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92화
“죽지.”
“아니, 좀 진지하게.”
“진심인데? 8년 전과 같은 형태라면 레드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기까지 시간이 걸릴 텐데…… 만약 마물이 밖으로 튀어나오기 전에 에스퍼들이 들어가서 레드 게이트 입구가 닫히면, 우린 게이트가 무사히 클리어 되기만을 바라며 기도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죽겠지.”
레드 게이트의 경우, 다른 게이트와 달리 일정 인원이 들어가면 게이트를 클리어 할 때까지 나올 수 없었다.
클리어 되지 않았음에도 레드 게이트가 다시 열리는 경우는 딱 하나뿐이었다. 들어간 이들이 전멸했을 때.
대격변 때는 레드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까지 거대한 게이트에서 마물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고, 그밖에 다른 게이트에서도 마물이 나와 안팎으로 문제가 많았다.
그때 레드 게이트를 닫고 나온 연우진을 비롯한 상위 에스퍼들이 그 나머지를 다 정리했던 거고.
‘다시 생각해 보니 놀랄 만도 하네…….’
한집에서 지내서 잊고 있었는데 연우진은 영웅이었다. 지금 세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대단한.
“그럼 그 이야기 말고, 던전화 현상이라고 알아? 게이트 안의 마물이 득실거리는 곳을 보통 던전이라고 부르잖아.”
“뭘 새삼스럽게. 던전화 현상은 밖에도 있어. 네 카페 주 상품인 쿠아 열매도 던전화의 산물이잖아.”
게이트로 인해 영향받은 땅이 바뀌는 것을 통틀어 그렇게 부른다고 듣긴 들었지. 성지현이 피곤한 낯으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게이트를 오랫동안 닫지 않으면 생기는 문제가 그거야. 강력한 게이트일수록 주변 환경과 동기화 현상이 빠르게 일어나거든. 게이트와의 연결이 긴밀해 봐야 좋을 건 없어.”
“……그 연결이 제대로 안 끊기면?”
“말했잖아. 주변 환경에 영향…… 아?”
한참 설명하던 성지현이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사람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C구역 이상 현상?”
“혹시 C구역 근처에서 게이트 발생 이외에 파장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는 곳이 어디야?”
“E구역.”
쿠아 열매 생산지였다.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물었다.
“혹시 모르니까 E구역 폐쇄하면 안 되냐고 하면 미친 소리겠지……?”
그러자 성지현이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네가 방금 한 소리가 미친 소리가 맞다는 대답이었다.
하긴 고작 의심 하나로 구역 하나를 통째로 폐쇄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증거라고 해 봐야 대부분이 심증뿐이고.
“그보다 너 거기 폐쇄하면 쿠아 열매는 어디에서 얻게? 장사 안 해?”
“다른 구역에서도 재배가 가능해져서 그건 문제없어. ”
“그래? 아, 나는 이제 연구실로 돌아가야겠다. 일단 다른 사람들한테도 조언은 구해 볼게.”
“응, 바쁜데 시간 내 줘서 고마워. 아, 스튜 가져갈래?”
“어, 맛있더라.”
그렇게 성지현이 떠난 뒤 가게 문을 열었다.
청이나 잼의 경우 주문 판매 위주로 돌린 탓에 문제가 없었지만, 파이와 음료는 다른 문제였다.
오랜만에 SNS에 가게를 연다고 써 놓은 탓인지 아침 일찍부터 손님들이 몰려들었고, 나와 강민지는 쉴 새 없이 일했다.
알바생인 강민지에게는 출근하자마자 카페 단골이었던 주연우가 연우진이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연우진이 카페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이상 자주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내내 강민지는 사실 지구는 네모나다고 들은 사람처럼 혼란스러워하다가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멀쩡해졌다.
일단 어느 정도 급한 불은 껐다. 주문이 밀린 청과 잼의 대량 생산도 끝내 놓은 상태였고, 쿠아 파이의 경우 판매 일수도 일주일에 세 번으로 줄여 그때만 판매하기로 했다.
몇 시간만 지나도 바로 파이가 동났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파이를 굳이 굽지 않은 날에는 음료 제조나 응대만 하면 되었기에 바쁜 날에는 강민지에게 가게를 맡기고 나올 때도 있었다.
「사장님, 사랑해요. 우리 평생 함께해요.」
급여에 인센티브를 얹어 주자 강민지가 대뜸 진지하게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그만큼 벌기도 하고, 일하기도 하니 내 딴엔 적합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겐 감회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다 시골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전 배 사건으로 인해 부모님께 한 번 집에 들르겠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최근 내 옆을 껌딱지처럼 지키던 연우진 또한 나를 따라왔다.
솔직히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다. 내 소식을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한세영도 각성자 소식은 직접 전하라 해서 아직 부모님은 내 가이드 발현 사실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뜸 전담 에스퍼를 데리고 가기도 뭐 하지 않나.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어떡해요.”
하지만 그 말을 하자마자 연우진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졌다.
“아니, 제가 가는 구역이 어디인지 아시잖아요? 안전 구역 중에서도 조용하기로 유명한 곳에 사람도 거의 없다니까요? 그리고 언제까지 이럴 건데요. 평생 우진 씨가 저 지켜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내가 가진 아이템만 해도 몇 개인가.
이쯤 되면 걸어 다니는 인간 병기인데 솔직히 나보다는 아무것도 얽힌 것 없는 민간인이 더 세상을 살아가기에 위험할 거다.
좀처럼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드니 연우진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여느 때보다 활기를 띠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할 수 있으면 그래도 돼요?”
“……예?”
“평생이요.”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잠깐의 정적 뒤에 나는 차분한 낯으로 손을 내밀었다.
“우진 씨 그냥 같이 갑시다. 교통비 아끼고 좋네요.”
그렇게 나는 몇 달 만에 만나는 가족에게 뒤늦은 각성자 발현 사실에, 전담 에스퍼 소식.
온갖 서프라이즈를 다 들고 가는 불 속성 자식이 되었다.
* * *
-콰앙!
아무래도 뜻밖의 일을 겪는 것은 내가 먼저였던 모양이다.
도착하기에 앞서 게이트가 터졌다. 보통 게이트가 발생한 장소는 민간인 출입 금지로 통행이 불가하게 막아 놓으니 이는 비전조 게이트라는 뜻이 되었다.
귀성길 차 막힘이나 교통사고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설마 게이트 사고가 일어날지는 몰랐기에 나는 한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누나, 바구니는 여기에 놓으면 될까요?”
그런 나와 달리 연우진은 갑작스러운 게이트 발생으로 인해 바위에 박혀 박살 난 자동차에서 내 짐을 꺼냈다.
돗자리와 피크닉 바구니. 오랜만에 만날 어린 남동생을 위하여 밤새워서 구운 간식들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 사람 뭐 하는 거지.’
내가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연우진은 평평한 땅에 돗자리를 펴고 나를 앉혔다. 그리고 그 돗자리 위에 내가 가져온 물건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구웠던 생크림 스콘에 쿠아 열매 잼, 클로티드 크림, 보온병에 든 홍차와 아껴 놓았던 찻잔. 배고프면 먹으려고 했던 샌드위치까지.
연우진은 무슨 소꿉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정갈하게 돗자리 위에 늘어놓고는 이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곳 던전 보스가 저 물속에 있는 것 같아서요.”
“네? 아, 맞죠. 게이트니까 당연히 뭔가가 있겠죠.”
“돗자리에 깔아 놓았으니까 제가 올 때까지 돗자리 위를 벗어나지 말아 주세요. 빨리 돌아올게요.”
대체 뭘 깔았는데. 먹을 거? 나한테 찻잔은 또 왜 쥐여 주는 건데.
“네? 어, 다녀오세요……?”
당황스러운 와중에 대답은 해야 할 것 같아 얼결에 배웅 인사를 하니 연우진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다녀올게요, 누나.”
그렇게 말한 연우진이 사라지고 주변이 고요해졌다. 잠시 멍하니 찻잔을 쥐고 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보온병을 열어 홍차를 따랐다.
“이런 미친 세상…….”
그렇게 예기치 못한 피크닉이 시작되었다.
* * *
인간이 거의 없는 한적한 시골 구역.
안전 구역 중 하나이자, 자연 보호 구역인 이곳은 다 합해도 집이 열 채가 되지 않았으며 편의 시설은 물론 대중교통조차 잘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고향에 막 돌아온 D급 에스퍼는 절망에 빠졌다.
“나는 그냥 귀향 왔을 뿐인데…….”
D급 에스퍼는 3년 전만 해도 공시생이었다. 각성자치고는 늦은 나이에 에스퍼가 된 그는 발현과 동시에 그간 해 왔던 공부를 때려치웠다.
공부할 필요가 있나? 그런 것보다 더 명예롭고, 화려한 삶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세계를 지키는 영웅이 되어 명성과 막대한 양의 부를 얻자! 그게 그의 포부였으며, 앞으로 펼쳐질 거라 믿었던 삶이었다.
그러나 포부는 3년까지였다. 노력해서 정식 길드에 들어갔으나, 그곳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게이트에 들어갈 때마다 목숨을 걸고 유언서를 썼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떠들던 동료의 죽음 역시 일상이었으며, 몸이 성한 날이 드물었다.
게이트에서 돌아왔는데, 희생자나 동료를 구하지 못한 채 살아 돌아왔다며 비난받는 일도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로 오랫동안 현장에서 활동하는 놈들은 미친놈들이었다. 정의에 미쳤거나, 그냥 미친놈이거나.
아, 생각해 보니 계약 기간이 아직 안 끝났다는 예도 있긴 하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3년을 버티고 그는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리고 부모님을 도와 농사나 짓자며 고향으로 내려온 순간, 몇 년간 게이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고향에 게이트가 터졌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게이트!!’
재난 알림이나 구역이 제한되지 않은 것을 보면 비전조 게이트임이 분명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에 난데없이 펼쳐진 바닷가. 억울함과 공포로 울분을 삼키던 그는 저 말고도 이곳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 한 명이었는데 저처럼 휘말린 것 같았다. 제 존재를 알리고자 힘껏 팔을 흔들던 그는 이어 보이는 풍경에 손을 스르륵 내렸다.
그녀는 화사한 색감의 돗자리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옆에 놓인 나무 바구니 안에는 두툼한 베이컨이 든 샌드위치와 표면이 노릇하게 구워진 파이, 스콘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나올 것 같은 음식들로 가득했다.
“……피크닉?”
혹시 신기루인가. 그는 두 눈을 거칠게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