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33화
생각보다 재난은 흔하고,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나 대개 사람들은 ‘설마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하고 무심결에 생각하곤 한다.
강민지도 그러했다.
때때로 뉴스에서 갑자기 도로에서 비전조 게이트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그로 인해 실종자가 생겨 실종자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고 해도, 그런 일이 제게 실제로 일어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는 이야기다.
‘하필 R 구역에서 게이트가……!’
평소에는 잘 오지도 않는 구역이었다. 알바 자리를 구하고자 몇 달 만에 온 곳이었는데 왜 하필 오늘 게이트가 터진단 말인가.
솔직히 억울했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게이트가 터졌다면 강민지는 이미 역에서 나간 상태일 테니 어쩌면 휘말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왜 재난이 재난이겠는가. 예기치 못하기에 재난인 것이다.
비전조 게이트는 천재지변 같은 것이었고, 감히 각성자도 아닌 인간이 천재지변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강민지는 파충류의 얼굴을 한 마물에게서 어떻게든 도망치고자 정신없이 달렸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어디에서 다치기라도 했는지 마물의 발 한쪽이 처음부터 잘려 있어 쫓아오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는 것 정도였다.
‘센터! 센터든 길드든! 제발……!’
누구라도 좋다. 누구라도 좋으니 구해 주길 바랐다.
한참 달리던 강민지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검은 머리의 여자가 가만히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침착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강민지는 속으로 환호했다.
‘에스퍼인가 봐!’
강민지는 도움을 구하고자 크게 소리쳤다.
“마물!! 마물이야! 사람 살려!!”
그러자 멀리서 검은 머리의 여자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
착각인지 모르나 여자의 등 뒤에서 구원의 손길처럼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사람은 자신도 알지 못했던 힘을 내는 법.
강민지는 지금껏 살면서 가장 빠르게 달리며, 검은 머리의 여자를 향해 도와 달라는 듯 힘껏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뻗는 동시에, 검은 머리의 여자도 제 앞에서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
에스퍼가…… 아니었어……?
그저 달리는 사람만 둘로 늘었다.
* * *
대체 얼마나 달린 걸까. 어림잡아도 몇십 분은 뛴 것 같았다.
“허억…… 허억…….”
강민지는 숨을 헐떡였다.
산소 부족으로 머릿속이 새하얬다. 긴 달리기로 인해 무거워진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했으나 속도는 점점 줄어들기만 했다.
탁, 바닥으로 내려놓은 발목이 꺾이며 끝내 걸음을 멈춰 세우고 말았다. 살고자 하는 의지와 달리 피로로 잠식된 다리는 좀처럼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뒤를 쫓아오던 마물을 되돌아보던 순간, 무언가가 그녀의 앞을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얼굴 위로 진득한 액체가 튀었다.
푸욱!
“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뒤를 쫓아오던 마물의 피였다. 무심결에 얼굴을 더듬자 손에 짙은 녹색이 묻어져 나왔다.
어디서 무기를 구한 건지 검은 머리의 여자가 날이 매섭게 든 장검으로 마물의 남은 다리를 베어 냈다.
먹잇감을 노리던 마물은 순식간에 제 몸을 지지하던 것이 없어지자 바닥에 엎어졌고, 검은 머리의 여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물의 목을 한 번, 두 번 연달아 찔렀다.
푸욱! 푹! 푹!
소리가 멎은 것은 마물의 몸이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였다.
몇 번이고 찌른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긴장이 멎자 그나마 유지하던 힘마저 빠져나가 버렸다. 강민지가 주저앉아 버리자 여자가 칼을 들지 않은 손으로 강민지를 끌어당겼다.
끙끙. 저를 끌어당기며 앓는 소리를 내는 이는 조금 전 냉정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마물을 처리했던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힘이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고 말이다.
혼란으로 물든 강민지의 얼굴을 본 여자가 고갯짓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칼이라면 저기에서 주웠어요. 무기가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에스퍼의 것 같은데…….”
나무 뒤쪽에는 언뜻 사람 손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에, 에스퍼……!”
“잠깐 가지-.”
강민지는 무릎걸음으로 거의 기다시피 하며 나무 쪽을 향했다.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 것도 같았으나, 누구라도 구해 줄 존재가 생겼다는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아…… 아아…….”
그러나 나무 뒤에서 그녀가 본 것은 저를 구해 줄 에스퍼가 아닌 싸늘히 식어 있는 시체였다. 그것도 목이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서둘러 엉덩이로 뒷걸음질을 치자 여자가 그런 강민지를 잡아 일으켰다.
“웁-!”
강민지는 서둘러 입을 틀어막았다.
구역질이 났다. 잘린 근육 사이로 반쯤 드러난 목뼈가 시야에 들어왔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그것은 분명, 저와 같은 붉은 피를 가진 인간의 시체였다.
“음…… 그래서 가지 말라고 했던 건데.”
가볍게 혀를 찬 여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동굴을 가리켰다.
“저는 저기로 갈 건데 그쪽도 갈래요? 사방에서 훤히 보이는 곳에 있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싶은데.”
강민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세워 여자를 쫓아 동굴로 들어갔다.
그리고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걸음을 멈춰 선 뒤 동굴 벽에 몸을 기댔다.
“아, 맞다.”
그런 강민지를 바라보던 여자가 장검을 옆에 세워 둔 채로 메고 있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작은 봉투를 하나 꺼내 던졌다.
“자요, 저 먹을 거 있거든요. 하나 드릴게요.”
“……쿠키? 이런 때에 쿠키요?”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죠. 입이 심심할까 봐 들고 나온 건데 그러길 잘했네. 아, 혹시 쿠키 싫어하세요?”
“아뇨…… 조, 좋아해요…….”
“다행이네. 저 음료수도 있…… 맞다. 탄산인데.”
“…….”
혹시라도 음료가 흘러나올세라 조심조심 캔 뚜껑을 따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강민지는 제 손에 들린 쿠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특이하게도 진한 하늘색의 잼이 가득 채워진 먹음직스러운 쿠키, 반쯤 열린 구멍으로 거품이 새어 나오는 초록색 패키지의 탄산음료.
얼핏 보면 숲으로 피크닉이라도 온 듯한 풍경이 공포로 절여진 뇌에 이질감을 가져다주었다.
강민지는 고개를 들어 그 이질감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조심스럽게 손톱으로 캔 뚜껑을 까던 여자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윽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지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쿠키를 든 반대쪽 손에 다른 게 쥐어진 탓이었다.
“이쪽이셨구나.”
붉은색 패키지, 콜라였다.
강민지는 제 손에 쥐어진 탄산음료를 멍하니 내려다보다 힐끔 시선을 올렸다.
“그……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에스퍼이신가요?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시고. 대단하신 것 같아서요.”
여자는 휘말린 일반인이라기엔 너무 태연했다. 떨리는 제 손과 다르게 조금의 떨림도 없이 음료 캔을 따는 흰 손가락이 보였다.
“으음, 아뇨. 제가 에스퍼로 보이나요?”
“…….”
강민지는 입술을 달싹였다.
물론 각성자라기엔 이능력으로 예상되는 능력을 보지 못했다.
저를 끌어당기는 손길은 약하지 않았으나, 특출나게 강하지도 않았다. 달리기 속도 역시 저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곧장 아니라고 답할 수도 없었기에 강민지는 입을 닫았다.
대체 어떤 일반인이 무기를 발견했다고 곧장 휘두를 수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실수했다면, 머뭇거렸다면 제 쪽에서 죽임을 당했을 텐데.
그러나 제 앞의 여자는 순식간에 판단을 내렸다.
마물의 다리 한쪽이 부상으로 온전치 않다는 것을 곧바로 인지하고, 침착하게 남은 다리를 베어 냈다.
그리고 중심을 잃은 마물이 다시 공격하기 전에 주저 없이 급소를 찔렀다.
“이름이 뭐예요?”
“아…… 강민지예요! 나이는 스물넷이고요.”
“네, 저는 김유정이에요. 민지 씨, 우리는 그냥 운이 좋았던 거예요.”
여자, 김유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아마 죽을 가능성이 더 크겠죠. 제가 침착할 수 있는 이유는 별거 없어요. 어차피 죽을 거라면 침착하게 뭐라도 해 보는 게 낫잖아요. 그쪽이 더 살 가능성이 클 테고.”
“그건, 그렇지만…….”
“저도 던전은 처음이에요. 그냥 깊게 생각하지 말고 받아들이세요, 민지 씨. 경험상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죽을 확률만 높아지더라고요.”
함께 있는 상대의 태도가 담담해서일까.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도 해결되지도 않았건만, 손 떨림이 멎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체력이 회복될 때까지 쉬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동굴 안을 살피던 김유정이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들어 올렸다.
“그럼 다시 동굴 밖으로 나갈까요. 나갈 방법이라도 찾아보죠.”
“네.”
강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머릿속이 진정되자, 남아 있는 긴장감을 누르기 위한 가벼운 농담을 던질 만큼의 작은 여유가 생겼다.
강민지는 허탈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정말 재수도 없네요. 얼마 전에 갑자기 해고되고, 기껏 다시 정신 차리고 알바 구하러 나왔더니…… 던전이라니.”
“그러게요. 저도 재수가 없는 것 같아요. 이제 좀 팔자 피나 했더니…….”
매서운 눈초리가 내려가며 눈에 띄게 가라앉은 김유정의 모습에 강민지는 위로하듯 어깨를 토닥였다.
“기운 내요. 우리 살 수 있을 거예요! 저 생명선 되게 길다고 누가 그랬거든요. 아, 저 카페 알바도 오래 해서 웬만한 거 다 만들 줄 알거든요?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제가 유정 씨 먹고 싶다는 음료 전부 만들어 드릴게요.”
“……뭐요?”
김유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