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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94화 (94/119)

S급 자영업자

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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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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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조 게이트에서 만난 남자의 집은 부모님의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건물이었다. 진짜 이웃이었네.

완전히 귀향했다던 저쪽과 다르게 나는 잠깐 온 것에 불과했지만.

오랜만에 찾은 시골집은 기억 속보다 작게 느껴졌다. 원래 세계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바로 짐 정리하고 여기로 내려왔었는데…….

나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아련한 눈으로 집을 쳐다보았다.

그때만 해도 과노동은 이제 지쳤으니 부모님의 밭일을 도우며 다시 공무원 준비라도 해 보려고 했었지. 몇 달도 안 있어서 다시 자영업 하겠다고 도시 구역으로 올라오고.

‘인생 참 신기하네.’

그때만 해도 집을 족족 부숴 버리는 연우진을 습관처럼 욕했었다.

연이은 불행에 다음번에도 망하면 그때는 그냥 다 포기하고 내려오자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카페도 잘 되어 가고 있는 데다, 그 연우진까지 데리고 부모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던 탓에 들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마당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현관문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확한 날짜는 말하지 않았어도 언제쯤 가겠다고 언질은 해 놓았으니 문만 두드리면 될 일이었다. 쉬운 일인데 어쩐지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양심에 찔려서인가?’

하긴 그렇게 집을 나온 뒤로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참회의 의미로 가져온 선물을 두 손에 꽉 쥔 채 현관문과 무의미한 눈싸움을 시작했다.

몇 분가량 그러고 있을 무렵, 현관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집에서 나왔다.

“글쎄 이 근처에 게이트가 터졌다잖아! 유하 너 어디 갈 생각…… 응? 거기 누구…… 아이고!”

숏컷을 한 중년의 여자는 오랜만에 봤음에도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엄마.”

막상 이렇게 보니 뭉클한 기분이 들어 작게 읊조리자, 엄마가 놀란 얼굴로 내 쪽으로 뛰어왔다.

“유정아!!”

“나 왔어. 아, 이건 선물인데…….”

“이게 아주!!”

짝! 등에 묵직한 타격이 내려앉았다.

아, 맞을 것 같긴 했지. 고통에 절로 상체가 숙여졌다.

“이게 진짜! 응?! 누가! 어?! 누가 선물 달래? 그으렇게! 그렇게! 오라는 데도 한 번을 안 오더니!! 부모가 딸자식 소식을 남한테 들어야겠어?! 아니, 세영이가 남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 아니, 잠, 악! 잘못했어요.”

“카페 개업 때도 안 와도 된다고 하고! 아주, 다 컸어?! 응? 그 건물도 엄마 친구한테 부탁해서-.”

짐승의 포효처럼 거친 목소리가 나를 질책했다. 그런 밖의 소란을 들은 건지 열린 현관문으로 조그마한 남자애 한 명이 제대로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도도도 달려 나왔다.

“엄마! 누나 왔어?!”

아무래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제 몸만 한 토끼 인형을 질질 끈 채 나온 김유하가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였다.

“유정이 누나다!”

그러고는 곧장 내 허리에 매달렸다. 짝! 짝! 위에서는 쉴 새 없이 매타작이 떨어졌고, 아래에는 어린애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에 일단 엄마부터 말리고 보자고 생각한 순간, 위로 그림자가 지더니 단단한 팔이 엄마의 손을 막았다.

“일단 좀 진정하시는 게-.”

연우진이었다. 고민하다 나선 듯 딱딱하게 굳은 낯에 살짝 어색함이 비쳤다.

연우진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이 안 가서 도착 직전 무슨 일이 벌어져도 가만히 있어 달라고 몇 번이고 말했는데 아무래도 그 탓인 것 같았다.

나보다 많은 짐을 든 그의 팔에는 나무 위의 열매처럼 쇼핑백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

메두사를 본 이가 이러할까. 엄마는 마치 돌이라도 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낯으로 말없이 연우진을 올려다보았다. 그건 내 허리춤에 매달린 김유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 같으니 이 틈을 타 소개를 해야겠다. 일단 연우진부터 소개하고 보자. 말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나보다 앞서 크게 소리쳤다.

“여보, 당장 나와 봐요!! 유정이가 결혼할 사람을 데려왔어!!”

……예? 결혼이요?

“누나! 결혼해?!!”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김유하가 번쩍 고개를 들더니 연우진을 노려보았다.

나는 당황하여 입만 뻐끔거렸다. 내가 말문이 막힌 사이, 엄마는 몇 번 더 소리치고는 연우진의 팔을 덥석 잡았다.

“아유, 얼굴이 훤칠한 게 빛이 나네! 무슨 연예인 그런 거예요? 우리 유정이랑 언제부터 만났고?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이름은 뭐예요?”

“……연우진, 이요.”

“하이고, 그래요? 우리 유정이가 백날 말하던 에스퍼랑 이름이 똑같네! 이것도 운명인가 봐!”

말하던 게 아니라 욕하던 거겠지. 그리고 똑같은 게 아니라 본인이었다.

“그리고 유정이와 결혼은 언제 한다고?”

“결혼……?”

연우진의 귓바퀴가 붉게 익었다. 엄마는 그런 연우진을 마치 보물 감상하듯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돌연 홱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유정이 너는 이런 신랑감이 생겼으면 재깍 보고하러 왔어야지.”

엄마는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자식을 북 치듯 쳤던 게 신경 쓰였는지 뒤늦게 맞느라 흐트러진 내 옷을 정리해 주었다.

그런 엄마의 반응을 보고 어린 남동생은 초조하게 발을 구르더니 소리를 빽 내질렀다.

“누나! 나는 저 사람 인정 못 해! 절대 안 돼!!”

“하이고, 니가 인정 못 하면 뭐 하게?”

“하지만 저 사람 엄청 위험해 보인단 말이야!”

유하가 사람 보는 눈이 있네.

아이의 처절한 반대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위험할 정도로 잘생기긴 했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유하 너, 예의 없게 굴면 혼난다. 저 사람이라고 부르지 말고 형이라고 불러. 자자, 여기에서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천천히 얘기 나누죠.”

엄마가 연우진을 데리고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김유하는 내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현관문 안쪽을 바라보는 아이의 두 눈은 커다란 맹수를 만난 초식 동물처럼 바짝 경계의 빛이 어려 있었다.

* * *

어떻게 말해야 할지 며칠을 고민하며 긴장했던 것과 달리 내가 가이드로 발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아…… 그럼 자네가 그 ‘메시아’의 길드장?”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연우진에게 모든 관심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긴 하다. 대뜸 딸이 데려온 남자가 두 눈을 의심할 만큼 뛰어난 외모를 가진 것도 놀라운데, 그 남자가 다름 아닌 랭킹 1위 길드 마스터였으니 말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딸이 그렇게 욕하던 장본인이기도 했고.

“그러면 그 게이트에도 들어가고 그러겠네. 아, 그럼 우리 집 근처에서 게이트 하나 터졌다는데! 그거 어떻게 못 하나?”

“여보, 갑자기 그런 걸 부탁하면 아무리 에스퍼라고 해도 곤란해하지 않을까……?”

아빠가 쩔쩔매며 엄마를 말렸다.

“집 근처에 터진 게이트 말하는 거 맞지? 이미 오는 길에 해결했어.”

“잘 해결되었다니 다행이긴 한데- 게이트에 휘말린 거야?”

“뭐? 다친 데는?!”

빠르게 내 몸을 훑고 담담하게 답하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크게 기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집으로 바로 올 게 아니라 병원에 가야 했던 게……!”

내가 초등학교 때 엄마가 재혼해서 생긴 아빠는 유달리 걱정이 많고, 조심스러웠다.

막 재혼했을 때는 갑자기 생긴 딸이 어색해서 그런가 보다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모습에 저게 원래 성격임을 깨달았다.

직설적이고 매사에 덤덤한 엄마와 달리 세심하고 온순한 사람이라 어떻게 보면 잘 만났구나 하고 생각했지.

“아유, 그 메시아의 길드장이 옆에 있었다는데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한다고?”

“유정아 결혼하니? 벌써……?”

아빠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떨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 엄마에게 휩쓸린 나머지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결혼 안 한다니까! 그리고 이건 선물.”

아빠가 안심하며 선물을 받아 들었다.

얼굴이 뜨거워진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고백은 언제 해야 좋을지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엄마 쪽에서 다짜고짜 결혼 이야기를 꺼내니 더 말을 꺼내기 힘들어졌다.

가볍게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눈을 굴리자, 연우진이 가라앉은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저 사람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을 텐데……? 그간의 상황만 봐도 연우진의 인간관계 중에 평범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엄마는 그런 연우진을 신경 쓰지 않고 과일이나 먹어 보라며 대뜸 입에 쑤셔 넣었다.

연우진은 조금 당황한 듯했으나, 일단 얌전히 받아먹는 눈치였다. 엄마는 그의 입에 과일 4개는 더 집어넣고 나서야 만족한 듯 포크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얼굴도 보기 좋은 사람이 잘 먹으니 더 보기 좋네! 그래서 뭐 물어볼 거 있다고? 유정이 너, 오기 전에 전화로 고등학교 때의 일에 관해서 물어볼 거 있다고 했잖아.”

나는 차마 뭐라 하지는 못하겠고 단순한 저작 운동만을 반복하는 연우진을 쳐다보고 있다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아, 아. 그거- 나 예전에 고등학생 때 쓰러졌던 적 있잖아. 쓰러진 게 대격변 일 때문이었어? 설마 지하철에서 쓰러졌던 것도 아닌 거야?”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아빠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예민한 이야기를 꺼낸 것처럼 한껏 긴장된 아빠와 달리 엄마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대격변 때. 지하철 근처에서 쓰러져 있던 걸 에스퍼가 발견해서 구해 줬었지. 그보다 네가 웬일이니?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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