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자영업자 50화 (50/119)

S급 자영업자

50화

* * *

‘꽃이 지고서야 그게 봄인 줄 안다더니…….’

그 말이 옳다. 하도경은 통감했다.

한때 길마가 길드에 얼굴을 안 비추는 게 말이 되냐며 연우진을 타박했던 그는 이젠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최근 연우진이 길드에 자주 출몰하면서부터 이상한 질문 세례로 그를 괴롭게 했기 때문이다.

그때,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대뜸 소파에 누워 있는 하도경의 옆에 멈춰 섰다.

“한 송이에 오백만 원 하는 예쁜 쓰레기를 마스터가 샀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든 말든 무시하고 누워 있던 하도경은 그 말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소문이라고?! 미친, 당장 묻어-.”

하도경이 발작하듯 소리치자 남자가 시큰둥한 얼굴로 답했다.

“거짓말이에요. 재무팀 직원에게 들은 건데 그냥 심심한 인생 위트 있게 사시라고 운 좀 띄워 봤어요.”

“……재영아, 혹시 위트 넘치게 수당 까이고 싶냐?”

“에이, 도경 형. 지치신 것 같기에 힘내라고 조크 좀 친 거예요. 제 마음 알죠?”

“조크 두 번 치면 쇼크사하겠네.”

한숨과 함께 하도경은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길드 초창기 멤버에 A급 힐러인 김재영은 메시아가 자랑하는 인재답게 성격에 문제가 많았다.

그래도 김재영 정도면 나은 편이긴 했다. 돈에 환장하는 놈이라 돈만 주면 대부분의 문제는 거의 다 해결됐으니까.

“그래서 그 예쁜 쓰레기…… 아, 마스터.”

그 순간, 이야기의 주인공인 연우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재영은 몇 달 보지 못한 얼굴을 근래 몰아서 다 본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의례적인 인사를 마친 김재영이 연우진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마스터, 요즘은 사람 뒤처리 일 같은 거 없어요? 저번에 한 거 수입 쏠쏠해서 좋았는데요.”

“아니, 이 새끼는 무슨 범죄 길드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놀란 하도경이 되물었다.

이전에 연우진이 강도들의 얼굴을 죄다 뜯어 놓아서 김재영이 고쳐 놓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 또 그런 일 없냐고 묻는 것이었다.

하도경의 물음에 김재영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한 짓은 자주 한 것 같아서요. 저 범죄 길드로 이직해도 잘 적응할 자신 있어요. 이력서까지 준비된 인재죠.”

그때 둘의 대화를 자르며 연우진이 대답했다.

“아마 조만간.”

“아싸.”

“시벌.”

이어진 연우진의 대답에 김재영이 무감한 얼굴로 환호를 표했고, 하도경은 이마를 짚었다.

조만간 또 무슨 일이 터질까. 무슨 다섯 살 천방지축 어린이도 아니고 하는 짓이 왜 이렇게 다채로운지 모르겠다.

하도경은 한숨과 함께 답했다.

“……이왕이면 처리하기 편하게 가자.”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역시 메시아 고참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연우진이 하도경 집무실에 찾아와 물은 것은 최근 들어 하도경을 괴롭히는 선물에 관한 것이었다. 하도경은 귀찮은 것과 별개로 연우진의 말에 경청했다.

그도 그런 게 지금 선물하는 대상은 연우진의 가이드였다.

흡사 시한폭탄 도화선 두 개 중 하나를 택하는 것과도 같았다. 연우진의 금전 감각이나, 사람 대처 능력은 최악에 가까웠기에 자칫하면 관계가 엉망이 될 수도 있었다.

“어, 그 예쁜 쓰레기 가이드님 선물이었어요? 좋겠다. 되팔면 얼마일까?”

김재영은 어느새 넓은 소파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대화를 경청하고 있었다.

김재영의 말을 무시한 채 하도경은 쓰린 위를 다스리고자 왼쪽 갈비뼈 아래를 문질렀다.

“내가 처음부터 값비싼 건 부담스러워할 테니까 별거 아닌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하긴 했는데…… 아니, 누가 그렇게 선물을 자주 주래? 너 혹시 부담이란 말을 모르…… 그래, 알 리가 없겠구나.”

하도경이 낮게 욕을 읊조렸다.

그나마 김유정이 주연우에게 어느 정도 호의를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호의가 없다면 주기적으로 가이딩을 해 줄 일도 없겠지. 아니지. 속에 든 게 뭐든 얼굴만큼은 훌륭하니 어떻게…….

어쨌건 메시아 길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빌어먹을 길드 마스터의 매칭을 성사시켜야만 한다.

“어쨌건 이제 선물은 됐으니 다음에 카페 갈 때 길드원 중 누구라도 데려가. 얼굴 공개 안 된 애들로.”

“싫어. 안 그래도 가게 안에서 다른 에스퍼 새끼들 보일 때마다 묻어 버리고 싶은데…….”

“생각 좀 해 봐라. 안 그래도 자주 오는 놈이 매번 혼자 와서 쳐다보는데 안 부담스럽고 배겨? 부담스럽다고 까이고 싶으면 계속 그러던가.”

“…….”

까인다는 말에 연우진이 흉흉한 눈으로 하도경을 응시했다.

“야, 네 얼굴 아는 새끼들 소문 안 돌게 막아 주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 안 그래도 너, 그 가이드한테 미움받았잖아?”

뭐든 김유정의 일에 한해서 하도경은 연우진에게 갑이었기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시선이 분산되면 좀 나을지도 모른다. 혼자 와서 쳐다보는 것보단 누구와 볼일이 있어서 왔다고 보이는 게 그나마 나을 테니까.

“오 빠르다. 마스터 벌써 눈 밖에 났어요?”

“어, 조사해 보니까 쟤가 김유정 전셋집 몇 번 부셨더라고. 연우진 이름만 나와도 치를 떨 만큼 싫어한대.”

이름을 속인 것도 알고 보니 연우진이란 인물이 그녀에게 미움받고 있어서란다.

무엇이 됐든지 한 번 속인 이상 정체가 탄로 나면 안 될 것 같아, 연우진의 신상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위장 신분증 등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하도경은 김유정이 왜 그렇게 연우진을 싫어하는지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근데 집을 부순 게 그렇게 문제가 되나? 자기 집도 아니고 전셋집이니 옮기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게이트나 던전, 범죄 문제로 인해 건물이 부서지는 것은 이 세상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으며, 애초에 둘 다 집을 자주 바꾸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재영은 달랐는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와…… 그건 마스터가 너무했네. 싫어할 만하죠. 나라에서 지원금 나와도 그거 얼마나 된다고. 솔직히 정신적 배상금도 얹어 줘야죠.”

“좋아하시는 건물로 사 드리면 안 되는 거야?”

“오케이, 그럼 전 용서할 듯. 마스터 이 기회에 제가 가이드로 전향하고 싶은데요.”

무슨 진로 변경처럼 바로 방향을 틀어 버리는 김재영에 하도경은 한숨을 내리쉬었다.

“됐고, 괜히 쟤한테 불붙이지 마. 저러다 진짜 대뜸 권리서 들고 찾아갈까 봐 두려우니까.”

“형, 건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른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건물부터 들이밀면 보통 미쳤다고 생각한다던데?”

“와, 정말요? 저라면 바로 청혼할 텐데.”

“미…… 야, 잠깐. 일 관련해서 할 말이 있는데 그거 듣고 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연우진을 하도경이 붙잡았다.

“바빠.”

빠르기 그지없는 대답에 미간을 찌푸린 하도경이 카페 가겠다고 일도 다 빼놓은 놈이 뭐가 바쁘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부터 수제 케이크 연습해야 해.”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잠시 침묵하던 하도경은 침착히 제 손가락을 반대쪽으로 꺾었다. 아픈 것을 보니 꿈은 아닌 듯했다. 아니면 끔찍한 환각이거나.

“도경 형, 이거 꿈 아니에요.”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김재영은 하도경에게 지금 이게 현실임을 짚어 주었다.

“만약 꿈이라면 제가 지금 직장 상사 둘이랑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것도 먹을 줄도 모르는 마스터가 수제 케이크를 만들겠다는 꿈을요.”

그러기엔 자신의 정신은 건강한 편이라며 김재영이 말을 덧붙였다.

* * *

나는 평소와 달리 이로운의 손이 아닌 뺨을 감싸고 가이딩을 했다. 접촉 면적이 넓어진 탓에 평소보다 가이딩이 들어가는 속도가 빨랐다.

에스퍼와 가이드 간의 매칭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에스퍼의 힘이 셀수록, 그리고 에스퍼의 상태에 따라.

고려할 변동 사항은 여럿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러하다.

어느 정도의 가이딩은 적당히 기분 좋은 정도였지만, 어느 정도 선을 넘어가면 감당할 수 없는 쾌락으로 다가온다.

나는 이로운의 양 뺨을 감쌌다. 그리고 평소보다 많은 양의 가이딩을 불어넣었다.

가이딩을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로운이 어찌할 바를 모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더운 숨을 내뱉었다.

“-뭔가, 이상해.”

“아, 미안. 오늘은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어느 정도 채우고 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어. 혹시 싫거나 어디 불편했어? 그렇다면 다음부터 조심할게.”

“괜찮아. 싫은 건 아니니까.”

이로운이 제 뺨을 감싼 내 손바닥에 뺨을 문질렀다. 예쁜 보라색을 담은 두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

“오히려…….”

이로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 채 끊겼다. 그리고는 본인도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굴렸다.

표정이 정말 모르겠다는 사람의 것이라 나는 허허 웃으며 이로운의 손등을 다독였다.

“곧 교육 기간도 끝나니까 마음이 좀 급해졌나 봐. 미안.”

“……끝나면, 이제 못 만나?”

“큰 이변이 없다면 센터 현장팀으로 복무를 택할 것 같으니까 지금처럼 종종 볼 수 있을걸?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보면 되지. 내가 일하는 카페 위치도 알고, 번호도 주고받았잖아?”

물론 이로운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탓에 휴대폰을 사는 것부터 시작하긴 했지만…….

설마 이제 스물에 돈도 많은 애가 휴대폰이 없을 줄이야.

하긴 나 말고 따로 대화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던데 지금까지 사적으로 연락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응.”

기쁜 듯 이로운의 고개가 위아래로 여러 번 흔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