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3화 (13/200)

제13화

월요일.

흔히, 개쓰레기 요일이라고 불리는 빌어먹을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유은영은 하품을 참으며 하태균이 올린 보고서를 검토 중이었다.

“팀장님, 나 팀장님께서 줄 물건이 있다고 잠시 오라는데요?”

“그걸 왜 너한테…….”

유은영은 순간 생각했다.

지화자 성격이라면 현장 파견 부서의 모두와 친하지 않을 거라고.

당장, 1팀의 팀장인 조수현과는 지독한 관계이지 않은가?

지화자라면 현장 파견 부서의 모든 팀장의 연락을 씹는 게 일상일 게 분명했다.

그러니 하태균에게 연락을 보낸 거겠지.

유은영이 눈가를 꾹꾹 누르며 하태균에게 물었다.

“지금 오래?”

“네. 나 팀장님께서 지금 오면 좋겠답니다.”

나 팀장.

2팀의 팀장으로 본명은 나혜선.

A급 각성자지만, 등급 책정이 잘못됐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였다.

부여받았다고 알려진 성언(聖言)은, 나의 뜻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조종하거나, 정보를 캐내는 것이 특기였다.

이렇게만 들으면 나혜선의 전투 능력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나혜선이 조종할 수 있는 ‘상대방’에는 인간과 몬스터, 구분이 없었다.

때문에 나혜선의 등급은 조정되어야 한다는 말이 많았다.

“나는 인정 못 해. 나혜선, 그 인간은 A급이 적당해.”

지화자는 썩은 얼굴로 그렇게 이야기했었지마는.

사실, 지화자는 현장 파견 부서의 모든 팀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체로 표정이 썩어 있었다.

어쨌든 유은영은 사무실을 나서 2팀이 위치한 곳으로 향했다.

“어.”

“아.”

그러다 만난 예상치 못한 인물에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지 팀장님.”

“아… 하하…….”

유은영이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주위를 살폈다. 느껴지는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유은영은 지화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어요?”

지화자가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가 그녀 역시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2팀 때문에. 너도 2팀 때문에 온 거야?”

“네.”

“가하성이나 하태균을 보낼 것이지, 왜 네가 움직여?”

유은영이 입술을 씰룩였다.

“나 팀장님께서 저보고 직접 오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렇게 말했다고 진짜 움직여? 내가 말했지, 언니.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라고.”

“네에, 네. 다음부터는 직접 움직이는 일 없도록 할게요.”

유은영은 불퉁하게 그렇게 말했다. 2팀의 팀장, 나혜선이 모습을 드러낸 건 그때였다.

“어머, 지 팀장! 왔어? 옆에는 누구?”

유은영의 몸에 들어있는 지화자가 고개를 꾸벅였다.

“간호 관리 부서의 유은영입니다. 이혜나 팀장님께서 2팀장님께서 전해 주실 물건이 있다고 하셔서요.”

“아아! 혜나 팀원이구나! 잠깐만 기다려.”

나혜선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가 쇼핑백을 한 아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 간호 관리 부서 애들 챙겨 주려고 내가 사 온 거! 이번에 내려간 출장지가 제주도였거든! 그리고 지 팀장은 여기.”

유은영이 얼떨결에 나혜선이 건네주는 것을 받아 들었다.

“뭐, 뭐예요. 이거?”

“새삼스레 왜 존댓말?”

나혜선이 키득거리고는 말했다.

“한라산 소주 오프너야. 지 팀장, 말술이잖아!”

나혜선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쾌활한 웃음소리에 표정이 일그러진 건 유은영이 아니라 지화자였다.

유은영이 잔뜩 구겨지고 있는 자신의 얼굴에 지화자의 옆구리를 황급히 찔렀다.

지화자 씨, 표정 관리하세요!

지화자가 찔린 옆구리를 매만졌다. 다행히 구겨지고 있던 표정은 깔끔하게 갈무리 된 상태였다.

또한 정말 다행히도 그 타이밍에 나혜선이 잠깐 자리를 뜨게 됐다.

“나 팀장님, 부장님께서 부르십니다.”

“어머, 부장님께서 나 출근한 거 아셨나 보네? 지 팀장, 이건 지 팀장네 애들한테 줘. 나는 이만 가 볼게. 그럼, 안녕!”

나혜선이 손을 흔들며 부장실로 떠났다. 복도에 덩그러니 남게 된 유은영이 조심스럽게 옆에 있는 여자를 불렀다.

“저… 지화자 씨……?”

“나 술 못해.”

“아. 네에…….”

저는 술 잘하는데.

유은영이 치미는 말을 삼키며 한라산 소주 오프너를 소중히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잠깐만.”

지화자가 유은영을 멈춰 세웠다.

“유은영 씨, 아직 부장한테 보고 올리러 안 갔지?”

“네? 네, 오후에 간다고 했는데 무슨 문제 있나요?”

“아니, 문제는 없어. 그럼 부장한테 보고 올리러 가기 전에 나 좀 봐, 언니.”

“구체적으로 언제요?”

“12시 30분까지 A동 로비에 있는 커피숍으로 와.”

그 말에 유은영이 걱정스레 지화자에게 물었다.

“괜찮을까요?”

“뭐가.”

“제가 지화자 씨 만나는 거요.”

국내 랭킹 1위, 열셋뿐인 S급 각성자가 F급 힐러를 만난단다.

이목이 꽤 집중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유은영이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자,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을 거야. 금요일에 있었던 게이트 때문에 할 말이 있어서 그러는 건가 싶겠지.”

“하지만 너무 오픈된 장소인데.”

“다들 내 성격 지랄맞은 거 알아서 괜히 대화를 엿들으려고 한다거나 그럴 일 없을 거야.”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네 망할 팀원들 커피 심부름하러 간다.”

“아… 커피 심부름…….”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힘내세요, 지화자 씨.”

“응, 부디 내가 언니네 부서를 뒤집어엎지 않게 응원해 줘.”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길을 떠났다. 유은영이 그 뒤를 향해 외쳤다.

“뒤집어엎으면 안 돼요! 성질 죽여야 하셔요, 알겠죠?!”

지화자가 알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유은영은 그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이지, 걱정되는 사람이었다.

***

“형님, 이제 점심 먹으러 가죠.”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팀장님, 식사 즐겁게 하십시오.”

“어?”

AM. 11: 30

센터의 점심 시간이 시작됐다.

사무실에 홀로 덩그러니 남은 유은영이 두 눈을 끔뻑였다.

그녀는 뒤늦게 지화자가 혼밥을 즐긴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싫어하는데.”

유은영이 불퉁한 얼굴을 보였다.

혼밥을 얼마나 싫어하냐면, 그렇게 얄미운 간호 관리 부서의 팀원들과 어떻게든 함께 식사를 할 정도였다.

유은영은 시계를 한 번 흘긋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내식당에서 처량하게 혼자 숟가락을 들기는 싫었다.

‘커피숍에 가서 지화자 씨 기다리고 있어야지.’

유은영은 그렇게 약속 장소인 A동 로비의 커피숍으로 향했다.

‘느긋하게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있어야겠다.’

하지만 유은영은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없었다.

“지……!”

유은영이 황급히 말을 고쳤다.

“유은영 씨.”

지화자가 약속 시간 보다 이르게 커피숍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유은영이 지화자의 맞은편에 앉으며 목소리를 죽여 그녀에게 물었다.

“일찍 와 있었네요?”

“그러는 언니도 일찍 왔네.”

지화자가 다소 지친 얼굴로 유은영을 반겼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제 팀원들이 계속 못살게 굴어요?”

“언니.”

“네.”

“먼저 미안하다고 할게.”

“뭐가요?”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어진 지화자의 말에 유은영은 그녀가 왜 제게 사과했는지 알게 됐다.

“지, 아니. 유은영 씨! 미쳤어요?! 부장님께……!”

“쉿.”

간호 관리 부서의 부장, 구순철.

그는 십수 년째 탈모로 고통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부장님은 힐러면서 왜 탈모를 치료하지 못하고 있냐고 말하면 어떻게 해요!”

유은영이 잔뜩 목소리를 죽여 지화자를 다그쳤다. 지화자는 억울한 얼굴로 변명했다.

“하지만 그 망할 부장이 내 음료를 스틸해 갔단 말이야. 나 커피 못 마시는데.”

지화자가 뚱하게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

지화자는 간호 관리 부서의 팀원들이 부탁한 음료를 사 들고 돌아갔었다.

구순철이 부탁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바꿔 들고서 말이다.

물론, 일부러 그런 거였다.

어쨌든 간에 싱글벙글 웃으며 커피를 가지러 온 구순철은 지화자에게 물었다.

“유은영 씨,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없는데?”

“아아, 그게 말이죠. 제가 어디에서 들은 건데, 따뜻한 거 많이 먹으면 열이 올라서 대머리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 죄송. 부장님은 이미 대머리셨죠?”

크흡, 큽. 부서실 곳곳에서 웃음을 참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순철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화자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구순철이 꼭, 잘 익은 문어 대가리 같았기 때문이다.

구순철이 차마 화를 내지는 못하고 이를 으득 갈며 말했다.

“아, 하하, 우리 유은영 씨가 나를 이렇게 생각해 줄 줄은 몰랐네? 그런데 나는 차가운 건 영 별로라서 말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쿠키 프라페 좀 내가 가지고 갈게? 갑자기 당이 댕기네.”

구순철이 지화자가 제 몫으로 사 들고 온 쿠키 프라페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지화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손을 찰싹 치고 말았다.

“유은영 씨, 이게 무슨 짓이지?”

“아.”

“아?”

구순철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지화자의 말을 따라 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지화자는 뺨을 긁적이며 헤실거렸다.

“저도 모르게 그만.”

구순철은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제게 쩔쩔매던 폐급 힐러였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기어오르다니!

“유은영 씨, 곧 사내 평가 있는 거 모르나 보네? 아님, 갑자기 겁대가리를 상실한 거야? 어? 그런 거야?!”

이 새끼가 감히 누구한테 소리를 지르는 거야?

지화자는 울컥했으나 가까스로 마음을 다스리고는 말했다.

“부장님, 이게 다 부장님을 생각해서 하는 일이라니까요? 단 거 많이 먹으면 살찌세요. 혈압 관리해야죠. 머리도 잃었는데 건강도 잃으면 안 되잖아요. 아, 이렇게 된 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지화자가 히죽거렸다.

“부장님, 힐러 아니에요? 암만 센터의 부장급 힐러라도 탈모는 치료하지 못하나 봐요?”

“야! 유은영!!”

구순철이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

“그렇게 해서 너희 부장님은 엄청나게 개빡쳐서 나를 쫓아냈지.”

유은영이 앓는 목소리를 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우리 부장님, 누가 자기 머리 가지고 놀리는 거 엄청 싫어하는데! 그거 콤플렉스라고요!”

“놀린 거 아니야. 그냥 물어본 거지.”

“어쨌든요!”

유은영이 앓는 목소리를 내고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부장님이 뭐래요?”

“1년 예속 기간 끝나면 센터에 있을 생각하지 말라던데.”

신이시여……!

유은영이 울지 못해 웃었다.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 도로 담을 수는 없었다.

수습은 가능할지라도.

‘어쩔 수 없지.’

유은영이 불퉁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된 거, 책임지세요.”

“책임? 무슨 책임?”

“저를 책임지라고요!”

지화자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지금도 책임지고 있는데 뭘 책임지라는 거야?”

“제 안전한 공무원 생활을 책임지라고요!”

1년 예속 기간이 끝나면 센터에 있을 생각하지 말라고?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제 몸으로 0팀의 전담 어시스트가 되어 주세요.”

“뭐……?”

“0팀의 전담 어시스트가 되어 달라고요!”

전담 어시스트란, 현장 파견 부서에서 각 팀에 전담 힐러를 두는 것을 말했다.

지화자가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이 말했다.

“F급 힐러를 전담 어시스트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아? 부장한테는 뭐라고 말하고.”

“그거야 제가 알아서 할 거고요! 책임지란 말이에요! 제 직장을 날려 버린 책임을!”

쾅! 쾅!

유은영이 랭킹 1위의 힘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 쪽으로 모였다.

“안 그러면 공평하게 지화자 씨도 퇴사하게 만들어 버릴 거예요.”

지화자가 기가 차다는 듯이 유은영을 쳐다봤다.

“네가 어떻게? 그럴 깡은 있고?”

“있죠. 한 번 보세요.”

유은영이 지화자의 얼굴로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사시로 뜬 눈, 한껏 찌푸린 입가.

“야!!”

지화자가 기겁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은영이 얼굴 근육을 원래대로 되돌리고는 말했다.

“제 부탁 안 들어주면 이렇게 다닐 거예요.”

“뭐, 이런 언니가 다 있지?”

유은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지화자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알겠어. 전담 어시스트든 뭐든 네 마음대로 해. 대신, 부장한테 말하는 건 너야.”

“네네, 당연히 그래 드려야죠. F급 힐러인 유은영 씨가 어떻게 현장 파견 부서의 우종문 부장님께 직접 찾아가겠어요?”

저 망할 언니가 나를 놀리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유은영 씨, 보기보다 강단이 있단 말이야? 나를 상대로 협박이라니. 겁도 없지.”

“협박이라니요? 저는 단지 부탁을 한 것뿐이에요. 부탁!”

마지막 단어를 한 음절씩 끊어 말하는 것이 왜 저렇게 얄미운지 모를 일이었다.

“그보다 저는 왜 보자고 한 거예요?”

빨리도 물어보는 유은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