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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77화 (77/119)

S급 자영업자

77화

김유정은 밧줄을 반 이상 풀었을 때쯤 입을 열었다. 

“우선, 구해 줘서 고마워요. 그쪽이 아니었으면 죽었을지도 몰라요. 고마워요. 단순히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만약 원하시는 거 있으면 말해 주세요.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거라면 들어 드릴 테니까.”

다리를 묶었던 끈을 대충 바닥에 버린 채, 김유정은 마저 그의 손을 풀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이번에 나온 말은 감사가 아닌 그때 일에 관해서였다.

“그리고 그때 일 말이에요. 속았다고 생각해서 화났어요. 몇 번이고 물어봤는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잖아요.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가 하는 배신감도 느껴졌고, 당사자 앞에서 본인 욕한 게 몇 번인데 그걸 함께했다는 것에 수치심도 들고, 열도 받고.”

“……네.”

“그쪽 심심풀이에 농락당했나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좀 열받긴 해요. 줄곧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주연우가 그 연우진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

그의 낯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의 낯이 눈에 띄게 굳었음에도 김유정은 여전히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는 손목의 밧줄에 살짝 미간을 좁혔다. 짧은 침묵 뒤에 다시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으니까 내가 너무 흥분해서 말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차근히 서술하듯 조곤조곤한 목소리였다.

김유정은 고개를 내린 채 손목의 밧줄을 푸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연우진은 제 가까이에 선 까만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비록 속였다지만 당신은 내게 해를 끼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줄곧 돕고자 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연우진 씨 말은 전혀 듣지 않고 내 감정만 쏟아 냈죠. 몰랐다지만 당사자 앞에서 당사자의 욕을 한 적도 많고-.”

손목에 그보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스쳤다. 자신보다 체온이 높은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손에 스칠 때마다 열이 옮아오는 것처럼 닿은 부위가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말아쥔 순간, 김유정이 말했다.

“그러니까 미안해요.”

김유정은 고개를 들어 연우진을 올려다보았다.

까만 눈동자가 올곧게 그를 응시했다. 화려하지 않은 색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인다고 생각했다.

“저 지금 사과하는 거예요.”

“…….”

연우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그녀가 제게 사과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굳은 그를 마주하며 그녀가 똑바로 물어왔다.

“연우진 씨는 제게 뭐 하고 싶은 말 있어요?”

그의 이야기를 묻는 목소리에 그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아, 풀렸다. 드디어 풀린 손목의 밧줄에 김유정이 멋쩍은 얼굴로 자신의 뒷덜미를 주물렀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니, 저도 연우진 씨 이야기를 들어줘야죠.”

그는 숨을 삼켰다.

“제가…….”

어릴 때는 많이 달고 살았던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나이를 먹게 된 뒤로 연우진은 누군가에게 사과할 일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타인과의 관계는 그에게 있어서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유정이 자신에게서 돌아서려 했을 때 긴 시간 해 본 적 없는 사과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때만 해도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한 건 아니었다. 단지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눈앞의 상황을 피하고자 저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말에 불과했다.

사실 여전히 그녀의 말을 온전하게 공감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녀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건 제 욕망만으로 뭉그러뜨릴 수 없는 것이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를 김유정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무겁지 않은 정적이 이어지자 연우진은 속삭였다.

“그냥 저는 그 순간이 좋았어요. 만약 진실을 알게 되면 더는 그렇게 있을 수 없게 될까 봐, 그래서.”

“네, 그랬군요.”

“……속여서 미안해요. 농락하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진심이에요.”

“네, 알아요. 용서할게요.”

“용서해 주는 거예요?”

“네, 연우진 씨가 진심으로 사과했으니까요.”

김유정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었다.

“그럼 이제 우리 화해한 거예요? 앞으로 잘 지내 봐요.”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젖은 뺨을 닦아 냈다. 손에 닿았던 온기가 뺨으로 옮겨졌다.

“……네.”

연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제 뺨에 닿은 손을 움켜쥐고, 작은 손바닥에 제 뺨을 기대었다. 그녀의 엄지손가락 끝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아, 삼키고 싶다.

살짝 벌어진 그의 입술 사이로 붉은 혀가 움직였다. 어쩐지 머릿속이 멍하고, 숨이 가빴다.

그는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다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연우진 씨?”

김유정은 어쩐지 이상한 듯한 연우진의 모습에 상태를 살피고자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을 꽉 잡은 그 탓에 쉽지 않았다.

그간 연우진은 김유정의 손을 잡을 때 이렇게까지 힘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연우진은 손을 으스러뜨릴 듯 꽉 붙잡고 있었다.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이 구명보트를 잡는 것처럼.

아픔에 미간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김유정은 그가 저에 수십 배는 되는 고통을 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가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한결 낮아진 음성이 새어 나왔다.

“하아…… 잡고 있으면 안 돼요? 놓으면-.”

“잠깐, 어디 아파요? 아니, 사람 피부가 왜 이렇게 차가워?!”

김유정은 뒤늦게 닿은 그의 뺨이 차갑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껏 긴장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이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손을 붙잡은 손이 잘게 떨렸다.

‘가이딩!!’

가이딩 부족이었다.

김유정은 접촉한 부위를 통해 가이딩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살펴보니 가이딩 부족은 물론이며, 그릇이 상당히 망가져 있었다. 용케 폭주의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구나 싶었다. 설마-.

“연우진 씨, 혹시 가이딩제 먹었어요?”

제 물음에 연우진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김유정은 곧바로 물었다.

“몇 급이요?!”

“α1…….”

“미치겠네!”

α1은 가이딩제 중 가장 센 것으로 상태가 최악일 때 복용하는 약물이었다.

교육 기관에서 배운 바로는 보통 폭주가 임박한 상태의 에스퍼에게 주입하는 용도였다.

큰 부작용은 물론이며, 가이딩 효과보단 폭주를 막으려는 용도가 더 커서 그릇이 깨지지 않도록 강제로 붙여 놓는 것에 가깝다고 했다.

김유정은 탄식했다. 어쩐지 이 상태까지 와 놓고도 폭주 증상이 안 보이더라!

아직 스파크가 없는 것을 보면 가이딩제를 섭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연우진을 힘껏 끌어당겨 내 뒤에 놓인 침대 위로 앉혔다. 키 차이가 큰 탓에 서 있는 채로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연우진 씨.”

김유정은 두 손으로 그의 뺨을 감싼 채 들어 올렸다. 시선이 맞춰지고, 울음기가 담긴 발간 눈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눈가가 달아오른 탓인지 감싼 그의 뺨이 뜨거웠다.

‘……내가 설마 제정신인 채로 이 말을 하게 될 줄이야.’

고개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지고 가까워진 시선 속에서 김유정이 입을 열었다.

“일단 입 벌려요.”

* * *

저번과 달리 강제로 상대의 입술을 벌릴 필요는 없었다.

입술이 맞닿기도 직전, 그가 가볍게 내 아랫입술을 깨물어 왔다. 사막에서 물을 찾아 헤매는 이처럼 그가 혀로 내 입술을 핥았다.

생소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응시한 순간, 선명한 금안과 마주쳤다.

곧장 입술이 겹쳐졌다. 나는 빠르게 많은 양의 가이딩을 흘려보내고자 집중했다.

제 뺨을 감싼 내 손을 쥐고 있던 연우진의 손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마치 사라질 것을 붙잡듯 그의 커다란 손이 내 팔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손이 바르르 떨려 왔다.

마치 이 이상 더 힘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이라도 하는 듯 그의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그의 눈은 진득한 욕망과 열기로 아른거렸다.

나는 그대로 한쪽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눈가를 덮었다. 시선이 가려지고, 팔랑거리는 긴 속눈썹이 내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읏-.”

지독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듯 그의 혀가 좁은 입 안을 헤집었다. 서로의 타액이 뒤섞이고, 여린입천장이 쓸어내려졌다.

실시간으로 빠져나가는 가이딩과 낯선 감각에 나는 숨을 헐떡였다.

그는 내 숨이 가빠지면 살짝 입술을 뗐다가 다시 붙여 왔다.

숨이 막힐 것 같던 전과 달리 비교적 호흡이 수월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어쩐지 머릿속이 뜨거워져 내가 제대로 가이딩을 하고 있는 게 맞는 것인지 헷갈렸다.

“잠, 깐…….”

그의 손이 팔 부근에서 허리 쪽으로 내려와 나를 좀 더 끌어당겼다. 침대에 앉은 그와 입을 맞추기 위해 상체를 숙이고 있던 나는 그대로 그의 다리에 무릎을 댄 채 몸을 기댔다.

그를 잠시 멈추기 위해 혀를 깨물었지만, 그는 좀처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 상태가 안 좋은 상태에서 많은 가이딩이 들어간 탓에 다소 흥분한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긴 하다. 그 이상 가지 않은 게 어디인가.

몸이 그 상태였음에도 그는 지금 본능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서로의 파장이 섞였다가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나는 에스퍼의 파장을 강제로 안정시키고자 집중했다.

어느 정도 그릇이 회복되고, 가이딩이 찼을 무렵에서야 그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쪽, 떨어지기 직접 입술이 다시 한번 가볍게 맞부딪히며 긴 입맞춤이 끝났다. 입술이 떨어지고 얼굴 사이의 거리가 벌어졌다.

“하아…….”

그의 입술 사이에서 더운 숨이 흘러나왔다. 흥분한 탓에 붉어진 눈가와 번들거리는 입술이 다소 선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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