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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45화 (45/119)

S급 자영업자

45화

그의 상태를 생각하면 이상할 게 없는 질문이었는데도 그는 놀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초조하게 입술을 짓이기며 말했다.

“가이딩제도 주기적으로 섭취했고, 폭주 가능성도 크지 않아요. 위험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네? 그게 무슨…… 그게 아니라 건강 상태가 나빠 보여서요.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대뜸 그런 의도로 물어볼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저를 싫어하시잖아요.”

“……제가요? 주연우 씨를?”

내 물음에 주연우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저런 오해를?’

주연우에게 좋은 감정이라면 모를까 나쁜 감정은 없었다. 곤란했을 때 도움을 준 데다 내게 잘해 주기만 한 사람을 싫어할 이유가 있나.

“제게 말도 없이 떠나시고…….”

“아, 쪽지 남겨 두고 나갔는데 혹시 못 보셨나요?”

“…….”

주연우의 눈꼬리가 내려가더니 이내 입술이 굳게 다물려졌다. 처연하기 그지없는 표정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진짜 못 봤나? 혹시 어디 가구 사이에 잘못 떨어진 건-.

쪽지를 어디에 두고 갔는지 기억을 되짚어 보던 나는 떠나기 전날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까지 떠올리고 나서야 생각을 멈췄다. 음주와 함께한 흑역사가 떠올랐다.

나는 힘차게 고개를 흔들며 그날을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어쨌든 저 연우 씨 안 싫어해요.”

오히려 다시 이뤄진 만남이 기뻤다. 이대로 연이 끊기겠구나 했는데, 이렇게 우연히 다시 만날 줄이야.

나는 반가움 반 걱정 반으로 어쩐지 조금 마른 듯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가이딩을 받은 게 언제죠?”

“가이딩제라면 계속 꾸준히…….”

제대로 된 가이딩은 못 받았다는 거군.

나는 잠시 고민하다 주연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물었다.

“연우 씨, 혹시 제가 당신을 만져도 될까요?”

지금 주연우의 상태는 매칭 가이드의 가이딩을 받은 에스퍼의 상태가 아니었다.

수업을 듣기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나는 가이딩제가 가이딩을 대체할 수 있다곤 하나, 완전하지 않으며 가이딩에 비하면 효율도 기능도 떨어진다는 것을 안다.

게다가 주연우는 가이딩제마저 몸에 받지 않는 타입인 것 같았다. 이로운도 오랫동안 가이딩제를 복용하고 있었지만, 주연우 만큼 상태가 심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내 물음에 주연우는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네.”

그의 눈이 감겼다.

나는 손을 뻗어 주연우의 뺨을 감쌌다. 상태가 안 좋은 지금은 평소보다 많은 접촉이 필요했다.

닿은 면적을 통해 가이딩이 흘러 나갔다. 실습 때 하급 에스퍼를 가이딩 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몇 분이면 전부 채워진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계속해서 흘려보내는 느낌뿐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아무것도 모르던 이전과 달리 주연우의 그릇이 지금까지 상대해 온 에스퍼들과 비교해 상당히 큰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릇이 크다고 반드시 등급이 높은 게 아니란 것은 안다. 제어력, 능력의 형태 등 모든 것이 평가 기준이 되어 등급이 갈리니 말이다.

서윤호만 해도 능력이나, 힘의 방출이 무척이나 방대하다고 했는데, 제어력이 부족해 A급에 머문 사례라고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하급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처럼 E-F등급은 아닌 것 같다.

이전에는 비교 대상이 없어서 몰랐는데, 실습 때 다른 하급 에스퍼들을 가이딩 해 보니 확실히 알겠다. 가이딩이 완전히 채워졌을 때의 감각을.

어쩌면 내가 주연우의 그릇을 온전히 채운 것은 그날, 서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폭주 때뿐이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주연우의 집에서 신세 지면서 종종 주연우에게 가이딩을 해 주었지만, 실습 때처럼 완전히 채워졌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물론 그땐 채워졌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몰랐고, 그 정도로 충분한 줄로만 알고 있었지만.

‘……매번 부족했을 텐데 용케 참았네.’

가이딩은 부서지는 그릇을 고치고, 에스퍼의 파장을 정화하고 안정시키는 힘.

바꿔 말하면 가이딩이 부족할 시 에스퍼는 망가진다. 그런데도 주연우는 폭주 때 외에는 좀처럼 내 앞에서 고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런 상태로 지내 이미 익숙해진 사람처럼.

“하아…….”

주연우가 내 손바닥에 제 뺨을 바싹 기대 왔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가이딩을 받기 위한 에스퍼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주연우는 어린 짐승이 체취를 묻히듯 제 뺨을 내 손에 문질렀다. 손가락에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스치고, 손바닥에 살짝 입술이 닿았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츠리자, 주연우가 고개를 기울인 채 눈만 굴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물었다.

“……손에 입 맞춰도 돼요?”

가이딩으로 인해 흥분한 탓인지 그의 눈가가 붉었다.

나는 잠시 홀린 사람처럼 그 모습을 바라보다 뒤늦게 입을 열었다.

“네? 아, 손…… 가이딩.”

새삼스레 꺼릴 일은 아니었다. 앞으로 3년간 의무 복무 대상 가이드로 저당 잡힌 이상 익숙해져야 할 일이었으니까.

더구나 주연우와는 이미 전에 입을 맞춘 적도 있지 않던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일이 허락을 구해서 그런가? 말없이 할 때보다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내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쪽 하고 입술이 손가락 끝에 가볍게 내리눌렸다.

언제 손에서 놓은 건지,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머그잔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내 손보다 훨씬 큰 손이 내 손등을 감싸고, 엄지로 손목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쪽, 쪽. 새가 모이를 쪼듯 가볍게 맞닿았다 떨어지는 입맞춤에 손바닥이 간질거렸다. 묘한 열기가 손바닥을 가늘게 긁어내리는 기분이었다.

최근 해 왔던 가이딩 중 가장 긴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그의 혈색이 괜찮아질 때쯤 손을 뗐다.

주연우는 순순히 놓아주면서도 아쉽다는 표정으로 내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직 열기가 남아 있어서 그럴까. 닿았던 손과는 상관도 없는 목이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손을 등 뒤로 숨기며 급히 말을 꺼냈다.

“그…… 그런데 연우 씨, 혹시 전에 제가 했던 가이딩들 충분했어요?”

“전 항상 좋았어요.”

주연우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럴 리가……. 부족했을 텐데?’

예전에 일했던 카페에서 주워 줬던 센터 출입증이 하급용이었기에 나는 자연스레 주연우가 하급 에스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그릇이 지금까지 접한 에스퍼들에 비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말 하급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등급에 관해 물어보려다 입을 닫았다.

그도 그럴 게 애초부터 주연우에게 가이드가 되지 않겠다며 서로 자세한 건 묻지 말자며 은연중 선을 그었던 것은 나였다.

지금도 내 쪽에서 먼저 등급을 밝힐 생각은 없고…… 솔직히 머쓱했다.

‘당국에서 유일에 가까운 S급 가이드라잖아…….’

아니, 무슨 나 S급이니까 물어봐 달라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이 타이밍에 주연우에게 등급을 물어보면 나도 물어봐 달라는 의미로 들릴 것 같았다.

“으음…… 연우 씨, 혹시 센터 출입증이요. 지금 보여 줄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그때 봤던 출입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일하는 카페 단골손님이 에스퍼라는 사실에 당황해 급히 돌려준 탓에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입증을요?”

“어…… 제가 최근에 교육생이 되었는데 교육생 출입증이랑 뭐가 다른지 궁금해서요!”

“아.”

고개를 끄덕인 주연우가 지갑에서 출입증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때와 같은 E-F급용 짙은 동색 카드였다.

오른쪽 모퉁이에는 에스퍼를 뜻하는 선이 두 개 있었고, 등급은 E급, 그리고 맨 위 칸에는 주연우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어…… 교육생 출입증이랑 다르게 생겼네요.”

“그런가요?”

“교육생 때라 잊으셨구나? 교육생용은 색도 없고 좀 투박한 느낌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어색하게 뒷덜미를 매만졌다.

‘……아니었네.’

하긴 지금까지 내가 상대한 에스퍼의 대부분이 하급이었기도 하고, 능력이 다 다르니 그릇 크기 역시 다른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어쩌면 주연우가 맞는 가이드를 쉽게 찾지 못하는 건 능력에 걸맞지 않은 그릇을 가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뭐든 내가 이쪽에 전문가도 아니니 확답할 수는 없지만.

“아, 그런데 연우 씨, 왜 가게 앞에 서 있던 거예요? 혹시-.”

“쿠아 열매 파이가 유명하다고 해서 사러 왔어요.”

“와, 제 카페가 그렇게 유명해졌다니 기쁘네요! 그런데 연우 씨 아아메밖에 안 먹지 않았어요?”

알바 할 적 카페에 올 때마다 아아메만 주구장창 시켰던 모습이 떠올라 물었다.

그는 모를 것이다. 자신이 시키는 메뉴를 다른 손님이나 직원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나도 대타 시작하고 제일 먼저 들은 게 주연우가 항상 시키는 음료가 아아메라는 이야기였다.

주연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이제 다른 것도 마셔요. 마셔 보니 좋아하게 되어서요.”

“정말요? 그럼 자랑이긴 한데 저희 가게 파이 맛있어요. 덜 단 것도 있고…… 아, 그런데 오늘은 가게를 열지 않아서요. 재료도 준비해 두지 않았고- 대신 다음에 오실 때 쿠키 서비스로 드릴게요.”

“또 와도…… 되는 거예요?”

“……? 파이 사러 오셨다면서요.”

“그럼 자주 와도 돼요?”

“저야 감사하죠.”

고개를 끄덕이자 주연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나는 슬쩍 손날을 세워 눈을 가렸다. 안 그래도 화사한 사람이 미소까지 지으니 눈이 부셨다.

어째 내 기분까지 다 간질간질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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