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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73화 (73/119)

S급 자영업자

73화

보통 사람에겐 선입견이라는 게 있다. 줄곧 알고 있던 고정 관념은 사람의 생각을 쉽게 다른 쪽으로 뻗기 어렵게끔 만든다.

예를 들어 ‘가이드는 에스퍼의 그릇을 유지하는 가이딩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오래도록 이어져 온 관념이다.

그렇기에 공격 능력이 없는 가이드가 에스퍼를 공격할 수 있을 거라곤 보통 생각하지 못한다.

갑자기 단순하기 그지없는 카페 단골 서윤호가 그리워졌다.

무슨 말을 해도 대충 넘어가서 괜히 긴장할 필요도 없고 대화하기 얼마나 편한데.

나는 머리 싸움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뭐…… 이미 메시아로 들어가기로 했으니까 괜찮나.’

안 그래도 있던 등급 타이틀에 일반적인 가이드와는 반대되는 능력까지 추가되어 솔직히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가이드 타이틀이 재구성되었다.

들킨 것 자체가 달갑지 않긴 했어도 나쁘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아군으로 보이는 사람이 똑똑하다는 건 그런 문제에 있어 도움을 받기에도 편하다는 얘기이니.

“머리가 좋다기보단…… 저도 확신은 못 했어요. 가이드가 상위 에스퍼를 죽이는 광경은 처음 봤을뿐더러, 보통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그런데 용케도 그런 쪽으로 생각했네요.”

“뭐 같진 않지만, 전혀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라…….”

“네? 저처럼 가이딩을 빼앗을 수 있는 가이드가 있어요?”

혹시나 모를 기대에 두 눈을 빛내자 하도경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그럴 리가. 적어도 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방금 알게 된 유정 씨 사례를 제외하면요.”

“아…….”

“그보다 정확히는 몰랐는데 에스퍼의 가이딩을 빼앗을 수 있는 능력이었군요. 그럼 연우진이 중얼거린 게 맞았네.”

“그 사람도 알고 있어요?”

“네. 아, 메시아 쪽에서 영상을 본 건 저와 연우진, 김재영 정도가 전부이니 안심하셔도 돼요. 그건 그렇고 폭주까지 무시하면서 그런 게 가능하다니……. 와, 진짜…… 뭐라고 해야 할까…… 와, 씨 미쳤네…….”

할 말을 잃었다는 듯 하도경이 감탄했다.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탄성 섞인 목소리를 흘린 그가 말을 이었다.

“……유정 씨. 거의 에스퍼의 천적 아니에요?”

가이드가 에스퍼의 천적.

포식자와 피식자가 뒤바뀐 그 단어는 일반적으로 가이드와 에스퍼를 설명하기엔 적절치 않은 단어였으나, 지금 상태를 설명하기엔 충분했다.

하도경의 미간 사이로 주름이 졌다.

놀라움, 약간의 두려움과 경계. 여러 감정을 담은 채 나를 응시하던 하도경은 이내 무언가를 고민하듯 시선을 멀리했다.

그가 입을 닫고 있는 동안 나 역시 생각을 했다. 그에게 물어볼 만한 질문을 떠올리던 도중 오늘 꾼 꿈이 떠올랐다.

꿈인지 유체 이탈인지 하여튼 뭐든. 어쩌면 하도경이라면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심코 입술을 움직였다.

“도경 씨. 물어보고 싶은 게 또 있는데요.”

“……아, 네.”

생각에 빠져 있던 하도경은 조금 늦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혹시 ‘차해연’이란 이름의 사람 알아요?”

나는 또렷이 떠오르는 꿈속의 이름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며 덧붙였다.

“물론 동명이인은 있을 테니까, 대상을 좁혀 보자면 게이트와 관련된 사람 중에서요.”

대뜸 이름만 물어보는 건 좀 그런가 싶었지만, 이외에 내가 아는 것은 없었다.

아는 것이라고 해 봐야 왜인지 모르게 흑화한 레이몬드가 꿈속에서 진짜 아멜리아를 차해연이라고 불렀다는 것 정도였다.

역시 황당한 질문이었나 싶어 하도경을 쳐다보니, 하도경은 놀란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가이드 차해연을 묻는 거예요?”

아는 각성자 중에서 동명인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도요. 게이트와 관련된 인물 중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고 싶어요.”

“네? 그게 무슨…… 왜 찾는 건데요?”

꿈에서 들어서요.

그렇게 목 아래까지 치고 올라온 말을 삼켰다.

꿈속에서 아는 사람이 나왔는데 그 사람이 그런 이름을 말했던 것 같더라.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건 없고 이름만 안다.

보통 꿈이 아닌 것 같으니 그게 누군지라도 찾아보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기 좋은 이야기였다.

“뭐, 곤란하다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기밀 사항도 아니고…… 그냥 놀랐을 뿐이에요. 유정 씨 능력의 비슷한 사례가 방금 말한 차해연 가이드거든요.”

“가이딩을 빼앗는 능력이요?”

“같은 능력은 아니고, 가이드인데 가이딩을 하는 것 말고도 다른 류의 힘을 가진 것?”

“무슨 능력…… 아니, 혹시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될 수 있다면 만나 보고 싶은데요.”

어쩌면 내가 너무 꿈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게 단순한 꿈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더욱이 꿈에서 들은 이름이 마침 하도경이 아는, 그것도 나처럼 가이드임에도 가이딩과 다른 류의 힘을 가졌다니.

그저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과했다.

꿈속 헤르만 제국에서는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다시 전쟁이 일어난 것에 더불어 마물이 늘고, 전염병에 여러 이유로 죽는 이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이전 전쟁 영웅인 비비안과 아멜리아는 쫓기고 있었다.

「이게 다 저 마녀 때문이야! 성녀를 구해라!!」

……아니, 어쩌면 쫓기는 이유가 다른가? 그 둘을 쫓았던 기사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곳에서 다친 것은 비비안이었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그런 비비안을 부축했고.

보통 ‘성녀’라는 명칭은 이전 전쟁에서 간혹 듣곤 했던 내 이명이기도 했다.

아무리 중상자라고 해도 치료해 버리는 힘을 그들은 경외했고, 떠받들었으니.

물론 당시의 나는 판타지 칭호 하나 달았네 하고 대충 넘겼다.

‘성녀’가 아멜리아를 가리키는 거라면 ‘마녀’는 비비안을 뜻한다는 말이 된다.

상황상 추측의 결과는 그러한데,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명칭에 순간 괴리감이 느껴졌다.

제국 유일의 정령사가 마녀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더구나 그들은 마치 비비안이 아멜리아를 납치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죄송하지만 만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네요.”

“말이라도 꺼내 볼 수는 없을까요?”

내 물음에 하도경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대답했다.

“이미 한참 전에 죽은 사람이라서요.”

* * *

「유정 씨와 같은 등급이었어요. S급 가이드라 처음엔 높은 기대를 받았던 것 같은데, 오래가지는 못했어요. 매칭률이 좋지 않았거든요. 특정 몇을 빼면 매칭률이 형편없다 싶을 정도로 낮았죠.」

차해연은 나와 같은 S급 가이드였으며, 사인(死因)은 당시 같은 팀 에스퍼에 의한 타살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명의 가이드가 한 명의 에스퍼를 담당하는 전담 가이드가 흔치 않았는데, 특히 국가 소속일 경우 팀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차해연은 국가 소속 가이드였다.

「아, S급 가이드라 능력이 있는 게 아니냐고요? 아뇨. 다른 나라의 S급 가이드에게 가이딩 외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어요. 작정하고 숨기고 있는 거라면 저도 할 말은 없지만.」

나는 휴대폰 모서리 끝을 매만졌다. 오랫동안 화면을 켜 놓고 있었기에 어느덧 기기는 기계 특유의 차가움 대신 열기가 깃들어 있었다.

무의미한 행동을 하며 며칠 전 들은 하도경의 말을 다시금 되뇌었다.

「환영받을 법한 능력은 아니었죠. 차해연 가이드의 능력은 게이트를 여는 힘이었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게이트를 발생시킬 수 있었어요.」

하도경은 말했다.

차해연의 능력은 게이트를 닫는 것을 과업으로 두고 있는 인류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능력은 당시 활동했던 관련자들을 제한 일반인들에게는 공표되지 않은 채 묻어졌다.

과거든 현재든 게이트는 재앙 그 자체였다. 특히나 과거면 게이트로 죽는 사람이 더 많았을 때고, 게이트에 대한 원망이 드높았을 때였기에 당연한 흐름이었다.

“역시 신경 쓰이는데…….”

차해연과 나는 비슷한 점이 꽤 있었다. 가이딩 외의 능력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그 능력이 마냥 환영받기에 좋은 능력은 아니라는 것.

물론 S급 가이드라는 점도 공통점 중 하나였다.

그날 하도경은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녀와 관련된 것은 저보다 연우진 쪽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궁금하면 그쪽에게 물어보라고.

여기서 문제는 그 연우진이…….

띠링- 띠링-.

휴대폰이 거세게 진동했다. 나는 냉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발신인에서 내가 기다렸던 사람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고, 기다렸던 사람 대신 친구인 ‘성지현’의 이름이 있었다.

“여보세요.”

[납치당했다며! 살아 있어?]

3일 전에 보내 놓았던 문자를 지금에서야 확인했는지 성지현의 목소리가 당황을 담고 있었다.

대학원생이라 쓰고 노예라 읽는 직책을 가진 성지현은 매번 바빠서 연락 확인이 늦곤 했다.

내가 깨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일 전이었다.

나는 하도경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서 곧바로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지인들이 적기 때문인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처음엔 최근 만났던 사람들한테만 말하려고 했는데, 한세영이 내가 사건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바람에 엄마한테도 소식을 전해야 했다.

통화 도중에 그간 연락이 드물었다는 일이 언급되며 크게 혼이 나 조만간 시골로 한 번 내려가기로 약속했다.

사건에 휘말렸다는 소식을 알렸을 때 다들 반응이 비슷했다.

어디 병원이냐는 물음에 나는 면회 금지라 만나는 건 힘들 거다, 곧 퇴원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을 돌려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병원이 아닌 메시아 소유의 건물 중 하나였으며, 내 담당 주치의인 힐러는 내게 한동안 자발적인 감금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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