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119화
제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서윤호를 연우진은 잠시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제 앞에 놓인 자몽 허니 블랙 티로 시선을 옮겼다.
당연하게도 서윤호는 그 반응에 더욱 열을 냈고, 그에 연우진은 시큰둥한 얼굴로 이 카페는 휴전 구역이니 다른 곳에서 일 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누나 카페에서 뭐 하나라도 부수면 네 사지가 하나씩 없어질 줄 알아.”
연우진의 대답에 서윤호는 분노에 앞서 혼란을 느낀 듯했다.
무슨 괴이한 광경이라도 목격한 사람처럼 서윤호가 눈가를 한껏 찌푸리며 내게 연우진과 무슨 사이라도 되냐고 물었다.
그에 나는 연우진의 전담 가이드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내 대답이 떨어짐과 동시에 서윤호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뭐?! 김유정이 연우진의 전담 가이드라고?!!”
대뜸 쏟아진 노성에 서윤호 근처에 앉아 있던 조예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한편 서윤호는 혼자, 그럼 그때 물어봤던 주연우라는 놈이 그……? 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더니 얼마 안 가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는 너 그거 속은 거 아니냐며, 사기 계약이라며 떠드는 서윤호의 주장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시무룩한 연우진을 발견하고는 우뚝 고갯짓을 멈췄다.
“뭘 새삼스럽게. 이번 센터 교육생 중 S급 가이드가 메시아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길드 간에 돈 지 꽤 되었잖아요?”
“메시아로 들어간 거랑 저 새끼의 전담 가이드가 된 건 말이 다르지!”
“뭐가 달라요. 그리고 연우진 에스퍼 폭주 막은 것도 언니였잖아요.”
“S급 가이드잖아.”
그러니까 지금 가이드 중 가장 높은 등급을 가지고 있으니 연우진 폭주에 동원된 줄 알았다는 거였다.
그런데 나 연우진 전담 가이드라고 밝혔던 것 같은데?
의문도 잠시, 나는 뒤늦게 그때 서윤호가 연우진과 전투 도중 쓰러졌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런데 S급 가이드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언니가 메시아에 들어가 주었으면 당연히 그 정도 대접은 받아야죠!”
“와…… 콩알 진짜 말 안 통하네.”
서윤호가 미간을 좁혔다. 그건 조예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이 안 통하는 게 누군데. 아, 맞다. 저희 길마님이 서윤호 씨 머리에 보석 박아 주기로 약속했다고 길마님 시간 날 때 찾아오래요.”
“내가 미쳤다고 찾아가겠냐?”
나는 황당하다는 듯 대답하는 서윤호의 앞에 그가 시킨 쿠아 파이와 초콜릿 음료를 놓아주었다.
“어쨌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안 돼. 인정 못 해!”
서윤호의 말에 조예나가 황당하다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
“아니, 이미 저쪽 전담 가이드인 사람한테 뭘 인정 못 한다는 건데요. 그리고 서윤호 씨가 뭔데 인정을 하냐 마냐예요.”
“……친구, 비슷한 거잖아.”
한참 대답을 망설이던 서윤호가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중얼거렸다. 만약 소리를 듣지 않고 표정만 봤다면 누구 한 명 묻으러 가는 줄 알았을 거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든 저런 말이 서윤호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묘하게 감동스러웠다.
그 감동을 깬 것은 연우진의 대답이었다.
“흙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으로 괜찮겠지?”
연우진이 창밖을 응시했다. 곧장 밖의 흙을 퍼 와 서윤호의 눈에 처넣을 기세였다.
그 기세를 조예나 또한 느낀 듯 그녀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투덕거리는 동안 서윤호에게 꽤 정이 쌓인 듯했다.
“맞다! 이로운 에스퍼가 소속을 헤베 길드로 옮긴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이에요?”
“아, 걔…….”
서윤호의 얼굴이 떨떠름한 채로 굳어졌다.
그 말대로 이로운은 소속을 센터에서 헤베로 이동하려 한다고 내게 말했다.
처음에는 나를 따라 메시아로 오려고 했으나, 헤베의 길드 마스터 유주성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헤베 쪽으로 틀었다.
내게 그 사실을 전한 이로운은 한참의 침묵 끝에 특유의 무감각한 얼굴로 자신도 힘내 보겠다고 했다.
뭘 힘내겠다는 건지는 몰라도 일단 당사자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듯한 의지를 보여 응원하고 봤다.
“우리 길드로 왔으면 좋았을 텐데! 레드 게이트 때 보니까 대단하던데요?”
조예나의 말과 동시에 딸랑, 현관에 달린 종이 가볍게 흔들리며 하도경과 김재영이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아는 사람들만 초대할 거라는 내 말에 카페를 방문하겠다고 했었는데 설마 여기에서 조예나와 서윤호를 마주칠지는 몰랐는지 둘 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오늘 마스터가 쏘는 거예요?”
정정하겠다. 표정이 굳은 것은 하도경뿐으로, 김재영은 태연히 돈은 당연히 윗사람이 내야 하지 않겠냐며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 김재영을 버리고 가까운 아무 자리에서 털썩 앉은 하도경이 미간 사이를 꾹 누르며 작게 중얼거렸다.
“서윤호가 왜 여기에 있어…….”
“도경 씨랑 사이 안 좋으세요?”
“그건 아닌데 연우진과 만나면 폭발해서요.”
무슨 폭발 물질처럼 말하네.
나는 잠시 눈을 흐렸다.
레드 게이트 때 고생한 것도 있으니 클리어를 축하하자는 의미로 친구를 포함해 친분이 있는 각성자들은 대부분 초대했는데, 지금 보니 미처 상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얌전한 것 같네요. 무슨…… 아.”
조예나와 대화하고 있는 서윤호를 보던 하도경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뭐냐는 듯 그를 바라보자 하도경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별건 아니고, 유정 씨도 한 고생 하겠네요.”
“고생이라면 하고 있죠. 우진 씨가 최근 또 분리 불안이 생긴 것 같은데 어떡해야 할까요.”
“매번 신세 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도경은 빠르게 선을 그었다.
곧장 음식 이야기로 넘어간 그를 잠시 쳐다보다 다시금 울리기 시작한 종소리에 시선을 문 쪽으로 돌렸다.
머지않아 한세영과 양현우, 그리고 친구인 성지혜와 센터 소속 서일후, 이로운…….
친숙한 이부터 한 번 본 게 전부인 낯선 사람들까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어느덧 꽉 찬 카페에 나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솔직히 초대하면서도 진짜 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는 술집도 아니고 카페이니 오기 불편해할 줄 알았지.
대부분이 은연중 쿠아 열매로 만들었다는 디저트가 궁금한 눈치였다.
그렇게 한참 주문을 받고 있을 무렵, 어느 순간부터 카페 공간 한쪽을 차지한 커다란 상자가 신경 쓰였다.
사람들이 드나들며 이곳에 있는 사람 중 누군가가 가져온 것은 분명한데, 누가 가져왔는지를 보지 못했다. 알바생인 강민지에게도 물어보니 보지 못했단다.
‘개업 축하 선물 같은 건가?’
하지만 개업 축하라기엔 개업한 지 한참 되었는데. 그냥 집들이 선물 같은 느낌으로 가져온 건가?
저게 뭔가 싶어 손도 멈추고 상자를 물끄러미 쳐다볼 무렵이었다.
연우진이 나를 불렀다. 그에 나는 강민지에게 잠시 맡기고는 자리를 비웠다.
“누나.”
연우진은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오가며 자신을 쳐다보는 게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를 잘 아는 사람만 있다면 모를까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 또한 있었다.
각성자들은 보기 드문 연우진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놀라운지 시선이 종종 이곳을 향했다.
물론 그중에서는 그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대놓고 쳐다봐도 얌전한 연우진이 신기하다며 말이다.
“저 선물 드릴 것 있어요.”
“네?”
“사실 집에서 드리려고 했는데, 좀 더 빨리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연우진의 눈꼬리가 유려하게 휘었다.
‘……저게 그건가?’
나는 곧장 카페 한 켠을 차지한 선물 쪽으로 눈을 굴렸다.
연우진이 선물 포장지를 열었다.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웬만한 고급 호텔 케이크보다 더 화려한 3단 케이크였다.
예상치도 못한 선물의 정체에 내가 할 말을 잃은 채 눈동자를 잘게 떠는데, 누군가가 나지막이 탄성을 흘렸다.
“와우…….”
어느덧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해 있었다.
안 그래도 연우진이 앉아 있어서 구석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쏠렸는데, 난데없이 화려한 케이크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순식간에 왁자지껄했던 카페 안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대다수가 눈치만 보며 말을 삼키던 그때, 짝짝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결혼 축하드려요.”
박수를 친 사람은 입 안에 음식을 한껏 욱여넣고 있던 김재영이었다.
난데없는 결혼 이야기에 내가 당황하여 눈을 깜빡이던 사이, 가게 안의 사람들이 말없이 눈짓을 주고받더니 분위기 파악 완료했다는 듯 다 같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와아, 축하드려요!!”
“그런 건 줄 몰랐네! 미리 알았으면 선물이라도 가져오는 건데!”
나도 몰랐다.
축복 어린 시선들 속에서 당황도 잠시, 들떴던 분위기가 갑자기 고요해지자 나는 흘낏 연우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우진의 얼굴은 타오를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어쩐지 조용하다 싶더니 서윤호나 이 상황에 말을 보탤 이들은 잠시 자리를 비운 채였다.
나는 상황을 무마하고자 급히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웬 케이크예요?”
“수제 케이크를 좋아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오늘 축하의 의미로 가게를 여신 거라고 하셔서 준비했어요.”
“예? 제가 언제……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그의 의미 모를 선물 공세가 계속될 무렵, 차라리 요리를 못 하는 그가 줄 수 없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자는 생각으로 말이다.
“결, 혼까지는 아니지만, 오늘 하고 싶었던 말이, 아 물론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연우진이 횡설수설 말을 머뭇거렸다.
그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나를 향했다. 귓가, 눈, 뺨 붉어지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발갛게 물든 낯으로 그가 미소 지었다.
“……제 연인이 되어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그 얼굴을 마주하며 그를 따라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해 보면 연우진은 매번 내가 기억도 못 하는 사소한 일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를 놀라게 하곤 했다.
두 눈을 크게 뜬 채 숨조차 멈춘 그를 마주하며 나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좋아요.”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바라던 평화나 일상보다 더 원하게 된 것이었다.
-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