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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107화 (107/119)

107화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오랜 달리기로 인해 뇌에 산소가 부족해져서 그런지 머리가 제대로 안 굴러갔다.

내가 파충류 형태의 마물을 만난 것은 지금까지 총 한 번이다. 예전 알바생 강민지와 만나게 되었던 비전조 게이트 때.

내가 가이드 등록을 하게 된 계기기도 하고, 나는 한창 주목받는 가이드 교육생이기도 했으니 한 길드의 길드 마스터라는 이해수가 그것을 알고 있는 게 그저 이상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평범한 일도 아니긴 했다. S급 가이드가 비전조 게이트에 휘말렸다.

그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 게이트에서 어떤 마물이 나왔는지에 대해 이 이상의 자세한 사정을 알려면 명분이 필요했다.

더구나 정령석. 그는 내가 가진 정령석이 빛을 내는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묻지 않았다. 그저 이 빛을 따라가 보면 어떨까. 그런 간단한 권유가 전부였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조예나처럼 아이템이냐고 묻거나 하는 게 보통일 텐데.

마치 이미 전에 한 번 본 사람처럼.

모퉁이에 멈춰선 채 주변을 살피던 이해수는 내가 저를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자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정 씨, 왜 그래요? 제게 뭐 하실 말씀이라도?”

나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 언제부터 저를 이름으로 부르셨나 해서요. 분명 가이드님이라고 부르셨던 것 같은데…….”

“앗, 혹시 안 되나요? 아무래도 제가 그쪽이 편한지라.”

“뭐라고 부르든 욕만 아니면 상관없긴 해요.”

나는 태연한 양 가볍게 미소 지으며 머릿속으로는 과거를 상기했다.

솔직히 이해수에게는 일일이 따질 만한 상황이 아니니 넘겼을 뿐, 걸리는 건 적잖게 있었다.

그가 그날 배에서 도가빈과 대화를 했다던 에러의 길드 마스터라는 것부터가 걸렸다.

그날 이해수는 도가빈에게 ‘그 사람의 형제인 당신이 우리와 함께해 주길 바란다. 당신도 그를 만나고 싶지 않냐.’ 하는 말을 던졌다.

그때였다면 몰라도 지금 나는 도가빈의 형제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도이현. 이해수의 말은 쉬이 넘길 수 있는 흔한 말이 아니었다.

죽은 이의 형제에게 함께해 주길 바란다.

이까지는 넘어간다 쳐도 그 뒤의 죽은 사람, 도이현을 만나고 싶지 않냐고 묻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마치 도이현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와 관련된 게이트가 머지않아 열릴 거라 믿는 것처럼.

“이번 마물은 느려서 다행이네요.”

“진심으로 부탁하는 건데 순간 이동 아이템이 있으면 다음엔 좀 더 빨리 써 주세요.”

“이야, 여기서 설마 순간 이동 아이템이 사용 가능할 줄이야. 그래 봤자 몇 미터가 전부였지만요. 그래도 안 다치고 무사히 도망쳤잖아요. 비록 팔이 잘릴 뻔했지만~.”

“저는 몸통이 반으로 갈라질 뻔했는데요.”

나는 찢어진 겉옷을 흔들었다. 이 역시 연우진이 준 것이었는데 웬만한 방어구 역할은 든든히 한다는 옷이 상급 마물의 손톱에 걸레짝이 되어 버렸다.

몸이 걸레짝이 되는 것보단 나았지만 괜찮은 방어구 하나를 잃어 손해가 컸다.

정말 그 순간에는 죽는 줄 알았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해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아직 마물화가 덜 되어서 적당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지 않았어요? 만약 아니었다면 저흰 도망도 제대로 못 쳤을걸요!”

“그런 말 웃으면서 하지 말…… 잠깐, 마물화라뇨?”

“첫 번째로 본 마물은 인간의 특징이 많이 남아 있었잖아요? 다리에 허벅지, 분명 아래에 있던 것은 인간의 척추였죠.”

“…….”

“그리고 두 번째로 봤던 마물은 첫 번째보단 적긴 했어도 자세히 살펴보면 피부나 팔 같은 게 남아 있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마물이 더 강했나?”

그 말대로였다. 유독 여기 마물 생김새가 인간을 연상시킨다는 생각은 했다.

그래서 더 꺼림칙했었지만, 내가 전문가만큼 잘 아는 것도 아니기에 저런 마물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유정 씨는 모르겠지만, 저렇게까지 인간을 연상시키는 마물 흔치 않거든요.”

“……그래서 바로 마물화라고 추측한 거예요? 인간이, 마물로 변한다고?”

“네. 추측이라기보단 확신에 가깝지만요.”

정령석의 붉은빛이 향하는 방향으로 이해수가 나를 앞서 걸으며 말했다.

한참 이동하는 동안 복도 풍경이 많이도 바뀌었다. 나는 눈을 굴려 벽 아래쪽을 응시했다.

헤르만 황성의 규정에 따라 이쪽에도 제국어로 지금 있는 장소가 몇 층 어디 구역인지 쓰여 있었는데, 이미 지하를 벗어나 고층으로 올라온 지 오래였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는 한 번도 계단을 오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령석의 빛을 따라 모퉁이를 꺾거나 정면만을 향해 달렸을 뿐인데 어느덧 고층에 올라와 있다.

이게 말이 되나. 마치 이상한 나라에라도 온 기분이었다.

“유정 씨는 왜 여기에 지원하셨어요? 가이드이시잖아요.”

정령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가만히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이해수가 물었다.

“메시아의 가이드라고 들었는데. 좋은 길드에 있으니 억지로 자원할 필요도 없고 그냥 그대로 남아 있으셔도 괜찮으셨을 텐데.”

그 말에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뭐라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게이트가 부르는 것 같았다고 하기엔 내가 생각해도 미친 소리 같고, 이 게이트와 완전히 무관한 사이가 아니라고 하기엔 사정도 복잡하고, 이해수에게 할 만한 말도 아니었다.

나는 고민 끝에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했다.

“이해수 씨가 그랬잖아요. 사람을 더 넣으면 레드 게이트의 출입구가 닫힐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자원했어요. 어차피 출입구가 닫히지 않으면 그곳에 있어도 무사하지 않을 것은 분명했으니까.”

“그러니까 숭고한 희생이라는 거네요?”

“말이 그렇게 되나요?”

나는 황당하다는 듯 이해수를 쳐다보았다.

“이해수 씨는 왜 지원하셨는데요? 공격 능력도 없으시다면서요.”

“그야 궁금하잖아요.”

대답을 아예 안 하거나, 말을 얼버무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곧장 대답이 나왔다.

“인간의 가치는 저마다 달라요. 유정 씨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택한 것처럼요.”

“그러니까 그거 아닌데요.”

달갑지 않은 오해를 뒤집어쓴 듯하여 정정하려 했으나, 이해수는 들은 체도 안 하고 말을 이었다.

“세상은 넓고 제가 알지 못하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죠.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은 호기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왜 옛날 옛적에 인간은 달로 가고자 했을까요? 처음 게이트에서 난 산물이 인간에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았고요?”

“그게 레드 게이트에 들어온 것과 무슨 상관-.”

“상관이 있죠. 제가 들어온 건 레드 게이트로 인해 무엇이 바뀌게 될지 궁금해서거든요.”

이해수는 마치 들뜬 아이처럼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유정 씨는 궁금하지 않으세요? 레드 게이트, 세상에서 최고 등급으로 치는, 현존하는 것들 중 가장 거대한 게이트잖아요! 그 게이트가 완전히 열려서 끝내 동조율이 합쳐졌을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그게 일어나면 안 되니까 막는 게 아닐까요?”

“왜죠?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우린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렇게 묻는 이해수의 얼굴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의문에 차 있어서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유정 씨는 8년 전 그 풍경을 보지 못했나요? 레드 게이트가 굳게 닫히고, 세계의 시간이 되감아지는 그 풍경을요! 마치 정해져 있던 한계를 하나 더 풀어 버리는 듯한 풍경에 저는 그 이상의 세계는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해져서…….”

8년 전 무슨 풍경을 말하는 건진 모르겠으나, 아마 대격변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보았을 리가. 그때 난 이곳에 있지도 않았을 텐데.

‘그러니까 지금, 이 사람은 레드 게이트의 동조율이 끝까지 가는지 안 가는지를 확인하러 왔다는 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이 레드 게이트에 들어온 각성자들은 재앙을 막기 위해 이곳까지 들어왔다.

그런 와중 너무나도 다른 견해를 내세우고 있는 이가 내 눈앞에 있었다.

나는 빛을 따라 걷던 걸음을 멈춰 세웠다.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이해수 또한 나를 따라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는 나보다 한 발자국 앞에 우뚝 서더니 이내 빙긋 웃으며 내 쪽을 돌아봤다.

“사실 유정 씨를 죽였을 경우, 우진 씨가 폭주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하긴 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조금 전과 같이 평온했다. 살짝 들뜬 감정이 설명 조와 섞여 기묘하게도 차분한 억양을 만들어 냈다.

나는 멍하니 이해수를 쳐다보았다.

순간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귀가 들은 것을 뇌가 받아들이지 못한 느낌이었다.

“8년 전엔 도이현 씨의 폭주로 일이 일어났으니, 그 이상의 재목인 우진 씨가 폭주하면 좀 더 세계가 빠르게 무너져 줄지도 모르잖아요?”

“네? 그게, 무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자, 이해수는 안심하라며 내게 미소 지어 보였다.

“음? 아! 지금은 아니니까 괜찮아요. 유정 씨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기도 했고, 이곳과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도 궁금해졌으니까. 뭐, 궁금한 건 그것 말고도 있지만.”

아니, 괜찮겠냐고. 당신 나 죽일까 했다며.

나는 입술만 달싹였다. 갑작스럽게 쏟아부어진 정보들에 저절로 혀가 굳어 버렸다.

손이 자연스레 허리춤의 칼로 향했다. 일단 본인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해수에게 공격 능력은 없다. 설령 공격 능력이 있다고 해도 손만 제대로 닿으면 된다.

그의 몸에 닿은 순간 가이딩을 회수하면 되니 내 쪽의 승리였다.

바짝 경계 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본 순간, 이해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 대화하느라 못 봤네. 유정 씨, 이제 도착인가 봐요.”

이해수의 시선이 나를 벗어나 복도 끝 편을 향했다.

복도 끝에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낡긴 했지만 정교한 문양으로 새겨진 커다란 문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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