왜 여기서 나오세요……?”
그야말로 현실 복면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