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화 (1/200)

제0화

00. 내 팔자야.

그러니까 이건 미친 짓이다.

“팀장님, 준비 끝났다는데 이제 들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네 팀장이 아니다.

“그냥 팀장님 혼자 들어가면 안 되나요? 게이트 단독 공략하신 경험도 있잖아요.”

안 된다.

나 혼자 들어갔다가는 저세상 하이패스권을 끊고 말 거다.

희게 질린 얼굴로 게이트 앞에 서 있는 여자의 이름은 지화자.

5년 전, 혜성같이 등장한 그녀는 혈육을 죽여 ‘랭킹 1위’의 자리를 강탈한 랭커.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성정… 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0팀, 안 들어갈 겁니까?”

“네!”

“네……?”

“아, 아니요! 들어가야죠!!”

지화자는, 아니.

그녀의 몸에 빙의되어 있는 유은영은 울음을 삼키고선 웃었다.

“하하, 오랜만에 몸 좀 풀겠네요? 아이, 신난다! 신나!!”

“…….”

저 멀리서 작작 웃으라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유은영은 무시했다.

각성자 관리국, 일명 ‘센터(Center)’의 간호 관리 부서 소속의 F급 힐러.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뭉친 근육을 기가 막히게 풀어 주기밖에 없는 유은영은, 모두가 알아차렸겠지만…….

랭킹 1위, ‘지화자’의 몸에 빙의된 상태다.

제1화

01. 장난 아니에요

유은영, 나이 27살.

센터 내 간호 관리 부서에 소속되어 있는 F급 힐러(Healer).

‘힐러’는 몸에 난 상처뿐만이 아니라, 체력과 기력까지도 회복시킬 수 있는 각성자였다.

그렇다고 하나, 유은영이 할 수 있는 일은 뭉친 근육을 완벽하게, 또한 아프지 않게 풀어 주기밖에 없었다.

그야, 그녀는 F급.

다른 말로 폐급이라고도 불리는, 일반인이나 다를 바 없는 각성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유은영은 밝았다. 정확히는 높은 분들께 열심히 아부할 줄 알았다.

“어때요, 팀장님? 시원하죠?”

“말해 뭐 해. 은영 씨 안마가 세상에서 최고지, 최고!”

“히힛.”

또한, 자신이 가진 능력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 그들 중에서 어깨가 부드러운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뻣뻣하게 굳은 어깨 근육을 눈 녹듯이 사르르 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있겠고.

‘퇴사하고 마사지 숍이나 차려야지.’

하루빨리 돈을 모아 이 빌어먹고 안정적인 직장을 탈출하는 게 유은영의 목표였다.

센터는 나라에서 세운 기관으로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공무원 신분이었다.

철밥통이라고도 하던가.

웬만한 일로 해고될 걱정이 없는 직장을, 유은영은 발로 차 버리겠다고 하는 중이다.

그녀가 그러한 결심을 한 이유가 있었다.

“은영 씨, 부장님이 찾으시는데?”

“부장님이요?”

“응, 당장 부장실로 오래.”

지랄 맞기로 소문난 간호 관리 부서장의 호출에 유은영은 울상을 지었다.

“은영 씨, 또 무슨 사고를 쳤길래 부장님이 찾으셔?”

“저번처럼 엑셀 작업 잘못한 거 아니야?”

그러나 유은영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다들 웃고 있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유은영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그러게요.”

속은 타들어 가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상관이 호출했다는데 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무슨 욕을 먹으려나.’

무슨 욕을 먹든 수명은 길게 늘어나겠지.

길고 가늘게 사는 것이 목표인 유은영은 좋게 생각하자면서 부장실로 향했다.

“부장님?”

“어어, 왔어?”

“네, 부르셨다고요?”

“응, 급한 일은 아닌데 은영 씨한테 알려 주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불렀어. 거기 앉아.”

유은영은 부장의 민머리에 꾸벅 인사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탈모가 한창 진행 중인 부장이 유은영의 맞은편에 앉고는 말했다.

그가 꺼낸, 급한 일은 아닌데 유은영에게 알려 주기는 해야 하는 일이란 것은 아주 의외의 일이었다,

“네?”

“은영 씨, 지난 워크숍에 참석 안 했었잖아.”

“그… 그렇죠……?”

참석을 안 한 게 아니라, 하지 못했던 거였다.

‘팀장님께서 일정을 이상하게 알려 줬으니까!’

미처 확인하지 못한 네 잘못 아니냐고 물으면 유은영은 억울했다.

‘워크숍 날에 휴가 다녀와도 된다고 했단 말이야.’

그날이 워크숍 날인 줄도 모르고 좋아했었지.

뒤늦게 이를 알고서 유은영은 팀장을 찾아가 우는소리를 했더랬다.

“그래서 그게 내 잘못이라는 거야?”

물론, 사과는 받지 못했다.

오히려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네 잘못 아니냐면서, 간호 관리 부서의 팀장인 이혜나는 불쾌하다는 얼굴을 보였었다.

그에 유은영은 “하지만”이라고 말을 붙이지 못했다. 그저 입술을 금붕어처럼 내밀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괜히 속이 쓰려 왔다. 유은영이 올라오는 신물을 애써 삼킬 때였다.

“은영 씨. 워크숍이란 게, 서로 으쌰으쌰 잘해 보자는 것도 있지만 말이야. 분기마다 꼭 들어야 하는 교육 특강을 거기서 하기도 하거든. 알지?”

“네? 네, 알죠.”

“그런데 은영 씨는 참석 안 했잖아. 꼭 들어야 하는 교육 특강이 있었는데도 말이야.”

그러니까 참석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라고!

유은영이 테이블 아래에 놓인 손을 꽉 주먹 쥐고는 웃었다.

“그러니까… 그걸 들어야 한다는 거죠? 오늘 저녁에.”

“응.”

민머리 부장이 말한 급한 건 아닌데, 알려야 할 일이라는 것은 꽤 급한 일이었다.

“그거 안 들으면…….”

“감봉이지.”

“……!”

유은영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워크숍 하나 참석 안 했을 뿐인데 감봉이라니!

부장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사내 갑질 방지 특강인데, 워크숍 때처럼 강사가 와서 하는 게 아니라 영상이래. 영상인 걸 다행으로 여겨.”

너는 부장인 걸 다행으로 여겨!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유은영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부장에게 물었다.

“그… 영상이면, 사이트에 올려주면 안 되나요? 그럼, 밤을 새워서라도 들을 텐데요.”

“그건 외부 유출 때문에 안 된다네?”

“그러니까, 그 말은.”

“직접 가서 들어야 한다는 거지.”

부장은 그러곤 웃었다.

“시간은 오늘 저녁 아홉 시. B동 617호에서 영상을 틀어 준대.”

아홉 시라니?

“저녁이 아니라 밤인데요?”

“현장 파견 부서 쪽에서도 안 들은 사람이 있거든. 그쪽 일이 워낙 늦게 끝나잖아. 거기 부서 사정을 고려해 준다고 그렇게 잡혔다나 봐.”

그러니까 수고하라면서, 부장은 유은영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잠깐만요! 부장님!!”

유은영이 애타게 그를 불렀지만 문은 이미 닫힌 지 오래였다.

그 모습을 본 간호 관리 부서의 팀원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유은영에게 물었다.

“왜? 부장님이 야근하래?”

“그건 아니고요…….”

유은영은 부장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전달해 줬다.

유은영의 이야기를 들은 팀원들이 잘됐다면서 손뼉을 쳤다.

“결국, 야근한다는 거네?”

“아니에요! 집에 들렀다가 아홉 시에 센터로 올 거란 말이에요!”

“에이, 번거롭게 그런 일을 왜 해? 그냥 일하다가 들으러 가면 되잖아.”

말이 쉽지!

“다들 들었지? 은영 씨 야근한다고 급한 일 있으면 자기한테 맡겨 달래!”

“네? 누가 그랬다고……!”

유은영의 처절한 외침은, 신이 나서 그녀에게 일을 떠넘기는 팀원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잘 부탁해, 은영 씨!”

“은영 씨, 이번에는 엑셀 작업 실수하지 말고 잘해 줘~!”

여섯 시를 가리키는 시간.

그녀에게 일을 떠맡긴 팀원들이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그렇게 유은영은 부서실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오, 뭐야. 은영 씨, 아홉 시까지 일하려고? 그래, 좋아. F급이면 그렇게라도 일을 해야지.”

마지막으로 민머리 부장이 퇴근하고 난 뒤에야 말이다.

유은영은 노을이 지고 있는 도시의 전경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진짜 퇴사하고 싶다.”

하지만 안 될 일이다.

힐러라고 하나, F급.

있으나 마나 한 능력치를 가진 유은영에게 센터와 맞먹는 대우를 해 줄 곳은 없었다.

그 때문에 유은영은 눈물을 머금고 야근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가 지고, 저녁이 지나 밤이 되었다.

“주… 죽겠다……!”

유은영은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는 중이었다.

환경을 위해 저녁 7시 이후로는 절전이라면서, 센터 내 엘리베이터의 작동이 멈췄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센터!”

유은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욕을 짓씹고는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도착한 B동 617호, 시청각 미디어실.

“유은영 씨?”

“네? 네! 맞아요.”

유은영은 눈물을 닦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에게 센터의 안내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올라오느라 힘드셨죠? 워크숍 참석하셨으면 이렇게 움직이실 일은 없었을 텐데요.”

“하하… 그러게요…….”

유은영이 다소 허탈한 얼굴을 보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은영은 워크숍에 참석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센터의 안내 직원이 이를 알 리가 없었다. 그는 유은영에게 종이와 펜을 쥐여 주며 말했다.

“여기 서명해 주시고, 그런 다음에 안에서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유은영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적은 뒤, 617호의 문을 열었다.

‘다행이다!’

다행히도 함께 영상을 듣는 사람이 있었다. 부장이 말한 현장 파견 부서의 사람인 것 같았다.

‘잠깐, 다행인가?’

자려고 했는데.

유은영이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앉아 있는 사람에게서 두 칸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함께 영상을 듣는 여자는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칼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유은영이 여자를 흘긋거렸다.

미디어실 안이 어두워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었다.

‘뭐지?’

도대체 어디서 봤을까?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지나다니면서 한 번씩 본 거겠지. 센터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돌아다니는 사람은 엇비슷하니까.’

유은영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여자 쪽으로 몸을 길게 뺐다.

“저기요.”

“……?”

“이거 드실래요?”

유은영이 내민 건 유명 브랜드의 초콜릿이었다. 여자는 미간을 좁히고는 유은영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유은영이 맑게 웃으며 말했다.

“당 떨어지지 않아요? 그쪽도 일 끝내고 오셨을 텐데.”

여자는 유은영이 내민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은영을 한 번, 초콜릿을 한 번.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 여자가 결국 유은영이 내민 것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

난데없이 반말이네.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으니 된 건가.

유은영이 그렇게 웃어넘길 때.

[PM. 9: 00]

삐―

울리는 소리와 함께 영상 하나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

하지만 유은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질 방지 예방 교육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재생되는 영상은 센터의 설립 역사와 그 의의에 대해 설명해 주는 홍보 영상이었다.

혈세 낭비 제대로 했다면서 욕을 먹은, 그 영상이 틀어지자 유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버려 둬.”

“네?”

“갑질 방지 교육 영상은 1시간 분량인데, 이건 10분 정도만 들으면 되거든.”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어차피 서명은 했고, 틀어 주는 영상만 보고 가면 되잖아.”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던 유은영이 도로 앉았다.

“다시 보라고 하면요……?”

“너희가 실수했으면서 왜 우리한테 지랄이냐고 하면 되지.”

“그래도 돼요?”

“그래도 돼.”

유은영이 떨떠름한 얼굴로 여자를 쳐다봤다.

현장 파견 부서는 위험한 일은 모두 도맡아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센터의 높은 분들이 한 수 접어 주고 있다는 건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도 되는 걸까?

하지만 유은영은 50분 일찍 퇴근을 위해 눈앞의 여자를 믿어 보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재생된 영상에서 내레이션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졌던 개벽(開闢)의 날.

그날을 기점으로 인류는 한 차례 진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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