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자영업자-112화 (112/119)

112화

등을 돌린 김유정이 점점 멀어져 간다.

난잡한 풍경 속으로 흩어져 가는 이의 모습을 보며 아멜리아는 무심코 손을 뻗었다. 당연하게도 손끝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째서? 가이드라며. 당신은 가이드잖아.’

아멜리아 역시 한때 함시혁을 위해 가이드가 되고 싶어 했기에 가이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에스퍼에게 필요로 되며, 에스퍼가 없으면 무가치한 존재. 더구나 가이드에게 에스퍼와 같은 무력은 없었다.

“아멜리아!”

멀리서 키센이 달려왔다. 그의 품에는 다친 비비안이 들려 있었다.

“비비안을 부탁해. 이곳에서는 정령이 없어서 전투도 불가하니까.”

자신을 도망치게 하고 비비안이 대신 붙잡혔었다. 아멜리아는 결국 엉망이 된 비비안을 보며 입술을 짓이겼다.

“비비안…….”

다시 혼란 속으로 향하는 키센을 떠나보내며 아멜리아는 또다시 남게 되었다. 찢어진 입술이 화끈거렸다. 문득 떠오른 것은 주저 없이 전장으로 떠난 김유정의 뒷모습이었다.

김유정으로 지내는 동안 모처럼 손에 넣은 가족에 행복하면서도 제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떨었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비록 헤이든은 자신을 인정치 않고 고향으로 떠나 버렸지만, 비비안과 키센, 소중한 친구들이 생기고 그녀를 받아들여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한 제 것인가? 자신은 그때로부터 무엇이 변했나?

결국 벗어나지 못한 채 모든 게 김유정이 남긴 흔적에 불과하지 않나. 제 손으로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무서워. 이곳에 있고 싶어. 아프고 싶지 않아.’

김유정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무작정 손을 놓고 있는 사람은 없다.

가이드들은 에스퍼들을 보조하고자 애썼고, 에스퍼들 또한 전투 불가한 상태가 아닌 이상 마물을 해치우기 위해 나섰다.

‘나, 지금 여기에서 뭐 하는 거지?’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능력이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자신의 모습은 제 이상과는 달랐다.

주저 없이 나아가던 김유정의 모습이 떠올랐다.

치료. 부상자들을 치료해 달라는 김유정의 말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에 울렸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멜리아는 누군가에게 생명력을 빼앗은 적이 없다. 그러니 만약 힘을 쓰려면 자신의 생명력을 사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서 던전 보스를 없애는 데 실패하면 결국 모두가 같은 결말을 맞지 않나.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우면 어떡하지? 막 능력을 발현했을 때 이후로는 제대로 써 본 적도 없는 능력이다. 제 능력임에도 김유정이 더 잘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순간, 소음을 뚫고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아아악!!”

그때 그녀의 주변에서 마물에게 당해 누군가가 바닥을 뒹구는 것이 보였다.

뒤늦게 누군가가 마물을 해치웠지만, 공격당한 사람은 이미 다리가 반쯤 잘려 나간 뒤였다.

그런 제 동료를 보며 미간을 찌푸린 이는 결국 이를 악물고는 다시 전장으로 달려 나갔다.

전투가 불가해 보이는 이를 붙잡고 있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고 빠르게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아멜리아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천천히 비비안의 뺨 위로 손을 얹었다. 하얀빛이 환하게 일며, 순식간에 비비안의 몸을 뒤덮고 있던 상처들이 사라졌다.

오래간만에 쓰는 능력은 자신의 생명력을 썼음에도 생각만큼 두렵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흑…… 흐윽…….”

다리가 망가진 에스퍼는 제 죽음을 직감한 듯 입술을 짓이긴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위로 옅은 그림자가 졌다. 에스퍼는 눈을 멍하니 깜빡였다. 이 혼란 속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여자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탓이었다.

“……천사님?”

자신을 데리러 온 건가. 에스퍼가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리든 말든 아멜리아는 제 두 손을 꽉 맞잡은 채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비비안보다 큰 상처였다. 신체가 절단되었으면 그만큼 부담 또한 클 터.

……괜찮을까? 비비안 때처럼 잘 안 되면 어떡하지?

수많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불안으로 손이 덜덜 떨려 오기 시작했다.

“제가.”

아멜리아는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제가, 치료해 드릴 수 있어요.”

* * *

콰득, 콰드득.

뼈가 잘게 으스러지고 근육이 파열되는 소리가 울렸다.

연우진은 작게 혀를 찼다. 원래 노렸던 것은 머리였건만 공간 왜곡 탓에 위력이 반감되고, 방향도 어긋나 버렸다.

중력으로 인해 도이현의 상체는 처참하게 뭉개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이현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제 상체를 힐끗 보고 말았다. 그리고 연우진을 향해 미소 지었다.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며,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그의 동생인 도가빈이 아닌 원래의 그인 도이현을 떠오르게끔 하는 미소에 연우진이 잠시 멈칫한 찰나, 도이현의 상체가 크게 부풀었다.

으득.

그의 몸에 검붉은 스파크가 튀더니 뭉개졌던 상체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으스러졌던 뼈가 재조립되듯 다시 맞춰지고, 끊어졌던 근육이 얼기설기 얽히며 단단하게 연결된다.

그저 상처가 치료된 게 아니었다. 다치는 과정에서 셔츠에 묻었던 피, 찢어졌던 옷.

모든 것이 원래의 형태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연우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것을 응시했다.

‘역시, 능력을 직접 사용했을 시 회복이 빨라.’

연우진은 손을 휘저었다.

‘그럼 던전의 것으로 공격하면?’

전투로 인해 부서진 던전을 이루는 자재들이 차례대로 허공으로 떠올랐다.

쾅.

운석처럼 쏟아지는 돌무더기 앞에서 도이현은 손을 뻗어 허공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푸른 전격이 흐르는 검이었다. 그의 위로 쏟아지는 돌덩이를 푸른 검이 갈랐다.

깔끔하게 잘려 나간 단면들 사이로 연우진의 발이 거세게 내려앉았다. 도이현은 곧장 검을 들어 그의 공격을 틀어막으면서도 미간을 찌푸렸다.

발 차기를 막은 검이 뒤로 밀려났다. 무게에 점점 가속도가 붙으며 도이현이 딛고 있는 땅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도이현의 몸을 타고 검은 얼룩이 그의 몸을 감쌌다. 검을 잡고 있던 손과 땅을 딛고 있던 다리에 강한 힘이 실리며, 동시에 거센 파장을 일으켰다.

끼기기긱-.

검의 궤도가 그들이 속한 곳이 아닌 멀리까지 그어지며 거대한 원을 만들어 냈다.

그 선 안에 있던 마물들의 몸이 잘려 나가고, 에스퍼들은 급히 뒤로 물러서거나 공격을 막기 위해 손을 뻗었다.

후드득, 많은 양의 피가 비처럼 흩뿌려지듯 바닥으로 추락했다. 다른 게이트와 달리 이곳 마물의 피는 인간과 같은 색이었기에 그게 온전히 마물의 것인지 혹은 인간의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귀빈을 환영하는 붉은 융단을 깔아 놓기라도 한 것처럼 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연우진은 붉게 물든 바닥 위로 착지하며, 그것을 잠깐 내려다보았다.

귀빈이라. 아주 오래전이었다면 몰라도 연우진은 제가 도이현에게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철퍽, 구두 앞코에 치이는 것이 불쾌하여 작은 물방울처럼 만들어 상대를 향해 쏘아 보냈다. 도이현은 크게 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그걸 허공에서 지워 냈다.

연우진은 설핏 미간을 찌푸리며 손등으로 입가를 가렸다.

“콜록.”

손등으로 대충 입가를 문지르자, 피가 묻어 나왔다. 무리한 능력 사용으로 인해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연우진은 주변을 가볍게 훑었다. 형형하게 빛나는 금안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채였다.

‘전부 죽여 버리면 편할 텐데.’

과도한 능력 사용, 그리고 극한까지 섬세한 컨트롤을 요하는 공간으로 인해 그의 심기는 불편하다 못해 첨예한 칼끝처럼 날이 서 있었다.

아직은 괜찮다고 하나, 가이딩도 벌써 반이나 줄어들었다.

예전이었다면 이 정도에도 잘만 멀쩡하게 이성을 유지했을 텐데, 그간 김유정이 주는 안온함에 취해 물러지기라도 한 것인지 예민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불안정한 세계에서 시공간 능력을 쓰는 건 어렵다. 힘을 과하게 사용하면 공간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던전이 합쳐진 탓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시점에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아니, 본심을 토로하자면 사실 이곳의 누가 죽든 그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저 단 한 사람, 김유정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가능한 한 모든 위험을 배제해야만 했다.

‘누나…….’

연우진은 왈칵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핏덩어리를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도이현을 마주했다.

뭐가 되었든 능력을 남발할 수 없는 것은 도이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애초에 능력 자체가 그에겐 감당하기 힘든 능력이었고, 지금 도이현이 버틸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이 던전의 주인으로서 이 게이트 내 세계의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도이현은 던전을 합친 뒤로 연우진의 능력을 쓰지 않고 있었다. 도이현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의 몸은 이미 절반 이상이 검은 얼룩에 덮여 있었다. 뺨을 타고 올라온 얼룩이 공막에까지 닿아, 안구를 검게 물들였다.

저 검은 얼룩이 그의 온몸을 잠식한 순간, 그는 완전히 인간이 아닌 마물이 될 것이며 이 레드 게이트의 동조율 역시 끝에 다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능력을 써 죽이기엔 특정 공간 내 신체 회귀가 걸린다. 죽이겠다고 한 공격이 도이현의 몸을 수복시키고, 그러면 또 시공간 능력 사용으로 이어져 마물화 진행을 가속할 테니…….

‘이만큼 번거로운 일이 또 있을까.’

연우진은 비죽 입매를 비틀었다.

뭐든 결론은 하나였다. 도이현이 능력 과사용으로 완전히 마물에게 잠식당하든, 아니면 제 쪽에서 몸에 한계가 오든.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이쪽이라는 것.

S급 자영업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