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5화 (15/200)

제15화

삐빅―!

도어록 문이 열렸다.

“왔어?”

지화자가 거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며 인사했다. 유은영이 신고 있던 구두를 벗으며 말했다.

“진짜 자연스럽게 있으시네요, 지화자 씨.”

“내 집이니까. 너야말로 내 집에 기어들어 오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니야?”

“이제 제집이니까요.”

지화자는 기가 차 입을 벌렸다. 유은영은 재킷을 벗어 던지고는 소파 위에 널브러졌다.

그런 그녀의 눈에 32인치 캐리어가 보였다.

“저 캐리어는 뭐예요?”

“너희 집에서 털어 온 네 옷들. 내 옷은 네 몸에 너무 꽉 끼어.”

“그러게 안 크시고 뭐 했어요?”

“언니, 내가 많이 편해졌나 봐? 잘 기어오르네.”

유은영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유은영 씨. 왜 그렇게 지쳤어? 전담 어시스트 요청이 잘 안 됐나 봐?”

“아니요, 그건 잘 됐어요. 그런데 지화자 씨네 팀원분들이랑 살짝 문제가 있어서요.”

“문제? 무슨 문제?”

“제가 상의도 안 하고 F급 힐러를 전담 어시스트로 요청한 데에 실망했나 봐요.”

“아, 그래? 난 또 뭐라고.”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안 그래도 바쁜 현대 사회에 팀원들 눈치까지 봐야겠어?”

“그치만요.”

유은영은 여전히 걱정된다는 얼굴이었다. 지화자가 그런 그녀를 흘긋거리고는 말했다.

“가하성은 내일이면 풀릴 거야.”

“그래요?”

아니, 잠깐만.

유은영이 소파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제가 가하성 씨 때문에 이러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안 봐도 뻔하지.”

가하성은 자신이 원래의 몸에 있을 때부터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대던 놈이었다.

“어쨌든, 가하성 성격이면 내일 풀릴 테니까 걱정 마. 하태균은 지금쯤 오늘 있었던 일 다 까먹고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있을걸?”

유은영은 미심쩍어하면서도 그 말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하태균 씨.”

다음 날, 유은영은 지화자의 말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팀장님, 하성이는 아직 안 왔습니까?”

“응? 으, 응. 그런 것 같은데.”

“매일 30분 전에 출근하던 녀석이 무슨 일이랍니까?”

“글쎄.”

설마, 어제 일로 실망해서 무단결근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런 걸로 그러겠어?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도 있잖아. 정말 어제 일로 실망해서 무단결근하는 거라면 어떻게 해?’

유은영이 초조하게 시계를 쳐다봤다.

8시 30분, 40분…….

출근 시간인 9시가 다 되어도 가하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허, 생전 지각 한 번 안 하던 놈이 도대체 무슨 일이래.”

하태균의 혼잣말에 유은영은 머리를 감싸 쥐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짜 어제 일로 실망해서 무단결근하는 거야?!’

전화라도 걸어 봐야 하나, 유은영이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어요.”

가하성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에 얼굴을 비췄다. 유은영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하성 씨!”

“네?”

가하성이 놀란 눈으로 자리에 멈춰 섰다. 유은영이 크흠,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지각했네?”

“네, 오다가 사고가 나서요.”

“사고? 무슨 사고요!”

유은영이 놀라 물었다. 가하성은 미간을 좁혔다가 이내 태연하게 대답해 줬다.

“좌회전하는데 오토바이가 와서 박더라고요. 저는 안 다쳤어요. 오토바이 운전자가 많이 다쳤지.”

유은영은 가하성이 몰고 다니는 바이크를 떠올렸다. 가하성의 바이크를 박은 오토바이 운전자가 심히 걱정됐다.

“그래도 하성아, 오늘 연차 내고 병원 가 보지 그래?”

하태균이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가하성을 봤다. 가하성은 어깨를 으쓱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좀 그런 것 같으면 전담 어시스트로 오실 F급 힐러 분께 한 번 봐달라고 하죠.”

가하성이 유은영을 향해 비딱하게 웃음을 지었다.

“암만 F급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치유 능력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팀장님께서 저희와 상의도 없이 그분을 전담 어시스트로 요청한 거겠죠?”

가시 돋친 말에 유은영은 조용히 고개 숙였다.

그 F급, 가진 거라고는 기가 막힌 안마 기술밖에 없어요.

가진 거라고는 기가 막힌 안마 기술밖에 없는 F급 힐러가 0팀을 찾아온 건 점심 무렵이었다.

“자, 소개하지. 이쪽은 간호 관리 부서의 유은영 씨. 오늘부터 0팀의 전담 어시스트가 됐다네. 다들 지화자 팀장한테서 이야기 들었을 거라고 알고 있겠네.”

우종문의 소개에 지화자가 자신의 팀원들을 향해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거렸다.

“안녕하세요, 유은영입니다. 0팀과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할지 모르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F급이라고 해도 지화자 팀장의 말로는 재능이 뛰어난 친구라고 하더군. 그럼, 나는 이만 가 보지. 서로 이야기들 나누게.”

“가십시오, 부장님.”

그렇게 말한 사람은 지화자였다.

우종문이 지화자의 깍듯한 인사에 너털웃음을 터트리고는 0팀의 사무실을 나갔다.

가하성과 하태균은 서로 눈치를 봤다. 유은영의 몸을 하고 있는 지화자에게 인사할 타이밍을 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인사도 하기 전에 지화자가 제 몸에 들어가 있는 유은영을 불렀다.

“지화자 팀장님?”

“네?”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유은영이 황급히 말을 고쳤다.

“아니, 왜.”

지화자가 선하게 웃으며 유은영에게 물었다.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자유롭게 앉아도 좋다면, 지화자 팀장님 옆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응? 아아, 괜찮지.”

“감사합니다.”

지화자는 그대로 비어 있던 유은영의 옆자리에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려던 하태균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가하성은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지화자를 노려봤다. 그 시선이 느껴질 텐데도 지화자는 태연했다.

한참 동안 자리를 정리하고 있던 지화자가 고개를 들었다.

“지화자 팀장님.”

“으, 응?”

“간호 관리 부서에서 깜박하고 들고 오지 않은 물건이 있어서요.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지화자가 팀원들 몰래 유은영에게 쪽지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유은영은 지화자가 건넨 쪽지를 받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편하게 다녀와.”

지화자가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그러자마자 유은영이 받은 쪽지를 펼쳤다.

[조금 있다가 밖으로 나와.]

지화자 씨, 필기체 예쁘네.

유은영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아무도 안 물어봤지만, 유은영은 구태여 나가는 이유를 말해 줬다.

그렇게 사무실을 나왔을 때.

“우왓!”

누군가 유은영의 손목을 잡고서 그대로 모퉁이를 돌았다.

그 누군가란 당연히 지화자였다.

“지, 지화자 씨?”

“잔말 말고 따라와.”

지화자는 모퉁이를 한 번 더 돈 다음에야 유은영의 손목을 놓아줬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아 그늘 진 곳에서 지화자가 입을 열었다.

“나만 아는 곳이야. 사람 올 일 없으니까 편하게 이야기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은영이 놀란 눈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어제 저희 팀으로 온다는 말씀 없으셨잖아요!”

지화자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우리 팀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 같네? 저희 팀이라니.”

“어쨌든요!”

유은영이 쨍하니 외쳤다. 지화자는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 출근하니까 대머리 부장이 짐 싸서 0팀으로 가라고 하던데?”

그러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 부장이 일 처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르거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담 어시스트를 요청한 지 하루 만에 지화자 씨를 0팀에 데리고 오다니!

“뭐, 다행이지 않아? 내가 옆에서 열심히 도와줄 수 있잖아.”

열심히 도와주는 게 아니라, 열심히 쪼는 거 아닐까? 생각하니 지화자를 전담 어시스트로 요청한 일이 후회됐다.

유은영은 그렇게 과거를 후회하며 지화자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게이트 공략에도 함께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전담 어시스트가 왜 전담 어시스트겠어?”

지화자가 웃음을 지었다.

“언니, 이제부터 더욱 열심히 훈련해야 해. 게이트 공략 가면 나 지켜 줘야지.”

유은영이 시무룩하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그냥, 지화자 씨는 게이트 공략 있을 때마다 바깥에서 기다려 주면 안 돼요? 별 도움도 안 될 것 같은데.”

“유은영 씨는 가끔 이 몸이 자기 몸이라는 걸 잊는 것 같아.”

“아니요.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는데요?”

단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뭉친 근육을 완벽하게, 그리고 아프지 않게 풀어 주는 안마 기술밖에 없는 자신이었다.

암만 랭킹 1위에 S급 각성자인 지화자가 제 몸에 들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 몸뚱이가 F급 힐러의 몸뚱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게이트에 함께 들어가 봤자 방해만 될 터.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중에 가하성 씨 어깨나 좀 안마해 주세요.”

지화자가 눈가를 찡그렸다.

“안마? 내가 그 자식 어깨를 왜 주물러 줘야 하는데?”

“지화자 씨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 더군다나 오늘 출근길에 사고당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좀 살펴봐 달라는 거죠! 하지만 제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안마밖에 없으니까요!”

“자랑이야, 언니.”

“자랑 맞아요. 그리고 겸사겸사 가하성 씨께 좋은 인상도 심어 줄 수 있잖아요?”

지화자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유은영에게 물었다.

“내가 걔한테 굳이 좋은 인상을 심어 줘야 해?”

“저는 평화로운 팀을 지향하거든요. 그러니까 알겠죠?”

“싫어.”

지화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 자식이 먼저 제 몸 좀 살펴 달라고 온다면 모를까. 내가 먼저 살펴봐 주지는 않을 거야.”

지화자는 알았다. 가하성이 자신에게 먼저 제 몸을 살펴봐 달라고 오지 않을 거란 것을.

하지만.

“근육통이요……?”

“네, 오늘 출근하면서 사고가 좀 있었거든요. 그것 때문인지 어깨가 좀 뻐근하네요.”

예상과 달리 가하성이 먼저 찾아왔다.

“유은영 씨, F급이라고 해도 힐러니까 저 좀 살펴봐 줄 수 있죠?”

저를 살펴봐 달라고.

지화자가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비딱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내 그녀는 활짝 웃으며 가하성에게 말했다.

“잠시 뒤돌아 앉아 주실래요?”

“네?”

“근육통 풀어 달라면서요. 뒤돌아 앉아 보세요.”

가하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지화자가 하라는 대로 뒤돌아 앉았다. 지화자는 그대로 가하성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힘을 주며 주물러 버렸다.

“아악! 아아악!!”

억센 악력에 가하성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지화자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근육통은 또 다른 자극을 주면 쉽게 풀어지거든요.”

웃는 얼굴이 사악해 보였다.

유은영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어 버리고 싶었다.

좋은 인상 심어 주라니까, 그런 식으로 나오면 어떻게 해요!

정말이지, 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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