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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97화
“네? 저요?”
“네, 그 꼬맹이 때문에 누나를 보기가 힘들잖아요.”
그쪽에서 꼬맹이로 호칭이 바뀌었다.
무관심보단 관심이 낫긴 한데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어깨 위로 그의 머리가 가볍게 문질러졌다.
부드러운 연갈색 머리카락이 목 부근을 스쳤다. 박박 긁어내리고 싶은 간지러움에 저절로 발가락이 움츠러들었다.
‘……어? 잠깐, 이거 혹시 고백할 타이밍인가?’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성지현과의 대화 이후로 고백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긴 했는데, 좀처럼 타이밍이 안 났다.
일로 정신없기도 했고, 본가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동생에게 줄 디저트를 굽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우선 얼굴을 마주 봐야 뭐라도 이야기하겠다 싶어 나는 가이딩을 멈추고 연우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진-.”
그를 밀어내려는 순간, 목에 따끔 통증이 일었다.
아. 나도 모르게 작게 신음을 흘린 순간, 뜨겁고 물컹한 게 통증이 느껴졌던 부위를 스쳤다.
귓가에 울린 질척한 소리에 뒤늦게 깨달았다. 혀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마치 어린 짐승이 장난치며 저도 모르게 물었다가 급히 혀를 세워 핥은 것처럼 목 쪽에 작은 통증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를 압박하듯 손바닥으로 눌러 감췄다.
피가 나올 만한 상처도 아니었고,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아프다기보단 간지러운 감각에 가까웠다.
“뭐, 무슨, 아니-.”
곧바로 입을 열었지만,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들뿐이었다.
나는 보통 당황하면 헛소리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곤 했는데, 이런 쪽에는 해당되지 않는 모양이다.
눈가로 열이 몰렸다.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지금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으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가이딩 상태가 크게 불안정하진 않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그를 바라본 순간, 나는 나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붉어진 연우진을 볼 수 있었다.
“그, 그게…….”
그는 한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귓바퀴, 목덜미, 얼굴. 안 붉어진 곳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로 달아오른 피부에 나는 한결 침착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어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빠르게 평정을 잃어버렸다.
“누나한테 맛있는, 아니, 달콤한 냄새가 나서요.”
“……냄새요?”
“네. 그런데 저한테도 같은-.”
연우진이 서둘러 변명했으나, 그 변명이 길어질수록 내 표정은 굳어졌다. 마치 본능처럼 이다음에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 수 있었다.
“자, 잠깐, 우진 씨 거기까지. 멈-.”
“저한테 누나랑 같은 냄새가 나서, 저도 모르게…….”
말끝을 흐린 그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긴 속눈썹이 드리워지며 눈 밑에 그림자가 지자 묘하게 퇴폐적인 분위기가 났다.
텁. 나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
마음 같아서는 차라리 눈을 찌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든 저 얼굴을 보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연우진의 집에서는 화장실도 따로 쓰기 때문에 샤워 용품이 겹칠 일이 없다.
그러나 여기는 부모님 집이고, 그나 나나 따로 챙겨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것을 그대로 썼다.
이런 거는 솔직하지 않아도 되는데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한껏 당황한 연우진의 얼굴에 말을 삼켰다.
긴 손가락이 내 목을 스쳤다.
“많이, 아팠어요?”
고작 손끝이 닿은 것뿐인데도 목에 칼이라도 겨누어진 것처럼 긴장되었다.
색소가 옅은 그의 눈동자가 내 목에 닿았다. 나는 얼굴을 가렸던 손으로 다시금 목을 가렸다.
그가 내 손을 억지로 걷어 낼 것도 아닌데도 무의식중에 손가락을 세워 피부를 내리눌렀다.
자칫하면 손톱자국이 남을 정도였으나,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유정이 누나!”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은 줄처럼 팽팽했던 분위기 사이로 어린아이 특유의 가느다란 음성이 파고들었다.
“위험해!”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눈을 크게 뜬 채 서 있던 김유하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조그마한 손이 팔에 힘껏 매달리자 그제야 빳빳하게 굳어 있던 몸이 풀렸다.
“역시 위험했어! 빨리, 빨리 도망가자!”
“응? 위험?”
나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내뱉고 있던 나는 위험하다는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방금 저 형이 누나를 잡아먹으려고 했잖아!! 다 봤어. 역시 괴물이었던 거야! 어쩐지 색도 무섭고 안개가 이상할 만큼 크더라!”
“…….”
“누나, 나도 알건 다 알아. 마물이라고 하는 거지? 도시에 나오는 게이트에는 그런 괴물들이 가끔 현실에까지 나온다고 했어!”
제 누나의 위기에 겁먹은 아이의 표정은 더없이 심각하고 결의에 차 있었으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괴물! 내가 지키는 이상 누나를 잡아먹을 수는 없을걸!”
어디에서 가져온 건지 모를 나무 막대기를 들고 김유하가 내 앞을 가로막아 섰다.
난데없는 난리에 어느덧 얼굴을 갈무리한 연우진은 터벅터벅 김유하의 앞으로 걸어왔다. 조금 전과 달리 담담해진 낯이었다.
바짝 몸을 곤두세운 김유하가 들고 있던 나무 막대기로 연우진을 내리쳤다.
“이익!”
퍼석.
그러나 나무 막대기는 그의 몸에 닿자마자 부러졌다.
허망하게 박살 난 무기에 아이가 왈칵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짙은 패배감이 어린 얼굴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나는 살짝 흐린 눈을 한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문득 떠오른 것은 연우진이 도가빈과 함께 카페 탁자를 박살 냈을 때였다.
괜찮아, 유하야. 네가 약한 게 아니야. 누나가 그것보다 단단하고 두꺼운 막대기로 때려 봤는데 그것도 부러지더라…….
그간의 두려움도 잊은 채 김유하가 연우진을 노려보았다.
어찌 보면 아이가 똑바로 그의 눈을 마주하는 기념적인 순간이었으나, 축하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김유하는 호승심과 울분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고, 연우진은 연우진대로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김유하의 철벽은 더욱 단단해졌다.
나와 연우진이 조금이라도 거리가 가까워질까 싶으면 곧바로 경보를 울려 댔고, 내 목에는 김유하가 붙인 캐릭터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건 또 뭐니?”
“유하가-.”
“얘가 또 특이한 심보가 발동했나 보구나. 저번에는 벽 한쪽을 전부 스티커로 도배해 놓더니.”
좀 불편하긴 했지만, 목의 자국을 숨기는 데 다른 핑계를 지어 내지 않아도 되어서 그건 좋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어느덧 돌아가기 전날이 되었다.
내일 갈 거라는 말에 김유하는 한참 뚱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뭘 주겠다며 아침 일찍부터 밖으로 나갔다.
금방 돌아올 거라며 여기 있으라고 했던 아이가 1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걱정되기 시작했다.
찾으러 가고 싶어도 어디로 갔는지 몰라 엄마에게 묻자,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아마 집 근처 산으로 갔을 거야. 저- 기 보이는 거. 요즘 거기에서 잘 놀더라고.”
“위험하지 않아? 산짐승이나 그런 거 없어?”
“어유, 놀러 다니는 애들이 한둘도 아니고. 엄마도 자주 나물 따러 가는 곳인데 험난한 지대 아니야. 그 정도로 유하가 깊이 들어가지도 않고.”
그 순간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깨를 움찔 떨었던 나는 그게 게이트 재난 알림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깨를 바로 했다.
내 경우 평소 진동으로 설정해 놓았기에 이 요란한 알림 소리는 엄마의 휴대폰에서 난 소리였다.
“응? 또 어디에서 게이트가 터졌나…….”
혀를 차며 대수롭지 않게 휴대폰 화면을 킨 엄마의 눈이 크게 뜨였다.
드물게 당황한 듯한 모습에 나 또한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게이트 규모 중급(그린). 하급 마물 대량 출몰(위험도 D). 출몰 장소 Z구역 서쪽 산지대. 해당 구역에 속하는 이들은 가능한 출몰 장소에서 멀어질 권고. 현재 파견된 소속 단체…….]
김유하가 자주 간다는 산이었다.
* * *
수풀이 우거진 숲속을 도롱뇽처럼 매끈하고 점성이 있는 피부를 가진 이형의 생물체가 꾸물거리며 기어 다녔다.
끼륵, 끼륵.
네발로 기어 다니는 짤막한 다리는 육지 동물을, 가느다랗게 내지르는 고음이나 피부는 바다 생물을 닮아 있었다.
그러나 저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닌 마물이었다.
“흡-.”
마물을 피해 나무에 올라선 김유하는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꾹 다문 입술 위를 내리누른 손이 덜덜 떨렸다.
작은 손안에는 파란색의 작은 꽃이 몇 송이 들려 있었다.
‘이거, 누나한테 줘야 하는데…….’
김유하는 김유정이 좋았다.
자신의 온전한 누나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멜리아 또한 좋긴 했지만, 아멜리아는 누나라기보단 처음 생긴 친구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게 고대했던 것만큼 누나인 김유정은 다정했다. 아멜리아처럼 잘 웃지도, 제게 마음을 털어놓지도 않긴 했지만, 김유정은 김유하를 어색해하면서도 아이가 원하면 늘 곁을 내어 주었다.
엄마는 누나가 무뚝뚝해졌다고 했지만, 아이에게 보이는 감정의 형태와 색은 언제나 따뜻했다.
맞닿아 있을 때 느껴지는 포근함, 자신을 낯설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시무룩하게 주저앉아 있으면 허겁지겁 달려와 안아 주는 서툰 모습도 좋았다.
그런 누나가 집을 떠난 것은 사소한 마찰이었다.
「자. 유정이 너 이거 좋아하잖아.」
「엄마, 나 가지 안 먹잖아. 어릴 때부터 안 먹었는데.」
맞다. 가지를 좋아하는 것은 아멜리아였으니까.
‘누나는 가지 싫어하는데…….’
김유정이 온 뒤로 온종일 김유정만을 지켜보았던 김유하였기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이들은 알지 못했고, 그런 일이 수차례 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