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116화
* * *
동조율이 끝에 다다르며, 게이트가 최악의 상황에 이르긴 했지만, 마냥 나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다.
연우진 또한 능력을 사용하는 데 거리낄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가 능력을 자제하고 있던 이유는 공간이 불안정해서였다.
완전히 클리어 되지 못한 세계는 빙판 위의 얼음처럼 너무나도 섬세하고 연약했고, 간섭이 심할 경우 세계 자체가 붕괴될 우려가 컸다.
그러나 그 불안정한 공간이 동조율이 전부 채워지며 기묘한 안정성을 되찾았다.
레드 게이트가 밖과 이어지게 자신의 겉면을 깨뜨리자, 동시에 안쪽은 그 어느 때보다 완전해진 것이다.
연우진은 가볍게 제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그의 몸에서 거센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이만큼 거대한 게이트의 시공간에 직접적으로 손대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키이이익!
마치 비명을 지르듯 마물의 커다란 포효가 공간을 울렸다.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탓에 굳어 있던 이들은 그 포효에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바로 했다.
어느덧 연우진과 도이현, 그리고 다른 각성자들 간의 공간은 금빛의 선으로 인해 격리된 상태였다.
“형.”
연우진은 허공에 발을 딛고 선 채 제게 덤벼들기 위해 몸을 크게 부풀린 도이현을 고요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이젠 당신을 이해해.”
마물치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결코 인간은 아니었다.
크게 찢어진 입에서 독에 가까운 침이 흘러내렸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를 타고 흘러내려 바닥을 물들인 체액은 마치 어두운 밤처럼 새까맸다.
크륵, 사납게 일그러진 입에서 나온 것은 언어가 되지 못한 짐승의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연우진을 향한 살의에 젖은 눈이 번뜩였다. 인간성을 잃고 완전히 마물에 가까워져 그런지 제 눈앞의 존재가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모양이었다.
끼기긱-!
마물로 변한 도이현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바닥을 긁어내렸다.
검게 일그러진 공간이 열리다 말고 닫혔다. 닫힌 공간 위로는 찬란한 금빛이 감돌고 있었다.
연우진은 멈춰 있는 다른 마물들과는 달리 멀쩡하게 움직이는 도이현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역시 던전 보스라 그런지, 아니면 비슷한 능력이 있어서 그런지. 이 게이트 내의 존재임에도 공간의 시간을 크게 왜곡시켜도 통하지 않았다.
연우진의 몸 위로 스파크가 점점 더 거세졌다. 그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과도한 능력 간섭과 가이딩 부족으로 인해 뇌가 익는 듯 지독한 열감이 느껴졌다.
연우진에게 지겨울 만큼 가이드에 대한 중요성을 늘어놓은 사람이 도이현이었다.
도이현은 운명을 믿었고, 차해연 가이드를 만났을 때는 더없이 기뻐했다. 그는 차해연을 대신할 존재는 없다며 자주 연우진에게 말하곤 했다.
물론 그 결과는 비극에 가까웠다.
차해연은 죽었고, 도이현은 제 가이드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체할 것을 찾아 헤매며 끝내 이런 일을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우진은 이전과 달리 도이현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처참한 말로가 더는 남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까득.
도이현이 네발짐승처럼 바닥에 손을 갖다 대며 등을 크게 구부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연우진이 있는 곳까지 튀어 올랐다.
연우진은 그것을 피하며 도이현의 팔을 내리눌렀다. 공기가 진동하듯 강하게 울리며, 도이현이 선 공간이 일그러졌다.
쾅!
벽면을 이루고 있는 공간이 운석이라도 맞은 것처럼 깊게 파였다.
거대한 힘으로 짓눌린 팔이 삐걱거렸다.
도이현의 몸에 걸린 시공간 능력은 육체의 원형을 되찾고자 했으나, 조금 전 김유정에게 빼앗길 대로 빼앗긴 가이딩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국 팔을 되돌리는 것보다 적을 먼저 해치우는 것을 택한 도이현의 날카로운 손톱이 연우진을 향해 쇄도했다.
연우진은 공간을 좁히는 것으로 그것을 피하고는 곧바로 도이현의 팔로 뛰어들어 남은 팔마저 뭉갰다. 그의 구두가 두꺼운 팔에 내려앉는 동시에 검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콰득.
괴로운 비명을 지른 도이현이 제 팔 위에 올라온 연우진을 향해 다른 손을 내리눌렀다.
“이제 끝내자.”
연우진이 게이트 자체의 공간을 멈춰 버린 탓에 영역마저 빼앗기고, 더는 몸을 수복하지도 못하는 던전 보스에게 승리의 가능성은 없었다.
콰직, 콰지직.
던전을 감싼 금빛의 벽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금 간 틈 사이로 밖의 빛이 새어 들어오며 던전 내부는 마치 한낮의 햇살처럼 눈부시게 비쳤다.
파직, 마지막 발버둥을 치듯 도이현의 몸에서 검은 전격이 튀어 올랐다.
그가 공간을 연달아 그었으나, 얕은 흔적만 남기고 작은 빛 방울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빛 방울이 스며든 곳은 천공의 금빛 시계 안이었다.
쩌적.
좀 더 커진 금이 벼락처럼 범위를 넓혀 갔다. 그리고 멈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전 연우진이 팔을 움직여 도이현의 목을 향해 힘껏 선을 그었다.
두 팔을 잃은 마물은 저를 보호조차 하지 못한 채 목이 잘려 나갔다.
잘려 나간 목은 다시 몸과 합치고자 검은 안개를 일렁거렸으나, 곧이어 공간이 왜곡되며 그의 다리마저 뭉그러졌다.
강렬한 스파크에 휩싸여 잘게 떨리는 연우진의 손끝은 정확히 도이현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도이현의 시선이 향한 곳은 연우진이 아닌 다른 이들이 있는 쪽이었다.
공격하려는 의사를 보였다기보단 그리운 이를 찾듯 망가진 팔을 뻗고자 삐걱거리며 움직이던 도이현의 움직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멈췄다.
비를 내리는 것처럼 검은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커다란 몸체가 갈라지며, 동시에 던전 내의 세계가 크게 진동했다.
와장창!
던전 보스의 죽음을 알리듯 깨진 벽의 파편들이 흩날렸다.
아름답게 비산하는 빛줄기 속에서 누군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레드 게이트, 클리어…….”
악몽의 끝이었다.
* * *
“-막아!!”
적잖은 피해를 냈던 레드 게이트가 클리어 되었다.
E구역을 메우던 거대한 붉은 소용돌이는 어느덧 사라졌고, 그건 다른 구역에 나타났던 게이트 또한 매한가지였다.
“저 괴물 자식, 공격 전부 없앴어!”
그리고 게이트 클리어와 동시에 연우진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연우진이 폭주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게 다 끝이야!! 폭주하기 전에 처리해!!”
“X발! 저걸 누가 처리하는데?!”
두꺼운 콘크리트가 종잇조각처럼 떨어져 나가고 게이트로 인해 무너졌던 것들이 무게를 잃고 무분별하게 떠올랐다.
그의 발치에 금빛의 원이 빛났다 꺼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곧바로 연우진에게 다가가고자 했으나, 그런 나를 도가빈이 막았다. 지금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굳은 얼굴로 답했다.
“제가, 우진 씨의 전담 가이드예요.”
“복무 기간이니까 ‘임시’겠지. 보통 정식 가이드라도 저 정도로 진척된 폭주에 함부로 뛰어들진 않아. 더구나 저놈은 현존하는 S급 중 가장 강한 에스퍼야.”
“하지만-.”
“유정아, 너는 현명하잖아? 지금 갔다간 분명 죽어. 고작 정 따위로 목숨을 버리는 건 멍청한 짓이잖아.”
도가빈이 내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미소를 띠지 않은 채였다.
그 순간, 연우진 주위로 가이딩 부족으로 인한 거대한 스파크가 튀었다.
그에게 접근하는 즉시 땅이 파일 정도로 강한 중력이 대지 위로 내려앉은 탓에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염력계 에스퍼들은 급히 무너져 가는 건물들을 수습하고, 다른 상위 에스퍼들이 연우진을 둘러쌌다.
한 에스퍼가 소리쳤다.
“뭐든 해 봐!! 다 죽는 것보단 낫겠지!”
조금 전 레드 게이트를 클리어 한 일등 공신인 만큼 각성자들의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다급했다.
자칫하면 기껏 레드 게이트를 클리어 해 놓고도 세상이 망할지도 모를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다. 아직까지는 연우진이 어느 정도 제 능력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제 얼굴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 비틀거렸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눈치챘을 때는 이미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우진 씨!!”
쾅.
무게를 잃고 허공을 부유하던 거대한 물체들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짧게나마 멀리 있는 연우진과 눈이 마주쳤던 것도 같다.
동시에 이제 살았다는 듯 누군가의 안심한 외침이 잇달아 들려왔다.
“이로운 에스퍼님 도착했습니다!”
마침 E구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S급 방어계 에스퍼인 이로운의 등장이었다.
설핏 미간을 찌푸린 이로운이 손을 뻗어 연우진을 향해 결계를 드리웠다.
육각형으로 이루어진 수천 개의 도형들이 연우진 주위로 띠를 두르듯 순식간에 쌓여 갔다.
한 번 두 번. 더는 세기 어려울 정도로 결계가 중첩되었을 무렵, 연우진 주변의 파괴 행위가 멎어 들었다.
쾅. 쾅.
마치 신화 속 거인이 대지 위로 거칠게 발을 구르듯 결계 안쪽에서부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결계 한 부분이 깨지자, 곧바로 다른 결계가 그 공간을 메꾸었다.
지직거리듯 곧바로 메꿔지는 육각형을 두른 채 에스퍼들이 연우진 제압에 나섰다.
결계에 둘러싸인 뒤 연우진 주변을 무겁게 짓누르던 중력의 범위가 좁혀진 틈을 타 투입된 에스퍼들의 공격이 집중되었다.
여러 힘이 맞부딪히며 일어난 폭발에 결계 내부의 상황이 거멓게 피어오른 연기에 의해 덮어졌다.
무언가가 파괴되는 듯한 굉음이 수차례 울리고, 드문드문 연기 사이로 거대한 힘의 충돌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쉽게 제압되지 않는 연우진의 폭주에 거대한 결계가 부분적으로 깨지고 생성되길 수차례 반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계가 파괴되는 속도는 점차 줄어들었고, 내부에서 들리는 굉음 또한 잦아들었다.
소란이 멎은 것은 그로부터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였다.
반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제 능력을 억제하고자 한 듯, 주먹을 쥔 연우진의 손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수없이 겹쳐진 결계 속에 놓인 연우진의 목과 손에 능력을 제한하는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