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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113화 (113/119)

113화

* * *

도가빈은 숨을 들이켰다. 뇌에 부하가 걸려 이성을 유지하는 데 평소보다 많은 노력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무서워.’

‘살려 줘.’

‘엄마…….’

끊임없이 들려오는 타인의 생각이 불쾌했다.

이전에 김유정에겐 직접 접촉하지 않는 이상 속마음을 읽는 것은 불가하다고 했지만, 그건 맞으면서도 틀린 말이었다.

오래된 기억이라면 모를까, 단편적인 사고를 읽고 헤집는 것은 접촉하지 않아도 가능했다.

그저 직접 접촉하는 편이 제 쪽도 능력 조절이 쉽고, 상대의 뇌에도 부담이 덜 가고 서로에게 편할 뿐.

도가빈의 능력은 정신을 동반한 모든 것이다.

비록 8년 전 그 일로 힘에 이상이 생긴 탓에 자잘한 부작용을 겪긴 했지만, 그는 힘의 차이가 압도적으로 나지 않는 이상 생각하는 모든 생명체를 다룰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마물이라도 논외가 아니었다.

쿵!

권시현에게 당한 건지 허벅지 한쪽이 녹아내린 마물이 도가빈의 앞에 당도했다.

몸집이 거대한 그것은 다리가 조류처럼 가늘었고, 발톱 또한 사냥감을 잡아채기 쉽도록 날카로웠다. 그러나 그러한 특징들에 반해 허리 부근은 인간의 척추를 가지고 있었다.

딱. 그는 중지와 엄지를 맞부딪혀 튕겨 내었다.

암시를 걸기 위한 행위였다. 도가빈은 마물의 사고를 조종해 다른 마물들에게 제 몸을 던지게끔 명령했다.

저들끼리 살육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의 뇌리에 이질적이고 강렬한 감각이 파고들었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죽여야 해. 왜 그래야 해? 죽이자.’

‘나, 왜 여기에 있지?’

그것은 인간과는 다른 목소리였다.

도가빈은 미간을 좁혔다.

이전에도 게이트는 많이 오갔고, 마물을 조종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의 마물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지금까지 봐 왔던 마물들보다 더 인간에 가까운 사고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처럼 제 행동의 까닭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까닭은 인간을 죽이고자 하는 마물의 본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사고는 사라지고 본능에 잠식당하며, 그의 머릿속 말소리 또한 줄어들었다.

‘이게 미완성 게이트라는 건가.’

8년 전의 검은 숲. 그곳과 같은 세계인 미완성 게이트.

완전히 닫혀야 할 게이트가 제대로 클리어 되지 않고 남아 버린 탓에 결국 다시 던전이 열려 버렸다. 강제로 마련된 멸망에 그곳에 존재하던 인간들은 괴물이 되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지옥이네.’

8년 전과 비슷한 풍경 속이었다.

저 멀리에서 검은 얼룩에 뒤덮인 도이현이 보였다. 그리고 곧 굉음이 울리며 다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도가빈은 제 형이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길 바라고 있다.

그간 도이현의 속마음을 몇 년이고 계속해서 들어온 탓에 미쳐 버릴 것 같았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이미 도이현은 옛적의 모습도, 기억도 갖고 있지 않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차해연에 대한 집착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 내도 전부를 구해 내지 못했다고 죄악감을 느끼던 이가, 이젠 그 이상의 사람들을 죽이고도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저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해 신념도 뭣도 없는 동생을 따라 하기까지 할 정도이니, 이보다 더 밑바닥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도가빈은 이 게이트가 열리길 바랐다. 죽지도 못하고 살아 끝내 미쳐 버린 제 형의 안식을 위해서.

도가빈 나름대로 도이현을 위하는 방법이었다.

“윽-.”

도가빈은 신음과 함께 숨을 내뱉었다. 과한 능력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이었다.

한여름에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시야가 일렁거렸다. 접촉이 아니더라도 상대를 조종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봐야 하는데 안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이딩 부족인가?’

도가빈은 손을 들어 제 눈가를 덮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헝클어진 금발이 반듯한 이마 위로 달라붙었고, 창백한 뺨을 타고 목덜미까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서둘러 가이딩제를 삼키려는 그때, 그의 손안에 무언가가 잡혔다. 그보다 작은 인간의 손이었다.

“가빈 씨.”

곧 열기를 식히듯 적당한 서늘함이 그의 온몸에 스며들었다.

사륵.

그는 고개를 들었다. 넘겼던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고 있음에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저 좀 도와주세요.”

황홀했다.

“가빈 씨 목적도 도이현 씨를 없애는 거죠? 그렇다면 결국 목표는 같잖아요.”

도가빈은 멍하니 김유정을 내려다보았다.

무심결에 호흡조차 멈추고, 혹시라도 눈앞에서 저 존재가 사라질까 싶어 눈조차 끔뻑이지 못했다.

끝이 올라간 눈매. 좁혀진 미간. 모든 것이 눈에 박힌 것처럼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마물은 저를 공격하지 않지만, 다른 문제가-.”

차분한 음성은 마치 중독성 강한 마약 같았다.

녹아내릴 것처럼 달큰하게 느껴지는 공기 속에서 도가빈은 시선을 내려 김유정이 맞잡고 있는 자신의 손을 응시했다. 김유정은 지금 제게 가이딩을 하고 있었다.

“나를 도이현 씨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줘요. 레드 게이트를 클리어 할 거니까.”

허, 조소인지 탄성인지 모를 것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도가빈은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려 오는 턱에 입매를 굳혔다.

‘……고작 1단계가 이 정도라고?’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 그런 가이드가 주는 지독하다 못해 거의 폭력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 * *

나는 달렸다. 마물들이 공격하지 않아도 다른 에스퍼의 능력이나, 무기가 난무하는 공간에서 완전히 안전한 장소는 없었다.

그나마 던전 보스인 도이현을 연우진이 붙들고 있는 탓에, 도이현은 다른 이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었다.

그 순간을 틈타서 나 역시 빠져나온 것이었다.

이 알현실에 있는 마물들만 해도 충분히 상급에서 최상급을 오갔지만, 인간의 사고와 판단을 가진 던전 보스까지 상대하는 것보단 상황이 훨씬 나았다.

그러나 연우진이 공격해도 도이현의 몸은 빠르게 수복되었다. 팔이 잘리든, 몸이 뭉개지든. 과격한 공격의 그 어떤 상흔도 도이현에겐 남지 않았다.

도이현이 복사한 연우진의 시공간 능력이라기엔 연우진은 그 같은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던전 자체가 도이현에게 무슨 영향을 주고 있는 듯했다.

‘……분명 던전 자체의 시공간이 이상하다고 했지.’

정확한 것은 모르나, 적어도 내 눈으로 보기엔 연우진이 힘을 쓰는 게 전보다 힘겨워 보였다.

연우진의 능력에 대해 잘 아는 것도, 그만큼 많이 본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억눌린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도이현과 연우진의 능력 상성이 맞지 않는 게 아닐까?’

뭐든 공격해도 곧바로 회복된다면 이대로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도이현이 완전한 마물이 되기 전에 그의 모든 가이딩을 빼앗고자 했다.

에스퍼의 능력은 통하지 않더라도 가이딩이라면 또 모른다.

가이딩은 에스퍼에게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한 번에 모든 가이딩을 빼앗아 그를 죽이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멜리아 또한 비슷한 능력을 가졌다. 어쩌면 내 능력보다 아멜리아의 능력이 더 유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멜리아를 데려가고자 했으나, 거절당했다.

「……아뇨, 저는, 못 해요.」

고개를 숙인 채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떠오른 것은 막 헤르만 제국에 왔을 때의 나였다. 정확히는 처음으로 전쟁이라는 것에 휘말렸을 때의.

「그럼 내가 할게.」

생각해 보면 아멜리아는 이런 일이 처음일 터다.

더구나 도이현은 나와 아멜리아를 합쳐 차해연을 만든다고 했는데, 둘이 사이좋게 준비물로 가는 꼴이 아니겠는가.

나는 나를 도이현과 연우진이 있는 곳까지 무사히 운반해 줄 에스퍼를 찾아 헤맸다.

연우진과 도이현이 싸우고 있는 쪽은 진창이나 다름없어서 지금까지처럼 아이템만 믿고 갔다간 얼마 안 가 죽을 게 분명했다.

처음 만나는 에스퍼에게 위험한 곳으로 함께 가자고 설득할 만큼 충분한 시간은 없었다.

그런 와중 발견한 게 도가빈이었다. 과도한 능력 사용으로 인해 도가빈의 상태는 무척이나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급한 대로 그에게 가이딩을 해 주며 나를 도이현에게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도가빈의 목적은 도이현의 목숨을 완전히 끊는 것이었다.

그건 결국 레드 게이트 클리어를 목표로 둔 우리와 같았고, 도가빈이라면 내 의도를 알아채고 데려다줄지도 모른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그는 그때 내가 배의 사회자였던 에스퍼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잠시 멍하니 있던 도가빈의 시선이 천천히 나를 향했다. 피로 얼룩진 금발이 그의 눈가로 흘러내리고, 넋을 놓기라도 한 것처럼 눈꺼풀은 조금도 닫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마치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도가빈의 검은 눈동자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감추듯 그가 내게 잡히지 않은 쪽의 손을 들어 제 눈가를 덮었다.

“……미치겠네.”

긁어내리듯 낮은 음성이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설마 가이딩이 부족한 건가? 그의 미간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레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나 곧 가린 손 아래, 그의 입꼬리가 한껏 구겨진 위쪽과 달리 올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유정.”

도가빈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부름에 내가 눈을 깜박인 순간, 도가빈이 눈가를 덮었던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추락하듯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지며, 가려졌던 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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