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91화
소중한 이를 되찾고 싶어 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정작 그들의 구심점인 이해수는 그런 소중한 이 또한 없었다.
악의에 반드시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일을 벌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을 위해 이해수는 차해연의 시신이 제 수중에 있음에도 차진서에게 말하지 않고, 그의 조력을 받았다.
‘차진서. 그냥 잊고 살지 그랬어.’
하긴 자신이 할 말은 아닌가.
도가빈은 조금 기분이 묘해졌다. 그나 차진서나 제 가족의 죽음을 믿지 못한 것은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바라는 게 생존 가능성이냐 완전한 끝이냐의 차이였다.
“아, 그때였구나!”
쉴 새 없이 떠들던 이해수가 돌연 손뼉을 쳤다.
“그 여자 어디서 봤나 했더니 센터 소속 홍민식 에스퍼 때였네. 예전에 관심이 있다기에 폭주 촉진 약물을 조금 나눠 줬었거든요.”
“여자?”
시큰둥한 낯으로 대답하던 도가빈은 이어진 음성에 입매를 굳혔다.
“그날 배에서 사회자를 죽였던 여자요.”
* * *
비전조 게이트.
재난처럼 예고 없이 나타나는 게이트의 발생으로, 민간인의 생존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게이트였다.
낮은 생존율만큼 발생률도 낮다는 게이트. 그 비전조 게이트를 나는 올해만 두 번째 겪는 중이었다.
그것도 피크닉 바구니와 돗자리까지 펼쳐서.
“와…… 오늘따라 홍차 향이 좋네.”
찻잔을 쥔 채 나는 아련한 눈으로 바닷가를 응시했다.
던전 구역은 한정되어 있다고 했으니 이게 바닷가인지 호수인지는 모를 노릇이나, 다른 세계 던전이라고 해도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였다.
어찌 되었든 물은 한없이 맑고 푸르렀기 때문이다.
‘아닌가? 하긴 저게 진짜 물일지 다른 무언가일지 어떻게 알아.’
호록. 나는 푸른 풍경을 배경 삼아 차를 마셨다.
온도 조절 아이템을 끼고 있었기에 해가 쨍쨍한데도 선선한 바람 속에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이렇게 된 경위를 설명하려면 대략 하루 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 * *
「저는 좋아해요.」
연우진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문득 머릿속에 예전에 질문했던 것이 떠올랐다.
「……제 착각이라면 죄송한데, 연우 씨, 혹시 저 좋아하세요?」
그때의 질문에 대한 답변 같은 말에 굳어 있던 것도 잠시, 내 쪽에서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나는 금세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삼일 뒤.
“그거 틀림없이 연애적인 의미일걸. 남자친구도 있었으면서 그걸 몰라?”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성지현이 돌연 미간을 와락 구겼다.
“일단 함시혁을 남자친구라고 치진 말자. 걔 만나 봤는데 별로더라.”
“뭐야, 니가 그 자식을 왜 만났는데?”
“천오백만 원 받느라. 아직 삼 분의 일밖에 못 받긴 했는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최근 있었던 일을 다 설명하자니 기력이 부쳤다.
근래 늦은 밤을 제외하면 거의 내내 내 곁을 지키던 연우진은 친구와 둘이서만 대화하고 싶다는 내 말에 보호 장비를 안겨 주었다.
또한 그것만으로는 불안했던 건지 카페 밖에 사람을 배치하기까지 했다.
저번 일을 고려한 것인지 정신계 에스퍼에 대한 방비도 단단히 해 놓아 현재 카페 안은 거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나도 듣고 나서 이건 고백이고, 나를 그런 의미로 좋아하는 것 같단 생각을 하긴 했는데, 가이드와 에스퍼 사이의 관계니까 혹시라도 다른 의미로 말한 걸 수도 있잖아.”
아침 일찍 영업 시작 전부터 성지현을 부른 까닭은 게이트에 관해 묻기 위해서였으나, 지금까지 어디 있었냐는 물음에 답하다 보니 어느새 대화 주제가 바뀌어 있었다.
“내가 비각성자라서 이해 못 하는 건가? 아닌데. 한세영은 신경도 안 쓰고 잘만 연애하던데 뭘 그렇게 피곤하게 따지고 들어.”
성지현이 답답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뭐든 결국 중요한 건 네 마음 아니야?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사실 3일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했고, 만약 정말로 그런 의미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꽤 전부터 나 역시 연우진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 감정이 연애적인 의미인지 인간으로서 가지는 호감인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뿐이지.
“정 모르겠으면 그 사람이 너 말고 다른 사람한테 너한테 하는 것처럼 대하면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봐.”
“상상이 안 가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는 언제 튀어 나갈지 불안한 맹견 같은 사람이라.”
“혹시 전담 에스퍼가 아니라 개를 키우고 있는 거니? 어쨌든 한번 생각해봐.”
나는 연우진이 그간 내게 보였던 모습을 떠올렸다.
가이딩으로 흥분한 와중에도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좋았다.
더 어려운 부탁을 할 수 있는데도 고작 이름 불러 주는 게 소원이라고 하는 거나, 가끔 남들 앞에서 제 성질대로 굴다가도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피는 게 귀여웠다.
그걸 다른 사람에게 한다고 하면…….
“답 나왔네.”
내 표정을 본 성지현이 실소를 터뜨렸다.
성지현 말대로 답이 나왔다.
죽음에 근접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니, 칠순 잔치에나 할 법한 말을 할 때부터 깨달았어야 했는데.
“응, 좋아해.”
입 밖으로 흘러나온 대답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걸 나한테 말해 봤자 소용없지. 첫사랑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고민해?”
첫사랑 맞는 것 같은데.
“그래서 어쩔 거야? 고백하려고?”
“고백은 처음 해 보는데 일단 장미꽃 백 송이부터 준비하면 될까? 아니면 마차 같은 자가용 먼저 준비해야 하나? 혹시 빌리는 데 얼마 정도 하는지 알고 있어?”
“……프러포즈해? 괜한 선물 준비하지 말고 그냥 입만 움직여.”
“하지만 지금까지 상대방한테 받은 게 많은데. 그리고 뭘 주면서 하는 편이 상대방도 기뻐하고 좋지 않나?”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데?”
연우진이 뭘 좋아하더라.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굳이 꼽자면 자주 시키는 자몽 허니 블랙 티였지만 그걸 고백 선물이라고 주는 건 아닌 것 같다.
“뭐 하면 선물은 나라는 말이라도 해 보든가.”
“지현아, 혹시 요즘 일이 많이 힘들어? 그래서 미친 거야?”
“뭐가 어때서? 그쪽은 에스퍼고 넌 가이드잖아. 최대 접촉이 아직 3단계라며? 그 이상이라도 나가 보는 건?”
성지현이 시큰둥한 낯으로 휴대폰을 매만졌다. 더는 이에 관해 이야기하기 싫다는 태도였다.
“누군 바빠서 연애도 못 하는데…… 야, 상담 비용으로 쿠아 열매 청 다섯 통 내놔.”
“내일은 고향에 내려가 봐야 해서. 만들면 너한테 제일 먼저 보내 줄게.”
“좋아. 그러고 보니 네 전담 에스퍼 누구야? 내가 아는 에스퍼인가?”
“아, 말 안 했었나? 나 메시아 길마랑 계약했어. 1년 조건으로.”
“아하~ 연우진 말이구나? 그거 대단…….”
덜그럭.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리가 컸는데. 액정 깨진 거 아니야?
그러나 성지현의 시선은 떨어진 휴대폰이 아닌 나를 향하고 있었다. 커진 동공이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아. 그간 여러 일이 겹쳐 중간 과정을 말하지 않았다는 게 뒤늦게 떠올랐다.
그러나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잊었던 본론부터 들어가려고 했다.
출근 전에 잠깐 들린 거라 성지현은 다시 연구실로 가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됐어. 그보다 너한테 게이트에 관해서 물어볼 거 있다는 거-.”
그러나 정작 바쁘다던 성지현은 본론을 들어갈 생각이 없는지 갑자기 랩을 시작했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니까? 네가 왜 메시아 길마 전담 가이드인데?! 그렇구나. 드디어 참다못해 연우진을 죽이기로 한 거야? 가까운 곳에서 기회를 노리려고? 야, 그러다가 네가 뒤진다니까? 아니, 잠깐…… 설마 지금까지 말한 전담 에스퍼가 그 연우진이었어? 너 메시아 길마랑 연애해??”
“안 하는데.”
“고백한다며! 그럼 곧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잖아!”
성지현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한세영이라면 모를까 성지현이 소리 지르는 일은 흔치 않았기에 나는 당황하며 성지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왜 그래?”
“지금 왜 그러냐는 말이 나와? 연우진 이야기만 나오면 발작했던 친구가 어느샌가 사랑이 오가는 사이가 되었다는데 그럼 안 놀라? 내가 최근 회의에서 연우진의 이름을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지겹게 들었는데! 그런 살아 있는 역사 같은 놈이 내 친구의 전담 에스퍼라고? 와 인생 진짜 흥미롭네. 소설 제목으로 쓰자.”
“회의는 또 왜?”
인생이 많이 힘든가 싶어서 어제 구웠던 잼 쿠키를 입에 물려 주었다. 바삭, 입에 들어가자마자 쿠키가 반으로 쪼개졌다.
“요즘 게이트 발생 횟수가 늘었거든. 뭐 원래 늘었다 줄었다 해서 별일 아닐 것 같긴 한데 C구역 근처라 의례상 회의한 거지.”
“C구역이면 대격변이 일어났던 구역 아니야?”
“어. 그런데 C구역에 무슨 싹이 나는 일이 일어나서 소집한 거지 정작 게이트 파장이 심한 곳은 C구역이 아니라 별 연관은 없을 듯. 사실 발생한 게이트들도 위험도가 높진 않거든. 대부분 하급, 높아 봤자 중하급이라 일단 지켜보자는 결론이야.”
결과적으로 야근으로 이어졌다며 성지현이 탁자 위에 머리를 박았다. 여느 때와 같은 한탄이었지만, 나는 가벼이 들을 수 없었다.
“성지현.”
“왜.”
“만약 레드 게이트가 다시 터지면 어떨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