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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114화 (114/119)

114화

* * *

나는 도가빈과 중간에 만난 키센까지 데리고 도이현과 연우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가빈의 능력으로 조종된 마물들이 공격을 대신 받아 내었고, 키센의 마법으로 이쪽으로 향하는 다른 싸움의 여파 또한 막아 냈다.

거리를 좁혀 바라본 도이현의 몸은 이제 대부분이 검은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 완전한 마물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검게 뒤덮인 얼굴 한쪽, 공막은 까맣게 변하고 그의 푸른 홍채는 하얗게 물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만 가는 얼룩과 달리, 도이현의 몸은 전투를 치른 사람이라고는 생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다. 공격을 받는 즉시 복구된 탓이었다.

키잉-.

그 순간, 미간을 찌푸린 연우진의 발치로 금빛의 선이 그어졌다.

“우진 씨!!”

도이현 또한 내 목소리를 들은 듯 시선을 틀었다. 일그러뜨렸던 얼굴이 곧 환해지더니 입술을 움직인다.

“해연아.”

도이현이 손을 뻗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의 손에서 검붉은 전격이 튀어 오르더니 우리 쪽을 향해 쇄도했다.

연기가 눈앞을 뒤덮었다. 전격은 닿기 직전에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도가빈과 키센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키센은 황급히 지팡이를 휘둘러 커다란 방어막을 둘렀고, 전격을 맞은 방어막은 곧바로 깨져 버렸다. 눈앞에서 빛의 조각들이 비산하며 이내 소멸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키센은 마탑주 후보 중 하나로, 대마법사에 가까운 마법사였다. 그런 키센이 펼친 마법이 단번에 사라지다니.

“저, 저 미친 새끼! 우리만 공격하는 것 좀 봐!”

정작 그 당사자인 키센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저 새끼 하는 것 좀 보라며 분개하는 눈치였다.

“……원래 저렇게 입이 험했던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가 아는 키센은 까칠한 성격이긴 했어도 마탑에만 갇혀 산 마법사답게 비교적 딱딱한 어휘를 구사했었기 때문이다.

“뭐라는 거야. 이게 다 아멜 네가 가르쳐 놓은 거잖아.”

그에 키센이 반박하듯 한쪽 눈썹을 들썩였다.

“그래, 그렇다고 치고 정말 괜찮겠어?”

“괜찮다니까. 그리고 그런 걸 따질 때야? 언제부터 그렇게 사람이 겁쟁이가 되었어? 네가 아멜리아야?”

이쪽으로 오는 길에 키센을 발견해 데려온 것까진 좋았는데, 키센의 상태는 비비안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은 이 게이트가 열리기 전부터 전투를 이어 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유정아, 이제 어쩔까?”

도가빈이 보호하듯 내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그의 시선은 왼편을 향해 있었다.

어느덧 도이현이 이쪽으로 다가온 채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급히 몸을 뒤로 물리며, 총을 겨누었다.

‘-공간 이동 능력인가?’

거리가 꽤 되었는데 이중 도가빈을 제하면 누구도 그가 이동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키센이 낮게 욕을 지껄이며, 지팡이를 꽉 쥐고, 도가빈이 급히 마물로 도이현을 막아섰다.

우리 앞을 막아선 마물의 거대한 몸체가 반으로 쪼개지며, 피가 튀었다.

그리고 곧장 내 쪽으로 다가오려던 도이현의 움직임이 돌연 멈췄다.

도이현의 시선은 제 쪽으로 손가락을 뻗고 있는 도가빈을 향하고 있었다.

끼릭.

도가빈은 미간을 설핏 찌푸린 채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도이현이 고통스럽다는 듯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겁에 질린 사람처럼 두 손을 덜덜 떨며 제 머리를 쥐던 도이현은 머지않아 멍하니 눈을 깜빡이더니 자신의 머리를 세게 쳤다.

퍼억.

무언가가 터지는 것만 같은 소리와 함께, 도이현의 머리에서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내렸다.

퍽, 퍽. 마치 무언가를 떨쳐 내듯 도이현은 그 이후 몇 번이고 자신의 머리를 쳤다.

“……우진이 쟤는 지금까지 저걸 대체 어떻게 붙들고 있었던 거야.”

도가빈이 질렸다는 듯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도이현을 향해 뻗고 있던 그의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는데, 이내 고통을 참아 내듯 그가 손가락을 세게 말아 쥐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도이현의 상처는 오래가지 않았다. 목까지 적셨던 머리의 피가 멎고, 언제 다쳤냐는 듯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그에 흠칫한 키센이 곧바로 방어막을 여러 겹 둘렀다.

“이상한 짓을 하네……. 해연아, 이리 와.”

가볍게 고개를 기울인 채 도가빈을 힐긋 응시하던 도이현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방금 본 것을 떠올리며 흠칫 몸을 굳혔다가 이내 천천히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도이현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내가 그의 가이딩을 완전히 빼앗을 때까지 그가 얌전히 있을까도 문제지만, 내가 간 뒤 도이현이 주변 사람을 공격하진 않을까도 문제였다.

쿵!

그 순간, 누군가가 도이현의 몸을 짓눌렀다. 흉흉하게 뜨인 금안이 보였다.

연우진은 발로 도이현을 짓밟았다. 공간이 거칠게 일렁이며, 무언가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첨예하리만큼 공격적인 행동과 달리 그의 두 눈에는 숨기지 못한 불안감이 보였다.

으득, 으드득. 강한 억제 아래, 도이현의 몸에 검붉은 스파크가 튀었다.

나는 멍하니 서 있는 것도 잠시, 점점 무거워져 가는 공기에 정신을 차렸다. 바닥이 갈라지며 쓰러졌던 마물들이 다시 일어났다.

도이현의 몸이 들썩였다. 길게 제압하진 못한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소리쳤다.

“우진 씨!! 잘 잡고 있어요!!”

갑작스러운 외침에 당황할 법도 한데 연우진은 나를 바라보고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그의 눈은 조금 전과 달리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콰앙!!

중력에 전보다 가속도가 붙으며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바닥이 둥글게 파였다. 공기가 윙윙 울리며 굵게 진동했다.

그에 저항하는 도이현의 뼈가 몇 번이고 부서지고 조립되길 반복했다.

나는 곧장 제압당한 도이현에게 다가가 얼룩이 없는 부분을 붙잡았다. 오른쪽 뺨과 팔. 이제 오염되지 않은 곳은 그 부분밖에 없었다.

물인지, 아니면 질척한 늪인지 모를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상관치 않고 도이현의 안에 있는 가이딩을 흡수했다.

콰광!

던전의 공간이 일렁거리며 흔들렸다.

강한 바람이 불며, 동시에 검은 스파크가 거칠게 튀었다. 나는 날뛰기 시작한 힘마저 전부 삼켜 버렸다.

저번과는 달리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거대한 응축된 힘을 삼키느라 벅찼기 때문이다.

몸이 덜덜 떨려 오고, 도이현의 뺨을 잡은 손에 감각이 없어졌다. 나는 실수로라도 놓지 않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나와 도이현 주위로 거대한 막 같은 에너지의 집합체가 요동치며, 주변에 있던 이들이 빠르게 물러났다.

각성자 간의 파장 마찰 시, 외부인이 간섭할 경우 파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나!”

타인의 외침이 깊은 물속에 빠진 것처럼 먹먹하게 들렸다.

유일하게 멀쩡했던 도이현의 오른쪽 공막에 핏줄이 번졌다. 가까워진 시선에 푸른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었다.

시선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애정이다. 아니, 과연 저게 애정이 맞긴 할까.

“해연아, 사랑해.”

그의 손이 제 뺨을 감싼 내 손등을 덮었다. 그러나 내 손을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그는 손가락에 힘조차 주지 못한 채 미소 지었다.

“해연아.”

도이현은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계속해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단 한 사람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 결국 이런 일을 벌였다.

더구나 그 사람을 되찾는답시고 선택한 방법은 결국 상대의 대체재를 찾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입술을 짓이기며 말했다.

“차해연은, 죽었어. 도이현,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해연-.”

“너한테 그 가이드는 이딴 식으로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별게 아니었어? 정말로 나와 아멜리아면 차해연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차해연의 이름을 읊조리던 그의 입술이 닫혔다. 도이현이 멍하니 나를 응시했다.

그의 눈에 들어찬 것은 끝없는 공허함이었다. 그걸 마주하자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나는 온 신경을 가이딩을 빼앗는 것에 집중했다. 감각은 더없이 불쾌했고, 내 입 안에 있는 체액이 침인지 피인지조차 분간이 안 갔다.

“-아니야, 해연아.”

그 순간이었다. 도이현이 흐리게 미소 짓더니 그의 몸 위로 기괴한 문양이 떠올랐다. 나지막하던 목소리가 뭉개지듯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차해연을 대신할 존재가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도이현의 몸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며 뒤섞였다.

창백한 오른뺨과 목까지 검은 얼룩이 꾸물꾸물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검은 얼룩이 뱀처럼 내 손등 위로 타고 올라올 참에 황급히 손을 떨어뜨렸다. 그에 당연하게도 가이딩을 빼앗는 행위 또한 마무리되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

가이딩 파장의 마찰로 인한 막이 걷히고 곧바로 연우진이 나를 품에 안고 도이현과 거리를 벌렸다.

“저건…….”

나는 도이현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도이현 뒤로 그와 같은 기괴한 문양을 두르고 있는 이해수를 바라보았다.

이해수가 눈꼬리를 가늘게 휘었다.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현 씨한테 그럴 마음이 들어서 다행이네요. 혹시 증폭을 수락하게끔 하는 말이라도 했어요?”

“……뭐?”

“제 또 다른 능력이 현상 자체를 증폭시키거나 감폭시키는 능력이거든요~. 물론 그 경우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는 상대방의 의지가 있어야 하지만.”

도이현의 몸은 이제 하얀 부분을 찾기 힘들 정도로 검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던전 내 공간이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아니, 무너져 내리는 건지 아니면 밖으로 이어지게 되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레드 게이트의 붉은빛과 함께 언뜻 현세의 푸른 하늘이 비쳐 보였다.

마치 레드 게이트의 동조율이 다 채워져 현세로 뻗어 날 것을 암시라도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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