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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87화 (8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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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87화

내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연우진은 흉흉하게 떴던 눈을 누그러뜨리며 나를 조심스럽게 멀쩡한 2층 위로 내려놓았다.

가운데가 뻥 뚫린 1층 바닥을 내려다보며 나는 아래층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도가빈은 저를 향한 살기가 사라지자 놀랍다는 듯이 나와 연우진을 쳐다보더니 손뼉을 쳤다.

“와, 메시아 쪽에서 사육사 하나 제대로 들였네!”

마음 같아서는 욕하고 싶었으나, 나는 이곳의 하나뿐인 상식인으로서 인내했다.

“닥쳐요. 얌전하다가 왜 갑자기 사람을 자극해서 이 사단을 만들어요? 혹시 가빈 씨 급발진이라는 이름의 병 있어요?”

정정하겠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욕은 이성과 별개의 것인 모양이다.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일을 키웠다고는 하나, 지금 눈을 내리깐 채 얌전히 내 곁을 지키는 연우진보단 생글생글 웃고 있는 도가빈이 더 얄미워 보였다.

“예쁜아, 화났어? 화 풀어~ 예쁜이가 딱 이거구나 하는 표정을 지어서 궁금해서 그랬지.”

“가빈 씨는 싸우기 싫다면서 입으로만 평화주의자인 것 같네요.”

“나는 예쁜이가 마음에 드는데.”

“그거 안타깝네요. 제 호감도는 지금 실시간으로 내려가고 있어서.”

참고로 시작점은 0이었다.

나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는 사이 도가빈은 깜빡이며 불빛을 내는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곧 다른 볼일이 생긴 듯 손을 휘저었다.

“음- 아쉽지만 일이 생겨서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우리 또 만날까? 그때는 우진이 빼고.”

“가긴 어딜 가요. 마침 제 질문 차례였으니 답변은 해 주고 가요.”

“……예쁜이는 어딜 가도 손해 안 보고 살 것 같아서 안심되네.”

다행이라는 말과 달리 표정이 상당히 떨떠름했다. 머지않아 도가빈이 좋다며 내게 질문하라고 했고, 나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도이현 씨의 외양이 가빈 씨와 닮았나요?"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터무니없는 가설이 떠올랐다.

레이몬드와 도가빈의 공통점, 레이몬드의 입에서 차해연이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점.

도가빈이 폭주를 일으키고 죽었던 시점과 내가 빙의되었던 시점, 그러니까 헤르만 제국으로의 게이트가 열렸던 시점이 같았다는 것.

"그러니까, 머리카락이나 눈 색이요.”

어쩌면 도이현이 레이몬드일지도 모른다고.

내 물음에 도가빈은 입술을 달싹였다. 마치 내가 어떤 의미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짐작이 간다는 듯 그의 입가에 미소가 퍼져 나갔다.

죽었다는 사람이 다른 세계에서 그것도 다른 이름으로 살아 있다는 건 보통 있을 수 없는 일이나, 그것만큼 있을 수 없는 일을 나는 이미 겪은 뒤였다.

‘내가 아멜리아가 되었던 것처럼 도이현 역시 레이몬드가 된 거라면?’

그런 생각도 해 봤으나,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가빈이 보여 준 휴대폰 사진 속 도이현의 외양은 조금 앳되긴 했으나, 레이몬드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나는 형의 시신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어. 그날 닫힌 게이트 안에 두고 왔으니까.”

닫힌 게이트에서 돌아온 인간은 없다.

그렇기에 게이트 내 실종자는 사망자로 표기된다. 그러나 그 사실은 이미 앞서 나로 인해 무너졌다.

“허…….”

헛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한 채 나는 도가빈을 응시했다.

그는 지금 내게 알려 주고 있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 * *

도가빈이 떠난 뒤 나는 연우진에게 7년간에 대해 말해 주었다. 전부 말한 건 아니었다.

7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고, 나는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대로 줄였다.

이야기를 끝맺기 직전, 나는 최근 꿨던 꿈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도이현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게 레이몬드라는 헤르만 제국의 황태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말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연우진은 질문 하나 없이 조용했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를 전부 마치자, 연우진은 도이현에 관해 더 자세히 말해 주었다.

도이현이 정의롭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는 레이몬드가 아닌가 싶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도가빈을 보고 레이몬드와 닮았다고 느꼈던 것도 외양보단 분위기나 성격 탓이 컸기 때문이다.

“가빈 씨는 레이몬드 쪽이 자신을 흉내 내는 거라고 했지만, 만약 정말로 도이현 씨가 레이몬드라면 흉내 낼 이유가 있을까요?”

“흉내 낼 수밖에 없었겠죠. 기억을 잃었을 테니까.”

“기억을 잃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황당할 법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연우진은 내게 사실이냐는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추측을 이어 나갔다.

“도이현은 다중 능력자예요. 능력 중 하나는 대상의 상태를 볼 수 있는 ‘눈’이고, 다른 하나는 전에 말한 복사인데. 전자의 능력은 거의 쓸모가 없고, 복사 능력의 경우 조건이나 부작용이 많아서요. 그래서 그런 특이 능력을 갖췄음에도 A급이었어요.”

“부작용? 설마 그 부작용이 기억을 잃는 거였나요?”

그렇다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려 그나마 기억에 남은 이들 중 익숙한 이를 흉내 낸 거라는 말이 된다.

어디까지 기억을 잃어버렸는지는 모르나 꿈속에서 아멜리아를 차해연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것을 보면 차해연 가이드 역시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고.

“네. 제가 알기로는 보통 없어도 그만인 사소한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탁. 그의 검지가 노크하듯 가볍게 소파 위를 두드렸다.

“재각성을 해 등급이 바뀌었으니 능력의 가능성이 커진 만큼 부작용 또한 커진 것일지도 모르죠. 아니면 그쪽에서 능력을 과사용 했거나.”

“재각성?”

“레드 게이트 때요. 제대로 된 검사를 받은 게 아니니 제 추측에 불과하지만.”

“……?”

재각성하면 무슨 게임 칭호처럼 머리 위에 뭐라도 뜨나? 아니면 진화의 빛이라도?

검사를 받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등급이 바뀌었다고 추측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자, 연우진이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지금 누구는 답답해 죽겠는데 웃어? 이게 웃겨?’

그런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던 모양이다.

연우진의 얼굴에서 빠르게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어색하게 뒷덜미를 매만지며 말을 이어 나갔다.

“복사 조건 중 하나가 상대방의 능력치가 자신보다 낮아야 하는 거라, 원래 형은 제 능력을 복사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레드 게이트 때 제 능력을 하나 복사해 갔으니 등급이 바뀌었다고 일방적으로 짐작했죠.”

“혹시 그거 센터에 보고했어요?”

내 물음에 연우진은 말없이 웃었다.

보고 안 했구나.

별생각 없이 쳐다본 것이었는데 그런 내 시선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연우진은 지레 찔린 사람처럼 길게 덧붙였다.

“확실한 것도 아니고. 말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예요. 시신조차 남지 않아 재각성 관련으로 부검을 해 볼 수도 없었을 테니까. 아, 이제는 살아 있을지도 모르니 시신조차 틀린 말이 되겠지만.”

“네, 그냥 한번 물어본 거였어요.”

“……혹시 저한테 실망했어요?”

“제가 센터 책임자도 아니고 그런 거로 실망할 이유가 없죠.”

그리고 연우진이 바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주연우 때는 어떻게 숨겨 왔나 싶을 정도로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눈치라도 좀 보더니 내가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는 대놓고 그러더라. 어디까지 받아 줄 수 있을지 재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결론은 도이현은 나처럼 빙의 같은 게 아닌 본인일 확률이 높으며, 레이몬드가 도이현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어? 잠깐.’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나? 그럼 헤르만 제국에 레이몬드라는 사람이 어떻게 있는 거지?

레드 게이트가 일어난 것은 8년 전이었다.

만약 그곳과 이곳의 시간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도이현이 레이몬드가 되기 전에도 헤르만 제국의 황태자는 존재해야 했다.

그 사실을 연우진에게 말하자 그는 도가빈의 이름을 꺼냈다.

“당시 도이현이 능력을 복사한 에스퍼는 저 말고도 한 명 더 있었는데, 도가빈이었어요. 그 당시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그 사건 이후로 능력이 반쪽짜리가 되었죠.”

그러고 보니 도가빈과의 대화 중에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기억을 읽는 능력과 그게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

“도가빈의 능력은 정신과 관련된 대부분의 능력이에요. 카페에서 길드원들이 물리적인 공격 없이 쓰러졌죠? 그건 뇌를 수면 단계로 조정한 거예요.”

“아하, 그래서.”

“자신의 능력치보다 낮은 상대라면 어느 정도 기억을 조작하거나 다수를 세뇌하는 것 또한 가능해요. 대가가 커서 정작 본인은 잘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그거 되게 무서운 능력…… 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그대로 굳었다.

그러니까 지금 도이현이 제국 사람들을 세뇌하고 레이몬드라는 인물의 자리를 차지한 거란 소리였다. 아니, 애초에 레이몬드라는 인물이 존재하긴 했을까?

나는 내가 그간 알아 왔던 레이몬드를 떠올렸다.

첫인상은 개판이긴 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내게 잘 대해 주었다.

내가 힐러였던 것도 있겠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나를 가장 먼저 보호했고…… 솔직히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정말 이상한 점이 없었던가?’

레이몬드 마빌 헤르만.

그는 마법사가 아닌 검사였다. 그에겐 한 가지 선천적인 병이 있었는데 마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한 번씩 고명한 마법사들을 불러 모아 치료를 받곤 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내가 힐러였기 때문이다.

아멜리아의 능력은 생명력을 흡수하고 전달하는 힘.

그렇기에 병 역시 치료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레이몬드는 웃으면서 지금의 너는 하지 못할 거라고 답했다.

그때는 저놈이 또 시비를 거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우진 씨.”

“네?”

“능력을 사용하는 에스퍼가 가이딩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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