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자영업자 69화 (69/119)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S급 자영업자

69화

연우진은 여자의 팔을 찢어 놓은 에스퍼의 머리를 손으로 잡아 뜯었다.

콰득. 그의 흰 얼굴에 붉은 피가 튀고, 고깃덩어리가 된 시신이 바닥에 짙게 고였다.

그에게 공격을 쏟아붓던 가드들은 그 광경에 두 다리를 굳혔다. 생명체라면 당연한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그러지 말고 갈 수 있을 때 가지? 연우진 눈 돌아갔는데, 여기 계속 있다간 좋은 꼴 못 볼걸?”

“가빈 씨! 뭐 아는 거 있어요? 아니, 저 괴물 새끼가 왜 여기-.”

이런. 눈 돌아간 새끼가 여기에도 있네.

매번 눈을 가늘게 뜬 채 실실거리기만 하던 이해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놀람보단 기대와 흥분을 담은 시선이었다.

‘……왜 메시아가 여기에 왔냐고?’

도가빈의 시선이 잠시 단상 위 여자를 향했다. 평범하지 않은 기억의 장면.

연우진의 가이드.

비록 전부가 아닌 끊긴 필름처럼 일부에 불과했으나 그 기억 속엔 연우진 또한 있었다.

가이드에게 맹목적인, 안절부절못하는 개새끼 같은 꼴이 제가 아주 잘 아는 누군가와 닮아 있어 꺼림칙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이름이 아마 김유정이었지?’

이름을 알려 달라니까 김영희니 김수미니 하며 당당하게 가짜 이름을 늘어놓았던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짧게 보았던 기억도 그렇고, 방금 무대 위에서 보여 준 모습도 그렇고. 대단하고 재미있는 가이드였다.

제 가이드가 죽을 때 연우진이 보일 반응이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젠 그것과 별개로 여자가 죽지 않았으면 했다.

도가빈은 동경과 광기가 어린 눈으로 연우진을 열렬하게 바라보는 이해수의 뒷덜미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켁- 목이 졸린 듯 손을 휘젓는 이해수에게 도가빈은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며 말했다.

“배와 함께 가라앉고 싶진 않지?”

쾅.

아이템의 발동과 동시에 다시금 배가 크게 요동쳤다.

* * *

한순간 느꼈던 감각은 어딘가 낯익었다. 순식간에 상대의 몸속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는 오싹하고도 불쾌한 감각.

내가 아직 아멜리아였을 때 느껴 보았던 감각이었다.

당장 눈앞의 상대를 해치우긴 했으나, 여전히 적은 많았고 상황은 해결되지 않은 그대로였다.

사회자에게 세게 잡혔던 팔이 기름칠 안 된 기계처럼 삐거덕거렸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모르겠다. 지금 시야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삐이이익. 귀를 찢어발길 듯한 이명이 깜박이듯 불규칙적으로 뇌리를 파고들었고, 내부 장기가 끓어오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뜨거웠다.

사회자에게 그 능력을 쓴 뒤부터였다. 가이딩과 반대되는 파장이라 조절이 서툴렀던 걸까.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왈칵, 참지 못하고 목 아래까지 올라온 것을 토해 내자 피비린내가 짙게 올라왔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세게 총을 쥔 손이 덜덜 떨려왔다. 비틀거리는 몸에 억지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챙.

보진 못했으나 바로 앞에서 쇠와 쇠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팔꿈치부터 손목 바로 아래까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것 같았다.

“윽-.”

팔의 고통보다도 시야가 급했기에 이를 악물고 눈가를 세게 문질렀다.

맞지 않은 도수 렌즈를 낀 것처럼 흐릿하고 어지럽던 시야에 조금씩 빛이 들어왔다. 드디어 시야에 사람 형체가 들어온 순간이었다.

쿵!!

배가 크게 요동쳤다.

쿵. 쿵.

순식간에 홀 안은 혼비백산이 되었다. 도망치는 듯 여럿의 발소리, 물건이 부서지는 날카로운 소리.

짙은 혼란으로 가득 찬 소음들이 이명과 섞여 사방에서 들려왔다.

갑자기 흔들린 배에 나는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 커다란 소리가 들리더니 바다 냄새와 거센 바람이 얼굴을 뒤덮었다.

나는 무거운 머리를 들었다. 흐릿하던 시야에 점점 형체가 생기고 색이 입혀졌다.

동시에 들린 것은 낯익은 이의 목소리였다.

“……이것들이 뒤지고 싶어서 돌았나.”

커다란 손이 장검을 들고 있던 남자의 머리를 꽉 움켜잡는 것이 보였다.

콰드득.

사람의 머리가 마치 인형처럼 뽑혀 나갔다. 뜨거운 액체가 뺨 위로 튀며, 강렬한 정도로 선명한 붉음이 눈앞에 새겨졌다.

“으아아악!!”

“살려, 살려 줘!!”

연우진의 주변을 감싼 가드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눌리는 것처럼 네발로 기어 바닥을 짚었다.

부러진 손목과 발목이 강한 압력에 의해 움푹 파인 바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머리는 미칠 듯이 아프고, 느껴지는 감각은 다소 둔했다. 더구나 조금 나아졌을 뿐이지 여전히 눈앞이 흐릿한 건 매한가지라 붉은색만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니, 정정하겠다. 스파크 또한 눈에 들어왔다.

연우진의 몸 위로 강렬한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감정을 포함하여 가이딩 상태가 불안정한 에스퍼의 반응이었다.

태양에 녹여 낸 것 같은 금색 눈동자에 흉흉한 살기가 아른거렸다.

문득 떠오른 것은 오래전 거리에서 그의 폭주 발현을 막았을 때였다.

‘……이러다 배와 함께 수장되는 거 아니야?’

종이짝처럼 가볍게 떨어져 나갔던 두꺼운 콘크리트들.

충격적이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이번에는 움푹 파인 바닥과 철제 벽이 보였다.

“미친…….”

나는 욕설을 지껄이며 손에 힘을 주어 발을 디디었다. 단순히 몸을 일으키는 것뿐인데도 무슨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두 다리가 속절없이 떨려 왔다.

고통을 무시하고 다리를 움직였다. 나는 그가 들을 수 있게 소리쳤다.

“-연우진!”

연우진의 눈이 나를 담았다. 놀란 듯 그의 눈이 크게 뜨이며 그의 주위를 감쌌던 압력이 사라졌다.

나는 계속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 발을 디디는 순간 몸이 비틀거렸다.

그러자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던 연우진이 당황한 듯 어깨를 움찔거리더니 곧바로 내게 달려와 손을 뻗었다.

쏟아지듯 그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처박은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고 손을 뻗어 연우진의 뺨을 감쌌다. 하얗고 고왔던 뺨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어떻게든 진정시켜 놔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가이딩을 하려고 했지만, 평소와 달리 감각이 혼란스러웠다. 억지로 힘을 내보내려도 해 봤지만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내 손바닥에 깊이 제 뺨을 묻으며 연우진이 눈가를 일그러뜨렸다.

“싫어…… 싫어요. 누나. 저 가이딩 안 해도 돼요. 버틸 수 있어요. 누나, 제발…… 죽지 말아요. 저 진짜 싫어요.”

잠기듯 드문드문 이어지는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났다. 커다란 손이 내 입술에 묻은 피를 훔쳤다.

피를 전부 닦아 내면 내가 괜찮아질 거라고 믿는 것처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입술이고 뺨이고 문지르는 손에 피부가 쓰라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화를 낼 수 없는 것은 문지르는 그의 손이 가늘게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겁을 먹은 아이처럼 나를 안은 그의 몸이 덜덜 떨렸다.

머리고 몸이고 뜨거운 나와 달리 내 입가를 문지르는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파. 그만-.”

그를 막고자 입을 열었으나, 혀가 굳어 제대로 된 문장이 되지 못한 채 흘러나왔다. 시야가 다시금 어그러지고 눈에 힘이 풀렸다.

“안 돼, 제발…… 제발, 이러지 말아요.”

빌 듯 애처롭기 그지없는 목소리를 끝으로 눈앞이 어둠으로 뒤덮였다.

정신을 읽기 직전 쿵, 하고 커다란 진동이 울린 것도 같았다.

* * *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고로 나는 생각했다.

이건 꿈일까. 아니면 드디어 내가 미친 걸까?

“괴물을 찾아 죽여라!!”

“이게 다 저 마녀 때문이야! 성녀를 구해라!!”

험악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횃불을 든 채 숲속을 뒤졌다.

시간대는 밤이었고, 아무래도 저들 눈에 나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무 뒤에 선 채 나는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조금 전만 해도 쪼개질 것처럼 아팠던 머리가 멀쩡하다. 그리고 마지막 기억이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배 위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난데없이 숲속이다.

방금 눈앞을 지나간 험악한 얼굴의 사람들 역시 내가 사는 현대에서는 보기 드문 옷차림이었다.

예를 들자면 헤르만의 황실 기사 같은…….

“……비비안, 괜찮아요?”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돌았다. 어둠 속, 수풀이 무성한 곳에서 여자 둘이 빠져나왔다.

한 명은 크게 다친 것 같았고, 다른 한 명은 그런 부상자를 부축하고 있었다.

“세뇌, 세뇌를 풀면 될 거예요. 무슨 오해가 있었을 테니까. 레이몬드도 말하면 분명-.”

“알아 줄 거라고 생각해? 아니, 그놈은 미쳤어. 이전의 황태자가 아니라고.”

“……분명 레이몬드도 혼란스러워서 그런 걸 거예요. 비비안,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당신들과 함께했던 아멜리아 캠벨이 아니잖아요.”

“괜찮다고 했잖아, 아멜. 그런 건 이미 예전에 받아들였어.”

비비안, 레이몬드, 아멜리아 캠벨.

“황성 사람들도 그렇고 하나같이 그 새끼한테 조종당하고 있어. 이상하잖아. 왜 전쟁이 끝났는데 다시 시작되지? 애초에 지금까지 일어난 전쟁의 이유는 뭐였지? 왜 제국은 전쟁을 하지? 정복 전쟁도 아니고, 오로지 죽이기 위한 전쟁을.”

어둠 속 달빛 사이에서 어렴풋이 드러난 형체에 나는 숨을 멈췄다.

“요즘 이상할 정도로 실종자가 눈에 띄어. 마물도 너무 많아. 제국 곳곳에 기근이 들었고, 전염병이 돌고 있어. 그런데도 제국은 마치 거대한 새장처럼 문을 걸어 잠근 채 대륙 간의 이동을 통제하고 있고.”

어깨까지 오는 분홍색 머리카락과 총명한 두 눈. 1년 전 헤르만 제국에서 전우였던 정령사 비비안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비비안을 치료하고 있는 여자는 내게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몇 년간 줄곧 거울에서 보아 온 ‘아멜리아 캠벨’의 얼굴이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