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71화
솔직히 화나긴 했다. 그날 연우진에게 화가 났던 건 사실이다.
배신감도 느꼈고, 자칫하면 심한 말을 할 것 같아 당분간 머리가 식을 때까지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범죄에 휘말려 버려 다른 분노로 덧씌워진 데다, 그걸 구해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연우진인 것 같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전히 연우진이 나를 속인 것에 대한 꺼림칙한 감정은 남아 있는데, 구해 준 사실에 고마움을 표해야 하는 것도 맞았으니.
그렇다고 당장 고맙다는 인사부터 던지면 그날의 내가 표출한 감정이 대수롭지 않은 게 되어 묻혀 버릴까 걸리고, 냉대하기엔 구해 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일단 상대부터 달래고 보자.’
다시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한참 토닥이자 떨림이 줄어들었다.
이제 되었나 싶어 손을 풀고 얼굴을 확인하려는 순간, 연우진이 내 어깨에 묻고 있던 얼굴을 틀었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얼굴에 놀라 고개를 살짝 뒤로 빼자 그가 수줍은 얼굴로 물어 왔다.
“저 예뻐요?”
“……예?”
이게 대뜸 무슨 소리인가 싶어 당황하다 조금 전 달래면서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에 나는 자연스레 연우진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운 탓에 색소가 옅은 속눈썹이 뺨에 옅게 그림자를 드리운 게 보였다.
눈꼬리에 눈물이 맺힌 채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네, 예쁘네요.”
저 사람에 대한 것과 별개로 이건 사실이지. 홀린 듯 나온 내 대답에 그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 내 눈.
그러지 않아도 막 병상에서 일어나 약해진 눈에 햇살과 더불어 화사한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
나는 그대로 눈을 질끈 감은 채 급히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내 쪽에서 안은 것이라고 하나, 저쪽의 몸집이 훨씬 더 큰 탓에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안겨 있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그런가, 거의 몸을 덮다시피 했던 타인의 체온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살짝 한기가 들었다.
연우진은 내가 품에서 빠져나가자마자 곧장 손을 뻗어 왔다. 무의식중에 한 행동인 듯했다.
그는 내게 막 닿으려는 참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살피듯 내 얼굴을 확인했다.
“…….”
허공에 멈춘 손이 천천히 그의 무릎 위로 돌아갔다. 온순하기 그지없는 몸짓에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곧장 속으로 되뇌었다.
‘저건 연우진이다. 연우진! 메시아의 길마이자 내 집을 부순 놈.’
되뇜과 동시에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떠오른 것은 배 위에서의 장면이었다. 찰나에 불과했고 아픔 탓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터라 전부 기억은 안 나지만, 하나 또렷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었다.
연우진의 한 손으로 사람의 머리를 인형 머리 뽑듯 뽑아 버리는 장면이었다. 물속에 풀어진 물감의 색이 번지듯 긴장이 전염되었다.
물론 그런 풍경은 전쟁 속에서도 많이 봤다. 다만, 이 짧은 사이 평화에 익숙해져 있었기도 하고 헤르만에서도 맨손으로 그런 장면은 보지 못했기에 좀 놀랐다.
「그럼 이 기회에 알아 둬요. 사람 손은 생각보다 튼튼하다는 것을.」
연이어 떠오른 것은 이전에 내가 했던 말이었다.
잘못 잡았다가 내 손이 어떻게 될까 봐 힘을 주지 못하겠다는 그의 말에 나는 그렇게 말했다.
물론 당시에는 황당해서 내놓은 답변이었지만, 지금 와서는 정말 황당한 건 다른 쪽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볼 때 머리보단 손이 더 쉽겠지……?’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당사자 앞에서 싫다고 말했던 것이나, 피해 동지인 줄 알고 신이 나서 떠들었던 것.
그리고 이 나라에서 최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S급 에스퍼를 약자 취급하며 돌봤던 것까지.
다시금 떠올리자 수치심에 화, 미안함 등 다양한 감정들이 엉망인 채로 얽혀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절로 표정이 굳었다.
그러지 않아도 긴장한 탓에 경직되었던 목과 어깨에 이어, 미간까지 찌푸려졌다.
나는 굳은 표정을 애써 펴 보려 했다. 화도 났지만 그보다 감사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저번 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나를 구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말부터 하는 게 순서상 옳았다.
“주연- 아니, 그러니까, 하…….”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그를 부르려다 습관처럼 튀어나온 이름에 한숨을 내뱉었다.
이 와중에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것에 자괴감도 들고, 그렇게 속아 놓고도 다시금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는 것에 짜증도 났다.
움찔.
연우진의 손가락이 작게 움츠러들었다.
아직 뭘 하지도 않았건만, 무슨 주인에게 혼이라도 난 강아지처럼 눈에 띄게 풀이 죽은 모습에 나는 더욱 미간을 좁혔다.
……차라리 저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까.
할 말은 확실히 하고 끝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계속 상대 쪽에서 저렇게 나오니 기분이 묘했다.
비유하자면 약자라도 괴롭히고 있는 기분이다. 물론 연우진 상대로 우습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연우진 씨. 우리 저번 일로 할 말 있었죠?”
그런 와중에도 연우진의 시선은 올곧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불안함과 초조함을 한데 모은 듯한 얼굴에 나까지 불안함이 옮는 기분이었다.
나는 나를 응시하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감정을 담고 일그러졌던 표정이 무로 돌아가고, 고저 없이 담담한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당분간 시간을 갖자고 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말하게 되네요. 우선-.”
덜컹. 그가 움직인 듯 의자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벌컥 문이 열렸다.
“김유정 씨, 검사부터 합시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어딘가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들어왔다.
보라색 머리카락, 원래도 주렁주렁 신체 곳곳을 차지하고 있던 액세서리는 그새 입술 피어싱으로 더 늘어있었다.
“……하도경 씨?”
예전 연우진 집에서 숙박할 때 만났던 이의 모습에 나는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길드 메시아 부길마를 맡고 있는 하도경입니다. 각성 형태는 에스퍼고요.”
“오랜만이에요, 유정 님! B급 힐러 송화연이에요.”
하도경을 뒤따라 들어온 갈색 머리의 여자 역시 익숙했다. 그도 그럴 게 연우진의 집에서 나를 치료해 줬던 힐러였으니까.
수줍게 내 쪽으로 살랑살랑 손을 흔든 송화연이 퍼뜩 고개를 들더니 연우진의 얼굴을 살폈다.
“예에……. 아시겠지만, 김유정입니다. 가이드고요.”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얼결에 따라 자기소개를 했다. 이전에도 저랬던 걸까.
이름 하나 알았을 뿐인데,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연우진은 하도경과 송화연이 나타나자 벌떡 일어나더니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방을 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에 나도 모르게 놀라 그의 옷자락을 붙들었으나, 연우진은 곤란하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린 채 조심스럽게 내 손을 떨어뜨렸다.
나는 당황스러움에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연우진 쪽에서 먼저 내 손을 놓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도경이 알 만하다는 눈으로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연우진을 쳐다보았다.
힐끗 연우진의 얼굴 쪽에 짧게 시선을 준 하도경의 두 눈에 경악이 어렸다. 운 탓에 붉게 달아오른 눈가를 본 것 같았다.
달칵. 문이 닫히자마자 하도경은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저걸 울렸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하도경과 연우진은 친구 사이인 것 같았지. 친구를 울렸다고 탓하는 건가 싶어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어찌 보면 제 탓이 맞긴 한데, 제가 한 건 아니에요.”
이상한 내 대답에 하도경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유정 님, 잠시 상태 좀 확인할게요.”
“아, 감사합니다. 그, 혹시 김재영 씨는……?”
“김재영 에스퍼님라면 지금 식사 중이세요. 아,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다른 건 몰라도 내상 쪽은 김재영 에스퍼님보다 제 쪽이 더 뛰어나거든요!”
송화연이 자신에 찬 얼굴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얼결에 그녀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다 멈춰 세웠다. 의미 전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이 누군가에게 잡혀 갔던 모습이었기에 생존 확인 겸 물은 것뿐인데.
머릿속으로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사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차린 듯 하도경이 한숨과 함께 의자에 앉았다.
하도경은 가져온 서류를 내 이불 위로 내려놓고는 내 손을 잡고 진찰 중인 송화연에게 물었다.
“화연 씨, 김유정 씨 상태는 괜찮은가요?”
“네, 장기는 회복되었고 파장 문제는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연 회복을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최소 며칠간은 무리하지 말고 푹 쉬시는 편이 좋아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잠시 김유정 씨께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자리를 비워 주실 수 있나요?”
“네. 유정 님, 그럼 또 봬요!”
송화연이 밝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를 향한 시선은 전에 만났을 때와 같이 호의로 물들어 있었다.
어쩐지 싱숭생숭한 기분에 닫힌 문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무렵, 하도경이 서류를 내밀었다.
“그럼 대화 시작해 볼까요.”
반듯하게 내밀어진 서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계약서인 것 같았다. 무심결에 조건 항목 쪽으로 시선을 옮긴 나는 이내 두 눈을 의심했다.
다른 곳과 비교조차 불가할 정도로 더 높아진 금액을 뒤로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더 말이 안 되는 것은 그다음 조건이었다.
[-복무 기간은 법적으로 정해진 최소 기간을 따라 1년으로 한다.
-복무 기간을 마침과 동시에 이후 길드 가입 여부는 가이드 측(김유정 가이드)의 의사에 전적으로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