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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104화 (104/119)

104화

* * *

결국 레드 게이트에 입장하기로 한 이들은 이해수와 민하성, 그리고 조예나와 김유정이 전부였다.

에스퍼 셋과 가이드 하나. 일반적인 게이트 원정이었다면 딱 적절한 조합이었다.

“분명 후회할 테지.”

센터 소속의 에스퍼가 낮게 읊조렸다.

그 중얼거림에 권시현의 전담 가이드 최유리는 설핏 눈살을 찌푸리며 지원자들과 함께 레드 게이트로 향한 이해수를 떠올렸다.

‘분명- 시현이가 기분 나쁘다고 했던 에러 길드 마스터인 것 같은데.’

그는 평소 권시현에게 잡다한 이야기부터 중대한 이야기까지 별 이야기를 다 듣곤 했다.

그중에서도 권시현은 에러 길드에 관해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감이 나쁘다고 했던가.

그러나 권시현에게 들었던 것과 달리 이해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다.

솔직히 최유리는 이해수의 말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번과 달리 게이트 소수 정예와 자진 참여로 입장 인원을 모았다고 하나, 상황에 진척이 보이지 않으면 추가 인원을 투입하는 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옳은 선택이었다.

최유리가 이곳에 남겠다고 한 것은 그가 가이드이기 때문이다. 에스퍼처럼 마물을 상대할 무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는 아니다.

애초에 그런 에스퍼의 상태를 안정시키는 게 게이트 안에서 가이드가 할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위험은 감수하기 어렵지.’

게이트 안에서 능력을 가진 에스퍼보다 가이드 쪽이 더 위험한 것은 당연하다.

그에겐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권시현이라는 전담 에스퍼가 있었고, 그래서 몸을 사렸다.

지원했다가 잘못될 두려움보단 자신이 잘못되었을 경우 무너질 권시현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유리는 가이드임에도 자진하여 레드 게이트 입장을 지원한 김유정의 용기와 행동력에 감탄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유정이 연우진의 전담 가이드라는 사실을 권시현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임시라고는 해도 전담은 전담. 더구나 그 연우진이 속수무책으로 져 주는 상대라고 들었다.

‘물론 어느 쪽을 택하든 위험 속이라고 하나, 전담 가이드라면 가능한 자신에게 덜 위험한 쪽을 선택해야 하지 않나?’

모든 에스퍼들이 그렇지만, 연우진은 특히나 세상에 중대한 에스퍼였다.

매칭률 탓에 몇 번이고 폭주 반응을 보여 그때마다 처리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오갔던 것을 기억한다.

연우진은 같은 편에 있을 시엔 누구보다 든든한 존재였지만, 적이거나 통제가 불가해질 경우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신이시여…….”

누군가가 신을 부르짖었다.

이제 동조율은 69%. 70%가 되기 직전에 다다랐다.

레드 게이트 동조율에 관한 보고가 다른 구역에 배치된 각성자들에게도 전해졌을 터.

E구역의 각성자들은 긴장으로 바짝 굳은 채 레드 게이트를 응시했다.

누군가가 공포에 질려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짧게 내지르며 주저앉은 그때.

“……게이트 출입구가 닫혔어?”

사형대에 선 것처럼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헤치고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그 말대로 레드 게이트의 출입구는 어느덧 굳게 닫혀 있었다.

이윽고 측정기기의 동조율이 70%에 다다랐다. 그러나 퍼센트를 넘겼음에도 주변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 * *

레드 게이트 안에 들어오자마자 공간의 일렁거림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듯한 부유감에 휩싸였다.

눈앞이 붉어지고 시야가 불분명해졌다. 발을 디딜 곳이 사라진 듯한 감각에 정신없이 허둥대던 참에 누군가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러고 머지않아 시야가 또렷해지고, 발밑의 감각이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게이트 밖에 있을 때만 해도 들려오던 이명이 멎었다는 것을.

우선 침착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파도 같던 이상한 힘에 휩쓸렸을 때 흩어졌는지 일행의 몇이 사라진 상태였다.

흔히 던전은 ‘밖’ 혹은 ‘안’으로 나뉘었는데, 후자의 경우 마물이 득실거리는 동굴이나 잊힌 오래된 문명 같은 오래된 건축물 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한 던전을 ‘미궁’이라고 불렀다.

레드 게이트 너머 던전은 중세 성 같은 곳이었다. 성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떨어진 곳이 지하 감옥이 있는 층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여기 헤르만의 황성인가?’

확신하지 못한 까닭은 첫 번째로 아멜리아로 있을 적 황성 지하 감옥에 와 본 적이 없었으며, 두 번째는 내 기억보다 심히 낡아 있어서 그랬다.

황성의 의미가 황제가 기거하는 성이 아닌 황폐한 성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오랜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

“아이고, 이게 대체 무슨 난리람. 김유정 가이드님, 괜찮으세요?”

다소 능청스러운 목소리가 내 안부를 물어 왔다.

내가 앞서 누군가가 나를 붙잡아 주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사람이 바로 이해수였다.

“아…… 예.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한 게 게이트에 들어오기 직전에서야 그가 에러의 길드 마스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같이 들어온 민하성이라는 에스퍼 또한 에러의 부길마라고 했는데, 조예나는 그 말에 두 눈을 부릅떴다.

왜 그런가 했더니 조예나가 걱정한다는 가이드가 바로 에러 길드 소속의 차진서 가이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차진서를 막지 않은, 조예나가 몇 번이고 욕하던 길드 마스터가 바로 이해수였던 거고.

나는 같은 센터 교육생 동기였던 차진서 가이드가 조예나와 아는 사이라는 것에 놀람도 잠시,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이해수를 노려보는 조예나를 막느라 진을 뺐다.

“으음, 게이트 출입구는 닫힌 것 같네요.”

“지금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출입구가 닫힌 건 어떻게 알았어요?”

“아, 제 능력이 전파거든요. 매체만 있으면 게이트 밖의 상황을 살필 수 있어요. 아무래도 게이트의 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방해를 많이 받다 보니 저도 레드 게이트에서 될 줄은 몰랐네요.”

그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게이트에서 마물이 나갈 일은 없을 터.

“이 던전은 어떤 형태려나…… 공간이 일정치 않은 것 같은데…….”

이해수가 빙글 몸을 돌려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벽부터 바닥까지 꼼꼼히 훑어보는 모습이 게이트를 클리어 하기 위해 들어온 에스퍼보단 문제를 탐구하는 학자를 닮아 있었다.

“공간 능력을 쓰기엔 어렵겠네. 하긴 시간이 이상할 테니 당연하겠지. 언뜻 보기엔 성 형태인 것 같은데 보스는 어디에 있으려나~.”

나는 쉴새 없이 중얼거리는 이해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아까 난리를 피울 때부터 생각했던 건데 저 사람 목소리 왜인지 낯익은 것 같은데…….

「‘에러’로 들어오라는 제안은 여전해요. 우린 그 사람의 형제인 당신이 우리와 함께해 주길 바라거든요. 당신도 그를 만나고 싶지 않나요?」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친 것은 도가빈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었다.

아, 그래. 조금 전 다른 에스퍼와 대화할 때는 비교적 차분한 억양의 설명 조로 말해서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표준어를 쓰고 있음에도 특이한 악센트. 그리고 에러 소속.

그때 배에서 도가빈 방에 들어왔던 남자였다. 에러 길드 마스터였나.

“제가 그만 정신이 팔렸네요.”

뒤늦게 내 시선을 눈치챈 이해수가 쑥스럽다는 듯 목덜미를 긁적였다. 얇은 눈매는 눈을 휘어 미소 지으면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는데, 그게 묘하게 순박해 보였다.

“제가 모험을 좋아해서요.”

“아, 모험…….”

……그게 레드 게이트 안에서 할 말인가?

나는 조금 흐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에스퍼 중에 또라이가 많다더니 이놈도 그중 하나인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길드 마스터라니 혼자 있는 것보단 나으리라.

아무리 내게 공격용 아이템이 있다고 하나, 다른 곳도 아니고 레드 게이트 안의 던전이라면 마물들 또한 수준이 높을 게 분명했다.

“어쩔까요? 인원은 많을수록 좋을 테니 우선 다른 사람들부터 찾아볼까요?”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게이트에 들어올 때부터 느꼈지만, 이곳의 시공간도 이상한 것 같고.”

그건 그렇지. 솔직히 나는 던전 장소로 헤르만의 검은 숲이 나올 줄 알았다.

꿈에서 봤던 아멜리아가 그곳에서 헤매고 있기도 했고, 대격변 때 장소가 그곳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건 그렇고 검은 숲이 아니네요?”

“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게 타인의 입에서 나오자, 나도 모르게 번쩍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저번 레드 게이트 때는 검은 숲이었다고 알고 있어서. 저는 그곳이 열릴 줄 알았거든요. 언뜻 봐선 오래된 건물로 보이는데 여긴 몇 층일까요?”

이해수는 녹이 슬어 붉게 변한 창살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몇 층……. 나는 자연스레 벽을 눈으로 훑었다. 지하라 그런지 눅눅한 돌 사이로 이끼가 붙어 자라고 있었다.

벽의 끝, 바닥 가까이 있는 낮은 곳에 닳고 닳아서 이제 확인조차 하기 힘든 헤르만 제국어가 새겨져 있었다.

“지하 2층…….”

“2층이요?”

이해수가 물어 왔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벽 아래를 가리켰다.

“저기 숫자 2라고 적혀 있는 것 같아서요. 비슷하지 않나요?”

“숫자 2요?”

내가 가리킨 곳을 힐끗 바라본 이해수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작게 손뼉을 쳤다.

“그럼 일단 위로 올라가 볼까요. 던전 보스를 찾아서! 어차피 다들 종착지는 그곳일 거 아니에요?”

“저희끼리요? 그보다 무슨 수로…… 선발대도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게이트에 차도가 없는 게 아닐까요?”

“으음…… 일단.”

이해수의 시선이 내 바지 주머니를 향했다.

나는 자연히 주머니를 뒤져 다시금 정령석을 꺼냈다. 정령석은 게이트 밖에 있을 때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가리키는 것처럼 빛이 어딘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걸 따라가 볼까요?”

이해수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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