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자영업자-101화 (101/119)

101화

분명 무슨 일을 벌일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권시현은 그 외의 목록을 살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정작 길드 마스터는 빠지는데 에러 길드원은 대부분 게이트 안 출전을 요청했다는 거다. 그중에는 차해연의 동생이라는 차진서 가이드의 이름 또한 있었다.

솔직히 레드 게이트 입장에 대해 목숨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자진 참여를 우선으로 받긴 했지만, 보통 등급이 낮은 경우에는 참여를 요청하지 않았다.

저번과 달리 게이트 밖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등급이 높은 상위 에스퍼를 우선시하여 게이트 원정을 시도할 예정이었다.

실제로 저번 레드 게이트 또한 실력과 관계없이 강제로 떠밀어져 무의미하게 죽은 이들이 많았기도 했고 말이다.

하물며 가이드는 어떠할까. 게이트 원정에는 매번 가이드의 참여가 요구되지만, 가이드의 경우 웬만해서는 게이트 원정에 자진 참여하는 일이 드물었다.

더구나 레드 게이트다. 에스퍼조차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지옥에 힘도 없는 가이드가 자진해서 발을 들이는 것은 흔치 않다.

어찌 되었든 곧 열릴 레드 게이트에 대한 원정 인원이 갖춰졌다.

그 수는 대략 오십. 저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였다.

* * *

지옥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건 헤르만 제국에서 전쟁을 치르며 깨달았던 것이었다. 두려움과 역겨움. 수많은 죽음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가면 지독하리만큼 비현실감과 공허감이 찾아왔다.

나는 주마등처럼 잠시 내 삶을 되짚어 보았다.

학창시절 내내 거창한 반항 없이 공부나 성실하게 하며 살아왔건만, 고등학교 입학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판인지 뭔지 모를 곳에 빙의했다.

웬 귀족의 사생아로 구박이란 구박은 다 받고 전쟁까지 갔다 왔더니 모든 일을 끝낸 참에 원래 세계로 돌아왔다.

돌아온 원래 세계는 내가 아는 세계와 달라져 있었고, 어찌 되었든 그런 세계에서도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끝에 번듯한 가게도 꾸리게 되고, 난생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는데…….

“우선 유정 씨 가족분은 대피소로 안내했어요. 별일이 없는 이상 안전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지인분들께는 연락해 봤어요? 게이트 문제로 연락 불가하게 될 수도 있으니 미리 연락해 놓으세요.”

“아, 네…… 짧게 하긴 했는데.”

세상이 멸망할 판이라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나는 탄식했다.

조금 전 강민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 또한 갑작스러운 레드 게이트 출현에 혼란스러웠는지 내게 괜찮냐고 하던 중 대뜸 ‘사장님, 그럼 오늘은 출근 안 해도 돼요?’ 하고 묻더라.

세상이 멸망하게 생겼는데 출근하게 생겼나.

당황도 잠시, 강민지의 말에 새하얗던 머릿속에 색이 입혀지며 현실감이 돌아왔다. 몰랐는데 나도 정신을 반쯤 놓고 있던 모양이다.

머릿속이 멍하고 몸도 무거웠다. 나는 하도경의 말을 반쯤 흘려들으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경은 이쪽에 남는다고 했다. 하도경이 말하길 연우진이 사망할 시를 대비해 저라도 남아야 한다고 했는데, 본인 딴에는 분위기를 풀어 보고자 한 말 같았으나 내겐 전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뭐, 8년 전에 비하면 상황이 낫긴 하죠. 그땐 너무 갑작스러워서 대피도 못 했으니까.”

“C구역이요?”

“네. 그러고 보니 권시현에게 E구역 폐쇄 요청한 게 유정 씨라면서요?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겠네요.”

“…….”

“일단 연우진에게 대충 상황을 듣긴 했는데…… 믿기 힘든 이야기긴 하더라고요. 도이현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니. 음……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정신 사납네.”

말을 잇던 하도경이 내 앞을 보며 흐린 눈을 했다.

내 앞에는 연우진이 있었는데, 연우진은 내 몸에 주렁주렁 아이템들을 달아 주고 있었다. 혹시 모를 호신용품이라는데 벌써 20분째였다.

솔직히 몸이 무거운 게 긴장감 때문인지 아이템 때문인지 헷갈렸다.

나와 연우진, 그리고 하도경은 E구역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건물에 서 있었다.

현재 게이트 밖에 남기로 한 각성자들은 배치된 구역으로 이동했고,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E구역 레드 게이트 참여자들이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헤집고 지나갔다.

휴대폰에서는 여전히 게이트 알림음이 울리고 있었고, 대피에 관한 설명이 적힌 문자가 쉴 새 없이 왔다.

현재 다른 구역은 어떨지 몰라도 지금 이곳은 광장 중앙에 놓인 레드 게이트만 제하면 평온하다 싶을 정도로 고요했다.

나는 내 어깨 위로 담요를 덮어 주는 연우진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도 레드 게이트에 갈래요. 우진 씨 저 아니면 가이딩도 못 받잖아요.”

바쁘게 움직이던 연우진의 손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건 하도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별꼴을 다 본다는 듯 연우진을 바라보던 하도경의 눈이 경악을 담았다.

내 딴에는 여러 고민 끝에 한 이야기였다.

이유는 많았다. 꿈속에서 보았던 아멜리아가 신경 쓰이기도 했고, 정말 저 게이트가 헤르만 제국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이 나였으니까.

그리고 다른 가이드들도 가지 않던가. 솔직히 이번에 출전한다는 다른 가이드들보다 내 쪽이 더 나은 상황이라 자신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전에 전쟁도 나가 봤고, 마물 사냥도 해 본 일종의 경력자였다.

무엇보다도 어차피 저들이 게이트를 클리어 하지 못하면 어디에 있든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쪽도 다른 게이트에서 비롯된 마물들로 인해 마냥 안전하지만은 않을 거고-.

“안 돼요.”

연우진의 대답이 단호하게 떨어졌다. 그의 얼굴은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그에 내 표정 또한 심각해지자, 슬쩍 눈치를 살피던 하도경이 먼저 들어가 보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하도경이 떠난 뒤에도 잠시 말이 없던 연우진이 말했다.

“싫어요. 누나가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제가 금방 처리하고 돌아올게요.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무사히 있어 주면 안 돼요?”

“여기 있을 바엔 우진 씨 곁에 있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이미 완전한 안전지대는 없으니 차라리 연우진 옆에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이로운 에스퍼가 E구역에 남기로 했어요. 저희가 돌아올 때까지 E구역에 결계를 쳐 주기로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로운 에스퍼의 곁에 있으세요.”

이로운을 그렇게 싫어하더니 이젠 또 곁에 있으란다.

이로운은 방어계 능력으로 손꼽히는 S급 에스퍼.

이로운의 역할은 게이트 너머에서 나온 마물이나 게이트로 인한 파장 오염 진행 속도가 느려지도록 E구역 전체를 거대한 돔 형태 결계로 감싸는 것이라고 했다.

연우진이 바람으로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차가운 손끝이 귓바퀴를 스치고 지나갔다.

“저 돌아오면 누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진 씨 돌아와서 할 말 있다는 거, 그거 데드 플래그니까 말할 거면 지금 해요.”

이 사람이 왜 갑자기 플래그를 밟고 그러지.

나는 불안한 눈으로 연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런 내 시선에 연우진이 미소 지었다. 어쩐지 기쁨이 담겨 있는 미소였다.

이 사람이 큰일을 앞두고 미쳤나. 내가 왜 웃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누나가 걱정해 주니까 좋아서요.”

“좋아요? 전 지금 좋아하는 사람 사지로 보내게 생겨서 기분 구린데?”

솔직히 불안한 게 본심이다. 이전에 전쟁을 나가 보았다고 하나 그때는 목숨을 걱정할 만한 주변인이 없었다.

친해진 동료들은 다 전쟁에서 만난 이들이었으며 나보다 강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일단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대피소로 이동하는 중이라는 소리를 듣긴 했으나 이 앞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한없이 불안했다.

우선 레드 게이트에 입장하고 원정을 나간 각성자들이 게이트를 무사히 클리어 하면 이 사태는 종결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들 말로는 예전보다 게이트 밖에 많은 전력을 두었으니 괜찮을 거라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세상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위험한 게이트에 내 전담 에스퍼가 들어가지 않던가. 저 인간 강하지만 생명체인 이상 반드시 죽지 않을 거란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

한참 심각하게 표정을 굳히고 있던 나는 어쩐지 조용해진 그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손등으로 제 입가를 가리고 있는 연우진이 보였다.

‘……왜지? 뭔 일 있었나?’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했나 되짚어 보았다. 위기 상황으로 인해 정신없는 와중에 말을 쏟아 낸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나는 불안해 죽겠는데 저쪽은 싱글벙글 웃고 있어서 짜증 냈던 건 기억나는…… 아.

뒤늦게 내가 한 말을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연우진은 자신이 들은 말이 현실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듯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누나, 정말이에요?”

연우진이 물었다.

“뭘요?”

나는 시치미를 뗐다.

민망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이 자리에서 고백하면 그거야말로 데드 플래그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다 진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해. 원래 상황이 위급하면 미신이라도 그냥 넘길 수 없는 법이었다.

“저를 좋아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나 연우진은 이를 넘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집요한 시선이 나를 응시했다.

사실 인류애였다는 말을 하려던 나는 그의 두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닫았다. 조금 뒤에 나온 대답은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네, 우진 씨를 좋아해요. 연애적인 의미로.”

두 번 말할 자신은 없어 어떤 의미인지까지 덧붙였다.

처음으로 한 고백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고백은 장미꽃 백 송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분위기 좋은 곳에서 식사하며, 꽃이나 선물이라도 하나 건네면서 하는 거였는데 지금 상황을 봐라.

고백의 당사자는 위험 속으로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고, 세상은 망하기 직전이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보며 나는 어설프게 웃었다. 하나같이 최악의 상황뿐인데도 정작 고백받은 당사자가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으니 그걸로 됐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해요, 누나.”

차마 내가 입에 담지 못한 사랑이라는 말을 담으며 그가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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