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자영업자-118화 (118/119)

S급 자영업자

118화

“누나, 무슨 생각해요?”

연우진이 내 어깨 위로 제 머리를 얹은 채 물어 왔다. 그의 손은 조심스레 내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저번 일 이후로 접촉하는 횟수가 늘었는데, 자연스러워진 나와 달리 그는 그때마다 귓가를 발갛게 물들였다.

‘맞다. 서일후 씨 병문안 가고 있었지.’

그날 레드 게이트의 파장이 다른 게이트의 파장과 달랐던 탓인지 서일후도 그렇고 심한 부상을 입은 각성자들의 대부분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파장에도 손상이 간 탓에 치료 능력만으로는 완치가 어렵다고. 물론 연우진을 포함한 소수의 몇몇을 제외한 결과였다.

이해수나 그의 길드인 에러에 관해서는 심사가 들어간 상태였다.

이해수는 사형으로 결정되었고, 에러의 길드원들은 각자의 죄목을 논한 뒤에 결정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조예나가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가빈 씨-.”

“도가빈이요? 그 새끼가 또 누나한테 뭐라고 했어요?”

도가빈에 대한 이름이 나오자 곧바로 연우진의 낯이 굳었다.

도가빈의 경우 예상외로 이해수의 범죄 행위에 가담한 증거가 거의 없었는데 이를 보고 연우진은 작게 혀를 찼다. 예전부터 저렇게 발을 빼는 행위에 능숙했다며 말이다.

어쨌든 그것 말고도 조사할 것은 많았기에 도가빈은 당분간 센터 측에 붙잡혀 있어야 했다.

문제는 도가빈이 그쪽으로 가기 전에 내게 했던 말이었다. 그는 대뜸 연우진 앞에서 내게 메시아 길마의 가이드 노릇에 질리면 자신한테 오라는 말을 했다.

“……아뇨. 그건 아니고.”

그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목 뒤가 당겨 왔다.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당황스러운 와중에 연우진이 당장이라도 도가빈을 죽여 버릴 것처럼 구는 걸 말리느라 진땀을 뺀 탓이었다.

“아, 도착했네요!”

나는 말을 얼버무리며, 황급히 서일후가 있을 병실 문을 가리켰다.

드륵-.

병실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었는지 양현우와 한세영, 그리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권시현이 보였다.

두 사람은 서일후와 같은 센터 직장 동료라고 쳐도 권시현은 왜 여기에 있지?

그런 생각이 표정에 드러난 듯 권시현이 평소의 담뱃대 대신 사탕을 입에 물며 대답했다.

“내 사랑스러운 설탕이 이쪽이랑 아는 사이임.”

“설탕을 키우세요?”

“권시현의 전담 가이드를 말하는 거예요.”

나는 연우진의 설명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세영과 양현우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내 인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S급 에스퍼 둘이 병실을 차지한 게 신기한지 연우진과 권시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침대에 누워 있던 서일후가 아련히 읊조렸다.

“저…… 저, 죽으면 장례식장에 사람 많이 올까요?”

회복이 늦은 에스퍼들 중에서도 서일후는 특히 회복이 늦은 편이라고 들었다.

먼 곳을 응시하듯 창밖을 응시하는 서일후의 모습에 권시현이 고개를 기울였다.

“……? 모름. 나는 안 갈 거니까.”

“그 침대 편해 보이네? 비켜 봐. 아, 누나. 오래 걷느라 다리 아프시죠?”

권시현의 대답 뒤로 연우진이 저쪽 자리가 편해 보인다며 미소와 함께 서일후의 침대를 가리켰다.

태연스레 환자의 침대를 갈취하는 모습에 내가 잠시 할 말을 잃은 참에 양현우와 한세영의 시선 또한 자연히 잇달아 나를 향했다.

한세영이 살짝 입을 벌린 채로 나를 한 번, 연우진을 한 번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 아니야. 내가 그러라고 한 거 아니니까.”

왜인지 모르게 부정해야 할 것만 같아 나는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 * *

환자에게 매몰찼던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나는 공용 공간에 놓인 탁자 앞에 앉아 연우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번 도이현 사태로 깨달은 것은 에스퍼에게 가이드가 얼마나 중요한가였다.

물론 각성자 간에 관계가 반드시 그러한 쪽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가 에스퍼에게 각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 각별한 존재를 잃었을 때 사람들은 거대한 슬픔 앞에서 절망이란 늪에 쉬이 빠졌다.

내 시선에 연우진이 무슨 일이냐는 듯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어 왔다.

나를 담은 두 눈에서는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어서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맞췄다.

말할까 말까. 몇 번을 고민했지만, 결국 끝에는 전자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저는 우진 씨를 사랑하지만, 우진 씨가 죽어도 따라 죽진 않을 거예요.”

또렷한 음성이 조용하던 공간을 메웠다.

연우진은 사랑한다는 말에 얼굴을 붉히다, 이어지는 말에 내 눈치를 봤다.

내 말이 못마땅했다기보단 갑작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혹시 자신한테 화난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신경 쓰는 눈치였다.

나는 턱을 괴고 그를 응시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생각이 아니었다. 레드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해 온 생각이었다.

에스퍼가 사는 데 필요한 가이딩을 가이드에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를 해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을 죽여도 된다는 말을 눈앞에서 들었을 때부터.

“우진 씨가 죽으면 무척 슬프겠죠. 몇 날 며칠을, 어쩌면 쓰러질 때까지 울 거고, 당신을 죽게 만든 사람들을 원망할 거예요. 만약 누군가가 당신을 죽인 거라면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갚아 주기 위해 노력할 거고.”

다소 두서없이 이어지는 말에도 연우진은 조용히 내 말을 경청했다.

솔직히 상상이 안 되긴 했다.

강한 이를 꼽자면 단연히 상위에 있을 연우진이 누군가에게 죽을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았고, 누군가가 당장 내가 죽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고 하면 그것 또한 어려웠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나 역시 죽을 것이다. 그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내일 당장일 수도 있다.

신이 아닌 이상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누구든 자신이 어떤 식으로 죽을지 생각하지 못한다.

도이현 또한 차해연이 그런 식으로 그렇게 죽어 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버티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언젠가는 익숙해지는 날이 올 거예요. 우진 씨를 잊는 게 아니라, 그저 슬픔만이 흐려지고 당신과의 기억을 영원히 마음속에 묻는 거죠.”

솔직히 얼마나 슬플지 말하라고 하면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에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그를 잃었을 때 내가 슬퍼할 거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 나는 당신을 오랫동안 그리워하며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랑 약속해요. 나처럼 당신도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해도 당장 죽지 않기로.”

“…….”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연우진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의 얼굴은 조금 전과 달리 굳어 있었다. 내가 손을 내밀면 곧바로 손을 뻗어 오던 평소와 달리 연우진의 팔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우진 씨는 살면서 크게 하고 싶은 거 있어요?”

“……아뇨.”

이번 도이현 사태로 생각할 것은 많았다. 가이드를 잃은 에스퍼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 폭주할 시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러나 수많은 생각 끝에서 나는 다른 것을 상관치 않는 내 순수한 본심을 발견했다.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논하는 그가 살길 바랐다.

나는 대답 없는 연우진 대신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제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엄청 많거든요. 버킷 리스트만 해도 몇 페이지는 꽉 채웠고.”

이렇게 말하니 무슨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같은데.

나는 서둘러 정정했다.

“아, 물론 그냥 하고 싶은 목록 같은 의미로 얘기한 거예요. 어쨌든 그런 게 되게 많은데 만약 내게 그런 일이 생기면 나 대신 해 주지 않을래요?”

“…….”

“우진 씨는 하고 싶은 거 없다면서요. 저 대신 그거 다 해 주세요. 그렇게 하나하나 다 해내고, 그래도 죽고 싶으면 그땐 말리지 않을게요.”

나는 태연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당당히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논리라고는 없고, 그저 억지에 가까운 이야기를 연우진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부탁, 들어줄 거죠?”

나는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두 손으로 그의 뺨을 가볍게 감쌌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마음 한구석으로는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긴 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것을 묻는 이유는 이 물음에 긍정의 대답을 내뱉는 그의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없으면 세상이 무너질 듯 내게 애틋한 그가 달가우면서도 정말로 그가 무너지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니 말이다.

“……네.”

연우진의 대답은 한참 뒤에 돌아왔다.

그가 손을 뻗어 내 손등을 덮듯 움켜쥐었다.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럴게요.”

반드시.

그가 눈을 천천히 깜박였다.

환한 불빛 아래 긴 속눈썹이 옅은 그림자를 드리웠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 * *

레드 게이트가 클리어 되고 1주 하고도 며칠이 더 지난 후.

내 카페가 있는 N구역은 비교적 피해가 적은 구역이었다. 더구나 온갖 방어 능력이 걸려 있어 웬만한 운석으로는 끄덕조차 하지 않는 방공호나 다름없었다.

곳곳에 무너진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피해 하나 없이 우뚝이 선 건물을 보았을 때는 감회가 남달랐다.

그간 온갖 피해에 살아남지 못한 집을 두었던 사람으로서 당연한 흐름이었다.

게이트로 인한 피해가 크지 않은 가게들은 상황이 빠르게 안정되자 가게를 열기 시작했는데, 내 가게 또한 그중 하나였다.

쿠아 열매를 공급받는 쪽이 한동안 유통이 불가할 것 같다고 하여 쉬었던 것인데, 다시 가능해졌다는 답변이 돌아온 탓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레드 게이트 클리어를 축하하는 의미 반, 다시 손님을 받기 전에 연습하자는 마음 반으로 가게를 열었다.

정식 오픈은 아니고 이번 일에 얽혔던 사람들과 지인 몇에게만 알린 오픈이었다.

서윤호 또한 카페를 열 거라는 내 말에 오랜만에 카페로 찾아왔다.

그는 내 카페에 있는 연우진을 보고 경악도 잠시, 곧바로 싸움이라도 걸듯 험악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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