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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52화 (52/119)

S급 자영업자

52화

주연우가 나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직접 고백받은 건 아니었고, 아직까진 내 일방적인 추측에 불과했다.

‘……괜한 고민한 것 같은데?’

아직은 이대로 더 상황을 두고 봐도 괜찮지 않나. 순식간에 머리가 식으며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래서 사람이 연애를 해 봐야 한다는 건가.

그냥 못 들은 거로 하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 짧은 사이 뭔가 머릿속에서 진척되었는지 강민지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 설마 사장님더러 누가 연애하재요? 와, 축하드려요! 저한테도 애인 누구인지 꼭 보여 주세요, 결혼하시면 청접장도 잊지 마시고요!”

-쾅.

그 순간, 무언가가 박살 난 듯한 굉음이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주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급하게 일어나다가 탁자에 무릎을 박은 모양인지, 주연우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케이크가 든 접시들을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접시에서 시선을 떼고 주연우를 바라보았다. 주연우는 놀란 사람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누나, 결혼해요?”

곧장 내가 있는 계산대로 걸어온 주연우가 물었다.

무슨 기자 회견도 아니고. 순식간에 계산대로 몰린 시선에 나는 입술만 달싹였다.

“그게-.”

그런 내 태도가 답답했는지 주연우가 미간을 좁히며 재차 물었다.

“……그 사람 많이 좋아해요?”

결혼? 그럴 사람 없다.

그전에 아무리 강민지의 목소리가 크다고는 해도, 주연우가 있는 자리까지 들렸다니 당황스러웠다.

나는 굉장히 수치스러운데 주연우의 얼굴은 초조해 보였다. 수려한 얼굴이 불안으로 물드는 걸 보고 있자니 일단 해명부터 하고 봐야 한다는 사명감이 치솟았다.

“아뇨, 결혼 안 하고. 그럴 사람도 없어요. 사귀는 사람도 없고요.”

“정말요?”

“네, 네. 거기까지 들릴 줄은 몰랐-.”

문득 디저트를 먹다 말고 이쪽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는 주연우의 지인이 눈에 들어왔다.

당황한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는 그에게 말했다.

“저희 좀 작게 대화해요. 다들 쳐다본다고요.”

“……네, 그런데 정말 결혼하는 거 아니죠?”

“그렇다니까요…….”

“그럼 혹시 내일 시간 있으세요? 만약 한가하시다면 저랑 어디 놀러 가실래요?”

“네, 어차피 카페 휴무일이라 한가…… 네?”

주연우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었다. 그가 조르듯 재차 물었다.

“그럼 시간 되시는 거죠?”

굳이 보지 않아도 옆에서 알바생 강민지가 소리 없이 감탄을 내지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 * *

그렇게 다음날 오후, 나는 난생처음으로 데이트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사장님…… 요즘 보는 드라마보다 직장이 더 재미있어요…….」

모든 상황을 지켜본 강민지는 그렇게 말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들은 주연우가 자리로 돌아간 이후에도 종종 내 쪽으로 눈길을 던지곤 했다.

그 와중에도 주연우의 지인은 소란이 끝나자마자 주연우에게 계산을 맡긴 채 진열대의 디저트를 몽땅 쓸어 갔고 말이다.

여러모로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놀러 가자는 권유를 당황해서 수락한 게 컸지만, 은연중 이김에 물어보고 싶었던 거나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없잖아 있었다.

아무리 계열이나 가진 능력에 따라 그릇 크기가 제각각이라곤 하지만, 그 정도로 등급과 맞지 않게 그릇의 크기가 크다면 몸에도 이상이 생길 게 분명했다.

사실 그 사람이 원하지 않는다면 웬만해선 비밀을 파헤치지 않는 게 맞지만, 이 부분은 주연우의 건강과도 직결되는 부분이기에 물어보고자 했다.

당장 맞는 가이드를 찾아볼 방법도 여의치 않다고 했고.

‘원래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아닌데…….’

아멜리아로 살면서 타인의 상처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가는 버릇이 생기긴 했어도 본래 성격 자체가 그리 감성적이진 않았다.

내가 나름대로 그은 선이 있어서 상대방이나 내가 넘을 것 같다 싶으면 반사적으로 멈추곤 했다.

사실 주연우의 집을 나갔을 때 그와의 인연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도움을 받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이어질 거라곤 생각 못 했고, 다른 세계에서 쌓았던 인연 또한 지금 내 곁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우연찮게 그와 다시 만났고, 끊어졌다고 생각한 인연이 다시 이어졌다.

물론 이것 또한 얼마 안 갈 수 있겠지만, 생소한 이 상황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이것도 어떤 의미론 호감인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서 이런 걱정까지 하는 걸 보면 주연우와 짧은 사이 많이 가까워진 것 같긴 했다.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 서서 옷차림을 점검했다.

슬랙스에 흰색 블라우스, 재킷. 이 정도면 깔끔해 보이겠지.

카페 앞에서 만나기로 해서 적당히 약속한 시간 5분 전쯤 나가니 이미 주연우가 그 앞에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주연우가 환히 미소 지었다. 조명이 없는 밖에서도 그의 얼굴은 화사하기 그지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곧바로 차 문을 열어 주는 그의 모습에 새삼스럽게 데이트라는 게 실감이 났다.

그런데 어째 이거 저번 자동차와는 색깔이 다른 것 같은데- 새로 뽑았나?

삐걱거리며 안전띠를 매고 있으려니 주연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예뻐요, 누나.”

“네?”

“아, 물론 평소에도 예쁘신데…… 그냥 한번 말하고 싶었어요.”

주연우가 눈을 내리깔았다. 옅은 색의 속눈썹이 뺨에 음영을 드리우고, 살짝 붉어진 귓가가 꽃물처럼 번졌다.

나는 그런 주연우를 멍하니 쳐다봤다. 솔직히 나보다 배는 예쁜 사람이 예쁘다고 하니 부끄럽다기보단 저거 진심으로 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동차 바퀴가 부드럽게 굴러갔다. 자동차가 거리를 주행하는 동안 내 머릿속을 채운 것은 단 하나였다.

‘지금 어디 가는 거지.’

생각해 보니 놀자고 말만 했지 어디 가자고는 말해 주지 않았다. 뒤늦게 물어보려던 찰나, 자동차가 멈춰 섰다.

“……?”

시선을 돌리자 창밖으로 어딘지 모를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 * *

강민지는 고민 끝에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사장님, 오늘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지금 눈앞에 뭐 보여요? 아름다운 그분?ㅎㅎ]

수신인은 제가 일하는 카페의 사장인 김유정이었다.

사실 어제 늦게 쿠아 잼 추가 주문이 들어와 오후 4시까지는 택배를 전부 보내야 했었는데, 그에 강민지는 자진해서 제가 하겠다고 나섰다.

이 일로 사장님의 데이트가 취소되게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강민지의 이전 알바는 최악이었다. 월급이 밀리는 것은 기본에 근무 날이 아님에도 당장 나오라고 연락해 대질 않나.

그렇게 꾸역꾸역 버티며 일했더니 결국 인원 감축을 해야겠다며 어느 날 갑작스레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런 상황에 비전조 게이트라는, 거의 무덤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만난 김유정은 좋은 사장님이었다.

얼핏 보면 눈매가 사납고 무표정해서 오해하기 쉽지만, 함께 일하며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면 신경 써 주고, 배려해 주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일하고 있는 가게도 잘 되어 가고, 디저트도 맛있고. 카페에 오는 단골손님들도 하나같이 뛰어난 외모들이라 눈이 행복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이곳에서 오래 일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장님이 가이드라 의무 복무가 시작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디로 가셨으려나? 왠지 내가 했던 데이트처럼 영화관 같은 덴 안 가실 것 같은데-.’

어제 질문했던 것으로 보아 김유정은 이런 일에 면역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상대인 남자도 평범치는 않아 보여, 둘의 데이트가 어떨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존잘님, 그러니까 주연우란 사람은 외모도 그렇지만 분위기부터가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김유정 앞에서만 표정이 다양했고, 그녀가 자리를 비우면 그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따뜻하다고 생각했던 색감은 온기를 잃은 채 퇴색했고, 지루함만이 그의 눈에 고였다.

그렇게 차이가 확연하니 처음 그를 노리던 다른 손님들도 이젠 관상용이라고 못 박은 것처럼 조용히 지켜보는 쪽으로 바뀐 것 같았다.

멀리서 보기만 해도 눈은 즐거웠으니 말이다.

“아.”

강민지는 일을 끝내고 소파에 누워 쉬다 문득 김유정에게 답장이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인해 보니 문자가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이었다.

[칼]

[보석]

[연막탄]

“……응?”

당황한 강민지는 조금 전 자신이 보낸 문자를 다시금 확인해 봤지만 제가 보낸 문자는 평범했다. 그냥 잘 놀다 오라고 하고 장난삼아 짧게 말을 덧붙인 게 전부였다.

‘난 그냥 지금 눈앞에 뭐가 보이냐고…….’

그리고 그에 대한 답장으로 김유정은 칼과 보석, 연막탄이라는 짤막한 단어만을 보냈다. 나열된 단어들을 보며 이게 뭔가 싶었다.

대체 어디 계신 거지. 혹시 지금 신고해야 하는 타이밍인 건가……?

추리 소설 광팬에 어려서부터 상상력이 풍부했던 강민지는 혹시 김유정이 납치되어서 문자를 이렇게밖에 보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장님, 혹시 어디예요? 단답 혹은 초성으로 보내 주세요.]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호텔]

“…….”

강민지는 고민했다.

지금 상황이 공포, 스릴러 쪽의 19금인지 아니면 다른 쪽의 19금인지 판단이 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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