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2화 (2/200)

제2화

개벽의 날.

누군가는 인류사에 있어 ‘혁명’이 일어난 날이라고도 한다.

개벽의 날, 곳곳에 나타난 문.

모든 것을 빨아들이면서 생성된 이름 모를 것을, 철문 하나가 굳게 막았다.

그 문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갈라졌다.

문을 열어야 한다는 사람들과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

문을 열어야 한다는 사람들은 말했다. 어서 저 문을 열어, 빨려 들어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그들을 막는 사람들은 외쳤다. 빨려 들어간 사람들은 이미 죽었을 테니, 평화를 위해 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결과적으로, 문은 저절로 파괴되었고 그것이 막고 있던 것들은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게 됐답니다.―

50년이 훌쩍 지난 일이다.

그러나 그날의 악몽은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남겼다.

문이 막고 있던 건, 훗날 ‘게이트(Gate)’라 이름 붙여진 것.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괴물들이었다.

독을 품고 있기도 했고, 불을 뿜어내기도 하는 것들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어 갔다.

―그러다 진화를 맞이한 인간이 나타나게 됩니다.―

인류가 붙인 이름은 각성자.

깨어난 자라고도 불리는 그들은, 저마다의 무기와 능력으로 괴물들을 처치해 나갔다.

―그 후에 게이트에 관한 연구가 진행됐고, 예측 불가능한 그것들의 출현을 막기 위해 각국이 힘을 합치게 됐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전 세계 공용 네트워크, A-Index.

“그리고 이를 관리하는 곳이, 여러분이 계시는 이곳. 각성자 관리국입니다.”

“……!”

“뭐, 지금의 A-Index는 게이트의 출현 정보를 예측하는데 그치지 않고 각국의 여러 각성자들의 정보도 담고 있지만 말이야.”

유은영이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 뭐예요! 놀랐잖아요!!”

“지루해서. 놀랐다면 미안.”

“그걸 말이라고……!”

유은영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분명 유은영은 여자와 두 칸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여자는 어느새 유은영의 옆자리에 있었다.

“끝나면 깨워 줘.”

“네?”

“지루해 죽을 것 같아서.”

10분 남짓한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자는 피곤해 죽을 기세였다. 어쨌든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테이블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유은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여자를 쳐다봤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대한민국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랭킹 1위, 바로 저. 지화자가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

화면 속에 나타난 얼굴에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화자.

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이 센터 내에서는 말이다.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여자의 어깨를 조심스레 흔들었다.

“저… 저기요……?”

“…다 끝났어?”

짜증스레 찌푸려진 눈가.

“아니요, 끝나지는 않았는데요.”

여자가 그럼 왜 깨웠냐는 듯이 유은영을 쳐다본다. 유은영은 대답 대신 화면을 가리켰다.

“아.”

여자가 멍청한 소리를 한 번 흘리고는 태평하게 물었다.

“나 화면발 잘 받지?”

“…….”

지화자.

A-Index에서 열람 가능한 정보는 아래와 같다.

-Name: 지화자(池話者)

-Birth: 20X1. 8. 17

-Local: 82_대한민국

-Rank: S급

-Number: 1st

그러나 사람들이 기억하는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혈육을 죽여, 랭킹 1위를 거머쥔 살해범.

국내, 열세 명뿐인 S급 각성자.

그들 중에서도 굳건하게 랭킹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

“…지화자 씨?”

“응.”

그렇다고 해도 살인자다.

그것도 열일곱 살의 나이에 전(前) 랭킹 1위, ‘지유화’를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은 사람.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로 지화자 씨?”

“응, 여기.”

지화자가 재킷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보여 주었다. 그녀의 센터 출입증이었다.

유은영이 그것을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중얼거렸다.

“…진짜네.”

지화자가 그 작은 목소리를 듣고는 짜증스레 말했다.

“진짜라고 했잖아. 그래서 영상 끝났지?”

“네? 네, 그런 것 같은데…….”

유은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화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문을 열어젖히는 그녀를 유은영이 뒤늦게 따라갔다.

“잠깐만요!”

영상에 관해 변명거리를 좀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유은영이 지화자를 붙잡으려 할 때였다.

“퇴근했나 보네.”

“네에?!”

유은영이 휙휙,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지화자의 말대로 자신을 안내해 준 직원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유은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지화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저희가 영상을 끝까지 다 보는지, 그런 거 확인해야 하지 않나요?”

“굳이?”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걔도 퇴근하고 싶었을 거 아니야? 오늘 금요일인데 어서 집에 가야지.”

그 말을 끝으로 지화자는 더는 볼 일이 없다는 듯이 비상구의 문을 열었다.

“자, 잠깐만요! 같이 가요!!”

“내가 왜?”

“무섭단 말이에요! 1층까지만 같이 가 줘요……!”

솔선수범, 환경을 생각하는 센터는 복도의 불빛까지 최소한으로 켜 두고 있었다.

귀신 나오기 딱 좋은 환경.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F급, 귀신이 무서울 만도 했다.

유은영이 벌벌 떨며 지화자의 소매 끝을 소심하게 잡았다. 지화자가 그 모습을 한심하게 보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천천히요! 조금만 천천히 가요!”

“싫어.”

“초콜릿 더 줄게요!”

지화자가 내가 그깟 초콜릿으로 걸음을 맞춰 줄 인간으로 보이냐는 듯이 유은영을 노려봤다.

하지만 겁에 질린 유은영의 두 눈에는 네가 주는 초콜릿을 받아먹고 내 친히 너와 걸음을 맞춰 주겠다로 보였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코를 훌쩍이며 지화자의 손에 몇 안 남은 초콜릿을 모두 쥐여 주었다.

지화자가 기막히다는 듯이 유은영을 쳐다봤다.

“너는…….”

“그거 비싼 거예요.”

공무원 월급은 거기서 거기다. 암만 랭킹 1위라도 받는 돈은 같을 거다.

유은영은 그럴 것이라고 믿고 말을 덧붙였다.

“구하기도 어려운 거예요! 비행기 타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온 거라고요!”

먼 길 왔네.

지화자가 떨떠름한 얼굴로 초콜릿 하나를 까먹었다.

“먹으셨으니까 천천히 가 주시는 거예요!”

“귀찮게 하는 언니네.”

내가 언니인 건 아는구나?

나이에 한해서는 K-유교걸이 되는 유은영의 이마에 핏줄이 올랐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요즘 시대에 나이로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안 된다.

중요한 건, 능력.

S급에서 F급.

총 일곱 단계로 측정되는 능력치 중, 가장 낮은 F급인 유은영은 지화자에게 알아서 기기로 했다.

“그런데 지화자 씨도 이런 영상을 시청하시네요?”

“공무원이니까.”

랭킹 1위라고 해도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구나. 하긴, 영상 안 보면 감봉이라고 했으니까.

‘랭킹 1위도 감봉당하는 건 싫나 보구나.’

유은영은 이상한 곳에서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지화자 씨, 공무원은 왜 되신 거예요? 길드를 세우시거나, 다른 길드로 가도 됐을 텐데요.”

“지유화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모르나 보네.”

지화자가 픽 웃음을 흘렸다.

지유화.

눈앞의 여자가 죽인 사람.

유은영이 새삼스레 저와 함께 걷고 있는 랭킹 1위가 살해자인 것을 떠올렸다.

“우리 언니, 만인의 사랑을 받는 인간이었잖아. 내가 그런 인간을 죽였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A-Index에 기록되는 ‘랭킹’이란 것은 유동적이었다.

처음부터 이 사회에 랭킹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A-Index에 의해 게이트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은 평화로워진 일상에 각성자들을 줄 세우기 시작했다. 누가 더 낫고, 강한지를 입씨름하며 싸워 대기 시작한 거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등장하게 된 것이 랭킹 시스템이었다.

각성자들은 게이트를 공략하거나 몬스터를 잡으며 포인트를 얻었다. 얻은 포인트는 랭킹에 반영됐고, 그에 따라 각성자들의 지위가 달라졌다.

높을수록 사회는 추종했고, 낮을수록 외면을 받았다. 때문에 각성자들은 어떻게든 높은 랭킹을 차지하고자 했다.

단번에 랭킹을 올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같은 각성자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암묵적으로 금지된 룰과도 같았다.

그런데 지화자가 그 룰을 깨뜨렸다. 그것도 혈육을 죽임으로써.

“그런 내가 길드를 세운다고 치자. 너라면 들어올래?”

“4대 보험 보장에, 고용자 보험 보장. 그리고 일당 많이 쳐주면 갈 건데요. 아, 연휴마다 상여금도 주면 더더욱이요!”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언니, 눈치 없다는 소리 많이 듣지?”

“일 못 한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요. 하지만 나름대로 눈치는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니야, 없어. 전혀 없어.”

지화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지화자와 대화를 나누며 다소 무서움이 사라진 유은영이 그녀와 발맞춰 걸으며 재잘거렸다.

“어쨌든! 그러니까 지화자 씨는 길드를 세우면 아무도 안 들어올 게 뻔해서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는 거죠?”

“길드 세우는 게 귀찮기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컨택도 못 받았었어.”

“컨택이요?”

“자신들의 길드에 오라는 그런 권유.”

“왜요?”

“야, 우리 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진짜 몰라?”

“만인의 사랑을 받는 분이셨다면서요?”

유은영이 그게 뭐 어쨌냐는 듯이 지화자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지화자 씨의 언니분에 대해서 잘 몰라요. 제가 뇌사에 빠진 적이 있어서.”

뇌사에 빠져 있던 기간이 지유화 씨가 랭킹 1위로 활약했을 때라고 유은영이 지화자에게 설명해 줬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눈을 떴는데! 세상에, 제가 각성자라는 거예요? 그것도 힐러!”

비록, F급이지만 말이다.

유은영이 자신의 등급을 숨기며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힐러는 각성자 관리국에서 1년간 소속되어 있어야 하잖아요. 필수적으로!”

그 희소성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제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몰라요. 이곳이 제 첫 직장이기도 하고요.”

“입사한 지 얼마나 됐는데?”

“석 달 조금 지났어요! 그래도 지화자 씨 얼굴을 몰라보다니! 첫눈에 알아봤으면, 영상이고 뭐고 이것저것 물어봤을 텐데요!”

해맑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웃었다.

“지금 물어보고 있잖아.”

“그렇죠!”

유은영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깨어난 지는 이제 1년 정도 지났나? 10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 있었던 것 치고는 회복이 무척 빨랐어요.”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지나간 일이니까요.”

“지나간 일이라…….”

지화자가 뜬구름 잡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걸음을 멈췄다.

“1층이네. 이제 서로 갈 길 가자, 알겠지?”

“네?”

“그럼, 안녕. 다시는 보지 말자.”

열어젖힌 문에 어두컴컴한 실내가 보인다. 유은영이 황급히 지화자를 붙잡고는 빌었다.

“잠깐만요! 염치없지만 바깥까지 데려다주십사……!”

이렇게 부탁한다는 말을, 유은영은 끝마치지 못했다.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가 싶더니, 뒤쪽으로 밀려간다. 누군가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만 기분.

유은영은 먼지가 된 기분을 느끼며 소리 질렀다.

“꺄아아악!!”

소리를 지르기 전, 누군가의 머리칼을 잡은 것 같지만 무시하자.

***

―국가 넘버, 82.

A-Index 오류가 감지됐습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국가 넘버, 82.

A-Index 오류가 감지됐습니다.

속히 오류를 해결하고, 서울 서초구 내곡동 1-3079에 생성된 게이트를……―

지화자도, 유은영도.

센터를 시끄럽게 울리는 메시지를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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