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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60화 (60/119)

S급 자영업자

60화

구역별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떤 구역은 발전되어 있으나, 조금만 넘어가도 사람이 살기 힘든 황폐한 구역이 있었으니까.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달라진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근간이 어떻든 세상은 보기 좋게 바뀌었다.

버려지는 아이들은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줄었으며, 안전지대가 늘어나 사람들의 불안도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점점 익숙해져 과거의 두려움을 잊고, 빠르게 이루어 낸 눈앞의 평화만을 믿었다.

그러는 사이 각성자라는 직위는 ‘영웅’으로서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동경시되었다.

연예인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각성자들이 서서히 늘어났으며, 민간인에게 일체 통제되었던 정보들도 한둘씩 풀려 갔다.

실상이 어떻든 겉만 보았을 때 그들은 세계에 필요한 존재였으며, 쉽사리 손 뻗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였을 테니.

그렇게 연우진이 13살이 되었을 무렵, 도이현은 자신의 가이드를 만났다.

S급 가이드, 차해연. 유순한 인상의 그녀는 가진 등급에 비해 에스퍼들과의 매칭률이 그리 높지 않은 가이드였다.

다만, 한 명. 도이현과의 매칭률만큼은 남달랐다.

그녀와 당시 A급 에스퍼였던 도이현과의 매칭률은 95%.

각인이 가능한 퍼센트인 80을 넘기고도 남을, 세계를 통틀어도 이례적인 매칭률이었다.

그렇게 일이 년 사이 그녀는 도이현의 사상과 이념, 그리고 신념을 한순간에 뒤엎도록 만들었다.

「그 애는 내게 있어 신이나 다름없어. 그 애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뿐더러, 만약 그 애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라도 이 일을 그만둘 거야.」

그 가이드를 만난 뒤로 도이현은 변했다.

그의 옳고 그름은 그녀를 기준으로 정해졌으며, 불필요한 희생은 논하지도 않았던 이가 어느 순간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피로 손을 적셨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이가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며 연우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당시 연우진에게 있어 가이딩은 괴롭기만 할 뿐인 강제 연명 행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게이트를 닫고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에스퍼가 필요한 것처럼, 그런 에스퍼의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게 가이드다.

매칭률의 차이는 있다고 하나, 극악의 매칭률을 가진 연우진에겐 도이현의 변화가 와닿지 않았다.

그 당시 연우진에게 있어 가이드는 언제라도 대체할 수 있는 존재이며, 반드시 누군가여야만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 연우진과 달리 도이현의 가이드를 향한 태도는 맹목적이고, 집착적이었다.

「우진아, 나 좀 도와줘. 그녀를 다시 내 곁으로 데려올 거야.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어. 그렇지?」

도이현의 가이드는 그를 사랑했고, 그 또한 가이드를 사랑했으나 그 끝은 처참했다.

한순간의 실수로 도이현은 자신의 가이드를 잃었고, 그로 인해 미쳐 버려 폭주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막는 다른 각성자들을 모조리 죽이고자 했다. 그 속에는 연우진 또한 있었다.

도이현은 연우진에게 있어 거의 친형제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도이현은 저보다 어린 연우진을 제 친동생만큼이나 챙겼고, 많은 것을 가르치고자 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연우진이 사회에 섞이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제게 손쉬웠던 죄악보다 지겹고 어려웠던 대의를 택하게 된 것은 오래전의 도이현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더욱, 그날의 결말은 그에게도 달갑지 않았다.

「아니. 형의 가이드는 이미 죽었어.」

제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이를 끝내 제 손으로 죽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 * *

언제부터였을까.

그런 그가 아메리카노 대신 자몽 허니 블랙 티라는 음료를 습관처럼 마시게 되었다.

원래 연우진은 무언가를 먹는 행위 자체를 즐기지 않았다.

가이딩제를 오래 복용하면 부작용으로 미각에 문제가 생겨 시거나 단 것을 찾는다고 하는데 그 때문일까.

가이딩제를 어릴 때부터 복용한 탓인지 그는 연명 목적 외에는 음식물을 따로 섭취하지 않았었다.

‘달아…….’

자몽과 꿀이 들어가서 그런지 음료는 달고 셨다. 예전이었다면 생각조차 못 했을 것들을 접하게 된 계기는 전부 김유정이었다.

처음으로 권해 주었을 때의 따뜻한 온기가 마음에 들어서 관심도 없던 음료를 마시게 되었다.

본인은 먹지 않을 요리를 시작한 것도 다음에는 먹고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였고, 멋대로 굴지 않고 얌전한 척 몸을 숙이고 타인과 대화를 시작한 것도 예의 바른 사람이 좋다는 말에서였다.

이쯤 되니 알 수 있었다. 과거 도이현처럼 저 또한 비슷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보고 싶다.’

매일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정말 원하는 만큼 찾아가면 부담을 느낄까 멋대로 행동하기도 어려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다가─

겨우 좁힌 거리다. 허무하게 초를 칠 수는 없었다.

김유정은 자신이 가이드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예전 정식 가이드가 될 생각이 없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메시아 측의 조건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보면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계약에 길드 가입 조건을 없앤다면 들어와 줬을까? 아니, 그조차도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연우진은 김유정이 가이드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 외에도, 그녀가 ‘연우진’을 싫어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조건을 바꿔 내밀었는데도, 만약에 그녀가 메시아를 택하지 않았을 경우 미움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까 두려웠다.

복무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당장 조급하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연우진은 겨우 발견한 자신의 가이드를 다른 누군가에게 내어 줄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설령 김유정이 센터를 택하더라도 상관없다. 언제든 김유정을 빼 올 자신이 있었으니까.

김유정만 그를 선택해 주기만 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해결할 수 있는 것에 속했다.

연우진은 원했다. 자신이 그녀에게 있어 최고의 선택이 되기를. 가장 쓸모있는 존재로서 필요로 되기를. 그리고 그럴 자신 역시 있었다.

연우진은 그녀에게 뭐든 되고 싶었다. 가족이든 친구든, 그녀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되고 싶었고, 그녀가 자신을 필요하다고 여겨 주길 바랐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녀의 방패가 되든 아무래도 좋았다. 그에게 김유정이 필요한 것처럼 그녀가 자신을 필요로만 해 준다면.

김유정은 연우진을 싫어하지만, 주연우는 마음에 들어 했다.

그녀는 ‘주연우’에게는 다정하게 굴었으며, 스스럼없이 선 안으로 들여 주었다.

연우진은 겨우 좁힌 이 거리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겁을 냈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을 뒤로 미뤘다.

조금만 더. 적어도 그녀가 자신을 쉽게 내칠 수 없게 될 때. 버릴 수 없게 될 때.

진실을 말하는 것은 그때 가서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중에는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을 거라고.

그녀가 그로 인해 손해 본 것들을 전부 치르기만 한다면 의외로 쉽게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야말로 상대방이 느낄 배신감을 생각하지 못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한 번도 타인의 감정을 헤아려 볼 만큼 깊게 엮인 적이 없었기에 연우진은 진실을 알게 된 김유정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미움받기 싫다는 두려움, 지금의 관계를 더 누리고 싶다는 욕심이 불러온 외면.

그렇게 ‘주연우’로서의 거짓이 쌓여 갔다.

그러나.

「설명? 아니, 기만이겠지. 당분간 그쪽 얼굴 볼 일 없길 바랍니다. 제발, 부탁이니까.」

거짓의 대가는 처참했다.

* * *

까득.

마물에게 기생하던 식물 뿌리가 마물의 몸을 뚫고 빠져나왔다.

조예나가 작게 손짓하자 식물이 꿈틀거리며 꽃을 피워 냈다.

꽃이 만개하며 흘러나온 씨앗을 손에 쥐자 동시에 훈련이 끝났음을 알리는 짧은 기계음이 들렸다.

“역시! 우리 예나가 최고라니까. 이게 어딜 봐서 B급임? A급이지.”

훈련장 2층에서 바로 뛰어내린 이는 바로 이온 길드의 길마 권시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정신없이 보석을 박아 넣은 담뱃대를 꼬나문 채 나타난 제 길드 마스터에 조예나는 얌전히 눈을 깜빡였다.

“길마님.”

“왜?”

“그거 독 안개 아니에요?”

“아, 오늘은 해독약! 괜찮아, 괜찮아~ 안 죽음.”

“길마님은 안 죽어도 전 죽어요.”

“우리 예나는 식물에서 독 추출하는 법도 배우고 있는데 독을 무서워하면 안 되지. 물론 그 점도 귀엽긴 함.”

아직 어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권시현은 조예나를 유달리 예뻐했다. 그러니 얼마 안 된 신입을 실전 연습이라는 이유로 그런 대형 게이트에도 데려갔던 것일 터다.

그날 그 게이트 앞에서 조예나는 메시아의 길마와 부길마를 봤다.

부길마는 보라색 머리에 화려한 액세서리를 매단 살짝 권시현이 생각나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 유명한 메시아의 길드 마스터는…….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응? 뭘?”

조예나는 고개를 들어 제 눈앞의 이를 살폈다.

가끔 가다 제 전담 가이드를 향해 사족을 못 쓰는 모습을 보면 나는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겠다 하고 다짐하게끔 하는 길마지만, 어찌 되었든 그 연우진과 마찬가지로 대격변 때의 영웅 중 하나였다.

「내 알 바 아니지.」

「네가 그럼 그렇지. 나도 하도경한테 물어본 거임. 하도경이 메시아 찐 길마인 거 누가 모른다고.」

「진짜 은퇴할까…….」

조예나는 그날 대형 게이트 앞에서 봤던 연우진을 떠올렸다.

악명부터 찬사까지. 베일에 싸인 소문의 주인공은 생각보다 멀끔한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메시아 길마는 어떤 사람이에요?”

그 물음에 생글생글 잘만 웃던 권시현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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