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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74화 (74/119)

S급 자영업자

74화

「유정님, 한동안은 이 층을 벗어나지 마세요. 일도 하시지 마시고, 챙겨 드리는 약과 식사는 전부 드셔야 해요. 운동은 매일 체크할 테니 가볍게 30분 이상 하셔야 하고.」

「……어? 저 일단 집에 가 봐야 하는데요. 가게도 비운 지 꽤 됐고.」

「안 돼요. 나으실 때까진 여기서 못 나가세요. 힐러로서의 제 목숨이 걸려 있습니다.」

「보통 명예가 걸려 있다고 하지 않나요?」

「목숨이요. 건강하실 때까지 회복에만 집중하셔야 해요.」

살면서 그런 정중한 어투로 감금을 요청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감금 생활은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요양이 아니라 무슨 호캉스라도 온 기분이었다.

나는 조만간 만나자는 약속을 잡은 뒤 통화를 끊었다. 성지현의 연구 분야는 게이트 출몰 쪽이라, 어쩌면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통화를 끊자 방 안이 또다시 적막으로 가득 찼다. 나는 팔을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던 막 깨어났을 때와는 달리 가벼운 근육통 정도만이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움직이기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멀뚱히 꺼진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다 다시금 화면을 켰다. 수신인은 벌써 며칠째 나를 피해 다니는 연우진이었다.

이번에 발견하면 도망가지 못하게 기필코 다리부터 묶어 둘 것이라고 결심하며 키패드를 꾹꾹 눌렀다.

[이번에도 피하면 여기에서 무단 탈출할 겁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정중한 예고장을 보내 놓고는 한가로이 식탁 위에 올려놓았던 차를 마셨다.

“일단 질러는 봤는데 통하려나 모르겠네.”

찻잔에서는 아직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깨어난 뒤로 3일이 지났다. 연우진이 일이 생겼다며 나간 뒤로 나를 피해 다니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 또한 3일이 되었다.

처음에는 바빠서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물어볼 것도 있고, 할 이야기도 있어서 그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그는 모든 연락을 받지 않았다.

혹시 번호가 바뀌었나 싶어서 하도경에게 물어보니 그대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우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줄 수 있냐고 물으니, 무리해서 움직이면 몸에 안 좋다는 답변이.

그럼 연우진을 이곳으로 불러 줄 수 있냐고 하면 자신도 연우진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답변이.

그렇게 말하는 하도경의 표정은 피곤함에 물들어 있었고, 당장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번은 같은 층에서 연우진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나와 마주친 연우진은 어깨를 크게 움찔거리더니 그대로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내가 있는 층은 일반 아파트의 20층 정도 되는 높이였다.

물론 그 정도로 연우진이 죽을 리는 없지만 황당함을 느끼는 것은 별개였다.

누가 보면 재난 대피라도 하는 줄 착각할 법한 반응 속도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쯤 되니 확신할 수 있었다.

「……이놈이?」

연우진은 나와의 대면을 피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처음 인지했을 때, 나는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내가 메시아와 맺은 계약 자체가 메시아 길마 연우진의 전담 가이드가 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길드 가입 조건이 포함되지 않았기에 ‘임시’, ‘기간제’ 등등 부가 조건이 붙긴 하지만, 뭐가 되었든 내겐 1년간 연우진을 가이딩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니, 그런데 나를 왜 피하는 건데?’

유리하기 짝이 없는 조건들의 나열 사이에서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이 둘 있었다.

첫 번째는 연우진의 전담 가이드가 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계약 기간 동안 연우진과 함께 거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조항을 보며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에 가입하는 가이드 중 생활관에 들어가는 일은 흔했기 때문이다.

교육생은 보통 포함되지 않지만, 전담 가이드의 경우엔 함께 살거나,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애초에 카페 운영도 하게 해 주는 상황에, 다른 복무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는 것도 아닌데 가이딩 할 시간을 내려면 적어도 집이라도 같이 살아야 했다.

어차피 집도 없었다. 지금껏 집이라고 하기엔 뭐 한, 카페 안에 마련된 방에서 지내 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집을 포기하게 만든 원흉과의 동거라 기분이 싱숭생숭하긴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더욱 그가 피해 다니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앞으로 1년간은 주구장창 마주쳐야 할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속인 것에 이어서 이제는 씹어? 전화도 안 받아? 고맙다고 인사 좀 하려는데 무슨 사람을 마물 취급해?”

황당함이 짜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나는 3일째 되는 날, 휴양지에서의 탈출을 걸고 그렇게 문자를 보냈다.

* * *

쾅! 콰앙!!

넓은 훈련장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렸다.

“아, 진짜 저 또라이 새끼 때문에 돌겠네…….”

하도경은 2층 난간에 기대어 연우진을 쳐다보았다.

가이딩제를 사용한 뒤 생긴 불쾌감에 기분 전환을 한답시고 훈련장 하나를 파괴하고 있었다.

가이딩제의 부작용 중 하나였다. 일종의 흥분제 역할을 한다고 해야 하나, 평소보다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대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연우진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낮은 매칭률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남들만큼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부작용은 다른 부작용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것에 속했다. 술처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기만 하면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도경으로서는 연우진이 이해되지 않았다.

임시지만 이제 전담 가이드도 생겼겠다, 가이딩을 받으면 편할 텐데 김유정의 몸 상태를 이유로 대며 연우진 쪽에서 거부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남의 몸 상태를 신경 썼다고 아주 지극정성이었다.

물론 김유정이 아직 완치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다른 부상자에 비하면 상태가 좋은 편에 속했다.

솔직히 지금 가이딩을 오랫동안 받지 않고 능력을 사용한 탓에 파장이고 몸이고 엉망인 연우진보단 수월하게 회복 중인 김유정 쪽이 더 건강할 거다.

하도경은 작게 혀를 찼다.

“굳이 고통을 참는 것을 택하는 걸 보면 고문이 취미인가?”

제 가이드를 무슨 금방이라도 깨져 버릴 유리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대한다. 여기에서 황당한 것은 정작 그 가이드인 김유정이 그리 약한 편이 아니라는 거다.

증거품으로 가져온 영상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많았다. 하나같이 김유정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장면뿐이었다.

보통 그런 상황에서는 두려움에 떨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유정은 이상하리만큼 태연했다.

더구나 조사해 본 바로 김유정은 지금껏 총을 배우기는커녕 잡아 본 적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능숙하게 총기를 다루었으며, 주저 없이 사람을 겨누었다.

이게 말이 되나? 민간인 중 어느 정도 총을 다뤄 봤다 하는 사람들도 그 대상이 살아 있는 생물로 바뀌면 쏘기를 주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유정은 망설임 없이 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이딩과 반대되는 능력으로 사회자를 죽였을 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사람을 죽였는데도 김유정의 얼굴에는 동요라고 할 감정의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일종의 정당방위였고, 나라 법상 죄가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과는 별개로 그건 기묘한 광경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이를 내려다보는 김유정의 얼굴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감정이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쾅!!

생각 도중 들린 굉음에 하도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염병…… 이러다 또 훈련장 부수겠네.”

연우진의 힘을 해소하기 위해 방문한 곳은 센터 훈련장이었다.

메시아에서 소유한 훈련장과 다르게 이곳은 한 에스퍼의 이능력으로 관리되고 있었기에, 다른 훈련장에 비해 배는 튼튼했다.

하도경은 그 능력의 주인을 떠올렸다.

인형처럼 무감각한 표정. 이로운은 제 길드의 김재영과 같은 20세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소년 같은 외양을 가진 에스퍼였다.

‘설마 이번 일에 이로운의 도움을 받을 줄이야…….’

이번 사건에서 배를 영해권 내로 옮기며 남은 관련자들의 도주를 막기 위해 국가 소속 에스퍼인 이로운의 도움을 받았다.

솔직히 의외였다. 이로운은 상부에서 직접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능력을 쓰지 않는 에스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권력욕이든 명예욕이든 욕망이 거의 없다시피 한 에스퍼였다.

그런 힘을 가지고도 다른 상위 에스퍼들과는 달리 자신을 드러내긴커녕 지박령처럼 센터에만 붙어 있던 놈.

그런 놈이 휘말린 사람 중 이번 분기 교육생이 있다는 말에 곧장 자신도 가겠다고 먼저 이쪽에 협력을 요청했다.

‘역시 이로운 쪽도 유정 씨 때문에 그런 것 같지?’

어쩐지 심경이 복잡했다.

당시 연우진은 김유정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잠시 이로운을 향했던 시선 속에 담긴 감정은 명백한 적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작 이로운 쪽에서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배 위에서 쓰러져 연우진에게 들린 김유정을 발견하고는 크게 동요한 것 같긴 했었지만, 이로운의 얼굴에서 연우진을 향한 질투심이나 적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연우진아, 내가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죽이지만 말자.’

에스퍼들이 가이드를 두고 싸우는 것은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문제는 그 둘이 S급 에스퍼이고, 나라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물들이라는 것이었다.

확실히 김유정이 가이드로서 뛰어나긴 한 모양인지, 그밖에 다른 인물도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아, 도경 형 말대로 김유정 가이드님 대단하시더라고요.」

배에서 탈출한 직후, 있었던 일을 보고 올리며 김재영은 하도경에게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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