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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109화 (109/119)

109화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와 아멜리아를 합칠 거라고? 머릿속이 온갖 생각으로 가득 채워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레이몬드 그 자식은 완전히 미쳤어. 어느 순간 아멜리아를 차해연이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더니, 완전한 차해연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전의 아멜리아가 필요하다고 했어. 김유정, 너라면 차해연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 않아? 너희 세계의 이름이라며.”

점멸하는 전등처럼 깜빡이던 머릿속에 점차 색이 입혀졌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 같다.

파장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레이몬드, 아니, 도이현의 눈에는 제 가이드 차해연의 파장과 나와 아멜리아의 파장이 닮아 있던 거다.

헛된 믿음 혹은 현실 부정. 뭐가 되었든 간에 도이현은 나와 아멜리아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가정이 맞아떨어졌음에도 내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우리가 실제로 차해연이 아닌 것은 둘째 치더라도, 절망으로 미쳐 버린 이의 사고방식을 상식선에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와 아멜리아를 합쳐서 차해연을 만들겠다고?’

어떻게? 그런 게 정말 가능하다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철창을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멜리아도 조금 이상해. 그 애 처음에는 도이현이라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단 말이야.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레이몬드를 도이현이라는 존재에 빗대서 보기 시작했어. 키센의 말로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타인의 기억이 옮겨진 것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에 떠오른 것은 레드 게이트가 터지기 전 가족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내가 된 아멜리아는 처음 보는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길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간 장소를 이미 와 본 사람처럼 말했으며, 김유하 말로는 남동생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8년 전 대격변 때는 많은 일이 일어난 시기였다. 나와 아멜리아가 뒤바뀐 때기도 하고, 차해연 가이드가 사망한 시점이기도 했다.

“……차해연에게 남동생이 있었나?”

“있어요. 유정 씨도 알고 있을 텐데. 진서 씨, 그러니까 차진서 가이드잖아요.”

무심결에 한 중얼거림에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 옆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언제 이쪽으로 온 건지 이해수가 손가락으로 턱을 짚었다.

“그보다 의외네요. 저는 이현 씨가 차해연 가이드의 시신을 원할 줄 알았는데, 닮은 둘을 합쳐서 새로 만들어 낼 생각을 할 줄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웬 사람 하나를 성의 없이 부축하여 데려온 채였다.

금발의 남자였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해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에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에이, 가빈 씨 혼자 먼저 이현 씨 만나고 너무하다. 어땠어요? 오랜만에 보는 형님은. 도란도란 형제간의 우애를 다졌나요?”

도가빈은 거의 피에 절여 있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런 둘을 힐끗 본 비비안이 물었다.

“저쪽은 에스퍼라는 사람들? 네 동료야?”

“…….”

나는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한 놈은 나를 죽이려다 말았다고 하는 속을 모를 놈이었고, 다른 한 놈 역시 앞의 놈보단 나았지만 역시 신뢰가 가는 사람은 아니었던 탓이다.

그런 내 침묵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비비안이 턱짓으로 도가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남자, 레이몬드한테 당했을 거야. 거의 반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것을 마물들이 물어 가지고 왔거든. 얼굴도 그렇고 묘하게 레이몬드와 닮아서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비비안의 얼굴이 불쾌함으로 물들었다.

그런 비비안의 말을 들었는지, 도가빈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예쁜이도 왔네? 우진이가 안 들여보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좋지 않아서요. 그보다 가빈 씨는 왜 여기에?”

“형을 구해 주러 왔지.”

“도이현 씨를요?”

나는 설핏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말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가빈은 그나마 멀쩡한 손을 들어 제 머리를 가리켰다.

“형이 계속해서 미친 소리만 지껄이고 있기에 적어도 안식에 들게 해 주려고. 8년 전에는 못 해 줬으니까.”

“죽일 생각이에요?”

내 물음에 도가빈은 웃었다. 당연하지 않냐는 미소에 저절로 입술이 다물렸다. 힐끗 시선을 틀어 그 옆의 이해수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목적은 같지 않다는 건가?’

조금 전 이해수는 레드 게이트의 동조율 최대치에 관해 논했다. 레드 게이트의 동조율이 오르려면 게이트는 클리어 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도가빈은 던전 보스의 죽음을 바라는 듯했고, 보스가 죽으면 게이트는 클리어 된다.

연이어 떠오른 것은 사람마다 가치는 다르다는 이해수의 말이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가족마저 결심한 마당에 꺼림칙하다니 뭐니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게이트를 닫기 위해서라도 던전 보스는 사라져야만 한다. 그렇기에 더는 내가 알던 레이몬드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이곳의 주인일 보스는 어디에 있을까…….’

아멜리아를 잡기 위한 인질이라는 비비안이 이곳에 잡혀 있는 걸 보니, 이 알현실이 원래 던전 보스가 있어야 할 곳은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철창에 대고 물었다.

“비비안, 그곳에서 나올 방법은 없어?”

“혼자서는 무리야. 나는 정령사야. 이곳에서 정령의 기운은 아주 흐릿해. 네가 가져온 정령석에 남아 있던 정령도 소임을 마치자마자 내 손안에서 소멸을 맞이했으니까.”

나는 가지고 있는 공격용 아이템을 살펴보았다. 써 봤지만 칼은 통하지 않았고, 총 역시 매한가지였다.

그렇다고 가지고 있는 폭탄을 터뜨리기엔 철창 안이 좁아 비비안에게 여파가 미칠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까드득-.

마치 바닥이 무너지는 듯한 거대한 파열음이 일었다.

주변 풍경이 크게 일렁거렸고, 알현실 곳곳에 널린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동시에 내 옆에 있던 도가빈과 이해수가 반대편 벽에 거세게 처박혔다.

콰앙!

“커헉-.”

“윽.”

뼈가 부러졌을 법한 세기였다. 그에 당황할 틈도 없이, 비비안이 가쁜 숨을 힘겹게 몰아 내쉬며 제 목 부근을 붙잡았다.

고통 탓인지 비비안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럼에도 그녀의 눈만큼은 형형하게 내 뒤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굳은 채 뒤를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일그러진 공간 사이로 마물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둘. 넓은 알현실에 점점 늘어나는 마물들은 마치 낭떠러지에 선 것처럼 좌절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해연아.”

그런 와중에 연인을 부르듯 다정한 음성이 들려왔다.

뒤쪽에서 뻗어져 나온 커다란 손이 내 귓가를 스치고 뺨을 매만졌다.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이 내 고개를 제 쪽으로 돌렸다.

“드디어 다시 만났네.”

레이몬드 마빌 헤르만. 아니, 도이현.

근 1년 만에 만난 옛 동료는 다른 이의 이름으로 나를 부르며, 기쁘다는 듯 더없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 * *

화륵. 뜨거운 화염 속 짙은 독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바르작거리는 마물들의 덩어리를 보며 권시현은 미간을 좁혔다.

지금껏 던전 안을 돌아다니는 동안 마물의 사체뿐만 아니라 인간의 시신 또한 다수 발견됐다.

단순히 마물에게 당한 각성자의 주검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현대에서 볼 수 없을 법한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시체를 살피던 권시현은 계속해서 느껴지는 열기에 결국 참다못해 윽박질렀다.

덧붙이자면 인내한 시간은 대략 5분으로, 권시현치고는 놀라운 결과였다.

“불 조절 잘 좀 하라니까! 능력 딸려? 지금 누구 통구이로 만드려고 작정한 거임?”

여기서 문제가 있다면 상대 또한 만만찮게 더러운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권시현의 독 연기에 고초를 치르고 있던 서윤호는 와락 미간을 찌푸렸다.

“그쪽이야말로 연기 관리 잘 좀 하시지? 누구 죽이려고 작정했나!”

그리고 그사이에 낀 힐러, 외부 상처 고속 재생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게이트 원정에 동원된 김재영은 가볍게 두 손을 흔들었다.

“어라, 저쪽에 마물 오고 있어요. 여러분 전방 주시합시다.”

“아 진짜 걸리적거리게!! 야, 거기 너 메시아 힐러. 넌 대체 뭐 하러 들어온 건데?!”

“힐러한테 전투를 기대하시면 안 되죠. 저도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마스터 뒤나 졸졸 따라다니면서 안전하게 목숨 간수하는 게 목표였는데…… 후, 이게 다 제가 쓸데없이 유능한 탓이죠…….”

“지금 내가 연우진보다 못하다는 거냐?! 오냐, 내 힘을 보여 주지!!”

“오.”

커다란 불길이 순식간에 복도를 메웠다.

권시현은 혀를 찼다. 아무리 전보다 복도가 넓어졌다고 해도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어떻게 저 정도로 생각이 없지?

권시현은 안개로 김재영을 보호하며 손을 반대편으로 휘저었다.

보랏빛 연기가 마물에게 스며들자 엉성하게 조립된 신체가 빠르게 녹아 들어갔다. 죽기 직전 벌레처럼 인간의 팔다리가 바르작거렸다.

마치 고통을 호소하는 듯한 모습에 권시현과 서윤호의 미간이 동시에 찌푸려졌다.

불과 몇 분 전, 공간이 크게 뒤틀린 이후로 미궁처럼 이리저리 비틀려 있던 길이 하나로 연결되더니 마물들이 떼로 몰려 들어왔다.

하나같이 상급 마물이었으나, 이쪽은 S급과 준 S급 에스퍼였다.

둘 다 공격에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능력 소모가 크긴 해도, 아직까진 목숨에 큰 위협은 없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다. 그들 말고도 다른 곳에서 상위 에스퍼들이 차출되긴 했다. 문제는 레드 게이트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만약 함께 있는 이들 중 공격계 에스퍼가 있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희망은 없었다.

마물들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끝도 없이 밀려 들어왔다. 그만큼 그들이 있는 위치가 던전의 보스가 있는 방과 가깝다는 걸까.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 문제는 이쪽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서윤호가 능력을 잠시 멈춘 채 욕설을 내뱉었다.

“……망할.”

서윤호의 몸에서 희미하게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과도한 능력 사용으로 인한 가이딩 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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