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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67화 (67/119)

S급 자영업자

67화

─와아아아!

함성이 들렸다.

화려한 조명 속에서 위아래로 가득한 군중들이 눈에 띄었다.

관중석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다들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무대 위에 놓여 있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방금의 영상은 잘 보셨는지요? 무려 영상 속 총격전을 벌인 가이드입니다!”

마이크 너머 목소리가 홀 안을 울렸다.

같은 무대 위, 거대한 몸집의 남자가 멍하니 초대객들을 응시하는 나를 잡아끌었다.

영상.

나는 급히 고개를 꺾어 무대 쪽을 바라보았다. 벽 위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에는 조금 전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정확히는 귀빈실이 있는 구역을 벗어난 뒤 카메라가 작동하는 구역에서 벌어진 풍경이었다.

마치 즐거운 연극을 관람이라도 한 듯 군중들이 환호했다. 감정조차 읽을 수 없는 수많은 가면이 꺼림칙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 말고도 무대에는 몇몇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다.

하나같이 내가 조금 전에 찼던 수갑과 같은 것을 찬 채로, 표정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저항했는지 얼굴이 엉망이 된 이도 보였다.

가이드들을 모아 놓은 건가? 급히 살펴보았으나, 그들 중 정연제는 없었다.

“성별은 여자. 보셨던 대로 저항이 심한 편이며, 무기를 다룰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당연하지만 타인의 구경거리가 된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어찌나 강한 힘으로 붙잡고 있는지 잡힌 팔이 부러질 것 같았다.

내 수갑은 조금 전 김재영이 연결 고리를 부순 그대로, 양 손목이 자유로워진 상태였다.

하지만 사회자는 나를 다시 묶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 팔을 붙잡고, 무대에 세워 두는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사회자의 힘은 억셌고, 조금 전부터 힘을 주고 있으나 잡힌 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회자의 귀에는 에스퍼들이 자주 사용하곤 하는 제어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능력도 없는 가이드 따위 손쉽게 제압하고 휘두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김유정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후회되었다.

아멜리아였다면, 아니, 정확히는 아멜리아의 힘이 여전히 내게 있었다면 지금 내 팔을 잡은 놈을 무릎 꿇릴 수 있었을 텐데.

마치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나 가축을 보는 것처럼 나를 내려다보는 저 사회자의 무릎을.

“그럼 어디 다시 한번 솜씨를 봐 볼까요?”

한참 사회자를 노려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무언가를 들고 올라왔다.

그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고, 사회자는 그 총을 받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마치 묘기를 부리는 짐승에게 장난감을 쥐여 주듯 말이다.

강제로 쥐어진 총은 김재영에게 받았던 것보다 무거웠다.

“자, 쏴 봐.”

사회자가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댄 채 속삭였다.

곧이어 가면 대신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남자 하나가 무대 저편에 섰다. 나와는 멀리 떨어진 위치였다.

남자의 얼굴은 상품이랍시고 올라온 인간들보다 엉망이었고, 수없이 보았던 가드들과 같은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우두커니 서서 떨고 있는 그의 머리 위로 정교하게 조각된 크리스탈 조각품이 올려졌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조각품은 귀여운 카나리아였다.

옷차림으로 보아 남자 또한 가드들 중 한 명이었던 것 같은데, 그는 과녁으로 전락해 있었다.

내부 분열? 배신? 이유가 될 법한 흔한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굴려 보다 차갑고 딱딱한 손안의 물건에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꽈악. 총신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검지를 방아쇠에 걸고, 총구를 정면이 아닌 옆으로 돌려 목표물을 향해 조준했다.

목표물은 과녁이 아닌 사회자의 머리였다. 총구를 갖다 대는 것과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탕!

총구가 불을 뿜고, 목표물을 맞힌 총알은 튕겨 나가 바닥에 처박혔다.

총알이 닿았던 곳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람 피부가 아니라 쇠에 부딪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체 조작? 아니면 신체 강화?’

뭐가 되었든 저 에스퍼에겐 총이 안 통할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욕설을 지껄이고 싶었으나 곧바로 마주친 사회자의 시선에 입이 절로 다물렸다. 목 안이 바짝 말라 왔다.

그의 이마는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입꼬리는 비틀린 채 올라가 있었다. 마냥 유쾌한 기분은 아닌 모양이다.

사회자가 속삭였다.

“좋게 가자. 그래 봤자, 가이드잖아? 가이드답게 굴자. 반항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 얼굴에 조금 흠집이 날지도 모르지. 그쪽 탓에 우리 쪽이 피해를 보았으니 몸값이라도 올려서 배상해 줘야 하지 않겠어?”

“어디에서 개가 짖나.”

“이거 겁대가리가 없네……. 아니면 정말 죽고 싶은 건가? 이봐,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그쪽이 중요한 상품도 아니고 이벤트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바꾸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까.”

그냥 나를 죽여도 진행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협박이었다.

그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 내가 했던 생각이 떠오른 탓이었다.

지금의 가게를 차리기 전 했던 카페 알바에서 나는 ‘에스퍼의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가이드’라는 다른 알바생의 말에 부정했다.

두 각성자 관계에서 무력이 없는 가이드는 결국 관계에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금 저놈이 하는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그런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이로운을 만나고서였다.

가이딩을 두려워하는 에스퍼. 가이드 앞에서 떨고 있는 이로운의 모습은 두 관계에서 에스퍼 쪽이 강자라는 인식을 흐리게끔 했다.

……아니 어쩌면 조금 더, 조금 더 전부터 바뀌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주연우. 그 사람의 고통을 내 손으로 지워 냈을 때부터. 손에 무언가가 쥐어진 기분이었으니까.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납치한 새끼한테 배상?”

사람은 누구나 다르고 그건 각성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간에서는 에스퍼와 가이드를 흔히 창작물에 빗대 가며 ‘운명’이란 달짝지근한 이름을 붙이기도 했고, 실제로 그렇게 가이드를 받아들이는 에스퍼들 또한 적지 않았다.

가이드를 언제 깨질지 모르는 설탕처럼 취급하며 조심스럽게 대하고, 지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에스퍼들 말이다.

하지만 그 반대 역시 존재했다.

가이드를 오로지 자신을 위한 휴대용 충전기로 보고, 가진 힘을 과신하며, 자신과 다르게 약자이니 함부로 다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본능에 그대로 몸을 맡긴 에스퍼들이었다.

다시 총을 쥐라는 듯 관중석에서 재촉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가 결국 무엇을 택할지 안다는 듯 사회자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죽고 싶지 않으면 따르겠지. 총도 안 통하는 포식자 앞에서 피식자가 무엇을 하겠다고.

훤히 드러난 오만에 나는 쥐고 있던 총을 놓고 손을 뻗어 사회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셔츠 아래 맨살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덜그럭. 총이 바닥에 떨어지며 조금 둔탁한 소리를 냈다.

모든 것은 짧은 사이 일어났다.

그는 제 손목을 붙잡은 나를 막지 않았다. 당연했다. 가이딩 외에 가이드가 손을 잡아 무엇을 하겠다고.

심지어 그는 신체에 특화된 이능력을 가진 에스퍼였다. 그에게 나는 위험 요소가 되지 못했다.

나는 맞닿은 신체를 통해 가이딩을 세게 불어넣었다. 그가 이질감을 느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하기 전에 그가 이상함을 느끼고 나를 떨쳐 내 버린다면 모든 것이 헛수고로 돌아갔다.

애초에 나는 가이딩 능력치가 높은 S급 가이드였다. 매칭률 또한 상위에 머물렀다.

그런 내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가이딩을 쏟아붓자 가면 속 사회자의 눈에 집착과 탐욕이 어렸다. 금방이라도 나를 옭아맬 듯, 내 팔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손바닥 뒤집듯 바뀐 태도가 그저 우스웠다.

가이딩 하나에 휘둘리는 것을 절대적인 강자라고 하던가? 이쪽은 무력이 없으니 무조건 약자가 되어야 하고?

나는 미소와 함께 속삭였다. 가까이 선 사회자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가이드가 가이딩을 회수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조금 오래전의 이야기다.

아멜리아에서 김유정으로 돌아와 막 각성자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내가 가이드로 발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무렵.

내가 아는 에스퍼라고는 친구 한세영의 썸남인 양현우밖에 없었고, 천성이 선량한 그는 힘을 알아보고 싶다는 내 말에 기꺼이 나를 도왔다.

당시 가이드로서 살 의향은 없었지만 최소한 어떤 힘이고,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 한 부탁이었다.

그로 인해 내가 가이딩을 일반적인 에스퍼는 알기 힘들 정도로 낮출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말이다.

“매칭률이- 씹.”

혼란과 욕망으로 일렁거리는 눈으로 사회자가 내게 손을 뻗었다. 그의 눈은 가이딩에 홀려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러한 실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이드임을 알게 되고 얼마 되지 않은 무렵, 아멜리아일 때의 능력처럼 사용해 봤다.

에스퍼에게 가이딩을 해 줄 수 있는 거라면 그걸 다시 가져오는 것 또한 되지 않을까 하고.

나로서는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었다.

아멜리아의 능력은 생명력을 빼앗는 힘과 그 빼앗은 생명력을 다른 생명에게 나눠 주는 힘이었으니까.

“에스퍼는 가이딩이 없으면 안 되잖아? 그렇지?”

그날 나는 아멜리아의 생명력을 빼앗는 힘을 쓸 때처럼 비슷하게 능력을 써 보고자 했다.

능력 사용이나 조절 방식이 비슷하다곤 하나, 똑같은 것은 아니었기에 어려웠다. 머지않아 양현우의 파장이 흔들리고, 이질적인 힘이 느껴졌다.

파장이 일그러지고, 강제로 힘이 주입되었다. 혈액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뜨겁고 괴로웠다.

그것은 양현우 또한 마찬가지였고, 서로 몸 상태가 악화되었다.

나는 그 일을 묻었고, 다신 그런 방식으로 힘을 쓰지 않았다. 정확한 건 모르나 잘못된 방식이기에 해를 끼치는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찰나라고 하나 에스퍼에게 가이딩을 빼앗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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