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44화
물론 귀한 S급 가이드이니 언제가 되더라도 시도는 해 볼 생각이지만, 굳이 교육생 컨택부터 나설 필요가 있나?
S급이라면 다른 길드에서도 컨택을 할 것이고, 피곤한 숫자 싸움을 해야 할 텐데.
매칭률이나 실력이 괜찮은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자금을 낭비할 바엔 차라리 실력을 검증한 뒤 따로 가이드에게 의뢰를 넣어 보는 편이 나았다.
‘정말 괜찮은 가이드면 나중에 다른 길드로 들어간다고 해도 뺏으면 되고.’
길드 간에 보기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뭐 어떤가. 원래 이 업계는 강한 놈이 왕이었다.
시큰둥한 하도경의 반응에 비서가 서류를 넘기며 권했다.
“그래도 이름이라도 들어 보시죠. 저번에 부마스터가 잠꼬대로 중얼거린 이름이랑 똑같더라고요.”
“잠꼬대? 뭔 헛소리야. 그냥 짧게 보고만 하고 나가 봐.”
“예, 측정 기기 오류로 근래 재검사를 받아 S급을 판정받았다고 합니다. 이름은 김유정-.”
쾅!
무릎을 부딪친 듯 책상이 크게 들썩였다. 상체를 굽히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하도경을 쳐다보며 비서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김유정이고, 성인이 된 후 늦게 각성한 사례라고 합니다. 간단히 특이 사항만 말하자면 상부 쪽 이로운 에스퍼와-.”
“-넣어.”
“예?”
“당장 넣으라고, 컨택!!!”
하도경이 비서의 손에 들린 서류를 빼앗아 들며 소리쳤다.
* * *
서윤호에게 C급 가이드라 말하고 불과 이틀 뒤, 오늘 아침 나는 측정실 기기를 업그레이드했다는 말에 등급 재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등급이 바뀌었다.
“S급입니다!!”
측정실 연구원이 소리쳤다.
“정확해? 몇 차인데?”
“지금 당장 최고 파장 몇인지 보고 올리세요.”
“바로 다음 주부터 매칭률 검사 들어갈까요?”
순식간에 측정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마치 희귀동물이라도 보듯 느껴지는 낯선 시선. 감탄 섞인 웅성거림과 다시금 기록을 확인하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근처에 있는 연구원을 잡아 물었다.
“저 혹시…… S급 가이드가 몇 명이나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내 물음에 연구원은 들뜬 얼굴로 답했다.
“네네, 당연히 물어보셔도 되죠! 현재 대한민국에서 S급 가이드는 이번에 S급이 되신 김유정 가이드님을 제외하고 한 분 계십니다.”
“혹시 그분 나이가?”
“올해 97세 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당국에서 거의 유일에 가까운 등급을 얻었다는 소리였다.
“아하, 연세…….”
진짜 인생에 마구니가 낀 것 같은데.
나는 공허한 웃음을 터뜨렸다.
* * *
재검사의 여파는 바로 다음 날부터 드러났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교육생들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같은 부정적 감정이어도 상대방의 위치에 따라 표출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질투와 시기로 얼룩져 나를 깎아내리던 이들은 순식간에 태도를 달리해 나를 추대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지.’
내 가이딩 실력이 다른 교육생보다 뛰어난 것은 능력의 사용법이 아멜리아이던 때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로운과 개인 면담을 했던 이유는 그 애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그렇고. 소문 중 그 어느 것도 내 등급과는 무관했다.
뇌물에 비리, 별 저속한 이야기까지 불어 있던 소문이 한순간에 잠잠해지고, ‘센터에서 미리 손 쓰기 위해 S급 가이드를 숨겼던 거다.’라는 무슨 비밀 병기 같은 소문으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같은 수업을 듣는 이들이 말을 걸어 왔다.
「……안녕하세요! 김유정 가이드님.」
「저 혹시…… 괜찮으시다면 어디에서 컨택 연락이 왔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말을 걸어 오지 않는 이들도 은연중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렇다. 재검사에 때마침 길드 컨택 기간까지 겹쳐 나는 수십 군데의 길드에서 컨택을 받았다.
다들 오래간만에 나타난 S급 가이드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컨택 온 계약 조건을 대략이나마 살펴봤는데, 확실히 다들 금전 부분은 센터 의무 복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왜 다들 길드에서 의무 복무를 하고 싶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예의 그 길드에서도 연락이 왔던데. 뭐든 일단 교육 기간이 끝날 때까진 선택을 유보할 생각이지만…….
‘……역시 센터로 갈 수밖에 없나.’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면 최후의 경우 센터 현장팀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간혹 게이트 안까지 들어갈 위험부담이 있긴 하지만 지원팀처럼 주 5일 근무할 필요도 없고, 근무 시간도 적은 편이었다.
물론 불규칙한 만큼 갑작스러운 호출이 오면 바로 가 봐야겠지만, 잠깐 정도야 알바생인 강민지에게 맡기면 될 일이었다.
길드에 인생을 저당 잡힐 수는 없고, 대출금을 갚으려면 급여는 높은 편이 좋으며, 카페를 운영하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아이고, 위험하고 워라밸도 뭣 같던 군대 생활 또 하게 생겼네.
나는 조용히 욕을 지껄이다 강민지에게 통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민지야-.”
[미쳤어, 밤이야?! 아 사장님, 제가 늦으려고 한 게 아니라! ……어? 아직 출근 시간 아닌 거 맞는데. 사장님 제 휴대폰이 아직 아침 맞대요.]
잠에서 덜 깬 듯 강민지가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지금 시각은 아침 7시였다. 비 탓에 이른 아침부터 먹구름이 잔뜩 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두웠는데 그 탓에 자신이 늦잠을 잤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 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가게 못 열 것 같으니까 오늘은 쉬라고 연락했어.”
[앗, 마침 비 와서 출근하기 싫었는데! 그런데 사장님, 어디 아프세요?]
“그건 아니고, 요즘 일이 많아서 피곤해서.”
[아픈 건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빗소리가 들…… 지금, 밖…… 요?]
쏴아-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에 강민지의 목소리가 끊겨서 들렸다.
나는 휴대폰을 뺨과 어깨 사이에 끼우고 우산을 고쳐 쥐었다. 흐릿한 빗속, 가게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평소 오픈 시각 2시간 전인데 손님인가?’
검은 우산을 쓴 큰 키의 남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길이라기엔 한참 동안 카페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저번에 오픈 시각 전에 파이를 사 가겠다고 미리 와 있던 손님이 떠올랐던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혹시 카페 멜리에 방문하신 건가요? 만약 그런 거라면 오늘 카페 오픈 안 해요!”
빗소리가 시끄러운 탓에 목소리가 묻혔다. 말한 나조차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다시금 크게 소리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마치 내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치기도 전에 상대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그림자처럼 내려와 있던 검은 우산이 걷혔다.
“……주연우 씨?”
검은 우산과 무채색의 코트, 그리고 차가운 빗줄기.
창백한 얼굴 위로 옅은 갈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전과 달리 미소를 띠고 있지 않은 탓인지 주연우를 둘러싼 분위기가 어두웠다.
먹먹한 빗속에서 그의 눈이 언뜻 금빛으로 비쳤다.
무감하고 온기 없는 눈, 그 눈이 감정을 담은 것은 시선이 마주친 뒤였다.
나를 발견한 주연우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
당황한 듯 주연우가 들고 있던 우산을 떨어뜨렸다.
촤악! 물웅덩이 위로 떨어진 우산이 그의 바지를 적셨고, 거센 빗줄기가 그를 뒤덮었다.
“잠깐, 주연우 씨 괜찮아요?! 아이고, 다 젖었네!”
나는 황급히 내 우산을 씌워 주었다.
뚝, 뚝. 주연우의 몸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졌다.
“연우 씨가 왜 이곳에…… 아니, 아니지. 일단 들어갑시다. 감기 걸리겠네…… 마침 여기가 제 가게니까 수건이라도 줄게요.”
나는 그의 팔을 잡고 가게 안으로 이끌었다.
이번 달에 들어서서 오늘이 가장 추운 날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이런 날에 물에 젖은 생쥐 꼴이라니.
이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무슨 비와 원수라도 진 듯했다.
나는 주연우를 의자에 앉힌 뒤 바로 히터를 켰다. 가게 안이 데워지려면 시간이 걸렸기에 다른 방법을 찾고자 선반을 뒤졌다.
“-아, 있다.”
다행히도 자몽 청이 남아 있었다. 끓인 물에 자몽 청과 꿀을 섞자, 상큼한 자몽 향이 코끝을 스쳤다.
“자몽 허니 티예요. 마시면 좀 몸이 따뜻해질 거예요.”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주연우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정말 누나 맞아요?”
“김유정을 물어보는 거라면 맞는데요. 아, 설마 주연우 씨 제 이름 까먹은 거 아니죠?”
“연우예요.”
“네, 네. 연우 씨. 여기 수건이요.”
이름에 대한 집착은 여전하네.
마른 수건을 꺼내 내밀자 그의 고개가 슬그머니 숙여졌다. 눈치를 살피듯 주연우가 음료가 든 머그잔을 공손히 두 손으로 꼭 잡으며 말했다.
“손을 쓸 수가 없어서…….”
“아, 말려 줄까요?”
주연우의 고개가 곧장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나는 마른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문지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안색이 좋지 않은데…….’
빗속에서 본 게 착각이 아니었다.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고, 눈 밑은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거뭇했다.
가까이서 보면 누구라도 이 사람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연우 씨, 마지막으로 가이딩 받은 게 언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