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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53화 (53/119)

S급 자영업자

53화

* * *

원래 데이트라는 게 이런 걸까.

“이쪽 칼은 마비 독이 발라져 있어서 상대를 베면 몇 시간 동안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그걸로 하나.”

살면서 데이트라는 것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일단 이건 아닌 것 같았다.

“……하나 주세요.”

정장을 입은 이의 설명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던 주연우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더니 슬그머니 말을 높였다.

“주연우 씨.”

“네, 누나.”

“혹시 지금 저희가 왜 여기 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놀자고 하더니 쇼핑이 노는 건가. 하긴 사람에 따라 노는 방식은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나름대로 이해하며 그를 올려다보는데, 정작 주연우는 곤란하다는 듯 내 시선을 피했다.

“사실 누나가 좋아하실 것 같은 곳부터 데려가고 싶었는데. 제가 불안해서-.”

“네? 불안이요?”

“……호신용품은 받아 주시면 안 돼요? 먹을 게 아니더라도.”

주연우가 조심스럽게 내 옷소매를 붙들었다.

살짝 고개를 내리자, 내가 가볍게 팔을 흔들기만 해도 떨어져 나갈 정도로 미약하게 쥔 손가락이 보였다.

그것을 보며 나는 언제 내가 먹을 거 아니면 받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나 고민했다.

물론 보답이라며 내미는 것들이 음식들일 땐 대수롭지 않게 받긴 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었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눈에 보이게 행동했었나?

내가 고민하는 동안 이어진 침묵을 주연우는 다른 의미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사실…… 우연히 들었어요. 길드 소속 지인이 있는데 어느 날 S급 가이드가 나타났다면서 제게 알려 주더라고요.”

그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가이드 이름이 누나 이름과 똑같고, 현재 교육생이라고 전에 말씀하신 게 생각나서 지인에게 물어보니까 이번 기수에 그 이름은 한 명뿐이라고-.”

“그…… 네, 맞아요.”

“S급 가이드면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물론 고작 이런 거로 충분하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말을 마친 주연우가 가볍게 손짓하자 뒤쪽에 서 있던 정장 차림의 이가 다른 상자를 들고 왔다.

이번에는 무슨 보석처럼 빛나는 손바닥만 한 구슬이었는데, 직원의 말을 빌리자면 불발 없이 잘 터진다고 했다.

뭔 기능이 추가로 더 있다고 하지만, 요컨대 주기능은 연막탄이었다.

“……?”

나는 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데이트인 줄 알았는데 웬 무기상 같은 곳에 온 거? 아니면 주연우가 돈이 많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더 많은 것 같은 거?

혼란한 정신으로 강민지에게서 온 문자에 짤막하게 답변을 보냈다.

그리고는 거대한 유리 진열장 앞에 놓인 붉은색 소파에 앉아 고민하고 있으니 어느덧 내 뒤에 상자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언제 이렇게 쌓였지.

어느덧 내 키보다 높아진 상자 더미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흠칫 목을 뒤로 뺐다.

그리고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니 주연우가 소파 아래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드세요?”

팔걸이에 얼굴을 기댄 채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던 주연우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또 그때처럼 웃어 주실 거예요?”

“네? 그게 무슨-.”

“파란 장미를 드렸을 때는 웃어 주셨잖아요. 그런데 그 이후로 다른 꽃을 드려도 좋아하지 않으시고…….”

그 말에 떠오른 것은 파란 장미를 선물 받고 이틀이 지난 날이었다.

주연우는 일반 성인 둘이 안아도 품에 꽉 찰 법한 커다란 꽃다발을 가져오더니 환한 미소와 함께 내게 내밀었다.

이름도 모를 온갖 꽃들이 순식간에 시야를 가렸고, 생화 특유의 짙고 축축한 향이 카페 내부를 가득 채웠다.

‘내가 그때 뭐라고 했더라?’

일하는 도중이어서 상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척수 반사처럼 곧바로 필요 없다고 했던 것 같다.

파란 장미를 받았을 때 오랜만에 받아서 그런지 기분이 좋긴 했지만 저렇게 많이는 필요 없다.

더구나 이미 전날 센터 내부 꽃집에서 장식용 꽃을 사 온 뒤이기도 했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에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주연우가 다른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꽃은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다른 거로 준비해 봤어요. 생각해 보니까 전에도 누나가 기뻐했던 선물은-.”

“제가 웃는 건 왜요?”

나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주연우가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한순간에 마주친 시선에 나는 순간 당황해서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한숨을 푹 내리 쉬었다.

“……제 착각이라면 죄송한데, 연우 씨, 혹시 저 좋아하세요?”

살면서 내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충동적으로 말을 내뱉은 뒤 몰려오는 어색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눈을 굴렸다.

그러다 조용한 분위기에 다시 주연우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가 놀란 듯 멍하니 눈을 끔뻑이고 있는 게 보였다.

……뭐지? 설마 진짜 각성자 간의 표현법이었을 뿐인데 내가 대뜸 좋아하냐고 물어봐서 당황한 건가?

아니, 진짜 내 착각이라고? 내가 다른 세계에서 살다 와서 그래? 문화 차이 뭐, 그런 거?

의문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머릿속이 팽팽하게 돌아갔다.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구토 사건 때보다 더한 검은 역사를 쌓은 것일 수도 있다.

“전-.”

주연우의 입이 열리려는 순간이었다.

말보다 빠른 것은 행동이었다. 어떤 대답이든 어색해질 것 같아 나는 급히 손을 뻗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 하하…….”

갑자기 제 입을 막은 나에 주연우가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하더니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뭐가 되었든 내 손을 치울 생각은 없는 듯하여 나는 변명하듯 빠르게 입을 움직였다.

“아니, 아니에요. 그걸 물어보려고 했던 게 아니라…… 아, 그래!”

나는 천천히 주연우의 입에서 손을 뗐다.

멀어지는 내 손을 바라보던 주연우가 다시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곧 내가 던진 질문에 의해 다시 다물려졌다.

“연우 씨, 등급 진짜 하급 맞아요?”

“……등급이요?”

“네. 연우 씨를 가이딩 할 때 뭔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요.”

“제가, 이상한가요?”

“으음…….”

나는 뭐라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가이딩을 하다 보니 당신의 그릇 크기가 예상보다 큰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하기엔, 이게 일반적인 사례는 아닌 것 같았기에.

내 주의를 끌려는 듯 옷소매가 당겨졌다. 옷소매를 쥔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조금 불안한 낯을 한 주연우가 있었다.

“혹시 어디 아픈 건가요? 조금이라도 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 바로 말해 주세요. 이상하게 몸이 피곤하거나 무기력한 기분이 드나요? 아니면 두통이나, 불면증, 작열감은-.”

“저기, 잠깐-.”

“죄송해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전부 채우는 건 아니니까, 가이딩 단계가 낮으니까, 저는 정말 괜찮을 줄로만 알고-.”

“주연우 씨!”

나는 뭐에 짓눌리는 사람처럼 초조한 낯으로 말하는 주연우의 뺨을 덥석 두 손으로 감쌌다.

짝!

때리려고 한 것은 아닌데 생각보다 마찰음이 컸다.

미친, 부은 거 아니야? 놀란 내가 황급히 손을 치우는데, 멀어지는 내 손을 주연우가 붙잡았다.

“-아.”

무심결에 잡았는지 주연우가 내 눈치를 보듯 잡았던 손을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

“혹시, 잡고 있어도 될까요?”

곧 부서질 설탕 조각을 쥐듯 내 옷자락만을 간신히 쥔 손을 내려다보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센터 교육생이 되기 전엔 저게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주연우는 매번 내게 허락을 구하고 조심스럽게 잡아 왔으니까.

그러나 교육생이 되고, 여러 차례 실습을 해 오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에스퍼들의 대다수가 가이딩이 끝나도 손을 떼지 않았으며, 잡은 손길도 억셌다.

한 번은 에스퍼 쪽에서 멋대로 단계를 높이려고 한 적이 있었다. 물론 큰 문제는 없었다. 내가 교육생이었기 때문이다.

제어가 서툰 에스퍼면 처음부터 센터 직원 참여하에 진행했기에 신속하게 중단할 수 있었다.

“연우 씨, 왜 매번 내 옷을 잡는 거예요?”

그날 별일 없긴 했지만 좀 놀랐다.

지금껏 실습에는 손을 잡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교육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내 능력이 뛰어나 1단계로 충분했던 거지, 보통 가이딩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그 이상의 단계로 가는 경우도 많다고.

“손을 잡으면 되잖아요. 의도적으로 쏟아붓는 건 아니니 미미하겠지만 가이딩도 될 테고.”

가이딩은 에스퍼의 목숨줄이다. 살기 위해 에스퍼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가이딩을 받고자 가이드에게 손을 뻗는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멜리아 때도 살려 달라며 손을 뻗는 이들은 많았으니.

그렇다고 주연우가 내게 손을 뻗지 않는 건 또 아니었다.

그도 에스퍼인 데다 다른 에스퍼들보다도 항상 가이딩이 부족한 경우였기에, 가이드에 대한 집착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연우는 항상 내게 손을 뻗다가도 멈추고, 힘을 주려다가도 빼곤 했다.

“무서우실까 봐요.”

주연우가 나직히 대답했다.

그 대답에 나는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이전에 주연우를 거절했을 때와 비슷하게 속이 껄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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