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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56화 (56/119)

S급 자영업자

56화

두 손을 모으고 있던 탓에 정말 기도하는 독실한 신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계속 있어도 되나? 심각한 상태인 거 아니야?’

안색도 창백하고, 손도 차갑다. 이전에 폭주할 때 봤던 모습과 얼핏 비슷한 것도 같았지만, 호흡은 고르기만 했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되는 건 매한가지였다. 나는 잡고 있던 손의 힘을 풀며 말했다.

“놓아주세요.”

“…….”

잠시 말이 없던 주연우가 내 손을 놓아주었다. 누가 보면 호되게 혼이라도 난 사람처럼 축 처진 어깨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짚었다.

“식은땀은 안 나는데…….”

“……?”

“혹시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어요? 증상이라도 말해 봐요.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가이딩 쪽이라면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내 요구에 주연우는 가만히 눈을 끔뻑이기만 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사람처럼 한참 나를 쳐다보던 그가 물었다.

“화나신 거 아니에요?”

“제가요? 왜요?”

“억지로 붙잡으려고 해서…….”

“그게 왜요? 결과적으로 제가 놓으라니까 놓았잖아요.”

그렇게 대답하며 나는 주연우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보다 연우 씨,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이 대답은 들어야 할 것 같은데요. 등급 진짜 하급 맞아요?”

정말 하급인데 감당할 수 없이 큰 그릇 때문에 그의 상태가 안 좋은 걸까?

이전에 폭주 시 보았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던 탓인지 안 좋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 참 신기한 일이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에스퍼가 폭주 일으킨다고 하면 위험하다며 피해 다니기 바빴을 텐데, 나와 가까워졌단 이유만으로 이렇게 걱정되다니.

걱정이 가득한 내 얼굴에 주연우가 입술을 달싹였다. 무언가를 말하려는가 싶더니 이내 살짝 미간을 좁히며 답했다.

“네. 누나 말대로 그릇이 등급과 비교하면 맞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종종 측정기에 오류를 띄우곤 했거든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연우 씨는 어디 소속이세요? 길드? 아니면 역시 무소속?”

예전에는 이렇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내 선 밖의 사람이었고, 서로의 거리를 지키기 위해선 가능한 한 묻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무소속이에요. 지인 중엔 길드에 들어간 사람이 많지만, 저는 그런 거 불편해서.”

“아- 역시. 이해해요. 저도 그래서 자영업 하잖아요.”

정확히는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자영업이 생각보다 적성에 맞아서 하고 있는 거지만.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손을 뻗어 의미 없이 냅킨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역시 뭔가 숨기는 것 같은데. 어느 쪽이 거짓말이려나…….’

등급? 아니면 다른 거? 그렇다면 왜? 정말 서윤호 말대로 국정원 같은 거라도 되나?

머릿속으로 생각을 늘어놓다 다시금 입을 열었다.

“매칭률도 그렇고, 등급과 그릇의 차이가 그렇게 크면 특이 사례일 텐데. 그런 상황이면 설령 무소속이라고 해도 정기 검사 횟수가 타 각성자에 비해 많겠네요.”

“아, 네. 그런 편이에요.”

“검사 결과 건강에는 크게 문제없대요?”

“매칭률이 낮은 것과 가이딩이 불안정한 것만 빼면요.”

에스퍼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단점일 텐데도 주연우는 익숙하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나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연우 씨.”

“네?”

“지금 한 말, 정말이죠?”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나를 위하던 조심스럽기 그지없던 손길, 다정한 성품의 사람.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그는 그랬고, 그것에는 거짓이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주 만약, 만약에- 내가 반드시 누군가의 전담 가이드가 되어야만 한다면, 주연우의 전담 가이드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밖에 구할 사람이 없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은 몇 년간 나를 심적으로 짓눌러 온 것들이었으나 이번만큼은 꺼림칙하지 않게 느껴졌다.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무렵, 그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네.”

나는 그의 손에서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입가의 미소는 어느새 지워져 있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다정한 그의 거짓이 무엇이든,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 믿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사실 걱정했었거든요. 건강에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에요.”

이때만 해도 몰랐다.

그런 대화가 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만약’이 현실이 되어 내가 누군가의 전담 가이드를 맡게 될 줄은.

그것도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과 형태로 말이다.

* * *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주연우는 내 일상 풍경의 하나가 되어 갔다.

전에도 카페에 자주 들르긴 했지만 전보다 사소한 대화가 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그만큼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그가 최근에 다른 데로 이사하게 되었다는 것. 최근 친구의 건강 상태가 안 좋은 듯해 몹시 걱정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알고 보니 주연우가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 등 말이다.

사업을 하고 있다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거였다.

「사업가인데 왜 이렇게 한가해요?」

그도 그런 게 주연우가 카페를 찾는 빈도는 잦았고, 방문 일자에 규칙성도 없었다. 그렇다고 카페에 노트북이나 뭘 가져와 일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 질문에 주연우는 답했다.

「바지사장이라서요.」

화사한 미소와 함께 곁들여진 대답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예전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주연우는 가끔 엉뚱하거나 조금 엇나가는 구석이 있다.

물론 1년이 지난 지금도 비상식과 상식선을 명확히 구분 못 하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카페에 자주 오는 것과 별개로 주연우는 나와 친분이 있는 다른 단골 각성자인 조예나와 서윤호와는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게 조금 신기했다.

물론 최근에는 둘 다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지만.

어쨌거나 내가 운영하는 카페 ‘meli’는 쿠아 열매 디저트를 주력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유명세가 높아지고 있었다.

다른 카페에서도 쿠아 열매로 디저트를 만들어 보려는 듯했지만, 아직 그럴싸한 결과물이 없었기에 거의 독점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매출이 안정되자 나는 다른 불필요한 손실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판매 수량을 정했다.

유통기한이 비교적 긴 잼이나 청의 경우 예약을 받은 뒤 제조했고, 카페 시그니처 메뉴인 쿠아 파이는 최근 오픈하면 금세 완판되었기에 아예 일일 판매 개수를 정해 놓고 팔고 있었다.

“아니, 반 아포칼립스 세계인데 세금 신고는 왜 이렇게 복잡한 거야…….”

컨택 결정, 교육생 신분이 끝나기까지 고작 며칠 남았을 무렵, 나는 세금 신고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강민지는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점심인 샌드위치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든 채 손가락을 놀리던 강민지가 문득 뭐라도 떠오른 사람처럼 번쩍 고개를 들더니 나를 불렀다.

“사장님, 며칠 뒤면 클리어 기념일인데 그날 뭐 하실 거예요?”

“기절했다가 다음 날에 일어나려고.”

“정말요? 그날 축제라 먹을 것도 많고, 퍼레이드도 화려할 텐데 집에만 있으시게요?”

“축제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난…… 그 기념일 뒤부터가 고비야.”

며칠 뒤가 대격변 레드 게이트 클리어 기념일, 그리고 그 이튿날이 정식 복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길드에 들어가는 거면 서로 조율해서 복무일을 좀 변경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센터 현장팀으로 들어갈 거라, 정해진 일자를 맞춰야만 했다.

‘센터에 보고도 아직인데, 그건 또 언제 하지?’

지금껏 교육 도중에 말하면 혹시라도 피곤한 일이 생길까 싶어 보고를 미뤄 왔다.

혹시 모를 소란을 피하려는 것도 있고, 어쩌면 하나쯤은 길드 가입이 조건에 없는 계약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부 하나같이 복무 마침과 동시에 길드 가입이 약속된 계약서만을 보내 왔다.

그래서 한 번은 컨택 온 곳 중 한 군데에 길드 가입 항목을 삭제할 순 없겠냐고 물어보기도 했으나, 별 해괴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황당해하는 반응이 돌아와 그냥 입을 닫았다.

전체적으로 할 일이 태산이다. 세금 신고도 해야 하는데 잼 주문은 물밀듯이 밀려오고…….

복무 형태 보고도 본인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센터에 꼭 한 번은 꼭 들러야 했다.

그러고 보니 교육도 끝났는데 이로운한테 아직 인사도 못 했구나. 겸사겸사 해치우는 게 나을지도. 나태함이 불러온 내 업보였다.

아무래도 상황 봐서 클리어 기념일에는 센터에 들러야 할 것 같다.

다행히 공휴일에도 위기 상황을 대비해 문을 닫지 않는지라 가능한 때는 그때밖에 없었다.

생각이 많아 그런지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생각했다.

‘아직은 괜찮아. 이대로만 가면…….’

S급 가이드라는 원치 않은 타이틀이 생겨 버렸지만, S급 에스퍼가 아닌 게 어딘가.

같은 등급이라도 에스퍼였다면 위험성 때문에 특별 감시 대상이 될 테고, 특정 조직에 속하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견제받고 살 거다.

지금 나라에 S급 가이드가 나뿐이라서 그 난리인 거잖아.

평균 이상으로 나왔다던 매칭률이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 큰 문제는 아닐 거라며 애써 마음 한구석으로 미뤄 두고 있다.

S급이란 등급 탓에 크게 부각된 것뿐이지, 그보다 낮은 등급 중에서도 다양한 에스퍼와 일정 이상의 매칭률이 나오는 가이드들은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만이겠지. 설마 전부 그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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