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 * *
센터 소속 B급 에스퍼 서일후.
그는 레드 게이트에 들어온 뒤부터 모든 게 이상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공간이 크게 흔들렸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눈을 뜬 순간 함께 출발했던 원정대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고 그 혼자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던전 안은 일반적인 미궁이 그렇듯 창문 하나 없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벽에 걸린 낡은 황동 촛대, 오래되고 낡은 벽. 마치 피라미드 안처럼 누군가의 무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비교적 침착했다. 일행들이 사라지긴 했지만, 게이트 안에서 애초에 정상적인 것을 기대하는 게 멍청한 것이었다.
서일후는 그들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마물을 쓰러뜨리고, 던전 보스를 잡아 이 레드 게이트를 닫는 것. 그게 그의 임무이자, 모든 에스퍼들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그의 평정이 흔들린 것은 이 던전의 마물을 맞닥뜨리고 나서부터였다.
그는 단언할 수 있었다. 살면서 적잖은 게이트를 보아 왔지만, 이 레드 게이트는 지금까지 본 것들과는 뭔가 다르다고.
“이게, 무슨…….”
대체 저건 뭐란 말인가.
[사- 살-.]
검붉게 일그러진 형태를 한 그건 분명 인간의 팔을 가지고 있었다. 내장을 짓이겨 놓았다가 다시 뭉친 것처럼 꿀렁이는 살덩이 사이로 하얀 사람의 팔이 보였다.
어떻게든 제 쪽으로 뻗고자 꼿꼿이 편 손가락, 반대 방향으로 꺾인 팔꿈치 관절.
“……인간?”
귀엽든 흉측하든. 마물들은 대개 인간과는 거리가 먼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간혹 두 다리로 이동하는 등 부분적으로 인간의 특징들을 가진 마물들이 있긴 하나, 그것만으로 인간을 연상하기엔 어려웠다.
마물들은 하나같이 인외의 존재로서 이질적인 형태를 취했으며, 그들의 적인 각성자들 또한 그것들을 본능적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로 받아들였다.
인간이 아닌 존재. 인간의 적. 해치워야 할 괴물.
그게 바로 마물이었다.
[아, 죽여, 야-.]
원래, 마물이 말을 했던가?
서일후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한참 뭐라 중얼거리던 마물의 입이 이내 쩍 하고 크게 벌어졌다. 이미 누군가를 잡아먹었는지 날카로운 이빨에는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살점이 붙어 있었다.
서일후가 멍하니 그것을 응시하고 있던 순간, 무형의 힘이 그것을 무자비하게 짓이겼다.
콰드득-.
짓이겨진 마물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인간의 것과 같은 따뜻하고 붉은 액체에 서일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저앉았다.
그마저도 피가 바닥을 적시고 제 바짓단마저 적시자 서일후는 황급히 엉덩이로 뒷걸음질을 쳤다.
마물을 상대하는 것은 익숙했다. 하지만 방금 그건, 뭔가 보면 안 될 것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멍한 정신을 추스르고 있던 그때, 고저 없는 목소리가 그의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다음은 없어. 정신 차려.”
서일후는 화들짝 고개를 쳐들어 저를 구해 준 이가 누군지 확인했다.
메시아의 길드 마스터인 연우진이었다. 그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제 손바닥을 한 번 내려다보더니 설핏 미간을 좁혔다.
“그쪽, 센터 소속이지?”
“아…… 옙! 센터 소속 B급 서일후 에스퍼입니다. 공격 제4 팀에 소속되어 있으며, 능력은 바람-.”
“그건 됐고. 그럼 통신기 있을 거 아니야. 있어?”
게이트 내부 통신이 가능하게끔 하는 아이템을 말하는 듯했다. 전파 에스퍼의 능력을 본떠서 만든 것이었는데, 일정 거리에 한해서 게이트 내 통신이 가능하게끔 했다.
이 던전은 밖이 아닌 안의 형태였고, 그렇다면 거리 또한 멀리 떨어지지 않았을 테니 확인해 볼 요량인 모양이다.
빠른 판단에 감탄도 잠시, 서일후는 낯을 굳혔다.
“있긴 한데…… 아이템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거리 문제인지 아니면 들어오기 직전 보였던 게이트 내부 시공간이 문제인 탓인지…….”
시공간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던 그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연우진은 시공간 조작이라는 희귀 능력을 가진 에스퍼였다.
“연우진 에스퍼, 혹시 능력에 관해서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아니.”
“아…… 그런가요. 실례했-.”
“지금 능력 조절이 안 돼.”
단호한 대답에 곧바로 수그러들었던 서일후는 이어서 나온 이야기에 눈을 크게 떴다.
“네? 조절이 안 된다니…….”
“이곳에서 시공간 조작은 사용하지 못해. 정확히 말하면 쓸 수는 있겠지만, 이곳이 무덤이 되겠지.”
“무덤?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쪽. 그리고 이곳에 들어온 모두.”
“지금 그게 무슨-.”
연우진은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을 쥐었다 폈다.
굳이 연우진이 아니더라도 이곳에 들어온 에스퍼들의 대부분이 레드 게이트 시공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게이트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만큼 공간은 비틀리고 시간 역시 이상했다.
연우진은 자신이 지나온 복도를 돌아보았다. 분명 이전 복도에는 그가 해치운 마물 시체가 한 구 놓여 있었다.
그러나 모퉁이를 돌고 일렁이는 이질적인 기운에 다시 돌아가 보았을 때, 마물의 시체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이만 보면 무언가가 시체를 치운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일은 몇 번 더 일어났으며 대부분 복도가 비슷한 탓에 알아차리기 어려울 뿐, 자세히 보면 공간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우진은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의 고개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비틀린 공간에서 느껴지는 힘은 제 능력을 닮아 있었다.
“예상보다 형이 능력을 잘 쓰네. 재능이 있었나?”
누구인지는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도이현. 이전 레드 게이트 때 제 능력을 복사해 간 그밖에 없을 테니까.
누가 던전 보스로서 기다리고 있을지 명료했다. 8년 전 끝내지 못한 일을 끝내고 레드 게이트를 닫는 것.
애초부터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그는 걸음을 서두르고자 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 게이트를 닫아야 현세에 있을 김유정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테니까.
“잠깐……! 연우진 에스퍼, 지금 어디가 어디인 줄은 알고 가시는 겁니까?”
서일후는 그런 연우진을 막아 세웠다.
시간에 따라 공간이 바뀐다는 것은 서일후 역시 눈치챈 부분이었다.
그러니 더욱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건만, 연우진은 어디로 갈지 결정한 사람처럼 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제 말 좀 들어 보십쇼!”
연우진은 살짝 고개를 내려 제 앞을 가로막은 이를 마주했다. 그가 고개를 가볍게 까닥였다. 말해 보라는 듯한 눈빛에 서일후는 황급히 말문을 열었다.
“지금 이곳 공간은 이상합니다. 제가 방금 지나온 곳의 촛대가 하나 부족하기도 했고, 있었던 게 없어지거나 타일 모양이 바뀌기도 했는데 제가 생각하기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말 끝났으면 비켜.”
“아직 더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생명체가 있는 공간은 안 바뀌는 것 같으니, 일단 지형을 살펴보고 천천히 움직여 보는 게 어떨까요? 어떤 패턴으로 바뀌는지도 알아야 하고-.”
서일후는 말하다 말고 침을 꿀꺽 삼켰다.
살짝 가라앉은 금안이 그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요에서 느껴지는 옅은 살의에 서일후의 몸이 언뜻 굳었다. 그러나 길을 비키지는 않았다.
B급인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S급 에스퍼. 8년 전 레드 게이트를 닫은 주역. 연우진에 관한 온갖 수식어는 서일후 역시 익히 들어 봤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그땐 다른 에스퍼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원정대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진 데다,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시공간 능력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했다.
그런 상태에서 이 레드 게이트를 혼자 누비는 것은 안전하지만은 않을 테고, 그만한 전력을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잃을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서일후는 연우진 앞을 비키지 않았다. 반드시 선발대 선에서 레드 게이트를 닫아야만 조금이라도 희생이 줄어들 터였다.
그 무렵 연우진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팔 한쪽 정도는 괜찮을 것도 같고.’
부러뜨릴까. 그럼 순순히 비켜 줄 것 같은데.
일단 아군이고 평소였다면 조금 참아 줬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김유정과 도이현은 무슨 연관이 있다. 김유정의 입에서 그녀가 빙의했다던 ‘아멜리아’ 그리고 도이현으로 예상되는 ‘레이몬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신경 쓰였던 것이었다.
김유정 시점에서 보는 레이몬드는 그녀에게 친절했고 다정했다. 그녀는 몰랐던 듯하지만, 도이현은 그녀에게 이성적으로 호감을 표한 것 같았다.
그게 이상했다.
연우진은 도이현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
애초에 자기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해 동생인 도가빈을 흉내 내고 있는 와중이었다.
설령 도가빈으로 연기 도중에 그의 다정한 본래의 성정이 흘러나온 거라고 해도, 도이현은 타인을 대함에 있어 차별을 두지 않았다.
모두에게 친절하게 구는 이였으니까. 그런 도이현의 다정함이 유일함으로 변한 것은 차해연이란 이를 만나고부터였다.
도이현에게 있어 차해연이란 가이드는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였으며, 그의 신이자 세상이었다.
연우진에게 있어 김유정 역시 그러한 존재였고, 그렇기에 연우진은 더욱 꺼림칙함을 떨치지 못했다.
김유정은 차해연이 아니다. 그런데도 김유정에게 레이몬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차해연을 대하듯 레이몬드가 아멜리아였던 김유정을 대했던 것 같다고.
그런 의심을 품고 있는 와중에 이렇게 8년 전과 비슷한 레드 게이트가 열렸다. 더구나 게이트에는 제 능력을 사용한 도이현의 흔적이 묻어나 있다.
이게 단순한 우연이라고? 그럴 리가. 무언가가 더 있을 게 분명하다.
“-꺄악!!”
쿵.
그 순간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여자의 비명과 함께 묵직한 파괴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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