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66화
수갑을 단 두 팔을 팽팽하게 벌린 채 벽에 바짝 붙었다.
김재영은 그런 수갑 사이를 엮고 있는 체인을 한 번에 쏘았다.
탕. 거센 반동이 일며 체인이 끊어졌다. 소음기를 장착한 탓에 총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윽.”
반동 탓에 손목이 얼얼하다 못해 쓰라렸다. 아직 손목에 쇳덩이가 팔찌처럼 남아 있어 거슬리기도 했다.
상처가 난 손목에 계속해서 쇠 특유의 차갑고 딱딱한 게 닿으니 괴로웠다.
“차라리 밧줄이었다면 나았을 텐데…….”
나도 모르게 한 중얼거림에 김재영이 수갑보다 밧줄 쪽이 좋냐고 물었다.
무슨 호불호를 묻는듯한 말투에 문득 예전에 연우진의 손목을 케이블로 묶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 상사에 그 부하라고. 왜 수갑을 취향처럼 물어보는 건데.
“……밧줄이라면 제가 풀 수 있거든요. 아, 심하게 복잡하지 않은 매듭이라는 가정하에요. 정 뭐 하면 칼로 자를 수도 있고?”
“그런 가이드는 처음 보는데, 역시 서바이벌 수업받으셨죠.”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어색하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어쨌든 걱정했던 것에 비해 좋은 결과였다.
그런 식으로 말해서 사격을 못 하는 줄 알았는데, 농담이었던 모양이다. 총구를 겨누자마자 주저 없이 발포해 바로 사슬을 맞췄으니.
“어쨌든 고마워요. 말한 거에 비해 사격 솜씨가 좋으시던데요.”
내 감사 인사에 김재영 또한 답했다.
“저도 기쁘네요. 사실 목표물을 맞힌 건 이번이 두 번째로 성공한 거라서요.”
나는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즐거워서 짓는 미소는 아니었다.
“혹시 저를 죽일 생각이셨나요?”
“각도 상 총알이 튄다고 해도 어차피 제게 튀었을 텐데요, 뭘. 아, 만약에 손에 맞아 구멍이 뚫리셨어도 제가 바로 고쳐 드렸을 테니 무사하셨을 거예요.”
“보통 손에 바람구멍이 생긴 걸 무사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데요.”
“구멍을 메워 드리는 사후 관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객님. 마스터의 가이드님이시니까 특별히 무료로 해 드릴 수 있어요. 어차피 마스터한테 받아 내면 되거든요.”
“…….”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게 내 심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혹시 여분의 총이 있으면 빌려 달라는 내 말에 김재영이 주머니에서 비슷하게 생긴 총을 하나 더 꺼내 넘겼다.
“저격 가능하세요?”
“간단한 거라면요.”
생물을 쏠 수 있냐는 물음에 나는 움직임이 크지 않다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돌려주었다.
그에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김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우리는 경매 상품이 보관된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감시 카메라를 최대한 피하고자 주로 귀빈실 쪽 복도로 이동했다.
다행히도 목적지가 이쪽과 이어져 있다더라.
김재영이 말하길 경매 상품 중에서 순간 이동 아이템이 몇 개 있던데 일단 그걸 가지러 가 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생물인 상품이나 다른 값비싼 아이템과 달리 중하급 상품 쪽에 놓여 있는데, 제 고용주가 관리하고 있어서 비교적 뚫기 쉬울 거라고.
“보통 마물 판매가 우선이라 일회용 아이템 같은 건 아직 그곳에 있을 거예요. 그리 중요한 상품도 아니라 경비도 비교적 허술할 테고.”
“뒤늦게 경매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상당히 잘 알고 있네요?”
“다른 경매라면 가 봐서요. 세상에 불법 단체가 여기밖에 없을 리가 없잖아요. 아, 물론 불법 말고도 있고.”
나는 지금 그를 따라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달리던 도중 갑작스레 나타난 이에 나는 곧바로 총을 겨누었다.
탕!
조금 전만 해도 달리던 도중 경비가 나타나면 내가 먼저 총을 쏘고, 김재영이 가까이 다가가 확인 사살을 하는 식이었다.
무자비한 대처에 만류하자,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적이 살아 있으면 들킬 확률도 더 높고, 어설프게 살려 두었다 반격하면 위험하니 죽이는 편이 깔끔하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상대를 봐주는 것은 강자일 때나 할 수 있는 거였다.
나나 김재영이나 남을 봐줄 만큼 무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잘못하면 내가 죽을 판에 적의 목숨까지 신경 써 줄 수는 없었으니까.
탕! 탕!
「커억!」
「아악!!」
그래서 나는 죽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더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며, 침착히 두 다리를 쏘아 상대가 거동할 수 없어지면 바로 김재영을 끌고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는 정도로 타협했을 뿐이다.
김재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러다 과다 출혈로 죽으면 결국 결과는 똑같지 않나요?」
「당사자의 운에 달렸겠죠. 달리기나 해요. 어차피 이 난리를 치는 이상, 들키게 되어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비가 전부 경매 홀로 몰린 건지 마주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거다.
간혹 총알이 날아오면 김재영은 내 앞을 가로막았는데, 그때마다 총탄에 꿰뚫렸던 그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튀는 피와 타인의 몸에 뚫린 구멍에 굳은 얼굴로 방어막 아이템을 쓰면 되니 그럴 필요 없다고 하자, 김재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5분가량 유지되는 거죠? 아껴 뒀다 진짜 위험할 때 쓰세요. 아, 가이딩 좀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능력 소모가 커서.」
「……당연하죠.」
「가이딩은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들키면 여기서 죽는 게 아니라 마스터한테 죽을걸요. 그건 그렇고 다리 잘 맞추시네요. 혹시 카페 사장 전에 저격수 하셨어요?」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느긋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총성이 반복되고, 눈앞이 붉어지고. 그런 걸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니 빠르게 뛰던 심장이 점점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그간 잊고 있던 익숙함이 덧씌워지며 신체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나는 그가 한 말을 되짚어 보았다.
값비싼 아이템과 달리 비교적 허술한 곳에 있을 거라니.
“순간 이동 아이템이면 귀하지 않아요?”
“아, 그것도 거리에 따라 달라요. 순간 이동 아이템은 만들기도 힘들어서 기본가가 비싼데 그런 것치곤 가성비가 그리 좋진 않아서.”
김재영이 뻐근한 목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보통 각성자들이 구매하다 보니 게이트 안에서 쓸 수 있냐 없냐에 따라 가격 천차만별이에요. 그리고 솔직히 불량품도 많아서 상급 아니면 안전성 없어요. 그래도 보니까 운 좋게 상급으로 보이는 거 하나 끼워져 있더라고요. 그거 훔칩시다.”
“고용주가 관리하고 있어서 비교적 쉬울 거란 말은?”
“아, 애초에 제 알바가 고용주에게 중요한 사람 하나 살리는 거였거든요.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이동 때밖에 시간이 없다며 이 배로 저를 불렀는데, 설마 이런 곳일 줄은 몰랐죠.”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일단 대강 이해는 했다.
이곳은 ‘새끼양’인지 뭔지 하는 조직이 연 경매이며 지금 바다 위에서 다양한 참가자들이 참가했다는 것. 그리고 이곳은 각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라 거.
요약한 게 아니라 정말 들은 건 이게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그냥 어지간히 답 없는 일에 휘말렸구나 하고 넘겼다.
자세한 사정 따위 알아봐야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 제가 돈을 아직 반밖에 못 받아서요. 그래서 반만 살려 놓았거든요.”
한참을 달리던 그가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러니까 살리고 싶으면 순간 이동 아이템 하나 정도는 그냥 넘겨주지 않을까요? 그 김에 마저 나머지 돈도 받고.”
그러니까 고용주를 협박해서 아이템을 얻어 내겠다는 소리였다.
나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재영 씨……,”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리고 엄지를 세우며 말했다.
“잘했어요. 선견지명이었네요.”
처음으로 김재영이 믿음직하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희망이 피어올랐다.
* * *
그러나 믿음과 희망은 10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보관실에 도착했을 무렵,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제압했다.
“-!”
긴 복도를 달려오는 동안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에 나는 크게 놀랐다.
그건 김재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곧바로 나타난 다른 이가 그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내가 찼던 수갑과는 다르게 복잡한 형태인 게 에스퍼 전용 수갑인 것 같았다.
나를 잡은 건 순간 이동 능력을 가진 에스퍼였다.
잠시 멍하니 수갑이 채워진 손을 흔들던 김재영이 우리가 지나온 쪽의 통로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아, 맞다……. 귀빈실 구역 밖 감시 카메라는 우선순위로 돌아간다고 했지.”
아니, 이 사람아 그걸 지금 기억하면 어떡해.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팔이 잡힌 터라 한탄하고 싶어도 힘들었다.
‘……그래, 내 잘못도 있긴 하지.’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귀빈실이 있는 구역이 전부였다.
그곳을 빠져나온 뒤부터 주의해야 했는데, 은연중 당연히 여기도 없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언제 적이 나타날까에 정신이 쏠려 있던 것도 있고.
뭐가 되었든 지금껏 나타난 가드들은 대부분이 비각성자들이었다.
“웃기네. 고작 가이드와 힐러 하나가 그런 피해를 냈다고?”
나를 붙잡은 에스퍼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을 내뱉은 순간, 나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는데 뼈가 부러질 것 같은 악력이었다.
‘미친…….’
나는 이를 악문 채 고통을 억눌렀다.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가이딩 조절에 실패하면 의도적으로 낮춘 가이딩을 들켜 더한 취급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 상황에서 적과 높은 매칭률이 나와도 곤란했고, 혹시라도 등급을 들키게 되면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뭐든 하급보단 상급이 더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을 테니까.
김재영을 잡은 에스퍼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어이, 상품에 흠집 내지 마. 가이드는 명령대로 바로 그쪽으로 데려가.”
“알았다고.”
어디로?
의문을 가질 새는 없었다. 곧바로 멀미라도 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더니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으니까.
그곳은 거대한 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