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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68화 (68/119)

S급 자영업자

68화

“커억-.”

나는 사회자의 가이딩을 빠르게 거두었다.

울컥, 독을 삼키는 것처럼 속이 뜨겁게 끓어올랐다. 그럼에도 사회자를 붙잡고 있는 손은 놓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일단 중단시켜 봐!”

이상함을 느낀 가드들이 무대 쪽으로 다가왔다. 관객 또한 이 상황이 단순한 이벤트의 하나인지 실제인지 헷갈리는 듯 웅성거렸다.

어느덧 열기는 식어 있었다. 구경거리는 나에 이어 내 손에 잡힌 남자에게로 옮겨졌다.

쿵. 내 손을 떨쳐 낼 여유조차 없는 듯한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아악!!”

폭주 증상이 빠르게 번졌다.

내부에 있어야 할 힘이 강제로 빠져나와 거칠게 일렁이고, 눈가로 굵게 선 핏줄이 홍채로 번져 터졌다.

하얗던 홍채에 붉은 선이 줄기줄기 그어졌다.

폭주가 일어나 주인의 의지를 배반한 힘이 나를 휩쓸기 전에 나는 가이딩을 빼앗는 속도를 높였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장기를 헤집는 감각이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가 폭주를 일으킬 수 있는 여력마저 전부 삼켰다.

파직.

스파크가 튀고 눈앞의 거대한 몸집이 속절없이 무너져 갔다.

고통으로 가득 찬 사회자의 두 눈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잡고 있던 두꺼운 손목이 축 늘어질 때가 되어서야 나는 그를 놓아주었다.

털썩. 상대의 몸이 온전히 바닥으로 처박혔다.

어느새 좌중에는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가드들 또한 눈앞에서 쓰러진 에스퍼에 충격을 받은 듯 움직임을 멈춘 채였다.

“결국 가이딩 없으면 안 되는 건 에스퍼잖아.”

목구멍에서 피 맛이 났다. 나는 풀려난 팔을 들어 입가를 세게 문질렀다.

옷 위로 붉게 묻어 나오는 것을 무시한 채 굳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본질적인 주도권은 이쪽에 있다는 걸 잊었나 봐.”

그제야 목줄이란 것을 쥐었다는 기분이었다.

* * *

죽음과도 같은 무거운 정적이 이어졌다. 끓어올랐던 분위기는 누가 물이라도 부은 것처럼 이미 차게 식은 뒤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회자가 쓰러져 단상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핏기없이 창백하게 질린 채 두 눈만 부릅뜬 몸은 생자보단 시체에 가까웠다.

그런 사회자를 한 번 힐끗 내려다본 여자, 가이드가 허리를 숙여 총을 주워 들었다.

그 태연하기 그지없는 태도가 눈앞의 현실을 흐리게 만들었다.

“설마…… 죽은-.”

“이것도 이벤트인 건가요?”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혹시 가이드가 아니라 에스퍼였던 게 아닐까요?”

그들의 두 눈이 멀쩡함에도 당장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처음은 단순한 여흥에 불과했다. 가이드의 손에 총이 들리고, 가이드는 반항이라도 하는 듯 사회자를 향해 총을 겨누었지만, 사회자에겐 통하지 않았다.

사회자는 다시금 가이드에게 무기를 권하고, 표적을 보여 주었고 그렇게 무대 위에서 짧게 대화가 오갔을 뿐이다.

홀은 무척이나 넓었고, 사람들 또한 많았기에 무대 위의 속삭임은 들리지 않았다.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는 몰라도 가이드는 사회자를 향해 들어 올렸던 팔을 힘없이 떨구었다.

저항을 포기한 듯한 가이드의 태도에 제대로 된 이벤트가 이어지겠다고 생각함도 잠시, 그대로 총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가이드가 잡히지 않은 손으로 사회자를 붙잡았다.

그리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사회를 진행하던 사회자가 갑자기 폭주를 일으켰다.

설 힘조차 없어져 무릎을 꿇은 사회자의 손목을 가이드가 붙잡았다.

그건 마치…….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광경을 지켜본 이들은 다들 같은 생각을 했다.

조금 전 광경. 그건 상품이라 소개된 가이드가 상위 등급임이 분명할 에스퍼의 목숨을 거두는 모습이었다.

죽음 앞에서 미지라는 것은 호기심이 아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명확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순간, 무대 위에 선 여자의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주최자들 또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다가가던 걸음을 멈추고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충격으로 인해 굳은 다리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사회자인 남자는 무려 A급 신체 강화 에스퍼였다. 그런 등급의 에스퍼조차 접근전에서 무슨 수를 쓰는지도 알아내지 못한 채 저렇게 당해 버렸는데, 그보다 약한 그들이 어찌할 수 있겠는가?

경악과 충격이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관람석 2층의 남자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입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짙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와…… 상상 이상인데?”

남자, 도가빈이 말쑥하게 세팅된 금발을 헝클어뜨리듯 손으로 쓸어 올렸다. 둥글게 휜 눈이 무대 위에 선 가이드를 향했다.

누가 저 여자를 가이드라고 볼까.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만 들어 봐도 다들 저 여자가 어떤 능력을 숨긴 에스퍼일지 추측하는 눈치였다.

‘그럼 그 기억이 진짜라는 건데…… 이거 재미있네.’

그녀와 접촉하는 짧은 순간 동안 보았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도가빈은 올라간 입꼬리를 뒤늦게 감추었다.

그 순간, 그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투덜거렸다.

“뭐야, 왜 가이드 차례에 에스퍼가 나와? 쇼맨십?”

검은 머리에 여우처럼 가늘게 찢어진 눈을 가진 남자였다. 그는 에러의 길드 마스터인 이해수였다.

투덜거리는 입과 대조적으로 이해수의 입꼬리는 무슨 즐거운 거라도 발견한 듯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근데 저 머저리 새끼들은 사회자 사망 확인도 안 하고 뭐 한담~.”

“쫄았겠죠. 무슨 능력일 줄 알고 가까이 다가가요. 저거 저래 봬도 A급이었잖아요.”

“아무리 동료 의식 따윈 없다고 해도 일단은 같은 이름 달았는데 쪽팔리네~ 안 그래요? 하성 씨.”

“그럼 길마님이 가실래요? 말씀하신 대로 같은 이름 달긴 했잖아요.”

무덤덤하게 이어진 하성이라 불린 남자의 말에 여우 눈의 남자가 질색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고, 하성 씨 그러다 귀한 길마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보다 가빈 씨,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사람, 무슨 능력으로 보여요? 가빈 씨 속마음 알아내는 데 귀신이잖아요.”

“그거 비꼬는 거야?”

“아유, 제가 뭘 비꽈요. 그냥 사실을 말한 거지~ 아, 맞다. 상대방을 맨손으로 잡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고 했던가?”

너스레를 떨듯 남자가 손을 내저었다.

귀찮은 새끼. 도가빈은 습관처럼 미소를 짓고는 다시금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그 순간이었다. 총을 쥔 여자의 몸이 크게 비틀거리더니 곧이어 많은 양의 피를 토해 냈다. 허리가 깊이 숙여지고 붉은 액체가 바닥에 고였다.

도가빈은 저도 모르게 난간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와 동시에 여자의 몸이 무너진 틈을 타 가드들이 여자에게로 달려갔다.

아무래도 여자를 처리할 생각인 것 같았다. 순식간에 여자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에스퍼가 허공에서 기다란 검을 뽑아 들었다.

‘그건 안 되지.’

도가빈은 급한 대로 재킷 안의 단검을 꺼내 던졌다.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허공에 던져졌던 단도가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어느덧 저 멀리 단상 위 에스퍼의 검 앞에 나타났다.

챙.

강화 특성이 걸린 작은 검이 에스퍼의 장검과 부딪혔다.

그러나 조절에 실수했는지, 아니면 그 에스퍼의 집념이 상당했는지 검은 끝내 여자의 팔을 찢고 기다란 상처를 냈다.

도가빈은 급히 난간 위로 발을 올렸다.

어깨에 걸쳐 놓았던 검은 코트가 흘러내렸다.

제 옆의 에러 길드 쪽 이들이 흥미롭다는 듯 그를 응시했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저 여자의 목숨을 살려 놓는 거였다.

그러나 그가 2층 난간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쿵!!

거대한 배가 크게 요동쳤다.

마치 태풍 속에서 풍랑을 만난 배처럼 배가 흔들리며, 사람들이 이리저리 뒤섞였다. 관객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배가 요동친 이유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곧이어 무대 옆 벽을 뜯고 나타난 존재가 그에겐 아주 익숙했기 때문이다.

두꺼운 철제로 된 벽이 찰흙처럼 가볍게 뜯겨 나갔다.

그 사이에서 걸어 나온 남자의 손에는 그를 막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드 한 명이 들려 있었다.

가드의 뒷덜미를 쥐고 질질 끌고 오던 남자가 손을 떼고 가드를 관객석 위로 던졌다.

그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이윽고 날이 선 금안이 무대 위를 응시했다.

“……와, 정말 왔잖아?”

짧게나마 드러난 기억 속에서 그를 보았음에도 좀처럼 믿기지 않았는데.

도가빈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즐거운 거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웃고 있는 입과 달리 그의 눈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온 것은 연우진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쫓아 메시아 길드원들이 엉망이 된 홀 안에 들어섰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도주하는 이들, 갑작스러운 상황에 홀린 듯 멍하니 자리에서 바라보는 이들, 흔들리는 배에 정신없는 이들.

배 안의 상황은 그야말로 혼돈으로 가득 찬 도가니였다.

“메시아잖아? 저쪽은 부길마인 하도경 맞지? 저번 모임에서 봤어. 그런데 메시아가 왜 여기에……?”

“와아, 무섭다, 무서워! 그래도 연우진 능력 구경할 수 있는 건 좋은데요?”

이해수가 들뜬 아이처럼 난간에 바짝 붙었다. 에러 쪽 길드원들이 갑자기 일어난 난투극에 관심을 가지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이들을 가만히 쳐다보던 도가빈은 그들과 반대로 난간 쪽에서 멀어졌다.

저벅, 저벅. 그의 손에 순간 이동 아이템이 들렸다. 아직 방해 파장은 없는 듯하니 기회가 있을 때 나가는 편이 좋았다.

그 연우진이 고작 가이드 때문에 눈이 돌아갔다. 주변을 살필 정신도 없는 것 같았다.

살기로 흉흉한 금안은 오로지 단상 위에 고정되어 있었고, 여자와 그녀를 겨누는 무기만을 매섭게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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