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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95화 (95/119)

S급 자영업자

95화

“여보……!”

“그때의 충격으로 네가 부분 기억 상실에 성격도 바뀌어 버려서 너희 아빠는 네가 무슨 뒤늦은 사춘기라도 온 줄 알고 금방이라도 깨질 유리 다루듯이 굴더라.”

“여보오……!”

아빠의 애달픈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엄마가 다시금 연우진을 향해 포크를 내밀었다.

힐끗 연우진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처음 보는 그의 도와 달라는 표정에 불현듯 장난기가 솟은 나는 과일을 꽂은 뒤 포크를 연우진을 향해 내밀었다.

곤란한 낯을 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연우진은 살짝 눈을 크게 떴을 뿐, 포크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 내가 들고 있는 포크를 삼켰다.

만족스럽기까지 한 그의 표정에 되레 당황한 것은 나였다.

……어? 더 먹기 싫었던 게 아니었나?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거라고?”

엄마가 물었다.

어쩐지 갑자기 조용해진 것 같다 했더니 부모님 두 분 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포크를 내려놓았다. 엄마의 말을 되새겨 보다 문득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응? 잠깐- 부분 기억 상실이라니?”

무려 다른 세계의 사람과 바뀌었던 일이다.

나야 돌아온 뒤에는 몇몇 새롭게 생긴 현대 판타지 요소만 제하면 기존에 알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금방 적응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아멜리아 캠벨은 헤르만 제국, 흔히 말하는 로판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곳은 신분제부터 문화, 언어, 여러모로 이곳과는 달랐다. 그러니 아멜리아에게 있어서는 이 세계가 하나부터 열까지 낯설었을 게 당연했다.

헤르만 제국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 뭐 기억하고 있는 거라도 있었어?”

“요즘엔 멀쩡하더니 또 이러네…… 막 사고를 겪은 다음에 이름이나 너에 관한 기본적인 것은 몰라도 이상한 것들은 잘 기억하고 있었잖아? 구역별 센터 위치나, 데려간 적이 없는 가게를 알고 있기도 하고. 예전에 친구들이랑 갔었나 했지.”

“아아, 나도 기억난다. 갑자기 어떤 구역에 가고 싶다고 해서 따라가 보니 정말 유정이 말대로 근처에 폐쇄된 공원 근처에 작은 산동네가 있는 거야. 그러더니 대뜸 여기에 남동생이 살고 있다고 했을 때는 놀랐지.”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그 이후 얼마 있지 않아 유하가 태어나서 내가 태몽을 대신 꿔 줬다고 생각했다고.

“……뭐?”

나는 표정을 굳혔다.

아멜리아가 이쪽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이 세계의 지리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게 아무리 내가 현대를 살던 현대인이라지만, 나조차도 1년 전 김유정으로 돌아왔을 때는 크게 당황했다.

게이트라는 이상 변수로 인해 내가 알던 대한민국과 지형이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와 구로 구분되었던 땅이 알파벳 구역명으로 바뀌기도 했고. 물론 내 기억과 비슷한 부분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달라진 게 더 많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듯 연우진의 낯 또한 살짝 굳어 있었다. 자세한 것을 더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울음기가 섞인 고음이 귓가에 내리꽂혔다.

“누나, 바보!! 멍청이!!”

김유하였다.

연우진이 내 옆에 앉을 때부터 덜컥 긴장한 얼굴로 으르렁거리던 아이는 계속해서 연우진이 자리를 뜨지 않자 내 옷을 잡아당겼다

그런 김유하를 엄마가 붙잡아 자신의 옆으로 끌고 왔고,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계속해서 나와 연우진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다가 결국 터져 버린 것이었다.

“계속 저 사람은 안 된다고 했는데 무시하고. 누나 온다고 해서 계속 기다렸는데, 나랑은 놀지도 않고! 나도 이제 누나랑 안 놀 거야!”

“유하야!”

“따라오지 마! 나 옥상 갈 거야!!”

아이가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울먹이면서도 어디로 갈 건지 친절히 읊어 주는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부모님을 쳐다보자 아빠가 아련히 중얼거렸다.

“안 쫓아오면 화내겠구나…….”

“쟤는 대체 누굴 닮아서 저렇게 앙칼지지?”

일단 나는 아니라며 엄마가 단호히 대답했다.

* * *

나는 김유하를 따라 옥상에 올라왔다. 아이의 말대로 오랜만에 찾아왔는데도 신경 써 주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 맞았기 때문이다.

연우진은 아래에 두고 왔다. 엄마가 아직 대화 안 끝났다며 그를 붙잡기도 했고, 애초에 김유하가 화를 낸 이유가 연우진인데, 그 원인을 데리고 가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게 분명했으니까.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엄마의 말에 연우진이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았으나, 나는 힘내라는 말만 남기고 옥상으로 떠났다.

‘그런데 유하가 왜 싫어하는 거지?’

평소 연우진 성격이었으면 몰라도 이곳에 온 뒤로 연우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아무것도다.

자신을 보며 대뜸 짜증 내고 노려보는 김유하에게 당황해하거나 의아해하긴커녕 이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신경도 쓰지 않더라.

일단 혈육이라고 같은 사람한테 나쁜 첫인상을 느끼는 공통점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옥상 문을 열었다.

“따라오지 말랬잖아!”

문을 열자 곧장 날카로운 목소리가 떨어졌다.

나는 눈을 끔뻑였다. 내뱉는 말과 달리 김유하는 다시 내가 내려가기라도 할까 작은 손으로 내 옷을 꽉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화났어?”

“…….”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지 않을래? 누나가 디저트도 잔뜩 가져왔는데. 네가 먹어 보고 싶다고 했던 쿠아 열매 파이도 있어. 같이 먹자. 응?”

“누나가 만든 거야? 나 주려고?”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입꼬리를 비죽 올리다 말고 자신이 화났다는 사실을 떠올린 듯 입꼬리를 내렸다.

“좋아, 누나가 나 주려고 힘들게 만든 거니까 먹어 줄게! 하지만 그 형은 안 돼. 진짜 위험하단 말이야.”

“혹시 저 형이 너한테 뭐 했어?”

연우진을 믿었지만, 이런 일에 관해서는 신용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그가 나를 피해 하도경이나 송화연에게 눈치를 주는 것을 몇 번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유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런데 저 형은 색이…… 안개가 이상해. 무서워. 엄청 크고, 색이 짙어.”

“안개?”

“끄응, 말하지 말랬는데…… 하지만 유정이 누나니까 말해도 될 거야!”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뭘? 누가?”

무슨 소리인가 싶어 묻자 아이는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듯 입가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귀를 대어 보라는 듯한 몸짓에 상체를 숙였다.

“아멜리아가.”

아이가 속삭였다.

예상치 못했던 이에게 익숙한 이름을 들은 탓에 잠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목덜미가 섬뜩했다.

“……그게 누군데? 유하야. 너, 아멜리아를 알아?”

“응, 누나랑 닮은 예전 누나잖아.”

“엄마 아빠도 알고 있는 거야?”

“아니! 어차피 믿지도 않고, 아멜리아가 말하지 말랬어. 슬퍼할 거라고.”

나는 숨을 들이켰다.

피부에 스치는 공기 온도는 미지근했음에도 불구하고 목 안쪽이 얼음이라도 삼킨 것처럼 차가웠다.

* * *

이른 나이에 능력이 발현되는 각성자는 적잖게 있어도 태어날 때부터 능력을 갖춘 선천적인 각성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유하는 바로 그 선천적인 각성자였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사물을 다른 사람들처럼 겉모습이 아닌 기운, 본인의 말로는 색깔이 입혀진 안개로 구분했다고 한다.

그런 김유하의 눈에 누나 김유정은 다른 이들과 다른 이색적인 형태와 색을 띠고 있었고, 아이는 그것에 이질감을 느꼈다.

「왜 누나는 남들과 달라? 다른 사람들이랑 달라서 이상해.」

어느 날 그것을 직접 물었을 때, 김유정, 그러니까 누나의 모습을 한 이는 울었다고 한다.

그녀의 진짜 이름은 아멜리아라고 했고, 사실 자신은 친누나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곳에 온 뒤로 내가 이상해. 내가 아닌 기억들이 떠오르고, 알 리가 없는 것을 알고 있어. 내게는 분명 남동생이 없는데 남동생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남동생이잖아.」

「유하 말고, 유하보다 더 큰 동생이 있었던 것 같아.」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의문을 가졌다. 그도 그럴 게 원래의 아멜리아 캠벨에게 오라비는 있어도 남동생은 없었기 때문이다.

온통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들뿐이었지만, 겉모습이 아닌 본질을 보는 특별한 눈 때문인지, 아니면 어렸기 때문인지 김유하는 그 사실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그럼 누나는 내 누나가 아닌 거야?」

「응. 하지만 유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친구지.」

어찌 되었든 아멜리아는 김유하에게 종종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처음으로 자신의 본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생겨 기뻤던 것일 수도 있다.

아멜리아는 김유하에게 이곳에 온 뒤로 이상한 기억들. 그러니까 본 적도 없는 거리를 알고 있거나, 불현듯 기시감이 든다든가, 제게 남동생과 중요한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또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내가 필요 없어진 걸까?」

「사실 나는 황태자라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 처음에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의 결혼이 싫어서 이 몸이 된 게 좋았는데…….」

했다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깊고 진지한 이야기뿐이라, 나는 조금 묘한 낯을 했다.

혼란스러웠던 상황은 이해하나, 어린아이에게 이렇게까지 속마음을 털어놓는 게 괜찮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애 상담까지 했더라.

말을 끝마친 김유하는 돌연 번쩍 고개를 들더니 소리쳤다.

“누나가 내 누나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어! ‘이쪽’ 사람들과 비슷하고 엄마랑 형태도 닮았는걸.”

“형태…….”

아이의 눈에 세상은 어떻게 보일지 좀처럼 짐작이 가지 않아 말끝을 흐리던 그때, 김유하가 덧붙였다.

“그런데 누난 아멜리아랑 색이 똑같아! 안개의 생김새도 많이 닮아서 구분하기 힘들어.”

“그런데 어떻게 다른 걸 알아봤어?”

“내 누나니까!”

나는 호기롭게 대답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린아이에게 논리정연한 대답을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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